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9
By:  데이지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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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라져도, 손끝의 본능은 잊지 않는다." 조작된 차트, 덫에 걸린 수술로 모든 걸 잃은 천재 의사 차수연. 절망 끝에 뛰어든 바다에서 그녀를 구한 건, 선천적 심장 질환을 가진 남자 강우혁이었습니다. 기억을 잃고 아이처럼 변해버린 수연, 하지만 심장이 멎은 그를 마주한 순간 그녀의 손은 본능적으로 수술을 시작합니다. 그녀를 무너뜨렸던 악인들이 다시 다가오고, 수연은 지키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메스를 듭니다. 죽음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심장을 건 격렬한 운명의 메디컬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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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바다가 삼켜버린 이름

밤은 깊었고, 속초의 바다는 검은 유리처럼 번들거렸다. 

파도는 고요하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잔잔했다. 

마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겠다는 듯, 꾸준히 모래를 때리며 부서지고 있었다.

차수연은 바다 앞에 홀로 서 있었다.

병원을 나온 지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얀 가운을 벗어 던질 때까지만 해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삐~

심장 모니터가 뱉어낸 냉정한 평탄선.

“타임 오브 데스(Time of death)…” 동료의 굳은 목소리.

그 순간 수연의 가슴은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죽였어.”

목구멍 깊숙이 박혀 있던 고백이 파도에 섞여 사라졌다.

차트는 거짓말이었다. 수술 전 환자의 상태와 실제 상태는 달랐다. 

협착 부위도, 수치도, 과거 이력도 하나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메스를 쥔 건 그녀였으니까. 

천재라 불렸던 의사가, 단 한 번의 실패로 사람을 보냈다.

병원에서 쏟아지던 시선들이 떠올랐다. 

동정과 경멸, 그리고 은근한 조롱.

‘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어.’

‘한 번의 실패로 끝이다.’

그 속삭임들이 귓가를 찢듯 울렸다.

수연은 천천히, 파도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발목이 젖고, 종아리까지 파도가 차올랐다. 

물은 차갑고 잔인했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차가움이 위안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고통도, 이 죄책감도, 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허리, 가슴, 어깨. 파도가 몸을 삼켜갔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바닷물이 입술에 닿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 순간..

“거기서 뭐 하는 겁니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그러나 수연의 귀에는 희미하게만 맺혔다. 

그녀는 그대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

찬 물이 온몸을 덮쳤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팔은 허공을 긁듯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점점 힘이 빠졌다. 어둠은 깊고, 바다는 끝이 없었다.

 손끝은 차갑고, 발은 바닥을 잃었다. 산소는 사라지고, 시야는 검게 깔렸다.

‘죽어도… 괜찮아.’

의식은 그렇게 사라지려 했다.

그러나, 거센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또 다른 온기. 

강한 팔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바닷속에서 그녀의 몸을 끌어올리는 힘. 

누군가 거침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버텨요!”

남자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뭉개져 들렸다.

수연의 몸은 무력하게 늘어졌다. 

그녀의 머리칼이 물에 흩날리며 얼굴을 가렸다. 

남자는 그녀의 팔을 어깨에 걸치고, 발로 바닷속을 힘껏 찼다. 

심장이 갈라질 듯 쿵쾅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겨우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은 감겨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안 돼…”

그는 입술을 닫고, 곧바로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차가운 바닷물이 그녀의 입에서 쏟아졌다. 

가슴 압박을 번갈아가며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숨이 붙지 않았다.

“버텨!”

그는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숨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가슴을 압박했다. 몇 차례 더 반복하자, 

아주 약하게, 거의 미약하게,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두면… 안 돼.”

바닷가에서 병원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를 등에 업고, 

젖은 몸으로 어둠 속을 달렸다. 모래가 다리에 달라붙고, 

차가운 바람이 몸을 갈랐다. 

그러나 등에 업힌 그녀의 무게는 결코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다.

“조금만 더… 버텨요.”

숨을 몰아쉬며 달렸다.

밤거리를 지나, 병원 불빛이 보였다.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자, 간호사들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환자! 익수입니다! 의식 없음!”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스트레처가 도착하고, 의료진이 달려들었다. 

그녀의 젖은 몸이 들려 올려졌다. 

심전도 모니터가 붙고, 산소 마스크가 씌워졌다. 

의료진의 빠른 목소리가 교차했다.

“맥박 약해요!”

“기도 확보!”

“에피네프린 준비!”

그는 응급실 문 앞에서 멈춰섰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그저 유리창 너머로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후 3일 동안,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다.

새하얀 병실, 커튼 너머로 비치는 아침 햇살. 

그녀는 산소 줄에 의지한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녀 곁에는 언제나 한 남자가 있었다.

바닷속에서 그녀를 끌어낸 그 남자. 강우혁.

그는 침대 곁에 앉아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이 여자를 두고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수연의 눈꺼풀이 아주 느리게 떨렸다. 

긴 잠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시야가 열렸다. 

천장의 희미한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의식 돌아옵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우혁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신이 드세요?”

그가 다급히 물었다.

수연은 흐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목이 말라, 입술이 잘 열리지 않았다. 

겨우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여기가… 어디죠?”

“병원이에요. 괜찮으세요?”

“…….”

그녀는 시선을 흔들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빈 듯했다.

“이름…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간호사가 물었다.

수연은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병실 안 공기가 순간 멎었다.

우혁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분명 몇 일 전, 바닷속에서 죽음과 맞닿아 있던 여자인데

지금은 마치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곁에 서서, 흔들리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인가.”

그리고, 두 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흰 커튼이 병실을 조용히 가르고 있었다. 

심전도 모니터가 미약한 리듬을 기록하고 있었고, 

산소 줄이 숨결에 맞춰 오르내렸다.

 세 번째 아침, 닫혀 있던 그녀의 눈이 열렸다.

차수연. 그러나 이제는 그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죠…?”

낯선 천장을 바라본 채 그녀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간호사들이 안도와 놀람이 섞인 표정으로 달려왔다. 

활력징후를 체크하는 손길이 분주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붙은 모든 기계들이 마치 남의 것처럼 낯설었다.

“이름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그녀는 오래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이 안 나요… 아무것도요.”

순간,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문 앞에서 지켜보던 남자가 발걸음을 옮겼다. 

젖은 구두로 달려와 그녀를 병원까지 업고 왔던 사람, 강우혁이었다. 

그동안 그는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한 얼굴이었다.

“괜찮으세요?”

낮은 목소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익숙한 따뜻함이 있었다.

“누구세요…?”

“그날 밤, 바다에서 당신을 끌어낸 사람입니다.”

그의 대답은 짧았지만 묵직했다.

수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억은 텅 비어 있었고, 단지 가슴 한쪽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움찔거렸다.

병원 회진이 끝난 뒤, 

의사들은 그녀의 상태에 대해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뇌 손상은 없습니다. 신체적으로도 큰 문제는 없어요. 

다만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스로 기억을 차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시적 기억 상실,  혹은 심리적 방어기제일 수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들으며 수연은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이름도, 집도, 직업도, 가족도.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때, 우혁이 나섰다.

“그럼… 당분간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의사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환자가 안정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혼자 두기보다는 곁에서 지켜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병실 안의 시선이 잠시 우혁에게 향했다. 

그는 조용히 숨을 고른 뒤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돌보겠습니다.”

수연은 놀란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저를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혼자 두는 건 위험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강압적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병원을 나섰다.

차창 너머로 바닷바람이 스며들었고, 도로 위 가로등 불빛이 

차례대로 흘러갔다. 수연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폐만 끼치는 거 아닌가요?”

우혁은 잠시 시선을 창밖으로 두었다가 대답했다.

“당신은 바다에서 혼자 죽어가던 사람이에요. 

제가 본 건 그뿐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그게 전부입니다.”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도착한 곳은 속초 시내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바다와 가까워 창문을 열면 파도 소리가 스며드는 곳. 

실내는 정갈했고, 군더더기 없는 가구들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여기가… 집이에요?”

“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면 됩니다.”

그는 짐짓 무심하게 말하며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를 꺼냈다. 

그녀의 손에 건네며 덧붙였다.

“불편하면 말씀하세요.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수연은 컵을 잡으며 손끝이 떨렸다. 

낯선 곳, 낯선 사람. 그러나 바닷속에서 자신을 끌어안던 

그 팔의 힘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다.

“고마워요.”

짧은 말 한마디가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우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오랫동안 밤을 새운 탓인지 눈가에 피곤이 묻어 있었지만,  그 눈빛은 단단했다.

“…당신이 살아난 게, 다행입니다.”

그 말에 수연은 고개를 숙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날 밤, 낯선 공간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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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바다가 삼켜버린 이름
밤은 깊었고, 속초의 바다는 검은 유리처럼 번들거렸다. 파도는 고요하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잔잔했다. 마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겠다는 듯, 꾸준히 모래를 때리며 부서지고 있었다.차수연은 바다 앞에 홀로 서 있었다.병원을 나온 지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얀 가운을 벗어 던질 때까지만 해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소리만이 메아리쳤다.삐~심장 모니터가 뱉어낸 냉정한 평탄선.“타임 오브 데스(Time of death)…” 동료의 굳은 목소리.그 순간 수연의 가슴은 산산이 부서졌다.“내가… 죽였어.”목구멍 깊숙이 박혀 있던 고백이 파도에 섞여 사라졌다.차트는 거짓말이었다. 수술 전 환자의 상태와 실제 상태는 달랐다. 협착 부위도, 수치도, 과거 이력도 하나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메스를 쥔 건 그녀였으니까. 천재라 불렸던 의사가, 단 한 번의 실패로 사람을 보냈다.병원에서 쏟아지던 시선들이 떠올랐다. 동정과 경멸, 그리고 은근한 조롱.‘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어.’‘한 번의 실패로 끝이다.’그 속삭임들이 귓가를 찢듯 울렸다.수연은 천천히, 파도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발목이 젖고, 종아리까지 파도가 차올랐다. 물은 차갑고 잔인했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차가움이 위안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고통도, 이 죄책감도, 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허리, 가슴, 어깨. 파도가 몸을 삼켜갔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바닷물이 입술에 닿았다. 시야가 흐려졌다.“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그 순간..“거기서 뭐 하는 겁니까!”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그러나 수연의 귀에는 희미하게만 맺혔다. 그녀는 그대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찬 물이 온몸을 덮쳤다.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팔은 허공을 긁듯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점점 힘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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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부엌 창을 통해 들어왔다. 냄비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향긋한 계란 냄새가 방 안에 번졌다. 수연은 조심스럽게 국자를 들고 국을 휘젓고 있었다.“이 정도면 되려나…”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맛을 보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간을 맞추는 손놀림, 불 조절하는 감각.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거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우혁은 부엌에서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닷속에서 죽어가던 여자가, 지금은 앞치마를 두른 채 국을 끓이고 있었다.“벌써 일어나셨군요.”“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더 불안해져서요.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속 어딘가가 불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기억을 잃었는데, 이런 일상적인 행동들이 너무 익숙했다. 그 안에는 뭔가 감춰진 시간이 있었다.아침 식탁에 둘이 마주 앉았다. 수연이 건넨 국은 의외로 훌륭했다.우혁은 국자를 들고 잠시 멈췄다.“기억을 잃었다면서, 요리는 꽤 잘하시네요.”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저도 조금 신기했어요. 그냥 손이 움직였어요. 이게… 제 안에 남아 있는 무언가일까요?”그는 대답 대신 그녀를 오래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호기심과 경계가 동시에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직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는 평범하지 않았다.식사 후, 우혁은 회사 관련 전화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반듯한 셔츠 차림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다. 수연은 거실 구석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정돈된 말투, 단호한 결단, 때로는 상대방의 의견을 끌어내는 여유.그녀는 문득 속으로 중얼거렸다.“정말… 대표님 같네.”그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우혁은 헤드셋 너머로 짧게 눈길을 주었다.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오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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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당신이 혼자 아프지 않게
수연은 순간 얼어붙었다.손끝의 감각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가슴 압박의 리듬, 호흡의 조절, 응급 처치의 순서. 그러나 머릿속에는 자신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저도 몰라요. 하지만 몸이 그냥… 움직였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진심이었다.우혁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눈빛에는 놀라움과 동시에 확신이 담겨 있었다.“당신, 분명히 특별한 사람입니다.”짧은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자주 이런 증상이 있으신가요?”그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심장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잦아지고 있죠.”그 고백은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깊은 고독이 스며 있었다. 사람들에게 내보이지 않았던 약점, 처음으로 드러낸 진실이었다.“왜 진작 말씀하지 않으셨어요?”“대표라는 자리… 누군가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그의 말은 단단했지만, 수연의 가슴은 먹먹했다. 남의 시선을 견뎌내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자신과 겹쳐졌다.그녀는 그의 곁에 앉아 조용히 손수건을 건넸다.“아무리 강해도… 혼자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그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손수건을 받아든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의 손끝이 아직 자신의 가슴 위에 닿아 있는 듯, 심장이 묘하게 요동쳤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그의 낮은 목소리는 진심 어린 의문이었다.수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눈빛을 피하지도 않았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감각만은 분명했다.그날 밤,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바다 소리는 멀리서 귓가에 닿았다. 침묵은 길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우혁은 처음으로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냈고, 수연은 본능으로 그를 지켜냈다. 서로의 세계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창밖 하늘은 잔잔했지만, 두 사람의 심장은 같은 리듬으로 불안하게, 그러나 강하게 뛰고 있었다.새벽이 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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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흔들린 심장
늦은 오후, 속초의 하늘은 붉게 물들어갔다. 창밖에서 파도 소리가 잔잔히 밀려왔고, 오피스텔 안은 고요했다. 수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 바느질을 배우듯 단추를 꿰매고 있었다. 인터넷 영상을 보며 따라 하는 서툰 동작이었지만, 집중한 표정만큼은 진지했다.문득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책상에 앉은 우혁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말없이 집중하는 모습은 날카롭고 단단했지만, 손끝의 떨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수연의 가슴은 묘하게 저려왔다.‘이 사람은 언제나 혼자 버텨왔구나.’그녀는 단추를 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대표님.”그가 고개를 들었다.“잠깐 산책할래요? 계속 방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요.”우혁은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바닷가 산책로에는 붉은 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파도는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졌고, 갈매기들이 낮게 울며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지만,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이상해요.”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기억은 없는데, 바다를 보면 자꾸 눈물이 나요. 왜일까요?”그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바다는 많은 걸 담고 있습니다. 두려움도, 위로도.”짧은 대답이었지만, 그녀는 그 말 속에서 자신을 향한 배려를 느꼈다.잠시 후, 해변가에 있던 아이가 공을 잃어버려 울음을 터뜨렸다. 공은 파도에 떠밀려 멀리 나가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손쓸 도리가 없었다.수연은 망설임 없이 바다 쪽으로 달려갔다.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들어가 손을 뻗었다. 차가운 물결이 무릎을 덮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공을 붙잡아 아이에게 돌려주자,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고마워요!”아이의 웃음에 수연도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파도가 거세게 밀려와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수연 씨!”우혁이 단숨에 달려들어 그녀를 끌어냈다. 그의 품에 안긴 채 바닷가로 넘어지듯 쓰러졌다.숨이 고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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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균열의 그림자
아침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스며들었다. 수연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향긋한 향이 퍼졌지만, 마음은 어제 카페에서 느낀 낯선 시선 때문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대표님.”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어제… 저를 보던 그 여자,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맞을까요?”서류를 정리하던 우혁이 고개를 들었다.“아는 얼굴 같았습니까?”“아니요. 전혀요. 하지만… 눈빛이, 뭔가 알고 있는 사람처럼.”짧은 정적이 흘렀다. 우혁은 곧 담담히 말했다.“괜한 불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제가 곁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그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그녀의 가슴 속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그 시각, 박지현은 숙소 창가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 쥔 커피는 식어 있었고, 시선은 어제의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틀림없어. 그 얼굴, 그 눈빛… 차수연이야.”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죽은 줄 알았던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리고… 저 남자는 뭐야?”지현의 입술이 얇게 굳어졌다. 수연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편했는데, 그녀 곁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자의 존재는 또 다른 질투를 불러일으켰다.“좋아. 네가 정말 수연이라면…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야겠지.”며칠 뒤, 봉사단 의료진이 현지 보건소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우혁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지현과 마주쳤다. 그녀는 일부러 먼저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 혹시 강우혁 대표님 맞으시죠? 기사에서 본 적 있습니다.”우혁은 순간 낯설어했지만 곧 예의 바른 미소로 답했다.“네, 맞습니다. 여기까지 소문이 났군요.”“저는 서울 ○○병원 흉부외과 의사 박지현이라고 합니다. 이번 봉사단에 합류했어요.”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지현은 일부러 손을 내밀었다. 우혁은 잠시 망설였지만 악수를 받았다. 그녀의 눈빛은 매끄럽게 웃고 있었지만, 속 깊은 곳에 감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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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가려진 칼날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창문을 연 수연은 손끝으로 유리창에 맺힌 물기를 닦았다.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지만, 마음 한편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젯밤 우혁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기억이 돌아와도 변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당신이 제 곁에 있다는 사실.”그 한마디가 심장을 두드리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설레는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도 함께 밀려왔다. ‘정말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따로 있는 걸까? 그곳에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있었을까?’오전, 시장에 잠시 들른 수연은 향신료가 놓인 가판대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바구니에 담긴 향에서 이상하게 낯익은 감각이 피어올랐다. 눈앞이 아득해지며, 수술실 불빛 아래 긴장했던 장면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혹시… 차 아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눈앞에 서 있는 건 박지현이었다. 어제의 차가운 눈빛 대신, 오늘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저요? 저는…” 수연은 말끝을 흐리며 눈동자를 흔들었다.“아, 죄송해요. 제가 실례했네요. 낯이 너무 익어서 그만. 저는 서울에서 내려온 의사예요. 봉사 활동 때문에 이곳에 잠시 머물고 있거든요.”지현의 말투는 상냥했지만, 시선은 예리하게 움직였다. 수연의 손끝, 망설임, 그리고 순간적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기억을 잃으셨다면서요.”순간, 수연의 어깨가 굳었다.“그걸… 어떻게 아세요?”“어제 대표님 댁 앞에서 인사드릴 때 들었어요. 혹시 불편했다면 죄송해요. 단지… 의사로서 관심이 생겨서요.”지현의 말에 수연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 깊숙이 알 수 없는 차가움이 스며들었다.그때, 시장 반대편에서 우혁이 다가왔다.그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무슨 일이죠?”지현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대표님, 괜한 오해는 마세요. 저는 단지 얘기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에요. 이분이… 참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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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당신을 믿어도 될까요?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두 사람은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수연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는… 요즘 조금 무서워요. 누군가 절 계속 보고 있는 것 같아서.”우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당신이 어떤 과거를 가졌든, 지금은 제 곁에 있습니다. 그 사실만 기억하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막겠습니다.”그의 말에 수연은 눈을 떨구었다. 하지만 곧 용기를 내어 조용히 속삭였다.“…믿어도 될까요?”우혁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등 위에 천천히 손을 포개었다. 말보다 더 깊이 전해지는 온기에 수연의 눈가가 젖어들었다.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거실에 앉아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방 안은 따뜻했다.그러나 창밖 어둠 속에서, 다른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박지현의 눈빛은 이미 차갑게 빛나며 그들의 평온을 노리고 있었다.봄바람이 스치는 아침, 시장 어귀에서 수연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손길로 채소를 고르다, 누군가 부드럽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또 뵙네요. 반가워요.”고개를 들자, 어제의 여인. 박지현이었다. 오늘은 환자용 흰 가운 대신 차분한 셔츠 차림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수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아… 안녕하세요.”지현은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어제 말씀 못 드렸는데, 제가 서울에서 온 의사라 했잖아요. 흉부외과예요. 혹시 불편하시지 않다면, 제가 종종 상태를 확인해드려도 될까요?”순간, 수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흉부외과. 그 단어는 어딘가에서 익숙하게 맴돌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두통이 스쳐갔다.“저… 저는 괜찮습니다.”수연이 급히 말을 잘랐지만, 지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불안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봤다.그때, 멀리서 우혁이 다가왔다. 그는 수연 곁에서 낯선 여자의 존재를 확인하자, 표정을 단단히 굳혔다.“또 뵙네요, 박 선생.”지현은 조금도 기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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