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의 두 눈이 크게 치켜뜬 채 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보자, 경안향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명을 질렀다.“아아——!!”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그의 정수리에 은침을 찔렀던 손은 멈추지 못하고 떨려왔다.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으려 애썼다.‘나는 정 없는 사람, 의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여자다. 눈물 따위 절대 흘리지 않을 것이다.‘잘못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잘못된 것은 세상, 그리고 임진숙, 이육진, 소우연이 배신했으니, 그들이 죽어야 마땅한 것이다!그들 모두 죽고 나면 더는 어미의 저주 어린 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이제는 모두 쓸어버려야 한다!어머니가 편히 눈을 감으시면, 그녀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었다.조윤 장군을 찾아가고, 이명도 찾아서 좋은 어미가 되어줄 것이다.그 순간 방문이 거칠게 걷어차였다.희진과 다른이들이 들이닥쳤다.조철이 가장 먼저 경안향 곁으로 달려와 그녀를 보호하듯 막아섰다.그는 이불 위에 눈도 감지 못한 채 피눈물을 흘리고 죽은 이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혹시 이 모든 게 주인마마가 하신 짓이 아니란 말인가?‘그제야 조철은, 주인마마가 정말로 무서운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꼈다.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그는 그녀의 따스함에 빠져, 얼마나 많은 망상을 꿈꿔왔던가.희진은 소리를 지르며 석호의 끔찍한 죽음을 보고 구역질이 올라왔다.“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희진이 물었다.그녀는 설마 경안향이 이복을 해쳤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경안향은 정신을 차리고, 이복이 병세가 깊어 피를 토하다 죽었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문득 이복의 입가에 번진 피가 검붉은 색이라는 것을 알아챘다.검다... 그는 독에 당한 것인가?언제 중독된 걸까?자신의 은침에는 독을 바르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그를 죽인 건 자신이 아닌 다른 자란 말인가?경안향의 목소리에 떨림이 섞였다.“공주님, 그는 중독이었습니다. 누가 그에게 독을 먹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으나, 속내는 달랐다.이윽고 그는 자신이 집안이 가난하여 궁에 들어가 태감이 된 연유를 털어놓기 시작했다.“소인은 처음부터 늘 사람들한테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마마를 뵈었지요. 마마께서 우리 둘 다 성이 이씨라며, 같은 문중이라 하셨습니다……”경안향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이복을 처음부터 철저히 이용할 생각뿐이었고, 다만 그 머나먼 사막에서 지낸 삼 년 동안만큼은 진정으로 친오라버니처럼 대하며 지냈다.이복과 명이 중 누구를 택하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그를 이리 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이었다.만일 오늘을 알았더라면, 아이를 이복 어미에게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이복은 손을 덜덜 떨며 돈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이건, 마마가 죽은 걸로 위장한 채 소식을 끊었을 때, 제 형이 제게 주신 노잣돈입니다.”그는 주머니를 열어 보이며 말했다.“그때 제가 저울로 달아봤는데, 고작 은 두 냥 하고 삼 돈. 삼 냥도 안 되더군요. 제가 그들에게 준 은표는 수천 냥어치였는데……”경안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랬지요. 나도 그때는 돈이 좀 있어서 오라버니께 넉넉히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라버니는 막상 어려울 때 그들이 이렇게 나왔다는 게…”“제 큰형은 속은 것입니다. 노름판에 끌려갔다는데, 내지 않으면 못 나간다며 억지로 돈을 잃었습니다. 나도 뒤늦게서야 사람들한테 들었지요. 그가 나를 아주 버린 건 아니었습니다.”쿵…경안향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이복이 결국 자신을 택할 거라 여겼다. 자신이야말로 그의 가장 소중한 존재일 줄 알았다.그런데, 그는 아직도 그 피붙이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고깃국을 한 숟가락 떠먹였다.“더 먹겠습니까?”이복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더는 못 먹겠습니다.”독이 퍼져 배를 뒤틀 듯 아팠고, 이제는 아무것도 넘기지 못할 지경이었다.그는 거의 기운이 빠진 채로 고개를 기울여 경안향
“석호야, 널 사랑하는 사람은 나뿐이야. 나만 널 가족으로 여기고, 나만 널 아껴주지 않느냐.”“그들은 혈육에 불과해. 너에게 붙어 네 피를 빨아먹는 흡혈충에 불과하다. 그리 생각하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석호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경안향의 얼굴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그 사람들은... 제 가족입니다. 피붙이들이라고요.”경안향은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에 엎드려 조용히 말했다.“제발... 목소리 좀 낮추거라.”“남이 들을까 두렵나 봅니다?”석호는 일부러 묻듯 말했다.경안향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 사실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명이를 위해서, 조윤 장군이 명이를 데리고 상운국을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선 안 되는 일이었어. 명이를 잃어버렸다는 소문이 나면, 분명 소우연과 이육진의 귀에 들어갈 테고, 그러면 조윤 장군과 명이는 절대 도망치지 못할 테니깐…”그녀는 흐느끼며 석호에게 기어갔다. 그의 손목을 붙잡은 손이 하얗게 떨리고 있었다. “석호야, 나는 처음부터 너를 가족처럼 여겼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지, 너도 다 알지 않느냐.”석호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그는 태감이 된 이후, 누구에게도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경안향, 아니, 과거 이아령도 그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남녀 사이로 얽히게 되었고, 그는 비록 태감이지만, 그녀 곁에서 '남자'로 살아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특히 사막국에서의 삼 년 동안, 형제로 위장하며 함께 살던 그 밤들. 매일 밤 그녀 곁에서 잠들고, 그녀가 건네는 온기를 느끼며 남자의 욕망과 온기를 되찾은 그 시간들. 그 기억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그 당시의 기억들은 그를 지금 이 순간에도 미워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그 불길한 날, 낭청리에서의 화재. 그 모든 이들이 죽어간 것을 안 이후, 그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경안향을 향한 증오 사이에서 찢겨나갔다.
후희진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경안향이 먼저 말을 이었다.“가끔은 같이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면 좋겠지만, 한 가지는 명심해 주셔야 합니다. 아무리 친밀한 사이여도, 남 눈에 지나치게 가까워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왜, 왜 그래야 하느냐? 혹시 내가 사막 사람이라서 그러는 것이냐? 난 이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군사지도도 포기하였다.”“널 곤란하게 하진 않을 게야.”후희진은 다급히 해명했다. 그녀의 눈빛은 간절했다.경안향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웃었다.“아닙니다, 공주마마 때문이 아니라, 저 자신 때문입니다.”“너 자신 때문이라니?”경안향은 한숨을 쉬며 말을 흐렸다.“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때쯤 몇 가지 이야기를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후희진은 더는 캐묻지 않았다. 사람마다 마음 깊숙한 비밀 하나쯤은 있으니, 억지로 들춰낼 필요는 없다고 여긴 것이다.두 사람은 함께 본채를 나서 뒤뜰로 향했다.후희진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후원 한켠의 조용한 곁채였다.“저 자가 바로 석호다. 만일 보고 싶지 않다면, 무리하여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경안향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아닙니다. 만나 보겠습니다. 공주마마께선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후희진의 눈빛에 잠깐 의심이 스쳤다. 경안향과 석호, 혹시 두 사람이 아는 사이는 아닐까?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깊이 따지지 않았다. 석호 또한 그에 대해 말한 적 없었고, 경안향 역시 말하지 않았다.“그래. 그러도록 하마.”후희진은 하인을 데리고 곁채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로 물러났다.경안향은 조철을 바라보았다. 단 한 번 눈빛을 보냈을 뿐인데, 조철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혹시 후희진이나 다른 이가 다가올 경우, 곧장 알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여기서 기다리거라.”경안향의 말에 조철은 단정히 고개를 끄덕였다.“예, 마님.”그는 나무처럼 곧게 서서 후희진 일행과 비슷한 거리까지 물러나 섰다.
경안향은 미소 지으며 후희진을 바라보았다.“공주께선 제가 미쳤다고 여기시겠지요. 하지만 말씀드리자면, 공주께서 사막을 위해 이리저리 마음 쓰신 일들, 그들이 정말 알고나 있겠습니까? 안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이곳에 갇혀 캄캄한 날들을 버티며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후희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요즘 들어 자꾸만 위진규가 자신에게 말을 걸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와 나눈 짧은 대화, 무심한 듯 다정했던 시선까지. 처음엔 경계했지만, 지금은 그 순간들이 뇌리에 깊이 남아 있었다.그리고 그 날, 위진규가 했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원래 우리 둘은 평범한 부부로, 소박하게 함께 늙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허나 지금은 그럴 수 없게 되어버렸군요.’경안향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여인이란, 자손을 잇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내의 환심을 사는 것도 아니고요. 진정 중요한 것은 역경 속에서도 제 몸을 지키고, 제 삶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이지요.”그녀는 후희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예의와 체면, 충의와 원한… 그 모든 것도 좋지만, 결국 자신을 첫째로 여겨야만 진정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거짓된 웃음과 말도 필요하지요. 남자란 존재는 본래 하반신으로 생각하는 족속이니, 그리 애쓸 필요 없습니다.”그 말은 마치 일격처럼 후희진의 가슴을 두드렸다.문득, 그녀는 소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공주마마께서 나서지 않아도, 결국 사막은 공주마마를 밀어낼 겁니다.’소령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자청한 게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저 사막에서 내몰려 상혼을 목적으로 시집온 공주였을 뿐이었다.그런데도… 그녀는 위진규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는 국경에서부터 함께 걸어온 사람, 누구보다도 책임감 강한 사내였다. 자신이 바란 혼인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자신은 왜 애초에 얻을 수 없는 군사지도 하나에 마음을 뺏겨, 스스로 파멸의 길을 택했던가?위진규의 말이
경안향은 언젠가, 자신이 바로 이아령이었단 사실을 후희진에게 털어놓을 생각이었다.이아령이라는 이름은 이제 과거의 그림자일 뿐. 더는 입에 오르내려서는 안 될 이름이었다.그녀는 ‘경안향’이다.어사대부 경성세의 서녀이자, 임세안 장군의 아내.이처럼 높은 신분을 누가 부러워하지 않겠는가.소우연을 제거하거나, 그녀의 아이들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터였다.후희진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럼. 우린 친구지.”경안향은 조용히 물었다.“공주께서 절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후희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권했다.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얼마 전부터 석호라 하는 자가 병석에 누워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 아이는 예전에 나와 인연이 있던 사람의 오라비였지.”“그런데 그자가,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널 만나고 싶다 하였다.”후희진의 시선이 경안향을 꿰뚫듯 바라보았다.“그자가 널 보며, 과거의 어떤 사람을 떠올렸다는구나.”경안향은 손을 천천히 쥐었다.소매 속으로 꽉 움켜쥔 주먹을 감추며, 아무 일 없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한번은 뵙는 게 도리겠지요.”후희진은 경안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넌 정말 이상할 만큼 의심이 없구나. 나는 사막의 공주다. 혹시라도 널 해치려는 마음이 있다면 어쩌려고 그러느냐.”“혹은 네 남편에게 해를 가하려 한다면 말이다.”경안향은 미소를 머금었다.“공주께서는 그러실 분이 아니시지요.”“무엇으로 그리 장담하느냐?”후희진은 날카롭게 되물었다.“전에 뵈었을 때보다 공주께선 많이 수척해 보이십니다.”“예전엔 생기가 가득하셨는데, 이제는 성 안에서도 자유롭게 나다니지 못하시니, 아마도 위 장군의 뜻이 아니겠습니까.”그녀는 말끝을 흐렸으나, '금족령', '연금'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그건 듣는 이를 더 비참하게 만들 것이기에. 후희진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경안향은 고개를 갸웃이며 나직이 말했다.“어떻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