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Chapter 1 - Chapter 10

30 Chapters

제1화

결혼 5년 차.강솔은 생각했다.남자는 다 그런 걸까? 집에는 아내가 있는데, 밖에는 또 다른 여자를 두다니...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자기한테도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강솔은, 절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J시 사람들은 다 안다.몰락한 재벌가의 딸, 강솔이 HS그룹 차남 하중현의 전부라는 걸.강솔이 원하면, 중현은 뭐든 들어주었다.강솔이 눈길만 줘도 바로 대령했다. 집 안에는 명품 한정판이 산처럼 쌓였고, 보석과 가방, 명품 시계가 벽장을 가득 메웠다.차고에는 슈퍼카들이 줄지어 있었다.파티에 갈 때면, 중현은 언제나 강솔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중현은 늘 강솔을 유리 인형 다루듯 아꼈다.남편의 지극정성은,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심지어 강솔조차도 남편이 자신을 많이 사랑한다고 믿었다.“엄마.”아직 잠에서 덜 깬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눈이 반쯤 감긴 아이가 이불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오늘... 엄마 기분이 안 좋아요?”강솔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아이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아니야. 엄마 괜찮아.”아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침대에서 내려온 아이는, 엄마의 품으로 달려와 안겼다. “엄마, 내가 안아 줄게요!”강솔은 순간 멈칫했다.아이는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근데 난 엄마가 슬퍼 보여요. 엄마가 슬프면 나도 슬퍼...”“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아이의 따뜻한 말에 강솔의 가슴이 먹먹해졌다.강솔은 아이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면서 다짐했다.‘그래, 이제는 두려워하지 말자.’...밤 11시.아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졌다.강솔은 거실 소파에 앉아 시계를 봤다.시계 초침이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몰랐다.시계가 12를 향해 가고 있을 때였다.삐비빅.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중현은 언제나처럼 깔끔했다.흰 셔츠에 맞춤 검정 수트.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얼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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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도 알아봤어. 위에 적힌 내용들 모두 법적으로 합당한 요구사항이야.”강솔은 재산을 탐내지 않았다.“그리고 애는... 당신처럼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에게 절대 맡길 수 없어.”“결혼 5년 동안, 넌 돈을 한 푼도 번 적이 없잖아.”중현의 목소리는 차갑게 떨어졌다.“그런데, 왜 내가 번 돈을 절반이나 네게 나눠줘야 해?”강솔은 담담하게 말했다.“당신하고 지안이 일상을 내가 다 챙겼어. 먹고 자고 돌보는 모든 걸 다 내가...”중현의 시선은 싸늘했다.“그래서?”‘그래서라니?’강솔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선 눈빛으로 멍하니 중현을 쳐다봤다.이윽고 중현이 입을 열었다.“만약 당신 엄마 병원비를 재산분할로 감당할 생각이라면... 꿈 깨.”중현은 이혼 서류를 탁자 위에 던졌다.“무슨 뜻이야?”강솔의 눈빛이 매섭게 바뀌었다.“우리 집에 공동 재산이 어딨어?”그는 담담히 말했다.“못 믿겠으면, 등기 떼 봐, 계좌를 확인해 보던가...”갑자기 강솔의 머릿속이 하얘졌다.짧은 정적, 모든 게 퍼즐처럼 맞춰졌다.‘그래서였구나.’처음 남편에게서 낯선 향수가 나던 날부터, 남편은 대비했다.개인 이름으로 되어 있는 모든 재산을 조금씩 다른 사람 명의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그러고나서 셔츠 깃에 묻힌 립스틱 자국,신중한 성격임에도 언론에 퍼진 아연과의 스캔들 사진.다 의도적이었다.‘모두 계산된 시나리오였어.’‘판을 다 짜고, 나한테 들키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그제야, 중현의 말이 떠올랐다.“가정은 지켜야지. 밖의 일은... 네가 몰라도 돼.”그래야 결국 ‘집엔 아내, 밖엔 애인’을 두고,두 집 살림을 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으니까.‘하중현, 정말 대단하다.’“됐어.”강솔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재산 따윈 바라지 않아. 애 양육권만 줘. 사인해”중현은 망설이지 않았다.그는 펜을 들어 매끄럽게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그의 글씨는 여전히 곱고 단정했다.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게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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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혼 서류를 제출할 때 입고 있었던, 맞춤 회색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소파에 앉은 그의 자세는 늘 한결같았다.느슨하면서도 냉담하고, 여유롭지만 차가웠다.의사와 가볍게 잡담을 나누는 모습은, 방금 이혼한 사람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평온했다.‘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지.’강솔의 손끝이 저도 모르게 오므라들었다.중현을 바라보는 눈에는 분명한 불쾌와 혐오가 담겨 있었다.그때, 주치의인 주승현이 강솔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오셨군요.”“네.”짧게 대답하고 시선을 피했다.“아까 전화로 얘기 들으셨죠?”주승현은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이건 매달 지출되는 치료비 명세서입니다. 확인하시고, 문제가 없으면 서명해 주세요.”강솔은 서류를 받아 들었다.숫자를 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매달 몇 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들.예전 같으면 감당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병원비... 혼자선 도저히 감당이 안 돼.’의사가 그녀의 얼굴색을 살피더니,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부담스러우시면, 비용이 조금 낮은 이쪽 옵션도 있습니다.”새 치료안은 조금 더 저렴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매달 수백만 원이 필요했다.강솔이 계속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자, 의사는 곁눈질로 하중현을 바라봤다.그가 아무 말없이 가볍게 눈짓을 하자, 의사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잠깐 고민해 보시죠. 저는 다른 예약 환자가 있어서 잠깐...”“네.”강솔은 눈도 떼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의사가 나가며 문을 닫자, 조용한 공간에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아무리 계산을 돌려 봐도 답이 안 나올 거야.”중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늘 그렇듯, 담담하고 느긋한 톤이었다.“당신 혼자로는 그 돈 감당 못 해. 특히 지금처럼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면.”강솔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그런 말을 지금 왜 해?”“현실적인 얘기야.”중현은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집도 구해야 하고, 지안이도 네가 키운다며. 그 돈으론 둘 다 챙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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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사모님, 오셨습니까?”최 집사가 늘 하던 대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중현과 아연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아연이 먼저 일어났다.“솔아... 왔구나.”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강솔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그저 아무 일도 없는 듯,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두 사람의 꼴을 보고 있으면, 화를 주체 못하고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그때, 등 뒤에서 중현의 냉담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아연이 인사하잖아. 못 들은 거야? 이젠 기본 매너도 없나 보네? 강솔.”그 말에 강솔은 발걸음을 멈췄다.‘강솔?’천천히 돌아선 그녀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당신네 불륜 현장을 직접 봤는데, 예의까지 차려야 하는 건가?”“이 집은 내 집이야.”중현은 여유롭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누구를 들이든 뭘 하든, 그건 내 마음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그 말 한마디에 강솔의 가슴이 찢어졌다.‘앞으로 여기가... 우리 집이야. 내게 다 당신 거야.’결혼 때, 중현이 했던 말이었다.하지만, 지금은...그의 말 한마디에 세상이 뒤집힌 듯했다.손끝이 부르르 떨렸다.“중현 씨, 그래도 말이 너무 심했어.”아연이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솔이는 자기 아내잖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상처받지...”“기회는 줬어.”중현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자기가 스스로 버린 거지.”강솔도 중현을 똑바로 바라봤다.둘 사이엔 말보다 더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고개를 숙였던 아연이, 다시 고개를 들며 나지막이 말했다.“솔아, 네가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중현 씨도 금방 풀릴 거야.”“너한테 아직...”“미안하지만, 그런 말 들을 기분 아니야.”강솔은 아연의 말을 끊었다.“그리고 걱정 안 해도 돼. 나, 곧 나갈 거니까.”강솔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이어졌다.“이 집은, 온통 더러운 불륜 냄새가 가득차서, 하루라도 더 있다간 질식할 거 같아.”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그대로 계단을 올랐다.발걸음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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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강솔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중현은 가볍게 웃었다.“나는 그냥 너한테 현실을 알려주는 거야.”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나 없이 네 인생이 얼마나 엉망이 될지, 조금은 상상이 되겠지?”중현은 시선을 아연에게 옮겼다.“물론 정말 가져가고 싶으면, 집주인한테 허락이라도 받아보는 게 어때?”아연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가리켰다.“나?”“그래. 이 집의 안주인은 이제 너잖아.”중현의 말은 아연을 향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강솔에게 꽂혀 있었다.‘봐. 이게 네가 반항한 대가야. 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강솔의 두 손이 떨렸다.손끝이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갔다.가슴속 깊은 곳에서 굴욕이 치밀었다.“솔아, 만약 네가 그걸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면... 이해할게.”아연이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 그걸 팔아버린다는 건, 중현 씨가 네게 줬던 마음을 돈으로 바꾸는 거잖아.”“그건... 중현 씨가 너무 속상할 거 같아.”“들었지?”중현이 고개를 기울이며 강솔을 내려다봤다.그 말이 끝나자마자, 쨍그랑!강솔이 손에 들고 있던 보석 상자를 바닥에 던졌다.수억 원대 보석들이 사방으로 튀었다.강솔은 돌아보지 않았다.그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방을 나섰다...“왜 저렇게 화를 내...”아연이 애써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중현의 팔을 잡았다.“내가 방금 한 말 때문에 그런 걸까?”“중현 씨, 미안해. 내가 괜히 기분 상하게 한 거 같아. 내가 사과할까?”“필요 없어.”중현은 단호하게 잘랐다.“그래도...”아연이 망설이자, 중현은 아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집에 마음에 안 드는 물건 있으면 말해. 바로 치워줄게.”중현은 손끝으로 아연의 머리를 넘기며 부드럽게 웃었다.“이제 여긴 네 집이야.”“중현 씨.”아연이 살짝 웃으며 그를 안았다.“고마워.”...강솔은 계단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정말 막장이구나.’눈앞이 뿌옇게 흔들렸다.가슴이 터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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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간다더니, 왜 아직 있어?”중현은 피하지 않고, 강솔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네가 말 안 해도 나갈 거야.”강솔은 캐리어 손잡이를 세게 잡았다. “이런 쓰레기 같은 집엔,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아.”말을 끝내자마자 돌아섰다.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그런 단호한 뒷모습을 보자, 중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잠깐.”강솔의 발걸음이 멈췄다.그녀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중현의 시선이 캐리어로 향했다.그리고 문밖에 서 있던 경호원에게 명령했다.“짐 좀 확인해 봐. 안에 본인 것 외의 물건이 들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뭐라고?”강솔은 본능적으로 캐리어를 뒤로 뺐다.“아까 보석 훔치려던 걸 봤잖아. 그럼 당연히 다른 것도 슬쩍했을 가능성은 있지.”중현의 말투엔 감정이라곤 전혀 없었다. 마치 절차를 밟는 사람처럼 차가울 뿐.“확인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거야.”“네 눈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강솔의 눈동자에 분노와 실망이 번졌다.잠깐.정말 아주 잠깐, 중현의 마음도 흔들렸다.하지만 강솔이 냉정하게 등을 돌리던 모습이 떠오르자, 다시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강솔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중현이 이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차갑고 멀게 대하는 것도 견딜 수 있었다.하지만 아연의 앞에서 자신을 모욕하는 건 달랐다.그건 단순히 신뢰의 문제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는 일이었다.“넌 내 짐을 검사할 자격 없어.”강솔은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쥐었다.“그렇게 의심이 간다면, 경찰을 부르든가?”“아니면 내 손을 잘라서 캐리어에서 떼든가?”그녀는 끝까지 중현을 바라봤다.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한 눈빛이었다.중현은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캐리어 손잡이에서 떼어냈다.강솔이 온 힘을 다해 버텼지만, 결국 너무나 손쉽게 손잡이를 놓았다.중현은 캐리어를 경호원에게 건넸다.“꼼꼼히 확인해. 구석구석 놓치지 말고.”“네.”“하중현!”강솔은 울먹이며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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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방 안을 둘러보던 지안의 시선이, 강솔이 손에 쥐고 있는 캐리어에 멈췄다.작고 맑은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렸다.“엄마, 캐리어는 왜 들고 있어요?”강솔은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뭐라고 해야 하지...’순간적으로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아빠 출장 짐이야.”중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지안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시선을 맞췄다.“아빠, 며칠 출장을 다녀올 거야. 그동안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 알겠지?”지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겠어요.”“착하네.”중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근데, 저 아줌마는 누구예요?”지안의 시선이 아연에게 옮겨갔다.“아빠 비서야.”중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내뱉었다.“아빠랑 같이 출장 가야 하거든.”강솔의 손끝이 캐리어 손잡이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하지만 얼굴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중현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강솔의 손에서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그리고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여보, 다녀올게. 보고 싶으면 전화해.”강솔은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응.”“착하지.”중현은 아내의 귀밑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손끝으로 귀를 훑었다.귓불을 스칠 때 손길이 잠시 멈칫했다.“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어서 가. 비행기 늦겠다.”강솔은 차갑게 말했다.더 이상 이 남자의 손길이 닿는 게 역겨웠다.강솔의 눈빛을 본 중현은, 일부러 자극하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입술이 아내의 입술을 스쳤다가 곧바로 떨어졌다.거부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강솔이 놀라서 올려다봤을 때, 남편은 이미 아연과 함께 집을 나서고 있었다.손엔 여전히 그녀의 캐리어를 든 채.“엄마.”문이 닫히자마자, 지안이 조용히 불렀다.강솔은 억눌린 감정을 억지로 진정하면서, 최대한 평온하게 미소 지었다.“왜, 지안아?”지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른 말로 바꿨다.“점심시간 됐어요. 밥 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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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 말이 들리는 순간, 강솔은 귓가가 찢겨 나가는 듯 아팠다.그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귓가에 꽂혔다.며칠 전, 중현과 아연의 기사 사진을 처음 봤을 때,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지만 그래도 믿고 싶었다.혹시라도 그저 오해나 해프닝이 아닐까 생각했다.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버텼다.하지만 지금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자, 그 어떤 칼보다 더 깊고 차갑게 가슴을 후벼 팠다....[무슨 일이야?]중현의 차갑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예전의 따뜻함은 어디에도 없었다.이젠 마치, 낯선 사람에게 건네는 형식적인 말투였다.강솔은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설마 지금 내가 뭐하는 지 궁금해서 전화한 거야?]돌아온 건 반문이었다.그 한마디에 모든 게 무너졌다.‘그래, 이제 나한텐 아무 관심도 없겠지.’강솔은 숨을 고르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내 캐리어, 돌려줘.”대답 대신 들려온 건 뚝, 통화 종료음이었다.강솔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 안에 있는 건 단순한 짐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증과 여권, 생활의 흔적이었다.‘저 인간이 계속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하지만 이번엔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연이 힐끗 보면서 물었다.“안 받아? 솔이한테서 온 전화인데?”중현은 무심히 미소 지었다.“일에도 순서가 있지. 지금은 네가 먼저야. 같이 TV나 볼까?”핸드폰이 계속 울렸지만, 그냥 울리게 두었다.받지도 끊지도 않은 채.아연은 남자의 팔에 몸을 기댔다.방금 샤워를 마친 여자는 얇은 슬립 네글리제 하나만 걸친 상태였다.몸에서 은은한 향이 퍼졌다.“난 TV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은데...”아연이 중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중현이 시선을 내렸다.그녀의 풍만한 가슴선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하지만 중현은 한 손으로 아연의 손놀림을 제지했다.“지금은 무엇보다 네 몸부터 회복하는 게 우선이야.”“지금... 나 싫어서 그러는 거지?”아연의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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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솔은 잠깐 멍해졌다.그 짧은 순간에, 눈앞의 남자가 완전히 낯설게 보였다.‘그래, 이 사람은 이제 남이야.’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날부터 이미 모든 게 끝났다는 걸, 그제서야 뼈저리게 실감했다.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강솔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그래, 내가 중요한 사람은 아니지.”강솔은 감정 하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남의 물건을 가져갔으면, 돌려줘야지.”“고작 캐리어 하나 가지고... 중현 씨가 그걸 탐낼 리가 없잖아.”아연이 대신 나섰다.“없겠지.”강솔은 담담하게 웃었다.예전처럼 눈물도, 억울함도 없었다.“그냥... 내 짐이 여기 있는 게 찝찝해. 더러운 냄새가 밸 거 같아서 말이지...”강솔의 말에, 중현의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하지만 강솔은 더는 아무 감정도 없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했다.“캐리어만 줘. 그럼, 바로 갈게.”강솔은 완전히 체념한 사람처럼 보였다.중현의 갑작스러운 냉정함도, 다른 여자에게로 향한 마음도 다 받아들인 듯이.“지안이가 내가 이 캐리어 갖고 나가는 거 봤는데?”중현이 말했다.“HS 그룹 차남께서 똑같은 거 하나 더 구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강솔 자신도 의아했다.왜 이렇게 빨리 상대를 체념하고 모든 걸 놓아 버렸는지. 그냥 허무한 듯 웃었다.“우리 자주 안 보는 게, 서로한테 좋지 않겠어?”강솔은 이 한 마디를 또박또박 내뱉었다.그 말 속엔 더 이상 어떤 미련도 없었다.중현은 한참 그녀를 바라봤다.혹시라도 투정이 아닐지 생각했지만,아무리 봐도 그 눈빛엔 단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캐리어 가져와.”중현은 경호원에게 얘기했다.잠시 후, 경호원은 밝은 베이지색 캐리어 하나를 거실로 갖고 내려왔다.캐리어를 받아 든 강솔은 캐리어 지퍼를 열었다.‘캐리어 받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갈 줄 알았는데...’아연은 궁금한 듯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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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중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의가 아니면, 내 성을 갈겠어!’중현이 그렇게 생각할 만큼, 강솔의 행동은 확실했다.카드를 떨어뜨린 게 아니라, 버린 거였다.“중현 씨가 준 걸 어떻게 이렇게 버릴 수 있어?”아연이 서둘러 허리를 굽혀 카드를 주워들었다.손끝으로 그 카드를 꼭 쥔 채, 마치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애틋하게 바라봤다.“그래도 이건, 중현 씨가...”하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강솔은 이미 캐리어를 들고 나간 뒤였기에....곧장 차에 오른 강솔의 목적지는 소담의 집.아직 새로 머물 집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짐을 맡길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지금은 거기 있는 게 제일 안전해.’...소담은 문을 열자마자, 놀란 눈으로 강솔을 바라봤다.하루 만에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그 개 또라이 쓰레기 같은 놈이 또 뭔 짓을 벌였지? 그렇지?”“응.”강솔은 짧게 대답했다.소담은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진짜 미친 새끼네. 인간이냐, 그 새끼가?”강솔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오늘 점심때 짐을 가지러 갔더니, 소아연 앞에서 내 캐리어를 검사하겠대.”“내가 뭘 훔쳤을지도 모른다고.”말은 차분했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다.“그리고 오후에 전화했을 땐... 소아연이 벌써 옆에 있더라.”“그러면서,‘중현 씨, 나 샤워 끝났어.’ 이러더라고.”소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뭐?! 완전 제정신 아니네, 그 새끼. 뇌가 있긴 한 거야?”친구의 분노가 오히려 위로되었다.강솔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담아.”“응?”“나 좀 안아 줘.”그 말엔 울음보다 더 큰 절망이 묻어 있었다.소담은 바로 강솔을 안아주었다.단단하고, 따뜻하게.강솔은 처음엔 버티려 했다.‘울면 안 돼. 지금 울면 더 초라해져.’그렇게 이를 악물었지만, 눈물이 제멋대로 쏟아졌다.콧등이 시큰거리면서 어깨가 자꾸 들썩였다.마음이 갈기갈기 찍어졌다.“괜찮아, 그냥 시원하게 울어. 참지 말고, 그냥 다 쏟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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