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효진이 임신한 뒤로 소정남의 부모님, 심지어 사촌들까지도 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를 소중히 여겼고 그녀가 다칠까 봐 이러쿵저러쿵 아무런 일도 못 하게 간섭했다.그리고 매일 영양사의 요구에 따라 하루 세끼를 먹였고 그녀가 다칠까 봐 자주 외출하지 못하게 요구까지 했다.집안 어르신들은 심효진이 집에만 앉아 배 속의 아기를 돌보기를 바랐다.심효진이 나가서 쇼핑하고 싶으면 집안 어르신들은 그녀를 설득해서 못 나가게 했고 사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집사에게 주어 집사가 외출하여 구매해 오도록 했다.이런 귀빈 생활을 하예정마저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녀는 임신하자마자 전태윤을 찾아 담판을 지었다.비교가 있으면 상처도 더 큰 법.하예정이 임신이 안 됐을 때 소정남이 심효진한테 잘해주는 것에게 대해, 소씨 가문 어르신들이 심효진에게 대한 행동들에 관해 심효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하예정이 임신한 뒤로 전씨 가문과 전태윤이 하예정을 이해해주는 것을 보면서 심효진은 무척 부러웠고 결국 참다못해 남편에 불평을 늘어놓게 되었다.가끔 심효진도 자신이 행복에 겨운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얼마나 많은 임산부가 임신해서 집에서 푹 쉬기를 바라겠는가!하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직장을 다녀야 했고 임신 말기가 되어서야 집에서 쉬었다.하지만 심효진은 출근하지 않으면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고마워.”심효진은 남편의 큰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얼굴에 올려놓았다.소정남은 심효진에게 말 할 것 없이 잘 해주었다.기성세대의 사상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하지만 소정남은 최선을 다해 아내를 보호하고 있다.“방금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저 순간적으로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야.”소정남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심효진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방금 한 말들이 소정남에게로 말하면 그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내가 마음에 둘리가 없잖아.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바로
소정남은 심효진이 행복에 겨워도 행복에 겨운 줄 모른다는 말을 매우 듣기 싫어했다.전혀 그러한 생각을 할 필요 없기 때문이다.소정남은 심효진이 절친들과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려 할 때 그녀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슨 일이든지 모두 지지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심효진은 남편의 품에서 고개를 쳐들었다.소정남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를 몇 번 해버렸다. 그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고 결국 아내에게 꼬집혀 밀려났고 심효진은 붉어진 얼굴로 이내 일어났다.소정남도 낮은 소리로 웃었다.경호원이 운전 중이라 소정남은 더는 아내에게 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다.“앞쪽 약국에 주차해 주세요.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영양제 좀 사다 줘야 해요.”소정남은 경호원에게 당부했다.두 사람은 문득 갑자기 친정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심효진이 말했다.“우리 엄마 집으로 갈 때마다 이렇게 많이 사 들고 갈 필요 없어. 매번 손에 가득 쥐고 들어가면 엄마가 또 뭐라고 하실 텐데.”소정남은 빙그레 웃었다.“보양식만 조금 살 거야. 돈도 얼마 안 드는걸. 게다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어머님은 매번 채소들을 큰 봉지에 담아서 우리 차에 가득 실어주시잖아.”“우리 엄마가 직접 심은 채소가 시장에서 산 것보다 맛있거든.”“그럼. 우리 장모님이 주신 건 다 최고야.”소정남은 뻔뻔스럽게 장모님을 치켜세워주었다.나은서도 소정남의 이런 수단에 잘 속아 넘어갔고 사위가 아들보다 더 낫다고 늘 말하곤 했다.심지어 심효진은 어머니가 사위가 생겼다고 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습을 보며 질투까지 했다.딸이 없었더라면 소정남 같은 사위도 없을 텐데...경호원은 소정남의 요구대로 약국 앞에 차를 세웠다.“여보, 차에서 기다려 기고 있어. 내가 가서 영양제 좀 사 올게. 밖에 너무 더워.”소정남은 차에서 내리며 아내를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고 그는 혼자 약국으로 들어가 처가집
심효진 부모님은 소정남 부부가 점심에 집으로 와서 밥을 먹으려는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차의 경적을 들은 나은서가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제가 잘못 들은 거죠? 경적음이 왠지 우리 집 문 앞에서 울리는 것 같아요.”나은서 부부는 점심을 먹고 있었다.소정남 부부는 모두 직업이 있기 때문에 점심에 집으로 와서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심씨 집안의 할머니도 요 며칠 친척 집을 방문하러 나섰기에 집에 계시지 않았다.신범수가 말을 이었다.“개 짖는 소리가 없는 거로 보면 아마도 우리 집 손님이 아닌 것 같아. 옆집 아들이 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나 보네.”“우리 아들은 언제쯤 여자 친구를 데려올 수 있을까요?”나은서는 한숨 쉬면서 말했다.딸이 시집까지 갔건만 아들은 아직도 여자 친구조차 없었다.“우리 아들은 아직도 젊어. 뭐가 그리 급해?”곧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은서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나은서는 바로 수저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고 집에서 기르던 큰 개가 마당 정문 앞으로 돌진하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여보, 효진이가 돌아왔어.”나은서는 딸의 차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기뻐하며 남편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계단으로 내려와 한참을 걸은 후에야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었고 경호원이 차를 멈추자 뒷좌석의 문 앞으로 다가갔다.차 문이 열리자 사위가 먼저 보였고 나은서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온 얼굴에 이빨밖에 보이지 않았다.“어머님.”소정남은 차에서 내리며 부드러운 말투로 어머님이라고 불렀다.그리고 뒤이어 아내를 부축해 내리려고 몸을 돌렸지만 심효진은 이미 반대편 문에서 내리고 있었다.심효진이 차에서 내릴 때 남편을 도와 물건도 들어 주었다.“우리 사위, 왔어? 밥은? 미리 전화라도 하지.”나은서는 웃으며 물었고 사위 뒤를 힐끗 쳐다보더니 딸이 반대편에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녀는 다정하게 사위를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금방 퇴근했는데 효진이가 집밥 먹고 싶다고 해서 바로 여기
집에서 닭을 잡기에 그녀는 다리와 날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먹지 않았다.“요즘 젊은이들은 산후조리를 할 때, 영양 결핍은 걱정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아. 엄마가 산후조리를 했을 때는 한 달에 닭도 몇 마리밖에 먹지 못했어. 그리고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니까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엄마, 아빠가 다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야.”나은서는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온 심효진을 꾸짖으면서도 그녀가 무거워할까 봐 얼른 받아서 들었다.집 안으로 들어가자, 심범수는 부엌으로 급히 들어가 그릇과 젓가락을 꺼내왔다.심범수와 나은서는 규칙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서 경호원들과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익숙했다.심효진은 자리에 앉으려다가 나은서가 직접 담근 장아찌를 보고 말했다.“엄마, 흰죽 있어요? 나 오늘따라 흰죽에다가 장아찌를 올려서 먹고 싶어요.”시댁의 영양사는 장아찌에 염분이 많다면서 못 먹게 했기에 심효진은 오랜만에 본 장아찌에 군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마침, 아침에 끓여 놓은 게 있는데, 먹고 싶으면 엄마가 데워줄게.”나은서는 심효진이 시집을 간 후로 끼니마다 영양사가 차려주는 산해진미를 먹는다는 것과 서점에 출근할 때도 소정남이 음식을 배달시켜 주거나 사돈댁에서 사람을 시켜서 보내준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소정남의 눈치를 살폈다.소정남도 나은서의 생각을 읽었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어머님, 저도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밥 대신 죽이 더 먹고 싶네요.”“알겠어, 내가 가서 데워줄게. 미리 집에 온다고 연락했으면 신선한 죽을 끓여줬을 텐데.”나은서는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에 끓인 죽을 데우기 시작했고, 평소 선풍기만 켜던 심범수도 얼른 모든 창문을 닫고 거실에 있는 에어컨을 켰다.얼마 후, 나은서는 큰 냄비에 죽을 담아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고, 두 사람한테 먹고 싶은 만큼 퍼서 먹으라고 했다.심효진은 임신한 후, 식욕이 폭발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그릇을 먹어 치웠다.그녀가 한 그릇을 더 뜨려고 하자
밥을 다 먹은 후, 소정남와 심범수는 이야기를 나누러 서재로 들어갔고, 심효진은 나은서를 도와 설거지를 하면서 담소를 나눴다.“엄마, 예정이가 드디어 임신했대요.”하예정은 심효진의 오랜 친구였고, 나은서도 그녀를 친딸처럼 생각하면서 결혼하고 나서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정말?”나은서는 갑작스러운 좋은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이내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하느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예정이도 임신했다니 이제 정말 한시름 놓았어. 너는 의지할 친정이라도 있지만, 예정이는 언니밖에 없잖아. 비록 기현의 엄마가 옆에서 돌봐 준다고 해도 어쨌든 큰이모라서 크게 신경 쓰지 못할 거야. 그래도 이제 임신했다니 전씨 가문에서 쫓겨날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너무 다행이야!”“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태윤 씨는 예정이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전씨 할머니께서 직접 고른 손자며느리를 누가 감히 내쫓을 수 있겠어요! 주위 사람들이 예정이가 잘되는 게 배가 아파서 그렇게 떠들고 다닐 뿐이에요.”심효진은 전태윤한테서 딩크족이라도 상관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하예정이 아이를 낳지 못해도 이혼하지 않을 거라는 걸 굳게 믿고 있었다.“그래도 예정이가 임신해서 너무 다행이야.”나은서는 기쁨에 겨워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이제 엄마는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난 우리 딸과 예정이가 모두 시댁에서 자리를 잡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나저나 언제 임신했다는 걸 알았어?”“어제 알았대요. 요즘 따라 졸음이 쏟아져서 과로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다가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임신이라고 했대요.”나은서는 나지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너도 다 겪어봤으면서 예정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아들이 있는 예진 언니도, 예전 언니 아들의 육아를 도맡아왔던 예정이도 아예 생각하지 못했잖아요.”심효진을 설거지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그래도 가슴에 맺혀
김진우는 지금 김씨 그룹의 계열사에서 본사로 다시 돌아왔고, 심미란의 주선으로 거물급 명문가의 아가씨를 만나 연애하고 있었다.그도 자기에 대한 전태윤의 적대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결혼밖에 답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지난번 예정이가 태윤 씨랑 연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진우를 만났대요. 엄마, 태윤 씨가 두 사람이 그저 예의상 인사를 나눈 걸로 안색이 어두워졌다던데 다음에 진우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예정이의 임신 소식을 조용히 전해주는 게 어때요? 진우가 마음을 다잡고 지금 만나는 아가씨랑 잘 지내다가 결혼까지 하면 좋잖아요.”심효진은 진태윤과 초고속으로 결혼한 하예정이 김진우를 동생으로만 생각한다는 걸 알았기에, 김진우가 하예정을 좋아한다는 소리에 애초부터 극구 반대하면서 마음을 접을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그러나 김진우는 하예정에 대한 마음이 날이 갈수록 깊어져 갔고 결국 김진우까지 그 사실을 알고 김종헌한테 직접 찾아가 아들이 자기 여자를 탐내지 못하도록 잘 관리하라고 경고했다.그 일이 있고 난 뒤로, 김진우는 관성에서 쫓겨나 그룹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파견 당하고 말았다.그 후로 심효진과 소정남이 결혼하면서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사돈 사이가 되었고, 진태윤은 심효진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더 이상 김씨 가문에 대한 압박을 가하지 않아서 큰 치명타는 면할 수 있게 되었다.“알았어, 내가 네 고모한테 잘 얘기할게.”나은서도 처제한테서 진태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김진우가 하예정을 포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래도 진우가 아직 스물세 살밖에 안 됐으니까 지금 당장 결혼하지는 너무 빨라. 아마 몇 년 더 연애하다가 스물일곱 살 정도에 결혼하지 않을까?”나은서는 심효진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너 이제 안정기에 들어섰잖아. 시댁 식구들이 아직도 많이 간섭해?”“이제 괜찮아요. 정남 씨가 많이 나서줘서 서점 일은 내가 도맡아 하고 있어요.”심효진은 시댁에서 국보급 대우를 받았지만, 불편한
심효진과 소정남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소정남은 그 파티 이후로 심효진에 대한 인상이 깊어졌었고, 진태윤이 그녀를 소개해 주겠다는 말에 선뜻 소개팅 자리에 나갔었다.“엄마, 솔직히 말해서 예정이의 상황은 나보다 훨씬 나아요. 그녀의 시댁 식구들은 개방적이고, 집안에서 태윤 씨의 말이 절대적인 데다가 할머니까지 나서서 보호해 주니까 아무리 임신했다고 해도 크게 간섭하지 못할 거예요.”심효진은 풀이 죽은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예정이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그럴 수가 없어요.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서점 운영을 해야 하고, 예정이와 소현이랑 채소 농장에 가려고 해도 멀다면서 못 가게 해요.”사실 채소 농장은 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효진아, 너무 불평하지 마. 시댁에서 첫 며느리인 네가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까 다들 걱정하는 것뿐이야. 잘 생각해 봐, 무관심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지 않아?”나은서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심효진을 타이르기 시작했다.“너도 이제 시집갔으니까 더 이상 예전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철없는 생각을 하면 안 돼. 엄마, 아빠는 너의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어도 시댁은 완전히 달라.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과 시댁 식구들부터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야.”“이제 생각해 보니 결혼을 안 했을 때가 편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그때 엄마는 내가 집에서 놀고먹는 게 꼴 보기 싫다고 시집가라고 자꾸 재촉하셨잖아요.”설거지를 마친 심효진이 나은서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냥 엄마 앞이라 푸념한 거예요. 나도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어요.”“알면 됐어, 정남이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그날부터 이런 걸 각오하는 게 맞아. 사실 네 시댁의 규칙은 고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네 고모는 신혼 때 매일 일찍 일어나 시부모님께 아침밥을 차려드려야 했고, 시부모님이 젓가락을 들기 전까지는 먹지도 못했으며, 식사하는 동안 계속 시중을 들어야 했어. 그야말로 월급도 못 받는 하인
나은서는 계속 침착하게 심효진을 타일렀다.“효진아, 예정이와 자꾸 비교하지 마, 예정이는 예전에 무술을 배운 적이 있어서 몸이 튼튼하지만, 넌 상황이 다르잖아. 모든 일에 만족할 줄 알아야 즐거운 법이고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점점 더 작아지고 불행해져.”심효진은 나은서의 충고에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알겠어요. 이제부터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게요. 정남 씨도 내가 다른 임산부들처럼 배가 불러오고 나서도 악착같이 일할 필요 없이 그저 편안한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정남이가 너한테 잘해준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네 시댁 식구들도 널 친딸이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거야. 10달 동안 네가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해.”심효진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효진아. 엄마가 예정이한테 줄 영양제들을 챙길 테니까 넌 과일을 좀 씻어서 아빠랑 정남이한테 가져다줘. 물론 예정이가 이런 게 부족한 건 아니겠지만, 엄마의 작은 성의라고 생각해.”하예정이 열한 살이 되던 해, 그녀는 아이들과 싸우는 바람에 가방끈이 끊어졌고 옷도 구질구질해졌다.그때 심효진은 하예진이 알까 봐 두려워 감히 셋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하예정을 자기의 집으로 데려왔다.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자, 나은서는 하예정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하예정의 책가방을 기워줬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킨 후 효진의 옷으로 갈아입혔다.나은서는 아직도 그날 하예정의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말려주면서 왜 싸웠냐고 물었던 기억이 생생했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눈에는 하예정이 너무나 온순해 보여서 반 친구들과 갈등이 생겨도 기껏해서 말다툼만 할 뿐, 주먹다짐은 안 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나은서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하예정은 눈물만 뚝뚝 흘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예정아, 왜 그래? 누구한테 맞은 거야? 어디 다쳤는지 아줌마한테 보여줄래?”하예정은 나은서가 곁으로 와서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