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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2화

Author: 주 한잔
이지윤은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다가, 아이가 안에서 움찔거리는 걸 느낀 듯했다.

너무 기뻐진 그는 말까지 더듬었다.

“...움직였다.”

아령이 부드럽게 말했다.

“네, 우리 아들이에요. 방금 느끼셨죠?”

‘우리 아들’이라는 말에, 이지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시선을 침전 문밖으로 돌렸다.

이복이 지금쯤 저기서 대기 중일 것이다.

그가 물었다.

“이복이란 자 말이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맞느냐?”

아령은 낮고 조용히 말했다.

“그저 환관일 뿐입니다. 더 높은 자리를 바라지 않는 환관이 어딨겠습니까? 제가 아니면 또 누가 저 아이에게 다리를 놔주겠습니까?”

이지윤은 아령의 말에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얼굴에 드리워진 찡그린 미간은 풀리지 않았다.

아령이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이지윤은 솔직히 털어놓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너와 아이… 우리 셋이 함께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자신처럼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자기 친아버지가 아닌 사람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라는 그 인생은 너무나도 외로웠다.

아령은 부드럽게 위로했다.

“모든 게 끝나면, 전하의 소원은 꼭 이뤄질 거예요.”

이지윤은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만약… 아이가 아들이 아니면?”

그는 그녀의 배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령은 침착하게 말했다.

“전하, 잘 아시잖아요. 이민수는 더 이상 남자구실을 못해요. 이 아이가 자기의 혈육이라고 굳게 믿고 있죠.”

“그러니 아들이든 딸이든, 우리 아이는 이민수의 유일한 후계자로 길러질 거예요.”

“아들이면 모두가 기뻐할 테고, 딸이라 해도 그는 자신의 딸이 무사히 자라서 훗날 황후가 되도록 만들겠죠.”

이지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민수 말이다. 참으로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령도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민수는 이미 폐인이나 다름없어요. 머리를 쓰지 않으면 남은 건 아무것도 없죠.”

“만약 평서왕이 자신이 아들이 환관이 되었단 걸 알게 된다면, 그의 처지가 얼마나 위험해질지는 뻔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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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542화

    이지윤은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다가, 아이가 안에서 움찔거리는 걸 느낀 듯했다.너무 기뻐진 그는 말까지 더듬었다.“...움직였다.”아령이 부드럽게 말했다.“네, 우리 아들이에요. 방금 느끼셨죠?”‘우리 아들’이라는 말에, 이지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시선을 침전 문밖으로 돌렸다.이복이 지금쯤 저기서 대기 중일 것이다.그가 물었다.“이복이란 자 말이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맞느냐?”아령은 낮고 조용히 말했다.“그저 환관일 뿐입니다. 더 높은 자리를 바라지 않는 환관이 어딨겠습니까? 제가 아니면 또 누가 저 아이에게 다리를 놔주겠습니까?”이지윤은 아령의 말에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하지만 얼굴에 드리워진 찡그린 미간은 풀리지 않았다.아령이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이지윤은 솔직히 털어놓았다.“내가 진짜 원하는 건, 너와 아이… 우리 셋이 함께 사는 것이다.”그는 자신의 아이가, 자신처럼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자기 친아버지가 아닌 사람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라는 그 인생은 너무나도 외로웠다.아령은 부드럽게 위로했다.“모든 게 끝나면, 전하의 소원은 꼭 이뤄질 거예요.”이지윤은 조심스레 물었다.“근데 만약… 아이가 아들이 아니면?”그는 그녀의 배를 바라보며 물었다.아령은 침착하게 말했다.“전하, 잘 아시잖아요. 이민수는 더 이상 남자구실을 못해요. 이 아이가 자기의 혈육이라고 굳게 믿고 있죠.”“그러니 아들이든 딸이든, 우리 아이는 이민수의 유일한 후계자로 길러질 거예요.”“아들이면 모두가 기뻐할 테고, 딸이라 해도 그는 자신의 딸이 무사히 자라서 훗날 황후가 되도록 만들겠죠.”이지윤은 씁쓸하게 웃었다.“이민수 말이다. 참으로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드는구나.”아령도 냉소적으로 말했다.“이민수는 이미 폐인이나 다름없어요. 머리를 쓰지 않으면 남은 건 아무것도 없죠.”“만약 평서왕이 자신이 아들이 환관이 되었단 걸 알게 된다면, 그의 처지가 얼마나 위험해질지는 뻔하잖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541화

    “황제 폐하, 아직 더 드시고 싶으신가요?”황제는 배를 문지르며 느긋하게 말했다.“조금 이따가.”그는 마치 몇 살은 젊어진 사람처럼 기운이 넘쳐 있었고, 양고기탕 덕분인지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이비, 이리 와서 짐이 쉬는 걸 도와주거라.”이 시각은 아직 낮이었고, 엄밀히 말해 휴식을 취할 시간이 아니었다.그러나 황제가 몸을 약간 일으키자, 아령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단번에 눈치챘다.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소첩, 몸이 좋지 않아… 어제 새로 뽑은 미인 두 명이 있사온데, 폐하께서 한번 보시겠습니까? 혹시 마음에 드실지도 모르지요.”아령은 아이를 품고 있었고, 그 아이는 곧 그녀의 생명줄이었다.그러니 황제와의 잠자리를 피하는 건 당연했다.게다가 황제가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아차린 뒤로는, 그녀의 얼굴조차 외면하는 일이 잦아졌다.그녀와 아정은 겉모습은 닮았지만, 냐면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황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령은 이복을 흘끔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고, 이복은 머리를 조아리며 나직이 말했다.“예, 곧 모셔오겠습니다.”이복이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지윤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그는 황제에게 예를 갖춰 절을 올린 뒤, 곧장 아령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마마.”아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약상자를 꺼냈다.“폐하, 소첩이 상처를 치료해드리겠습니다.”황제는 수현이 감싸두었던 손목의 붕대에서 피가 스며나오는 것을 흘끗 보았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그가 원하든 말든, 이지윤이 곁에 있는 한 아령은 다칠 일이 없었다.아령은 무릎을 꿇고 황제 앞에 앉아, 피 묻은 손수건을 풀었다.“이비는 약도 쓸 줄 아는가?”황제가 무기력하게 물었다.아령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배운 적이 있습니다.”그녀의 손놀림은 생각보다 능숙했고, 약가루가 상처에 닿자 피가 천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복이 미인 두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궁중에서 급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540화

    “어서 태의를 불러라! 어서!”아령이 다급하게 외쳤다. 곁에 있던 이복은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마마, 태의를 부르면... 태자 저하께 반드시 이 사실이 전해질 겁니다. 그러면 우린... 폐하를 해치려 했다는 죄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황제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손에 든 단도를 높이 들고는 그대로 아령을 향해 찔러 들이댔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이복은 거의 본능적으로 황제를 밀쳐냈다. 몸으로 아령을 감싸며 막아낸 것이다.바로 그 순간, 아령은 무릎을 꿇으며 울먹였다. “폐하... 소첩이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감히 폐하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당장... 당장 양고기탕을 드리겠습니다. 양고기탕... 드시겠습니까?”뜨거운 피에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던 황제는 그 말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어서!”“예, 예.”아령은 벌떡 일어나 이복의 팔을 붙잡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으며 안에서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황제는 피투성이가 된 손목을 움켜쥔 채, 잠긴 문을 바라보았다. 몸속 어딘가가 수천 개의 개미에게 갉아먹히는 듯한 고통이 끊이지 않았다.무릎을 꿇은 수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이비는 현재 폐하를 감히 능멸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처단하지 않으십니까?”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령을 죽인다고? 문밖에는 이미 사내들을 가장한 근위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들이 평범한 환관일 리 없었다. 평서왕 부자는 절대로 아령의 뱃속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무엇보다도... 지금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는 미치도록 양고기탕이 먹고 싶었다.“그년을 죽이면... 양고기탕도 못 먹는다. 그렇게 되면 나도 죽게 되겠지.”황제는 멍하니 중얼거렸다.수현은 망연한 표정으로 무릎 꿇은 채 눈물을 흘렸다. 위대한 황제가 한 그릇의 탕에 무너지고 있었다. 어쩐지 황제는 애당초 이 일을 태자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였다.“폐하…”“울긴 왜 우느냐. 나는 아직 죽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539화

    소우연은 입을 열려다 말았다.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육진이었다.그녀가 웃을 때마다, 그는 말했다. “네가 웃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가끔, 그녀가 말없이 가라앉아 있을 때면 그는 늘 다정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혹 속상한 일이 있었느냐?”그렇게 그녀는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용강한의 목소리가 조용히 이어졌다. “사람의 기운이란 건 참 이상한 것입니다. 옆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면, 그 사람의 운도 더 좋아지거든요.”“운이... 더 좋아진다고요?”“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태자 저하께서 하시려는 일도 절대적인 능력만으론 부족합니다. 운도 필요하지요.”딱.바둑돌이 바둑판 위에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냈다.소우연은 어지럽게 흩어진 돌을 바라보았다. 정말... 내 기분이, 이육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가 앞으로 크게 승리할 수 있을지를 좌우할 정도로?용강한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건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힘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마음이 가라앉아 있을 때, 밖에 폭우가 쏟아진다면 어떻습니까? 그 기분이 나아질까요?”소우연은 곧바로 상상했다. 우울한 날 창밖에 부슬비가 내리면 마음은 더 쓸쓸해지듯이, 반대로 햇살이 가득한 날 태양 아래 서 있으면 괜히 모든 게 괜찮아질 것만 같다.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용강한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엄지를 들어 올렸다. “오라버니, 정말 대단하시네요.”용강한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그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따스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게 그가 말한 '기운'이라는 걸까.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어느새 그녀의 마음까지 바꿔놓고 있었다.그는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 걸 보며 부드럽게 덧붙였다. “이제부터는 마마도 마마의 인생을 사셔야죠. 소씨 가문 일은 소씨 가문이 책임질 겁니다. 그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냥 바람처럼 흘려보내세요.”“오라버니가 이런 말을 하실 줄은 몰랐어요.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538화

    “태자비 마마, 이 길은 배나무 별채로 가는 쪽입니다.”정연이 우산을 펴 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우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펑펑 쏟아지는 눈발이 다시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응, 오라버니께 가는 길이야.”이토록 추운 날, 바닥에 온돌이 깔려 있다 해도… 그는 여전히 이 집에서 가장 차가운 사람이었다.그녀는 곧장 용강한이 머무는 배나무 별채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는 책을 읽고 있었고, 한쪽에선 경문이 은탄을 손질하고 있었다.“태자비 마마.”경문이 공손히 인사하며 다가왔다.소우연은 손을 살짝 들어 그를 제지하듯 막고, 정연에게 말했다.“정연아, 경문이에게 물어볼 일이 있다 하지 않았니?”정연은 눈을 깜빡이다가 곧 알아챘다.소 노부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소우연은 분명 마음이 복잡할 터였다.태자도 부재중이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심정일 터.“아… 네. 경문 오라버니, 잠시 괜찮으세요?”경문이 대답도 하기 전에 그녀는 그를 잡아끌며 자리를 비워주었다.문이 닫히자, 용강한은 책을 덮고 옷깃을 다듬으며 물었다.“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소우연의 눈가가 약간 붉어져 있었다.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전, 소 노부인께서 사흘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용강한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물었다.“그래서, 슬프십니까?”소우연은 창밖 어딘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글쎄요… 기쁠 줄 알았는데… 막상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습니다.”용강한은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그럼, 바둑이나 두면서 이야기 나누시죠.”그는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다.소우연은 온돌 위로 올라가 마주 앉았다.바둑판과 돌을 꺼낸 뒤, 용강한은 그녀에게 흑돌을 권하며 말했다.“먼저 두시죠.”소우연이 바둑을 들려다 말자,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마음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건 억울해서 그런 겁니다.”그 말에 그녀의 손끝이 멈칫했다.“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원수처럼 미워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537화

    소현준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아버지와 형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결국 그는 담담히 말했다. “오늘부터 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둘째야, 그게 무슨 말이냐?”소현우가 물었다.소현준은 한참 망설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사실 그조차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더 이상 태자와 평서왕 간의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넌 태자가 이긴다고 해도 우리가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소현우는 분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소씨 가문의 입장이 위태롭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소현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때로는...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지킬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역시 글쟁이란 녀석들은 현실을 몰라. 세상은 주먹으로 쟁취하는 것이다.”소한준이 냉소를 흘렸다.“셋째 형님 말이 맞습니다.”소현준은 손을 모아 가볍게 인사한 뒤, 말없이 몸을 돌려 서재를 나섰다.“둘째야...!”“현준아!”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 등을 붙잡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소홍범은 힘이 빠진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이제 소씨 가문은 불길 위에 올려진 통나무와 같구나. 오직 승리만이 우리 후손들에게 복을 남겨줄 것이다.”“평서왕 부자 외에는 우리가 기댈 곳이 없다.”그 말이 씁쓸하게 맴돌았다. 그렇다. 그들에겐 이제 선택지가 없었다.소현우는 괴로운 듯 입을 열었다.“아버지, 그런데...”그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아까 소현준이 한 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소우연에 대한 이야기... 그 모든 것이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만약 어머니가 그토록 사사로운 감정만 품지 않았더라면, 소우연과 소우희의 운명도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소우연의 재능이 가려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녀는 남의 신부로 대신 시집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소홍범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쯤에서 그만하자.”그 시각 소 노부인은 끝내 소우연을 보지 못했고, 그녀가 보낸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536화

    방 안의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만 할 뿐,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소홍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자란 원래 질투가 많은 법이지. 이민수가 그리도 뛰어난 인물인데, 소녀들 사이에서 다툼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야.”소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질투라는 감정 하나로 설명되기엔 이 일은 너무 복잡합니다.”소한준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간 세상 이치 잘 따르며 살아오셨잖아요. 어찌 원한 살 일이 있었겠습니까.”하지만 소현준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이 기회에 오늘 유모에게 들은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기로 했다.“만약 유모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소우연을 그토록 미워했던 진짜 이유를 누가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이유가 고작... 자신의 시어머니, 즉 조모님을 미워했기 때문이라는 걸 상상이나 하셨나요?”“뭐라고?”소홍범은 믿기지 않는 듯 아들을 가리키며 비틀거렸다. 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몸이 떨려왔다.그러나 소현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모두 사실입니다. 어머니는 단지 조모님을 싫어했고, 어린 시절의 소우연이 조모님을 꼭 닮았다는 이유로 '복 있는 아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불쾌했던 겁니다. 그 사소한 감정이 시작이었죠.”“하필 그때, 전 감정관이 우희에게 '천명지운'이라 말하자 모든 이들의 관심이 우희에게 쏠렸고... 정작 자신이 독학으로 의술을 배우고 약을 만들던 우연이는 집안의 '재수 없는 아이', '장군부의 재앙'으로 낙인찍혔습니다. 누가 그 아이를 위해 나선 적 있었습니까?”“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우희를 감싸고 그녀를 위해 거짓을 덮었죠. 심지어 그 모함에 가담하기까지 했습니다.”“어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도, 어머니는 우연이가 자식 하나 없이 고통 속에 살기를 저주하고 있었습니다.”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소홍범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535화

    겨울바람이 마치 골목을 돌아들 듯 스며들었다. 실내에는 은탄을 피워두었지만, 소현준은 여전히 속까지 서늘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소홍범과 소현우 부자가 집으로 돌아왔다.“아버지, 형님.”소현준이 다가가며 말했다. “서재로 가서 이야기 나누시죠.”“오늘 소우연이 왔다고 하던데, 그 아이가 무슨 일로 온 거냐?”소홍범은 들어서며 문 앞에서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서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세 사람은 조용히 서재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후, 소홍범과 소현우는 차를 한 모금씩 들이켰다. 그들이 다 자리를 잡자, 소현준이 입을 열었다.“오늘 우연이가 다녀갔습니다. 오신 이유는 우리 소씨 가문에 어떤 원한 관계가 있는 적이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였습니다.”“원한 있는 적?”소홍범은 중얼이다시피 하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지.”“그 아이가 왜 그런 질문을 한 것이냐?”소현우가 물었다. “혹시 이번 기회에 우리 가문과 화해하려는 건가?”소현준은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요. 우연이와 저희가 화해할 가능성은 없습니다.”“화해하지 않겠다니, 좋아. 난 그 아이를 딸로 인정한 적도 없다.”소홍범은 냉정하게 말했다. 태자와 평서왕 세력 간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요즘, 그는 장남과 함께 군 내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었다. 비록 그의 손에 쥔 병력이 만 명뿐이라 해도, 평서왕에게 기대어 설자리를 마련하기엔 충분했다.소현우는 아무 말 없이 입술만 굳게 다물었다. 소현준은 말을 이었다.“우연이가 말하길, 혜주가 예전부터 자신과 우희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힘을 쓰는 것이 나중에 되려 화가 되어 돌아오는 건 아닐까요?”소홍범은 당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그럴 리가 있겠느냐? 혜주는 우희를 애도하러 오기까지 했다. 둘은 친구 사이였어.”“맞아요. 혜주는 저희에게도 참 공손했죠.”소현우는 그 나긋하고 약해 보이던 소녀를 기억했다. 우희 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 눈빛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534화

    “어머니, 우연이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나요?”“소우연 말고는 없어.”임씨는 더 이상 누구도 떠올릴 수 없었다. 평생 원한 살 일 없이 조용히 살아온 사람이었기에. 소현준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없었다.임씨는 단호하게 말했다.“아버지와 형 말을 잘 듣고, 평서왕가를 위해 충성하렴. 언젠가는… 소우연과 이육진, 그 두 놈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거야.”임씨의 상태를 보니, 소현준도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꾹 참았다.“어머니, 푹 쉬세요.”그가 등을 돌리자 임씨가 뒤에서 외쳤다.“현준아, 잊지 마라!”소현준은 속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밖으로 나오자 마당 한편에 어머니의 시종 유모가 앉아 있었다. 그는 곧장 그리로 향했다.“유모.”유모는 깜짝 놀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아… 둘째 도련님…”“유모, 겁먹은 듯하군요.”“아, 아닙니다… 그런 건 없습니다.”“정말요?”소현준이 어떤 인물인가.그가 대리사까지 올라선 건 결코 집안 배경 때문이 아니었다.오직 자기 실력 하나로 쌓아 올린 자리였다.그는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마치 죄인을 심문하듯 유모를 바라보았다.긴장한 유모는 더는 버틸 수 없었고, 그가 묻는 말마다 사실대로 털어놓았다.“어머니께서 우연이를 그토록 미워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설마 친딸이 아니기라도 한 겁니까?”유모는 겁에 질려 무릎을 꿇었다.“아닙니다! 우연 아씨는 부인께서 직접 낳으신 친딸입니다. 다만… 그게…”“솔직히 말해주십시오. 어머니 상태는 유모도 봤지 않습니까. 지금은 아무도 어머니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만약 거짓말을 하면, 유모뿐 아니라 유모의 가족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소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 소현준.겉보기엔 부드럽고 예의 바르지만, 속은 누구보다 냉정하고 무자비한 인물이었다.유모는 결국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도련님… 이 말씀 드리기 정말 조심스럽습니다. 사실 부인께서는 예전부터 큰 마님을 깊이 미워하셨어요. 그런데 그 해 두 아씨가 태어나고, 사람들이 우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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