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3
By:  데이지Updated jus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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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라져도, 손끝의 본능은 잊지 않는다." 조작된 차트, 덫에 걸린 수술로 모든 걸 잃은 천재 의사 차수연. 절망 끝에 뛰어든 바다에서 그녀를 구한 건, 선천적 심장 질환을 가진 남자 강우혁이었습니다. 기억을 잃고 아이처럼 변해버린 수연, 하지만 심장이 멎은 그를 마주한 순간 그녀의 손은 본능적으로 수술을 시작합니다. 그녀를 무너뜨렸던 악인들이 다시 다가오고, 수연은 지키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메스를 듭니다. 죽음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심장을 건 격렬한 운명의 메디컬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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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바다가 삼켜버린 이름

밤은 깊었고, 속초의 바다는 검은 유리처럼 번들거렸다. 

파도는 고요하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잔잔했다. 

마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겠다는 듯, 꾸준히 모래를 때리며 부서지고 있었다.

차수연은 바다 앞에 홀로 서 있었다.

병원을 나온 지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얀 가운을 벗어 던질 때까지만 해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삐~

심장 모니터가 뱉어낸 냉정한 평탄선.

“타임 오브 데스(Time of death)…” 동료의 굳은 목소리.

그 순간 수연의 가슴은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죽였어.”

목구멍 깊숙이 박혀 있던 고백이 파도에 섞여 사라졌다.

차트는 거짓말이었다. 수술 전 환자의 상태와 실제 상태는 달랐다. 

협착 부위도, 수치도, 과거 이력도 하나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메스를 쥔 건 그녀였으니까. 

천재라 불렸던 의사가, 단 한 번의 실패로 사람을 보냈다.

병원에서 쏟아지던 시선들이 떠올랐다. 

동정과 경멸, 그리고 은근한 조롱.

‘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어.’

‘한 번의 실패로 끝이다.’

그 속삭임들이 귓가를 찢듯 울렸다.

수연은 천천히, 파도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발목이 젖고, 종아리까지 파도가 차올랐다. 

물은 차갑고 잔인했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차가움이 위안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고통도, 이 죄책감도, 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허리, 가슴, 어깨. 파도가 몸을 삼켜갔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바닷물이 입술에 닿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 순간..

“거기서 뭐 하는 겁니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그러나 수연의 귀에는 희미하게만 맺혔다. 

그녀는 그대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

찬 물이 온몸을 덮쳤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팔은 허공을 긁듯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점점 힘이 빠졌다. 어둠은 깊고, 바다는 끝이 없었다.

 손끝은 차갑고, 발은 바닥을 잃었다. 산소는 사라지고, 시야는 검게 깔렸다.

‘죽어도… 괜찮아.’

의식은 그렇게 사라지려 했다.

그러나, 거센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또 다른 온기.  강한 팔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바닷속에서 그녀의 몸을 끌어올리는 힘.  누군가 거침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버텨요!”

남자의 목소리가 물속에서 뭉개져 들렸다.

수연의 몸은 무력하게 늘어졌다. 

그녀의 머리칼이 물에 흩날리며 얼굴을 가렸다. 

남자는 그녀의 팔을 어깨에 걸치고, 발로 바닷속을 힘껏 찼다. 

심장이 갈라질 듯 쿵쾅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겨우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은 감겨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안 돼…”

그는 입술을 닫고, 곧바로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차가운 바닷물이 그녀의 입에서 쏟아졌다. 

가슴 압박을 번갈아가며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숨이 붙지 않았다.

“버텨!”

그는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숨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가슴을 압박했다. 몇 차례 더 반복하자, 

아주 약하게, 거의 미약하게,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두면… 안 돼.”

바닷가에서 병원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를 등에 업고, 

젖은 몸으로 어둠 속을 달렸다. 모래가 다리에 달라붙고,  차가운 바람이 몸을 갈랐다. 

그러나 등에 업힌 그녀의 무게는 결코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다.

“조금만 더… 버텨요.”

숨을 몰아쉬며 달렸다.

밤거리를 지나, 병원 불빛이 보였다.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자, 간호사들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환자! 익수입니다! 의식 없음!”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스트레처가 도착하고, 의료진이 달려들었다. 

그녀의 젖은 몸이 들려 올려졌다. 

심전도 모니터가 붙고, 산소 마스크가 씌워졌다. 

의료진의 빠른 목소리가 교차했다.

“맥박 약해요!”

“기도 확보!”

“에피네프린 준비!”

그는 응급실 문 앞에서 멈춰섰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그저 유리창 너머로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후 3일 동안,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다.

새하얀 병실, 커튼 너머로 비치는 아침 햇살. 

그녀는 산소 줄에 의지한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녀 곁에는 언제나 한 남자가 있었다.

바닷속에서 그녀를 끌어낸 그 남자. 강우혁.

그는 침대 곁에 앉아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이 여자를 두고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수연의 눈꺼풀이 아주 느리게 떨렸다. 

긴 잠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시야가 열렸다. 

천장의 희미한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의식 돌아옵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우혁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신이 드세요?”

그가 다급히 물었다.

수연은 흐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목이 말라, 입술이 잘 열리지 않았다. 

겨우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여기가… 어디죠?”

“병원이에요. 괜찮으세요?”

“…….”

그녀는 시선을 흔들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빈 듯했다.

“이름…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간호사가 물었다.

수연은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병실 안 공기가 순간 멎었다.

우혁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분명 몇 일 전, 바닷속에서 죽음과 맞닿아 있던 여자인데

지금은 마치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곁에 서서, 흔들리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인가.”

그리고, 두 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흰 커튼이 병실을 조용히 가르고 있었다. 

심전도 모니터가 미약한 리듬을 기록하고 있었고,  산소 줄이 숨결에 맞춰 오르내렸다.

 세 번째 아침, 닫혀 있던 그녀의 눈이 열렸다.

차수연. 그러나 이제는 그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죠…?”

낯선 천장을 바라본 채 그녀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간호사들이 안도와 놀람이 섞인 표정으로 달려왔다. 

활력징후를 체크하는 손길이 분주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붙은 모든 기계들이 마치 남의 것처럼 낯설었다.

“이름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그녀는 오래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이 안 나요… 아무것도요.”

순간,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문 앞에서 지켜보던 남자가 발걸음을 옮겼다. 

젖은 구두로 달려와 그녀를 병원까지 업고 왔던 사람, 강우혁이었다. 

그동안 그는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한 얼굴이었다.

“괜찮으세요?”

낮은 목소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익숙한 따뜻함이 있었다.

“누구세요…?”

“그날 밤, 바다에서 당신을 끌어낸 사람입니다.”

그의 대답은 짧았지만 묵직했다.

수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억은 텅 비어 있었고, 단지 가슴 한쪽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움찔거렸다.

병원 회진이 끝난 뒤, 

의사들은 그녀의 상태에 대해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뇌 손상은 없습니다. 신체적으로도 큰 문제는 없어요. 

다만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스로 기억을 차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시적 기억 상실,  혹은 심리적 방어기제일 수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들으며 수연은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이름도, 집도, 직업도, 가족도.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때, 우혁이 나섰다.

“그럼… 당분간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의사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환자가 안정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혼자 두기보다는 곁에서 지켜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병실 안의 시선이 잠시 우혁에게 향했다. 

그는 조용히 숨을 고른 뒤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돌보겠습니다.”

수연은 놀란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저를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혼자 두는 건 위험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강압적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병원을 나섰다.

차창 너머로 바닷바람이 스며들었고, 도로 위 가로등 불빛이 

차례대로 흘러갔다. 수연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폐만 끼치는 거 아닌가요?”

우혁은 잠시 시선을 창밖으로 두었다가 대답했다.

“당신은 바다에서 혼자 죽어가던 사람이에요. 

제가 본 건 그뿐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그게 전부입니다.”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도착한 곳은 속초 시내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바다와 가까워 창문을 열면 파도 소리가 스며드는 곳. 

실내는 정갈했고, 군더더기 없는 가구들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여기가… 집이에요?”

“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면 됩니다.”

그는 짐짓 무심하게 말하며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를 꺼냈다. 

그녀의 손에 건네며 덧붙였다.

“불편하면 말씀하세요.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수연은 컵을 잡으며 손끝이 떨렸다. 

낯선 곳, 낯선 사람. 그러나 바닷속에서 자신을 끌어안던 

그 팔의 힘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다.

“고마워요.”

짧은 말 한마디가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우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오랫동안 밤을 새운 탓인지 눈가에 피곤이 묻어 있었지만,  그 눈빛은 단단했다.

“…당신이 살아난 게, 다행입니다.”

그 말에 수연은 고개를 숙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날 밤, 낯선 공간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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