대표님, 야간 특약은 100일입니다

대표님, 야간 특약은 100일입니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9
Por:  유니버쓰Actualizado ahora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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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비서 윤세아는 대표 강도헌이 내민 계약서에 서명한다. "낮에는 비서,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내 사람. 기간은 100일." 하지만 세아에게는 이 계약을 받아들인 비밀이 있다. 그를 무너뜨리러 왔다는 것. 그리고 도헌은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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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apítulos
1화. 우리, 처음 보는 거 아니죠?
태성그룹 본사 52층.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복도가 얼음장처럼 조용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아홉 시 오십 분을 가리켰다."윤 실장님이시죠? 전임자들은 한 달을 못 버텼습니다. 세 명 연속이요."안내를 맡은 직원이 속삭였다. 세아는 미소로 받았다."그래서 제가 왔습니다."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속은 달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고 있었다.3년이었다. 이름을 바꾸고 이력을 다듬고, 이 층에 서기 위해 3년을 썼다. 아버지의 회사를 삼킨 남자가 이 문 너머에 있었다.세아는 노크 세 번 후 문을 열었다.넓은 대표실 한가운데, 남자는 창을 등지고 서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그의 어깨선을 따라 흘렀다. 강도헌. 태성그룹 대표. 사진보다 훨씬 위험한 사람이었다."늦었군.""오늘 오후 인사 발령이라, 인수인계에 시간이 걸렸습니다.""변명은 필요 없어."그가 천천히 돌아섰다. 눈 밑에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는데도, 시선은 칼날처럼 곧았다. 그 눈이 세아의 얼굴을 훑었다. 이마, 눈, 입술 순서로. 느리게.세아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지는 거였다."윤세아.""네, 대표님.""스물여덟. 경력 6년. 전 직장 퇴사 사유는 '개인 사정'."그가 책상 위 서류를 손끝으로 톡 쳤다."이력서가 너무 깨끗해.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흠이 없을 수가 있나?""흠 없는 비서를 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원하긴 하지. 그런데."그가 걸어왔다. 구두 소리가 대리석 위에서 또각, 또각. 세아의 정면에서 멈췄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너무 완벽한 사람은 대개 뭔가를 숨기고 있어."세아의 손끝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숨길 게 있었다면 대표님 앞에 서지 않았을 겁니다."정적이 흘렀다.도헌의 입술 끝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알 수 없는 각도였다."좋아. 첫날부터 대꾸하는 비서는 처음이군.""불편하시면 바꾸셔도 됩니다.""바꾸라고?"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세아의 등이 서류장에 닿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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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나를 죽이러 왔어요?
대표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세아는 숨을 삼켰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등 뒤에는 서류장, 앞에는 도헌. 그리고 턱 끝에는 아버지 회사의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사람 잘못 보셨습니다.”"그래?"도헌이 만년필을 거두었다. 대신 책상 위 서류철을 열어 세아 쪽으로 밀었다."한세아. 한진정밀 한도식 회장의 외동딸. 3년 전 아버지가 쓰러진 직후 호적에서 이름을 바꿨지. 어머니 성으로."종이 위에 세아의 옛 증명사진이 있었다. 단발머리에 앳된 얼굴. 지워버린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머릿속이 하얘졌다. 3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서류철까지 만들어 놓았다."언제부터입니까."더는 부인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이력서가 들어온 날."“……그런데 왜 채용했습니까.”"궁금해서.""뭐가요.""나를 죽이러 온 사람이, 어떤 얼굴로 내 앞에 서는지."세아의 눈이 번뜩였다. 가면이 벗겨졌다. 비서의 미소 대신 한진정밀 딸의 얼굴이 드러났다."알면서 들였다면 각오는 하셨겠네요.""각오?""제가 대표님한테서 뭘 가져갈지."도헌이 웃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웃음이었다. 낮고, 위험하고, 이상하게 기분 좋은 웃음."좋네. 그 눈."“……뭐라고요?”"방금까지는 죽은 눈이었어. 지금은 살아 있어."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세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올려다보았다."경찰을 부르시죠. 아니면 보안팀이든.""안 부를 거야.""왜요.""내가 원하는 게 따로 있거든."도헌이 책상 서랍을 열고 얇은 파일 하나를 꺼냈다. 표지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그가 그것을 세아의 가슴께에 툭 얹었다."읽어 봐.""이게 뭡니까.""당신이 나를 무너뜨릴 기회."세아의 손이 멈췄다.“……무슨 소립니까.”"계약서야."표지를 넘기자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야간 특약서〉그리고 첫 줄.제1조. 갑은 을을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곁에 둔다.세아의 얼굴이 굳었다."지금 이게 무슨 뜻입니까."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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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불 끄지 마요
침실 문턱이 국경선처럼 느껴졌다.세아는 서류철을 가슴에 끌어안고 한 발도 떼지 못했다. 안쪽에서 도헌이 재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고 있었다. 어깨선을 따라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풀렸다."거기서 밤샐 거야?"“……제1조는 '곁에 둔다'였습니다. 침대에 눕는다는 말은 없었어요.”"꼼꼼하네.""계약서니까요."도헌이 낮게 웃었다. 소매 단추를 풀던 손이 멈췄다. 그가 한쪽 소매를 천천히 접어 올렸다. 드러난 손목뼈 위로 시계 줄이 헐겁게 흘러내렸다.세아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벽지의 무늬를 세었다.방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큰 침대 하나, 어두운 조명, 그리고 협탁 위에 수북이 쌓인 수면제 약통들. 뚜껑이 열린 채 굴러다니는 것도 있었다. 전부 비어 있었다.“……이걸 다 드셨어요?”"다 먹었지. 안 들어서 문제였고.""이러다 큰일 납니다.""그래서 당신이 온 거 아닌가."도헌이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가운데 불빛이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깊게 팠다. 낮의 대표는 사라지고 지친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규칙을 하나 더 말해 줄게.""또 있어요?""계약서엔 안 썼어. 쓰면 우스워질 것 같아서."그가 시선을 들었다."불은 켜 두지 마. 어두워야 해.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밝으면 더 심해."세아는 대답을 잃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이 남자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뭐가 보이는데요.”“3조.”"과거는 안 묻는 거요.""기억하네."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 스탠드 스위치에 손을 댔다.딸깍.방이 어둠에 잠겼다. 창밖의 도시 불빛이 커튼 틈으로 가느다란 선을 그었다. 그 빛 속에서 도헌의 윤곽만 겨우 보였다."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누워."“…….”"오해하지 마. 눕기만 해."세아가 침대 반대편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가능한 한 멀리. 매트리스가 낮게 꺼지며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거리를 남겼다."그렇게 멀리 있으면 소용없어.""소용이 없다니요.""당신이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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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6시 정각까지는 내 사람
새벽 5시 59분.세아는 한 시간째 눈을 뜬 채 천장만 보고 있었다. 손목은 여전히 그의 손안에 있었다. 놓아 달라고 말할 수도, 스스로 빼낼 수도 없었다. 맥박이 그의 엄지 아래서 제멋대로 뛰었다. 들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방법이 없었다.등 뒤에서 이불이 움직였다.손목을 쥔 힘이 달라졌다. 잠든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깼어요?”"한참 전에."잠이 덜 풀린 쉰 목소리가 뒷목에 닿았다. 세아의 등줄기가 서늘하게 일어섰다."내가 뭐라고 했지."“……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거짓말."그의 엄지가 맥박 위를 천천히 눌렀다."여기가 이렇게 뛰는데."세아는 숨을 멈췄다. 그가 몸을 일으켜 그녀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기울였다. 어둠 속에서도 시선이 느껴졌다. 목덜미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시선이."돌아봐."“……싫습니다.”"그럼 내가 돌려도 되나."잠깐의 침묵 끝에 세아가 낮게 말했다.“……허락받는 버릇, 계속하시는군요.”"당신한테만."그 한 마디가 이불보다 무겁게 내려앉았다. 세아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생각보다 가까웠다. 이마가 닿을 만큼. 커튼 틈의 새벽빛이 그의 눈썹과 콧날, 입술 위로 가늘게 흘렀다. 잠을 잔 얼굴은 낮의 대표와 완전히 달랐다. 풀린 눈, 헝클어진 머리칼, 열린 셔츠 깃 사이로 보이는 쇄골.세아는 시선 둘 곳을 잃었다.“3년 만에 처음 푹 잤어.”“……다행이네요.”"당신 덕분이야. 그래서 이상해."그의 손이 올라왔다. 세아의 뺨 가까이에서 멈췄다. 닿지 않은 채 공기만 데웠다."만져도 되나."심장이 귀 안에서 울렸다. 거절해야 했다. 이 남자는 원수일지 모른다. 방금도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머리로는 알았다.“……계약서에는.”"없지.""그럼.""그러니까 묻는 거야. 계약이 아니라, 당신한테."세아의 입술이 아주 조금 벌어졌다. 대답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대신 눈을 감았다. 그게 허락이라는 걸 알면서.손끝이 닿았다.뺨 위에 한 번, 가볍게. 그다음 귓가의 머리카락을 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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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10시 정각, 선을 넘는 사람
"형이 또 새 장난감을 들였네."이사회 직전, 대표실 앞 복도였다. 낯선 남자가 세아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도헌과 닮은 눈매에 훨씬 가벼운 입매. 강민재 전무였다."놓으시죠, 전무님.""이름이 윤세아라지? 형이 비서를 이틀 이상 곁에 둔 건 처음이라."민재의 시선이 그녀의 목덜미에서 멈췄다. 세아는 아침에 가렸다고 생각한 자리를 떠올리고 숨을 죽였다. 도헌의 숨이 닿았던 곳이었다."조심해요. 형은 가진 걸 부수는 취미가 있거든."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떨어졌다."민재."낮고 건조한 한 마디에 복도의 온도가 내려갔다. 도헌이 서 있었다. 시선은 민재의 손이 닿은 세아의 팔에 먼저 꽂혔다."내 비서한테서 손 떼.""아, 내 비서였나? 형 거였어?"“……회의 시작한다.”도헌은 세아를 한 번도 보지 않고 지나갔다. 그런데 스쳐 가는 순간 그의 새끼손가락이 그녀의 손등을 아주 짧게 훑고 갔다. 아무도 못 봤을 속도로, 정확하게.세아는 하루 종일 그 한 점이 타는 것 같았다.밤 9시 58분.세아는 현관 앞에서 두 번 숨을 골랐다. 도어락 소리가 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도헌은 셔츠 단추를 세 개나 풀고 소매를 걷은 채였다. 낮의 대표가 아니었다.“2분 일찍 왔네.”"제1조는 10시부터입니다.""그래서 2분 동안은 밖에 세워 둘 생각이었어."“…….”"거짓말이야. 들어와."문이 닫히고 잠금 소리가 났다. 도헌은 말없이 그녀의 코트를 벗겨 걸었다. 어깨를 스치는 손길이 느리고 의도적이었다."물어보라고 했지. 아직 안 물었더군."“……물으면 대답하실 겁니까?”"하겠다고 했으니까."도헌이 거실 불을 하나씩 껐다. 마지막 스탠드 하나만 남았을 때 그가 말했다."그런데 오늘은 안 물었으면 좋겠어.""왜요.""대답하고 나면 당신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질 거야. 오늘 하루는, 그 전의 당신을 더 보고 싶어."세아의 목이 말랐다.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그러니까 세아. 오늘 밤은 질문 말고, 다른 걸 하자."“……다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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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읽었으면, 이제 깨야지
새벽 5시 58분.세아는 휴대폰 화면이 꺼진 뒤에도 한참 천장을 보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 문장이 떠올랐다.회장님께서 이미 알고 계십니다.옆에서 도헌이 몸을 뒤척였다. 팔이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다. 맨살에 닿는 체온이 어젯밤 그대로였다. 그게 더 견디기 어려웠다.“……읽었지.”잠긴 목소리가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세아의 몸이 굳었다."자는 줄 알았는데요."“3시에 진동 소리 났을 때부터 깨어 있었어. 당신이 숨을 멈추는 것도 들렸고.”“…….”"모른 척해 줄 수도 있었어. 근데 그러면 당신은 나를 더 의심하겠지."도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기대앉았다. 시트가 허리께로 흘러내렸다. 어둠 속에서 어깨와 등의 선이 푸르스름하게 드러났다. 세아의 시선이 그 위를 지나다가, 어젯밤 자신의 손톱이 남긴 붉은 자국에서 멈췄다. 귀가 달아올랐다."보지 마."“……안 봤어요.”"봤어. 지금 당신 숨이 달라졌거든."그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오 비서관은 회장님의 사람이야. 내 아버지, 강태성 회장."세아의 눈이 커졌다."당신 아버지 회사를 인수하라고 지시한 사람. 그리고 내가 그 서류에 도장을 찍게 만든 사람."“……찍었군요. 결국.”"찍었어."변명은 없었다. 세아는 이불을 가슴께로 끌어당기며 일어나 앉았다. 방금까지 따뜻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식었다."그럼 어젯밤 잠꼬대는요. 제가 막았어야 했다는 건.""제3조를 깨는 중이야. 끝까지 들을 수 있겠어?"“……말해요.”"당신 아버지는 그 서류를 보기 전에 이미 쓰러지셨어. 나는 그걸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인수 승인서에 서명했어. 그날 병원에 있던 사람이 나였다는 건."도헌의 목소리가 거기서 끊겼다. 턱 근육이 굳었다.“……여기까지만. 나머지는 아직 못 해. 내가 확인 못 한 게 하나 있어서.”"그걸 믿으라고요?""믿으라고 안 해. 당신 손으로 찾으라고 했잖아."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가 올라오는데, 이상하게 그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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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거래는 낮에, 죄는 밤에
"한도식 회장님의 마지막 유언,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이사회가 끝난 복도 끝, 비상계단 앞이었다. 오 비서관은 백발이 섞인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채 웃고 있었다. 눈만 웃지 않았다.“……유언이라고 하셨습니까.”"쓰러지시기 전날 밤, 제게 남기신 말씀입니다. 따님께 전해 달라고 하셨지요. 한세아 양에게."세아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대가는요.""현명하시군요. 간단합니다. 대표님의 서재 금고, 그 안의 파란 파일 하나. 그것만 가져다주십시오."“…….”"그러면 유언도, 3년 전의 진실도 드리겠습니다. 오늘 밤 안에."오 비서관이 명함 한 장을 그녀의 재킷 주머니에 밀어 넣고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세아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헌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그 사람이 거래를 먼저 꺼낸다면, 그건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밤 10시 정각.현관문은 이번에도 노크 전에 열렸다. 도헌은 검은 셔츠 차림이었다. 눈 밑이 어두웠다. 하루 종일 그녀가 돌아올지 아닐지 생각했다는 얼굴이었다."왔네.""약속했으니까요.""만났지.""네."“……뭐라고 하던가.”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구두를 벗고 현관을 지나 그의 앞에 섰다. 주머니 속 명함이 손끝에 스쳤다. 말해야 했다. 말하지 않으면 이 남자를 속이는 것이었다."오늘은."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은 안 물을 거예요. 어제 대표님이 하셨던 것처럼."도헌의 눈빛이 가라앉았다.“……세아.”"그 대신."그녀가 그의 셔츠 깃을 잡았다. 한 걸음 더 다가서자 두 사람의 가슴이 맞닿았다."오늘은 내가 정할래요. 몇 시까지, 어디까지.""제1조는 내가 쓴 건데.""제13조는 제가 썼죠."도헌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이 사라지기 전에 세아가 그의 입술을 먼저 물었다.침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세아는 그를 침대 가장자리에 앉히고 그 앞에 섰다. 도헌은 올려다보았다. 허락을 구하는 남자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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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마지막 장의 이름
서재의 불은 켜지지 않았다. 열린 금고에서 새는 푸른 빛과 창밖 도시의 불빛만이 두 사람 사이를 갈랐다.세아는 파일을 펼쳤다. 첫 장은 인수합병 승인서였다. 도헌이 말한 대로 거짓이었다. 서명란에는 강태성 회장의 이름과 도헌의 도장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그녀는 한 장씩 넘겼다. 숫자, 계약 조항, 병원 기록. 손끝이 점점 차가워졌다.마지막 장에서 손이 멈췄다.기획서도 승인서도 아니었다. 손으로 쓴 편지였다. 익숙한 필체였다. 어린 시절 생일마다 받던 카드 위의 글씨. 모서리가 살짝 기울어지는 아버지의 글씨였다.[세아야. 이 글을 읽는다면 네가 강도헌 대표를 만났다는 뜻이다. 회사를 판 건 내 선택이었다. 강태성에게 빼앗기느니, 그의 아들에게 넘기고 너를 맡기는 길을 택했다. 그 아이는 나를 막으려 했다. 끝까지.]세아의 숨이 끊겼다.그 아래, 날짜가 있었다. 3개월 전.“……3년 전이 아니라, 3개월 전.”목소리가 갈라졌다. 도헌이 한 걸음 다가왔다."맞아.""아버지는 돌아가신 게…….""오 비서관이 그렇게 말했겠지. 유언이라는 단어를 썼을 거고."도헌의 눈빛이 가라앉았다."한도식 회장님은 살아 계셔. 3년 전 쓰러진 뒤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가, 올해 봄에 눈을 뜨셨어. 내가 모셨어. 강태성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내 이름으로 된 병실에."세아의 손에서 편지가 떨어졌다."그걸…… 3개월이나.""당신이 입사한 날 전에 알려야 했어. 못 했어.""왜요!"그녀의 목소리가 터졌다. 눈이 뜨거워졌다."왜 못 했는데요! 3년을 원수라고 믿으며 살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당신 목에 칼을 겨눌 생각만 하면서!""당신이 사라질까 봐."도헌의 목소리가 낮게 부서졌다."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는 걸 알면 당신은 복수를 멈추겠지. 그럼 이 계약도 필요 없어지고. 내 곁에 있을 이유도 없어지고."“…….”"비겁하지. 알아.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온 걸 알면서, 나는 당신이 계속 오기를 바랐어."짝.세아의 손이 그의 뺨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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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열린 문, 닫히지 않는 밤
새벽 4시 30분, 검은 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렸다.세아는 뒷좌석에서 손톱으로 무릎을 눌렀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안 지 한 시간이 채 안 됐다. 그런데 벌써 잃을지도 모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세아."옆에서 도헌이 낮게 불렀다. 그는 운전기사에게 속도를 올리라고 한 뒤, 그녀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내 잘못이야. 병실 위치가 새면 이렇게 될 줄 알았어."세아는 대답 대신 손을 뻗었다. 그의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얹고, 깍지를 끼웠다. 처음으로, 허락도 묻지 않고 먼저.도헌의 어깨가 굳었다가 천천히 풀렸다.“……먼저 잡네.”"지금은 말하지 마요.""응.""무서워서 그래요. 다른 이유 없어요.""알아."그는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그 힘이 몸 안의 떨림을 눌러 주었다. 세아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이 남자의 손만이 자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때리고 미워한 남자의 손이."만약에, 늦었으면요.""그럼 내가 모든 걸 걸고 찾아내."“……그리고요?”"그 뒤에 당신이 나를 죽이고 싶다면, 그때는 말리지 않을게."세아는 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그의 목에서 밤새 남은 체취가 올라왔다. 서재의 가죽과 땀, 그리고 어제 그녀가 입술로 남긴 자국이 아직 희미하게 붉었다. 그 모든 게 이 순간엔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병원 7층 복도는 불이 반쯤 꺼져 있었다.간호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헌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세아도 따라 달렸다. 복도 끝, 705호. 도헌의 이름으로 등록된 병실.문이 열려 있었다.세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형광등 빛이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도헌이 한 손으로 그녀를 막아 세우고 천천히 문을 밀었다.침대가 비어 있었다.시트가 흐트러져 있고, 링거 줄이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세아의 다리가 풀렸다. 도헌이 그녀의 허리를 받쳤다."아버지…….""세아, 숨 쉬어.""아버지가, 아버지가 없어요.""창가를 봐."세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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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질문 한 번에, 한 겹
"대표님, 제77조에 뭐라고 쓰셨어요?"차 안의 공기가 멈췄다. 도헌의 팔이 세아의 허리에서 천천히 풀렸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그건 말 못 해.”"박지윤은 알고 있대요. 제 아버지도 알고 계시고요. 저만 몰라요.""세아.""계약서 제3조, 과거를 묻지 않는다. 그건 이미 깨졌잖아요."“77조는 과거가 아니야. 미래야.”그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세아는 한참 그의 눈을 보다가 그의 무릎에서 내려와 옆자리에 앉았다.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갔다. 몸은 아직 그의 체온을 기억하는데도.“……좋아요. 오늘 밤 10시에 얘기해요.”"세아, 지금은."“10시 전에는 계약 시간이 아니니까, 아무것도 안 들을래요.”그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헌은 허공에 뜬 손을 한참 만에 내렸다.밤 10시 정각.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거실에는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고, 탁자 위에 와인 한 병과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도헌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재킷도 넥타이도 없이, 셔츠 소매를 걷은 채로."왔네.""네.""묻고 싶은 거, 전부 물어도 돼."세아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안에는 짙은 와인색 슬립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퇴근길에 일부러 갈아입은 옷이었다. 도헌의 시선이 어깨의 가는 끈에서 멈췄다가, 천천히 허리선을 따라 내려갔다. 목울대가 움직였다.“……그 옷은 반칙인데.”"조건이 있어요.""뭔데.""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거짓말하거나 대답을 피하면."세아가 그의 앞에 서서 셔츠의 맨 윗단추를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한 겹씩 벗어요. 대표님이."도헌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내가?”"제가 묻는 쪽이니까요. 대답하면 제가 한 겹 벗고, 피하면 대표님이 벗는 거예요. 멈추고 싶으면 제100조라고 말하면 되고.""당신, 정말."그가 낮게 웃었다. 놀랐고, 즐거웠고, 위험했다."좋아. 시작해."세아가 그의 맞은편, 탁자 위에 걸터앉았다. 한쪽 다리를 천천히 꼬았다. 슬립의 가장자리가 허벅지 위로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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