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기억은 사라져도, 손끝의 본능은 잊지 않는다." 조작된 차트, 덫에 걸린 수술로 모든 걸 잃은 천재 의사 차수연. 절망 끝에 뛰어든 바다에서 그녀를 구한 건, 선천적 심장 질환을 가진 남자 강우혁이었습니다. 기억을 잃고 아이처럼 변해버린 수연, 하지만 심장이 멎은 그를 마주한 순간 그녀의 손은 본능적으로 수술을 시작합니다. 그녀를 무너뜨렸던 악인들이 다시 다가오고, 수연은 지키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메스를 듭니다. 죽음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심장을 건 격렬한 운명의 메디컬 로맨스.
View More새벽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병원 복도 끝에서 스며드는 햇살은 따뜻했다.윤지아는 창가에 기대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하얀 김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피어오르며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병원은 늘 같은 풍경이었다.기계음, 발자국, 환자의 숨소리.그 모든 익숙한 소리들 속에서도,그녀는 매일 조금씩 다른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오늘은 라벤더 정원이 문을 연 지 정확히 15년째 되는 날이었다.그녀는 그 숫자가 믿기지 않았다.처음 이 정원이 생겼을 때만 해도,그저 ;의미 있는 시도' 정도로 여겨졌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의 의사와 연구자들이 이곳을 찾아왔다.병원의 한 구석에 불과했던 정원이 이제는 생명과 회복의 상징이 되었다.“원장님, 이쪽으로 오세요.”젊은 간호사가 그녀를 불렀다.정원 앞에는 새로 심은 라벤더 묘목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그녀가 다가서자 아이들이 줄을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병원에서 회복 중인 아이들, 작은 손에 흙이 묻은 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이 꽃 이름 아는 사람?”지아가 물었다.아이들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라벤더요! 향기 나는 꽃이에요!”“맞아요.”지아는 무릎을 굽혀 아이의 눈높이에 맞췄다.“그런데 이 꽃은 향기만 좋은 게 아니라, 사람 마음도 편하게 만들어줘요.누군가가 그걸 믿고 처음 심었거든요.”“누가요?”또 다른 아이가 물었다.지아는 잠시 미소 지었다.“두 사람이요. 서로를 아끼고, 환자를 사랑했던 사람들.”그녀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정원의 한켠으로 향했다.라벤더 사이에 작은 표석이 있었다.“우리가 함께 있었던 모든 시간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향기로 남았다.”-강우혁 & 차수연그 문장을 볼 때마다,지아는 마치 시간의 문을 살짝 열어보는 기분이 들었다.정오가 가까워지자 기자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정원에 모였다.오늘은 라벤더 프로젝트의 새로운 확장 계획이 발표되는 날이었다.지아는 연단에 섰다.그녀의 뒤로,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리창
윤지아는 새벽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창문을 열면 라벤더 향이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익숙한 향이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진하게 느껴졌다.마치 누군가가 다가와 속삭이는 것처럼 오늘은 꼭 와야 한다고, 기다리고 있다고.병원 기념관 한켠에는 라벤더 프로젝트의 기록 전시가 준비되고 있었다.10년 동안 이어온 시간,그 안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그리고 그 모든 시작이 되었던 두 사람.강우혁과 차수연.지아는 조심스레 전시 패널을 정리하고 있었다.손끝에 닿는 오래된 사진,붉은 원으로 표시된 수술 메모,환자들의 감사 편지. 그 속엔 숫자보다도 더 많은 온기가 담겨 있었다.“원장님, 이거… 여기로 옮길까요?”보조 스태프의 목소리에 지아는 고개를 들었다.그가 가리킨 건 유리 프레임 속의 한 장의 사진이었다.라벤더 정원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두 사람의 모습.“그래요. 제일 앞에 두세요.”지아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그 사진이…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게 했으니까요.”행사는 오후 세 시에 시작됐다.대강당 안은 따뜻한 조명으로 가득했다.무대 뒤편의 대형 스크린엔‘라벤더 프로젝트 10주년, 그리고 그 이후’라는 문장이 걸려 있었다.지아는 연단에 올랐다.그녀의 시선은 객석 한가운데,한 칸 비워둔 두 좌석에 잠시 머물렀다.라벤더 모양의 리본이 조용히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오늘 우리는, 두 사람의 이름을 다시 부르기 위해 모였습니다.”지아의 목소리가 울렸다.“그들은 의사였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붙잡은 ‘사람’이었습니다.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그 향기를 다시 느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영상이 재생됐다. 기록실에서의 인터뷰, 수술실의 긴장된 공기,정원 벤치에서 서로에게 건네던 미소. 사람들은 숨죽여 그 장면을 바라봤다.어떤 이는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지아는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떨렸지만, 그 떨림은 슬픔이 아니라, 감사였다.행사가 끝
병원 옥상 정원은 또 한 번의 계절을 맞았다.라벤더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햇살은 그 위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윤지아는 난간에 기대어 바람에 스치는 잎사귀 소리를 한참 동안 들었다.지난겨울, 병원은 큰 변화를 겪었다.새로운 인공심장 연구팀이 꾸려졌고,라벤더 프로젝트는 국내를 넘어 해외 병원들과 협력 연구로 확대되었다.언제나 그랬듯 지아는 바쁘게 움직였지만, 이상하게도 올해의 봄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그건 아마도… 병원 한켠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 때문일 것이다.“원장님, 차트 서명 완료하셨나요?”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문 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사람은 신입 펠로우, 이현우였다.한때 라벤더 정원의 토양을 바꾸겠다고 나서던 청년.이제는 스스로 수술대에 서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네, 들어와요.”지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현우는 파일을 들고 다가와 조심스레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어제 심장외과 팀에서 회의했는데요.라벤더 프로젝트의 신규 케이스 중 한 분이 해외에서 수술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그 병원… 이름이 좀 낯익더라고요.”지아가 고개를 들었다.“어디요?”“서울제중심장센터요. 기록을 보니까… 주치의가 강우혁 교수로 되어 있더라고요.”순간, 공기가 멈췄다.그 이름이 입 안에서 맴도는 동안,시간이 미세하게 뒤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그래요.”지아는 눈을 깜빡였다.“그럼, 환자분 기록을 다시 검토해요.혹시 그때 남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네, 원장님.”현우가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멀리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살짝 스치는 빗줄기가 유리창에 부딪히며 투명한 선을 그렸다.그녀는 이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다시 당신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며칠 뒤, 지아는 그 환자를 직접 보기로 했다.중년의 남자, 심근 절개 부위의 섬유화가 예상보다 심했고,과거 수술로 이식된 판막 근처엔 작은 혈전이 보였다.그녀는
오전 회진을 마치고도 병동의 공기는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수술 대기 중인 소아 환자의 어머니는 팔짱을 낀 채 창밖만 바라보고, 새로 입원한 중년 남성은 심전도 패치가 꺼질까 봐 손을 가슴에 대고 가만 서 있었다. 윤지아는 노트를 닫아 포켓에 넣고, 차트를 끌어안은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라벤더 정원이 병원의 한복판에 만들어진 뒤로, 향기는 분명 사람들의 어깨를 조금은 내려앉게 했지만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의사는 향기보다 더 정확한 무언가를 내밀어야 한다.“윤 원장님.” 의무기록팀장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카이브 정리하다가, 이걸 발견했습니다.”얇은 외장하드 하나가 그녀의 손에 건네졌다. 라벨에는 낡은 볼펜 글씨로 두 단어가 쓰여 있었다. 보고. 기록. 뒷면 구석엔 작은 이니셜-K.W.H.와 C.S.Y.지아는 잠깐 손끝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강우혁과 차수연이 공동 서명을 올린 병원 자료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순간,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각자 자리에서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함께 만든 흔적을 만지는 일은 늘 조심스러웠다. 가느다란 유리잔을 들어 올릴 때처럼.“보안실에서 열람하세요. 영상 파일이라… 용량이 큽니다.” 팀장이 덧붙였다.보안실은 오후 빛이 닿지 않는 복도 끝에 있었다. 문을 닫으니 바깥 소음이 일시에 꺼졌다. 지아는 모니터를 켜고 외장하드를 연결했다. ‘라벤더_프로젝트_프리브리핑’, ‘응급OP_리뷰_내시경캡쳐’, 그리고 마지막에 ‘Two_Seats_Final.mp4’. 두 개의 의자. 정원의 중심에 놓인 그것들. 파일 이름만으로도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재생 버튼을 눌렀다.잡음 섞인 프레임이 잠시 흔들린 뒤, 화면이 또렷해졌다. 기록실의 오래된 조명 아래, 회색 니트와 흰 셔츠의 남자, 그리고 옅은 미소의 여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카메라가 초점을 잡는 동안, 두 사람의 손이 테이블 아래에서 스치듯 닿았다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
잔을 들고 입술에 대자, 온기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그 온기와 함께 마음 한구석의 긴장도 조금씩 풀려갔다.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이번 정적은 불편하지 않았다. 조용히 파도 소리가 창 너머에서 들려왔다. 수연은 그 소리를 들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기억은 아무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힘들어하는 얼굴은 그냥 못 지나치겠어요. 아마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아요.”그녀의 말에 우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솔직함과 순수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그게 바로, 당신이 가진 힘
아침 햇살이 부엌 창을 통해 들어왔다. 냄비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향긋한 계란 냄새가 방 안에 번졌다. 수연은 조심스럽게 국자를 들고 국을 휘젓고 있었다.“이 정도면 되려나…”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맛을 보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간을 맞추는 손놀림, 불 조절하는 감각.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거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우혁은 부엌에서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닷속에서 죽어가던 여자가, 지금은 앞치마를 두른 채 국을 끓이고 있었
오피스텔 문이 닫히자 적막이 방 안을 채웠다. 바다 소리가 창 너머로 아득히 스며들었고, 천장 조명은 은은하게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수연은 현관에 서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낯선 가구,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 벽에 걸린 시계.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전혀 기억에 없는 풍경이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세제와 커피, 그리고 희미한 종이 냄새.“편하게 앉으세요.”우혁이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거실로 걸어 들어갔지만, 수연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밤은 깊었고, 속초의 바다는 검은 유리처럼 번들거렸다. 파도는 고요하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잔잔했다. 마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겠다는 듯, 꾸준히 모래를 때리며 부서지고 있었다.차수연은 바다 앞에 홀로 서 있었다.병원을 나온 지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얀 가운을 벗어 던질 때까지만 해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소리만이 메아리쳤다.삐~심장 모니터가 뱉어낸 냉정한 평탄선.“타임 오브 데스(Time of de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