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방 안에서는 창가에 앉은 진환식이 전화 통화중이었다. “언제 돌아오냐?”“곧이 언제인데?”“단아도 같이 오냐?”그 말을 들은 강정숙은 태휘와 통화 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진환식의 말이 끊긴 틈에 문을 두드렸다. 똑똑-진환식이 소리를 따라 돌아봤다.세 사람이 모두 서 있는 걸 본 진환식은 수화기 너머 태휘에게 말했다. “이따 다시 얘기하자. 일 끝나면 빨리 와. 나도 좀 바쁘다.”통화가 끝났다.진환식은 미소를 띠고 강정숙을 바라봤다. “정숙아, 무슨 일이야?”“여 회장이 어제 아버지가 거의 쓰러질 뻔했다고 하던데요.” 강정숙은 이런 일에 돌려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떠세요? 다른 데 불편한 곳은 없고요?”진환식의 시선이 곧바로 여윤재에게 꽂혔다.‘이 녀석이.’‘그걸 그대로 일러바쳐?’여윤재는 태연하게 진환식의 시선을 받았다. “정숙이 물어보잖습니까.”“나 괜찮아.” 진환식은 여윤재를 한 번 노려본 뒤 강정숙에게 말했다. “쟤 말 믿지 마.”“허튼말인지 아닌지는 회장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강정숙이 이렇게 나온 이상 여윤재도 더 숨길 이유가 없었다. “어제 거의 쓰러질 뻔한 것 말고도 며칠 전엔 숨도 좀 차셨습니다.”진환식은 눈빛으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었다면 여윤재는 이미 온몸이 성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냥 잠깐 급해서 숨이 찬 거야.” 진환식은 딸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서둘러 해명했다. “저 녀석이 말하는 만큼 심한 건 아니야.”강정숙이 바로 결정했다.“내일 병원 가서 검사받으세요.”진환식은 말끝을 흐렸다. “안 가면 안 될까...”병원에 가면 강정숙이 몸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챌 게 분명했다. 자칫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었다.강정숙이 바로 답했다.“돼요.”진환식의 눈이 반짝였다. “진짜?”강정숙의 답이 전과 똑같았다.“네.”진환식이 안도의 숨을 쉬며 입을 열려던 때 강정숙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신 내일부터 댁으로 돌아가세요.”“정숙아.”진환식의 웃음이 사
“네 엄마 성격 너도 알잖아.” 여윤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강정숙이 누구보다 고집이 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어보면 무조건 용서 안 한다고 할 거야.”강솔은 대답하지 않았다.엄마의 성격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나도 숨기진 않으마.” 여윤재는 진환식의 상태를 떠올리며 고민 끝에 사실대로 말했다. “이런 걸 묻는 건 네 외할아버지 건강 상태가 좀 안 좋아서야. 어제 같이 걷다가 거의 쓰러질 뻔하셨다.”강솔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에 걱정이 바로 드러났다. “의사한테 진료받으셨어요?”“주치의가 봤어. 오래된 지병이래.” 여윤재는 숨기지 않았다. “좋아지려면 마음 편한 게 중요한데, 회장님은 죄책감이...”여윤재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강솔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 마음에서 생긴 병은 결국 마음에서 풀어야 했다. 외할아버지는 줄곧 엄마의 용서를 바라고 있었다.“엄마한테 말씀드렸어요?” 강솔이 물었다.“아니.”“...”강솔의 눈에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떠올랐다.“말하면 네 엄마를 곤란하게 만들잖아.”여윤재가 이유를 설명했다. “회장님을 용서하면 자기 자신한테 미안할 거고, 용서하지 않았다가 네 외할아버지가 속앓이 끝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평생 죄책감 가질 수도 있어.”그 말을 듣고, 강솔은 여윤재를 한동안 바라봤다.여윤재가 시선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왜?”“회장님은 정말 엄마를 사랑하세요?” 강솔이 여윤재의 감정을 의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당연하지.” 여윤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대답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확고했다. “왜 그런 걸 물어?”“외할아버지는 엄마의 아버지예요. 엄마가 집에 머물게 했다는 건 아직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에요.” 강솔은 오히려 여윤재보다 상황을 더 정확히 봤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것뿐이고요.”여윤재는 말이 없었다.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지금 외할아버지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면 제일 먼저 엄마한테 알려야 해요.”
처음부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런 장면도 자주 있었을 것이다.집안끼리의 원한도 없었다면 진환식은 여윤재를 못마땅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붙잡아 장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을지 모른다.“정숙아?” 여윤재의 목소리가 들렸다.강정숙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어느새 장기는 끝나 있었고, 이긴 사람은 진환식이었다.여윤재는 강정숙의 미묘한 변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대강 짐작했다. 먼저 말을 꺼냈다. “회장님이 너의 용서를 받고 싶어 하시는 건 보여. 너랑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뒤에서 얼마나 연습하시는지 몰라.”“나랑 무슨 상관이야?” 강정숙은 태연하게 답했다.여윤재는 좀 어색했다.“그냥 얘기하는 거야.”강정숙은 여윤재를 한번 보고 바로 속을 꿰뚫었다. “그냥인지 아닌지는 네가 알겠지. 네가 여기 있는 건 아직 쓸모가 있어서야. 과거가 다 끝났다는 뜻 아니야.”“알아.” 여윤재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말했다. “이용할 거 있으면 마음껏 해. 나는 통째로 네 거야.”강정숙은 한심하다는 듯 눈을 흘기고 다시 앉아 딸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여윤재는 계속 말을 걸었다. “나 진짜 쓸 데 많아. 쓸모 좀 연구해 볼래?”강정숙이 바로 거절했다.“내 집에서 나가.”여윤재는 바로 이어 말했다.“내가 나가면 넌 어떡해?”강정숙은 여윤재를 비스듬히 봤다. “자꾸 그러면 걷어찬다.”여윤재는 바로 얌전해졌다.강정숙은 한다고 하면 정말 하는 사람이었다.마침 그때 강솔이 퇴근해 돌아왔다. 두 사람이 비교적 평화롭게 있는 모습을 보고 평소처럼 인사했다. “엄마, 회장님.”“우리 솔이 왔구나.” 여윤재는 바로 점잖은 어른의 표정으로 돌아갔다.강솔은 대답하며 강정숙의 팔을 끼고 안으로 들어갔다.10분 뒤.저녁 식사가 시작됐다.식사 중 강솔은 자꾸 누군가 자신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 때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그 의문은 식사 후 한 시간쯤 지나 풀렸다. 강솔이 일을 더 하려고 준비하던 때 여윤재가 서
끊어진 통화 화면을 보며 진무천은 생각에 잠겼다.‘아버지가 왜 여윤재와 장기를 두지? 여씨 집안 사람이라면 질색하셨잖아.’‘정숙이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여윤재까지 받아들인 건가?’방금 들은 말투도 마음에 걸렸다.지난 수십 년 동안 진환식은 늘 무서울 만큼 침착했다. 이렇게 인내심 없이 전화를 끊는 건 처음이었다.강정숙 집에 머문 뒤 아버지가 너무 많이 달라진 건 아닌가 싶었다.하지만 진환식은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관심 없었다. 전화 때문에 흐름이 끊겨 머리가 아까만큼 빠르게 돌아가지 않았고, 이길 확률도 떨어진 것 같다는 게 더 중요했다.“큰 아드님입니까?” 여윤재가 물었다.진환식은 좀 짜증났다.“나 생각하는 것 방해하지 마.”여윤재는 진환식의 기운이 눈에 띄게 떨어진 걸 보며 한마디 더 했다. “어제 일은 언제 정숙이한테 말씀하실 겁니까?”“어제 무슨...” 말을 잇던 진환식이 기억해 내고 일부러 화난 척했다. “내 일이다. 네가 신경 쓰지 마.”“제가 말 안 해도 언젠가는 정숙이가 알아차릴 겁니다.”여윤재는 전날 진환식이 거의 쓰러질 뻔했던 일을 떠올렸다. 눈 깊은 곳에 걱정이 묻어났다. “정숙이의 관찰력이 얼마나 좋은지 회장님도 아시잖습니까.”진환식은 잠시 말이 없었다. 조금 뒤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알아채기 전에 본가로 돌아갈 거야.”이곳에 온 이유는 강정숙과 함께 지내며 과거의 잘못과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서였다. 아직 용서받지 못했지만 같은 공간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몸이 더 버티지 못하게 되는 때가 오면.스스로 떠날 생각이었다. 강정숙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걱정까지 끼치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하시는 건...” 여윤재는 그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다.“장기 둘 거야 말 거야.” 진환식은 얼굴을 굳혔다. “네가 말 많아지는 거 보니 내가 이길까 봐 내 집중을 흐트러뜨리려는 거지.”여윤재가 뭐라도 말하려던 때, 일을 마친 강정숙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강정숙을 보자
진무천 쪽이 강솔을 더는 건드릴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진우찬이 가만있지 않을 공산이 컸다.“알겠습니다.” 도엽이 받아들였다.부자의 대화는 썩 좋게 끝나지 않았다. 도엽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방을 나서려던 때 진무천이 갑자기 불렀다. “도엽아.”도엽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진무천은 주름이 조금 늘어난 얼굴로 아들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네 형한테 휩쓸리지 마라. 너랑 태휘는 결국 달라.”“뭐가 다릅니까?” 도엽이 물었다.“넌 손을 더럽혔고, 태휘는 아니야.” 진무천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강솔이 그때 일을 자세히 알면 제일 먼저 노릴 사람은 너다.”도엽의 몸이 굳었다.진무천은 아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결국 나랑 너만 같은 배를 탄 거야.”“알겠습니다.” 도엽은 담담히 대답하고 방을 나갔다.차에 올라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도엽의 눈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그래...’도엽과 태휘는 달랐다.태휘는 태어나서부터 큰 굴곡 없이 자랐다. 머리가 좋고 영리했으며, 성인이 된 뒤에는 곧바로 JX그룹 후계자가 되어 집안의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도엽은?어릴 때부터 늘 빛나는 형의 그늘에 있었다. 성적이 아무리 좋아 반에서 일등을 해도 앞에 태휘라는 넘사벽의 기준이 있으니 그 정도 성취는 대단한 일로 보이지 않았다.그런데도 도엽은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끝내 진무천과 함께 고모 강정숙의 교통사고까지 꾸몄다.이제 와 돌아보면 젊은 시절의 충동적이고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그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잘못된 길에 들어섰고, 이제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었다.도엽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무천은 훤히 알고 있었다.태휘가 자기편에 서지 않는 것도 모자라 도엽까지 등을 돌리려 한다니 어이가 없었다.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 잊은 모양이었다.그 생각에 이르자, 진무천은 핸드폰을 꺼내 진환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환식이 강정숙 집에 너무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음이 풀
진무천은 여전히 망설였다.중현이 기억을 잃은 지금이 강솔을 상대하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중현이 강솔을 대하는 태도는 판단하기 어려웠다.“생각해 본 게 있냐?” 고민 끝에 진무천이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도엽이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진무천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아들을 바라보는 눈에도 의미가 실렸다. “강솔이 지분을 받으면 정숙이 개입할 수 있어.”도엽이 멈칫했다.생각이 잠깐 막혔다.그 부분은 떠올리지 못했다.“네 고모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들었을 거다.” 진무천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 상황에서 회사를 살려냈어.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그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진무천이 두려워하는 건 강솔이나 중현보다 강정숙에 가까웠다.여동생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젊은 시절 강정숙이 만들어 낸 성과는 진무천이 평생 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지분이 강솔에게 넘어간 뒤 강정숙이 뒤에서 방향을 잡아 조금만 움직여도 JX그룹의 다른 주주 대부분이 강솔 쪽으로 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JX그룹은 사실상 강솔 혼자 좌우하게 된다.“하지만...” 도엽은 조사한 자료를 떠올리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 “고모가 강인호와 결혼한 이후 업계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줄곧 가정에만 충실했고요.”“넌 그걸 믿어?”진무천이 비웃었다.도엽은 근거를 말했다. “적어도 자료상으로는 그렇습니다.”“정숙 손 안 탔으면 KS그룹이 그렇게 빨리 컸겠어?” 진무천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강인호처럼 아이디어만 있고 실행력 없는 인간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해낼 수 없었다.그 점만큼은 진무천도 동의했다.KS그룹 성장에는 분명 강정숙의 힘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증거가 없었고 강솔도 이 업계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굳이 건드리지 않았을 뿐이었다.어차피 강정숙 본인은 지분을 받을 수 없었다. 받을 수 있는 건 강정숙의 자녀뿐이었다.강솔이 위협이 되지 않는 동안에는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아버지 말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