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았어요. 시댁에서도 아이를 재촉하지 않았고요. 그저 할머니가 가끔 증손녀를 안고 싶다고 말하는 게 다예요. 이제 태윤 씨가 저를 데리고 A시로 여행을 가서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전태윤은 그녀에게 친구가 많지 않다고 생각해 예준성의 아내인 모연정과 친구로 되게 하려고 했다.하예정은 에준하가 예씨 가문의 다섯째 도련님이고 성소현을 좋아하고 있으니, 그녀가 모연정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성소현을 도와 예씨 가문이 정말 모두가 평가하는 것처럼 가풍이 좋은지 확인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그녀는 성소현과 예준하가 사이좋게 지내고 있고 또 잘 어울리니 만약 예씨 가문이 정말 좋고 성소현도 예준하를 좋아한다면 분명 성소현의 편에 서서 이경혜를 설득하는 것을 도와줄 생각이었다.예준하는 비록 A시의 사람이지만 성씨 일가의 바로 옆에 집을 샀고 게다가 예진 그룹의 관성에서의 모든 사업을 도맡아 관성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성소현이 예준하에게 시집을 가도 관성에 남아 사는 것과 같았다. 친정과도 이웃이고.하지만 아직 이런 말을 하기엔 일렀다. 예준하는 아직 성소현에게 고백하지도 않았고 성소현도 예준하에 대한 그녀의 진정한 생각을 밝히지 않았다.“그래, 어쨌든 여행을 가서 기분 전환을 하다 기분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길 거야. 시댁에서 재촉하지 않는다면야 전 대표도 그리 조급해하지는 않겠지. 너도 자꾸 생각하지는 말고. 결혼한 지 2년이 지나도 임신 못 하면 그때 가서 어떤 이유로 임신이 안 됐는지 다시 검사해 보도록 해. 그리고 가끔...”이경혜는 말하기가 좀 쑥스러운지 잠시 멈칫했다.하예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뒷말을 기다렸다.이경혜는 조카 이모 사이에 못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어떨 때는 부부생활이 너무 잦아도 임신을 못할 때가 있어.”하예정은 잠시 침묵했다.그런 그녀를 보고 이경혜는 그 이유를 짐작했는지 웃고는 말했다.“너희
이경혜는 직접 하예정를 집 밖으로 배웅했다. 그녀가 차를 몰고 별장을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녀가 시야에서 멀어진 후에야 돌아섰다.하예정이 가게에 돌아오자마자 서현주가 찾아왔다.그녀의 등장은 하예정을 꽤 놀라게 했다.“네 언니는?”서현주는 들어오자마자 물었다.“우리 언니는 무슨 일로 찾아?”하예정은 차 키를 내려놓고는 차갑게 서현주에게 되물었다. 옆에 있던 심효진도 서현주가 소란을 피우기만 하면 빗자루를 들고 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서현주의 얼굴에는 퍼런 멍이 들어있었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있어 아주 초췌해 보였다.그녀는 올해 겨우 스물다섯 살로 하예정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지금의 컨디션으로 보면 몇 살 더 되어 보였다.‘결혼 후에 주형인이 비싼 스킨케어을 사주는 걸 아까워했나 보네. 언니보다 더 늙어 보여.’서현주의 컨디션을 보고도 하예정은 고물만치의 동정심도 못 느꼈고 되레 속이 시원했다.“그냥 얘기 좀 하고 싶어서 그래.”서현주는 주서인과 김은희에게 얻어맞아 꼴이 말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 얼굴은 붓지 않았지만, 퍼런 멍 자국은 아직 남아 있었다. 친정에 가면 부모님과 형수님한테 혼날 뿐이라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다.호적을 훔쳐서 먼저 주형인과 혼인신고를 했기에 조금의 예물밖에 못 받게 되었으니까.그녀의 부모들도 주형인과 혼인신고를 한 이상 앞으로 주씨 집안에서 괴롭힘을 당하게 돼도 친정에 돌아와 울며 하소연할 생각을 하지도 말라고 했다.그녀는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을 찾고 싶었다.카톡을 열어보니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형인과 하예진 부부의 내연녀로 된 탓에 진심으로 사귄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게다가 그녀는 지인들에게 본인이 시댁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그러다 문뜩 하예진이 떠올랐다.내연녀가 본처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하다니, 웃길 노릇이었다.하필 하예진만이 주씨 일가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잘 알고 있다.“언니랑 무슨 할 얘기가 있는데? 만약 우리 언니
서현주는 안색이 어두워졌다.한참 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서현주.”하예정이 서현주를 불러세우자, 그녀는 하예진의 행방을 알려주려는 줄 알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하예정은 얼굴에 웃음을 띠며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네 얼굴의 멍 말이야, 아직 엄청 뚜렷하거든. 약국에 가서 약을 사서 바르면 빨리 나을 수 있을 거야. 너희들 곧 결혼식을 올린다고 들었는데, 만약 멍이 계속 남아있으면 결혼식을 올릴 때 네 미모에 영향 있지 않겠어?”서현주의 안색은 더 어두워졌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게를 나섰다.마치 이렇게 하면 그녀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듯이.이때, 배달원이 도착했다.심효진이 주문한 밀크티가 왔다.그녀는 밀크티 두 잔을 받아 그중 한 잔을 하예진에게 건네주며 깨고소하다는 듯 말했다.“집에서 얻어맞은 거지? 전에는 그렇게 센 척하더니. 주씨 일가의 그 모녀에게 잘도 대들었잖아.”하예정은 밀크티를 마시며 말했다.“만약 주씨 일가 온 가족이 함께 상대한다면 아무리 세봤자 질 게 뻔해. 이런 폭력은 한번 있게 되면 후에도 계속될 거야. 처음 싸운 결과가 이렇게 비참하게 진 거라면 앞으로 더 비참해질 거야. 주형인과 이혼하지 않는 한 말이야.”하예정은 서현주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그녀는 서현주가 재수가 없게 변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결혼식을 아직 올리지도 않았는데 싸움이 일어난 걸 보면 앞으로 서현주의 고생문이 열릴 게 분명했다.“처음에 언니가 싸움에 말렸을 때 언니는 칼을 들고 주형인을 쫓아다녀 주씨 일가를 놀라게 했어. 비록 그 사람들은 여전히 쓰레기 같은 본성 그대로였지만 다시는 감히 언니에게 손찌검하지 못했어.”사람은 모두 약자를 괴롭히고 강자를 두려워하는 면이 있다.“지난번에 주씨 일가가 감사 인사를 하러 왔을 때 난 그 가족이 마침내 본성을 고친 줄로만 알았어.”심효진도 밀크티를 마시며 말했다.“사람은 절대 쉽게 바뀌지 않아.”“아무튼 이건 현
비록 그가 그녀에게 소개한 두건의 비즈니스로 돈을 좀 벌게 되었다고 해도, 그에게 사주는 밥 한 끼에 다 쓸 수는 없었다.“그래, 어디 가서 먹을지는 네가 정해. 네가 직접 만들어 줘도 좋아.”전이진은 어디서 먹든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초대한 사람이 자기 약혼녀이기만 하면 되었다.‘쳇, 누가 네 약혼녀라는 거야?’‘할머니께서 네가 내 아내감이라고 하셨어. 내 약혼녀는 바로 너인걸.’“이진아, 나는 눈이 안 보여서 직접 요리할 수 없어.”여운초는 전이진에게 자신이 장님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익숙한 환경에서 그녀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지만 요리하는 것은 여전히 무리였다.만약 그녀가 장님만 아니었다면 요리를 할 수 있었겠는데... 비록 여씨 일가의 아가씨이지만, 항상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순간 전이진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그래, 눈이 보이지 않으니, 요리를 못하지.’만약 그들이 결혼한 후에도 눈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아내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맛볼 기회가 없을 것이고, 형님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녀가 요리할 수 없으면 그가 하면 되었다.“신의라고 불리는 의사가 있다고 들었어. 그 의사가 너의 눈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 신의를 못 찾더라도 그의 유능한 제자를 찾으면 마찬가지일 거야.”그는 아직 예준하에게 신의나 그의 제자와 연락이 닿을 수 있는지 묻지는 않았다.아직 여운초의 신임을 얻지 못했기에.여운초에게 두 건의 비즈니스를 소개해 줬다고 그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라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의 경계심은 매우 강했다. 비록 사람을 대할 때에는 부드러웠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 그 속으로 들여보낼 생각은 하지 않는 듯싶었다었다.“알아, 우리 고모도 말한 적이 있어. 신의가 내 눈을 고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하지만 그건 전설일 뿐이야, 신의가 아직 살아있는지 누가 알겠어? 신의의 제자는 행방조차도 알 수 없는걸.”여운초
여운초와 고모는 그저 증거가 없었을 뿐 누가 그녀에게 독을 먹였는지 짐작이 갔다. 10년 전, 그녀는 열여섯 살의 소녀였고 고모도 멀리 시집가서 친정에 거의 오지 않았다. 그때 그들은 독살하려 한 사람을 증명할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그녀는 나중에 고모가 계부를 찾아가 말다툼하다가 뺨을 맞고는 울면서 떠났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그 후 고모는 관성으로 돌아올 때면 호텔에만 묵었고 다시는 여씨 일가의 저택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멘탈이 좋네.”여운초는 담담하게 말했다.“멘탈이 무너져서 하늘이 무너질 듯 울어도 내 눈이 회복될 수는 없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해.”전이진은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운초 너의 이런 마음가짐, 아주 좋아. 마음에 들어.”여운초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전이진에게 물었다.“이진아, 지금 몇 시야? 식사 시간이 되었으면 같이 식사하러 가”두 점원 중의 한 명은 손님에게 꽃을 주러 갔고 한 명은 남아서 가게를 봐야 했다.점원은 가끔 참지 못하고 힐끗힐끗 전이진을 쳐다보았다.전이진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된 후 그녀들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다 미남이라는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라고 소곤댔다.전이진은 여운초의 가게를 매우 잘 돌봐주었다. 그녀는 점원들에게 전이진이 비록 가게엔 두세 번밖에 들르지 않았지만, 두 건의 큰 비즈니스를 소개해 주었다고 말해주었다.그 두 점원은 여운초에게 이건 전이진이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농담 조로 말하곤 했다. 여운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점원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전이진이 진심일 거라고는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시각장애인을 처음 접한 것이 신기해서인 줄로만 생각했다.많은 사람이 그녀가 장님인 것을 안 후 신기해했다.전이진은 시간을 보고 말했다.“아직 이르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나에게 밥을 사주기까지 30분이나 있는걸.”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밖에서 차 두 대가 꽃필무렵의 문 앞에 멈춰 섰다.점원은 마중을
여운초는 카운터에서 돌아 나와 직접 전이진을 도와 장미꽃을 가지러 가려고 했다.그러다 방금 발걸음 소리를 들은 것처럼 멈추고는 사모님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담담하게 불렀다.“엄마.”사모님은 먼저 전이진을 훑어보고는 낯이 익다고 느꼈다.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전이진에게 물었다.“낯이 익으신데, 누구시죠?”마이바흐를 운전할 수 있는 남자의 신분이 간단할 리 없었다.전이진은 허리를 곧게 펴고는 돌아서서 사모님과 마주하고 말하였다.“전이진입니다.”“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시군요.”전씨 일가의 아홉 아들들은 연회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적었다.만약 그들이 비즈니스 업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면, 외부인들은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다.전씨 일가는 항상 아이들을 잘 보호해 왔다.사모님은 전이진의 이름을 듣고 웃음이 더 환해졌다.그녀는 막내딸을 전씨 집안에 시집보내고 싶어 그 집안의 도련님들에게는 항상 친절하게 대했다.비록 전이진이 여운초의 가게에 나타나 꽃을 산다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지금 사모님은 그 점에 대해 깊이 연구할 마음이 없었다.“안녕하세요, 사모님.”전이진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사모님은 웃으며 전이진에게 물었다.“제가 들어왔을 때 약혼녀에게 줄 꽃을 사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약혼녀는 어느 집안의 아가씨죠? 약혼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 없어서 말이에요.”‘전씨 집안 큰 도련님이 하예정 그 촌년과 결혼한 것이 참 아쉽긴 하지만 다행히 전태윤 아래 친동생과 사촌 동생이 8명이나 있으니...’여씨 사모님은 전태윤 외에도 여운별에게 어울리는 신랑감이 전씨 가문에 다섯이나 된다고 생각했다.전이진에게 약혼녀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사모님은 약혼녀가 어느 집안의 아가씨인지 알고 싶어졌다.여운별이 아직 나오지도 않은 데다 하예정이 또 고소한 것에 그들 부부는 여전히 딸아이를 위해 바삐 달아 다녔다. 딸을 대신해서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반드시 승소해야 한다.비록 여
“사모님, 안녕하세요. 운초 데리고 집에 가서 식사하시려고요? 아니면 또 다른 볼일 있어요? 제가 혹시 두 분 방해했나요?”전이진은 아직 여운초가 집에서 어떤 처지인지 몰라 다정하게 추미자에게 물었다.한편 추미자도 이번엔 여운초를 괴롭히려고 온 게 아니다.내일 저녁 관성 호텔에서 공세호 어르신이 대규모 비즈니스 연회를 여는데 추미자는 여운초를 데리고 갈 예정이다. 물론 이 아이로 막내딸 자리를 대체하려는 건 아니다.실은 여씨 그룹과 상업적인 왕래가 있는 회장님이 한 분 계시는데 여운초를 소개해 줄 생각이다.비록 눈이 멀긴 했지만 나름대로 예쁘게 생겨 외모는 여운별보다 낫다. 말투도 다정하고 온화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편안해지게 하니 그 회장님께 소개해주면 무조건 홀딱 반해버릴 것이다.“아니요, 저는 그냥 운초랑 몇 마디 얘기하고 바로 갈 겁니다.”전이진 앞에서 추미자는 매우 친절한 태도였다.“운초야, 내일 오후에는 가게 문 닫거나 점원에게 맡기고 일찍 집에 돌아와. 엄마가 화장 예쁘게 해주고 드레스도 준비해놨으니 저녁에 함께 연회 참석해야지.”여운초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전이진이 웃으며 되물었다.“사모님 혹시 공세호 어르신이 주최한 연회를 말씀하시는 거예요?”“맞아요, 이진 씨도 참가하시죠? 공 어르신이 주최하는 연회라면 다들 참석하지 못해 안달이잖아요.”여씨 일가의 자산이 200억을 돌파한 이후로 추미자는 연회에 참석하는 데 아주 열정적이다.이젠 드디어 상류사회에 들어선 것만 같았고 막내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운별이가 얼마나 괜찮은 아이인지 알리고 싶었다.원래 계획은 운별이를 전씨 일가에 시집보내는 것인데 플랜B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그도 그럴 것이 전씨 일가 도련님들이 워낙 까다로워 운별이가 그 집안에 발 들일 거라는 보장이 없다. 관성에는 부자가 많아 딸을 데리고 이런 연회에 자주 참석하면 딸에게 좋은 배필을 찾아줄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보배 따님을 알릴 수 있다.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으니까.
“아무튼 내일 오후에 집에 안 오면 엄마가 사람 불러서 너 데려오게 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저녁엔 반드시 엄마랑 함께 가!”여운초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엄마, 난 앞이 안 보이는데 무슨 세상 구경을 해요? 이 세상은 내게 오직 흑백이라 더 볼 필요도 없어요.”“너!”추미자는 화가 나서 이를 박박 갈았다. 마음 같아선 뺨 한 대 갈기고 싶었다.“난 분명 말했다. 듣고 안 듣고는 네 문제야. 내일 오후에 내가 직접 데리러 올게. 볼일 있어서 그럼 이만.”추미자는 여운초와 안 맞는다. 이 딸만 생각하면 증오와 미움뿐이다. 용건을 다 말한 후 그녀는 전이진에게 시선을 돌렸다.“이진 씨, 누추한 모습을 보였네요. 얘가 이래요. 실명한 이후로 자신감도 잃었어요. 연회에 참석하는 것도 운초를 슬픔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감을 얻게 하기 위해서인데, 어휴. 저는 또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전이진이 대답했다.“네, 들어가세요.”추미자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여운초를 째려본 후 경호원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엄마가 문밖을 나서는 발걸음 소리에 여운초는 점원에게 말했다.“그만해도 돼요.”점원은 어리둥절했다.‘이건 전이진 씨가 사려던 꽃다발이잖아? 약혼녀에게 선물할 거라고 했는데.’“계속해 주세요. 나 진짜 꽃 사러 왔다고요.”전이진이 점원에게 계속 꽃다발을 만들라고 했다.그가 이렇게 말한 이상 가게 장사하는 여운초도 별수 없이 그의 요구를 만족해 주며 꽃다발을 팔았다.다 완성된 후 전이진이 돈을 내고 꽃다발을 받으며 여운초에게 말했다.“가자, 운초야.”“?”여운초는 어안이 벙벙했고 전이진은 그런 그녀가 재미있었다.“왜? 나 밥 안 사줄 거야? 엄청 배고픈데.”“하하, 미안, 내가 깜빡했어.”여운초는 정말 새까맣게 잊었다.친엄마의 등장에 그녀가 또 무슨 계략을 피워 자신을 함정에 빠트릴지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연회에서 망신 주려는 걸까 아니면 본인들에게 도움 될만한 늙은 남자에게 팔아치우려는 걸까?엄마의 사랑은 바라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