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의 옷이 모두 더러워졌고 책가방의 끈도 그들에게 잡아당겨서 끊어졌다.그래서 그녀는 언니가 알면 속상할까 봐 월세방으로 돌아가지 못했다.언니는 고등학교에 다녀서 공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에 돈도 별로 없었다.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받은 보상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등이 나눠 가졌고 두 자매에게 조금만 남겨주었다.언니는 돈을 절약해서 사용해야 두 자매가 대학까지 다닐 수 있다고 하였다.그래서 하예정은 언니가 망가진 책가방을 보면 꼭 돈을 써서 새 가방을 사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감히 집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 심효진이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심효진의 어머니인 나은서는 그때 많이 놀랐고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하예정을 안아주고 위로해 주었다. 언니가 발견하지 못하게 책가방의 끈을 꼭 수선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하예정의 더러워진 옷도 깨끗이 빨아주었고 마르면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게 하였다.나은서는 하예정의 교복 사이즈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이에 하예정은 예전의 교복이 작아서 언니의 교복을 주워 입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언니는 다섯 살 위여서 옷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나은서는 옷을 만들 줄 알고 전기 재봉틀도 사용할 줄 알아서 하예정의 사이즈가 맞지 않는 교복을 몸에 맞게 수선해 주었다.며칠 지난 일요일에 하예진이 여동생을 데리고 사과 한 봉지를 사서 방문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나은서에게 있어서 하예정은 자기 딸의 동창이고 옷을 조금 수선해 주는 것은 그냥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예정 자매에게 있어서 나은서는 그들에게 따뜻함을 주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두 자매는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따뜻하고 차가운 인정과 친척의 무정함을 뼈저리게 느낀 후 나은서가 한 사소한 일은 겨울날의 따뜻한 햇살처럼 두 자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엄마가 키운 닭도 계란을
“엄마, 지금 바로 예정이에게 갖다주실 거예요?”심효진은 사과를 먹으면서 물었다.“당연히 지금 보내야지. 넌 저녁 먹고 갈 거야? 내가 예정이에게 물건을 보내고 돌아온 후 바로 저녁 준비할게.”나은서는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면서 딸에게 물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을 불렀다.“여보, 같이 가요. 이따가 물건을 위층으로 옮기는 것을 도와줘야죠.“심범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당신 안 불러도 따라가려고 했어.”그는 조수석의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그러고 나서 딸과 사위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나서 떠났다.소정남은 집 앞의 계단에 서서 장인과 장모가 하예정에게 많은 물건을 준비했고 또 다급히 가져다주는 모습을 보고 마당의 문을 닫고 걸어 나오는 아내에게 말했다.“하예정에게 준 물건은 당시 우리 집에 보내준 것과 비슷한 것 같네.”“난 예정이와 십여 년 동안 친하게 지냈어. 엄마, 아빠도 예정이를 보고 자라서 벌써 딸로 여겼지. 지금 예정이가 임신했으니 엄마도 기뻐서 당연히 뭐 좀 챙겨줘야지.”심효진은 부모님의 행동은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좀 휴식하자.”소정남은 아내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출근하려면 가. 난 좀 자고 나서 가게로 갈게.”“너랑 같이 자고 싶어. 네가 잠들면 회사로 갈게. 전씨 그룹은 전태윤의 것인데 쟤가 출근하지 않고 내가 가서 소처럼 일해줘야 하다니. 하, 전생에 내가 쟤한테 빚을 졌나 봐.”소정남은 불만이 있어도 결국은 다시 회사에 돌아가서 출근했다....관성 공항.성소현은 가방을 팔에 걸고 예준하와 깍지를 끼면서 걸어가고 있었다예준하는 그녀의 캐리어를 끌어주었다.사실 그는 성소현과 급히 관성에 올 필요가 없었다. 친조카가 막 백일 잔치를 치렀으니까. 하지만 성소현은 하예정이 임신한 사실을 듣고 마음이 조급해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예준하도 자연스럽게 그녀와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두 사람은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성소현의 기분이 현저하게 좋아 보였다. 예준하는 그녀가 기분이 좋은 것
“소현 씨.”앞에서 귀에 익은 소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래 기분이 좋은 성소현과 예준하는 소지훈의 건방지게 웃는 얼굴을 마주 보기 싫어서 손오공처럼 변신해서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소지훈은 너무 건방졌다. 성소현 옆에 예준하가 있고 두 사람이 깍지를 끼고 친밀하게 있는 모습을 봤으면서 여전히 눈꼴 사나운 사랑의 훼방꾼으로 되려고 하였다.예준하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리 성소현과 같이 관성에 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소현을 홀로 보냈다면 소지훈을 따라서 갔을지도 모른다. 소지훈은 분명히 성소현에게 진심이 아니면서 이렇게 매달리다 못해 매일 선물을 사다 줄 뿐만 아니라 성소현이 관성을 떠나면 공항까지 배웅해 주고 마중도 나와서 어찌 보면 자기보다 더 부지런했다.“소현 씨, 저 여기서 30분 기다렸는데 드디어 왔네요. 벌써 가신 줄 알았어요.”소지훈은 검은 선글라스와 검은 마스크를 썼고 올블랙을 입어서 자신의 모습을 빈틈없이 가려주었다. 그리고 평소에 잘 나타나지 않아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예전 같았으면 성소현과 예준하도 소지훈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소지훈에게 한동안 ‘구애’를 당한 후 성소현은 쉽게 소지훈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예준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소지훈을 연적으로 간주했기에 소지훈의 목소리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소지훈이 입만 열면 예준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고 잘생긴 얼굴도 숯처럼 검게 변한다.도대체 어느 놈이 자기에게 소지훈 같은 ‘연적’을 심어둔 거야?!다른 사람이라면 예준하는 벌써 연적을 때려눕혔다. 하지만 상대가 소지훈이어서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소지훈의 미움을 사면 도리어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억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예준하는 형에게 불평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본인은 하늘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고 감정도 진지하게 대했는데 하늘이 왜 그에게 이런 사랑의 시련을 줬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이전에 예준하는 전태윤이 초고속 결혼을
“준하 씨가 제 차를 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니까 상관없어요. 어차피 저는 소현 씨를 마중하기 위해 나온 것이니까요. 겸사겸사 준하 씨를 챙기려고 했는데 싫다면 알아서 가시죠.”소지훈은 늘 웃으면서 말했지만, 예준하의 귀에는 말마다 가시가 있어서 가슴이 답답했다.소지훈은 성소현에게 물었다.“준하 씨가 들고 있는 캐리어가 소현 씨 거죠? 여자들이 핑크색을 좋아하니까 핑크색 캐리어가 소현 씨 거 맞죠?”그는 말하면서 예준하의 손에서 성소현의 캐리어를 가져와서 차 뒤로 끌고 갔다. 그는 캐리어를 가볍게 들어서 트렁크에 밀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 웃으면서 성소현에게 말했다.“관성 호텔에서 자리를 예약했고 음식도 주문해 놨으니 가서 바로 식사하면 돼요.”“식사 후에 집에 돌아가든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든지 제가 사람을 보내서 곁에 있어 줄 게요.” 다시 말하면, 그는 성소현과 함께 있지 않겠다는 뜻이다.소지훈은 성소현을 마중해서 목적지에 데려다준 후 바로 튀려고 하였다.그의 아버지는 전태윤이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그렇지 못했다고 한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그가 아이를 낳지 못한 것처럼. 아, 그는 여자가 아니니까 확실히 낳지 못한다. 하예정의 임신 사실은 가까운 지인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씨 가문의 가주에게 있어서 비밀은 아니다. 그는 귀를 움직이기만 해도 많은 소식을 들을 수 있다.“지훈 씨, 고마워요. 저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성소현은 소지훈이 직접 나왔으니 그녀가 아무리 거절해도 결국은 그의 차를 타고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고 바로 예준하를 끌고 소지훈의 차에 올라탔다. 소지훈은 웃으면서 차 문을 닫아주었다. 그는 돌아서 다른 쪽으로 차에 올라타려고 했는데 뭔가를 밟은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숙여 보니 한 열쇠고리였다. 열쇠고리에 작은 거울 같은 것이 달려 있는데 1인치의 사진이 있다. 소지훈은 그 열쇠고리를 주워서 먼지를 깨끗하게 닦아 내자 작은 사
소지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또 웃으면서 말했다.“이해할 수 있어요. 예정 씨가 태준 씨와 결혼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임신을 못 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이제 임신했으니 마음을 놓을 수 있고 다들 기뻐해 주는 것도 인지상정이죠.”이에 예준하는 한마디 건넸다.“지훈 씨가 이후에 아버지가 된다면 많은 사람이 기뻐해 줄 겁니다.”소지훈에게 감정이 없는 병이 있어서 그의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여인을 만나지 못하면 환관처럼 한평생 진정한 남자로 살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 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예준하의 이 말은 소지훈의 정곡을 찔렀지만, 소지훈은 이미 내려놓아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이런 병에 걸려도 죽지 않으니 평생 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그는 웃으면서 말했다.“제가 아버지로 될 기회가 있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집에 있는 영감이 가장 좋아하실걸요.”그가 감정이 없는 병에 걸리는 것을 모르고 있을 때, 부모님은 그의 결혼을 걱정하셨지만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이런 병에 걸린 것을 아신 후 부모님은 완전히 미쳐버렸다.그들은 무슨 여자이든 모두 그의 앞에 데려다 놓았다. 그가 정상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여자가 나타나기를 바랐다.아쉽게도 부모님이 찾아 주신 여자에 대해 그는 추호의 반응도 없었다.“참, 당시 전씨 할머니께서 한 점쟁이를 청해서 태윤 씨와 예정 씨의 사주를 봐줬는데 예정 씨는 가을에 임신한다고 했죠?”소지훈은 문득 사주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성소현은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녀는 하예정과 사촌 자매 관계라 하예정은 평소에 늘 그녀에게 하소연해서 가장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일은 전씨 할머니께서 예정이가 매일 임신에 대해 고민하지 말고 위로해 주기 위해서 꾸민 일이에요. 전씨 할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예정이는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걸렸을걸요. 예정이는 강해 보이지만 무너질 때도 있거든요.”성소현은 이어서 웃으면서 말했다.“근데 공교롭게도 가을이
“그건 그 사람들이 안목이 없는 거고. 눈이 장식품이나 마찬가지야.”예준하는 성소현의 손을 잡고 함께 성씨 가문의 별장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사람들이 안목이 없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가 수많은 연적이 생기게 되면 정말 질투 나서 쓰러질지도 몰라.”성소현은 히죽히죽 웃었다.예준하의 앞에서 성소현은 편안하고 솔직하게 지냈고 예준하도 그런 성소현의 진실된 성격이 좋았다.예준하 커플을 집으로 데려다준 소지훈은 성씨 가문을 떠나 바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때마침 시어머니에게 불려 온 심효진을 만났다.심효진의 경호원은 소지훈의 차를 보더니 급히 차를 도로 옆으로 세워 소지훈의 차를 먼저 지나가게 했다.소지훈과 심효진은 동시에 차창 버튼을 내리눌렀다.“오빠.”심효진이 인사했다.소지훈은 따뜻하게 대답했다.“그래. 왜 지금 집에 가는 거야?”심효진이 다시 서점에 출근하게 된 후로 그녀는 늘 저녁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엄마가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전화하셔서 먼저 왔어요.”소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얼른 들어 가봐. 무슨 일이신지.”소지훈은 창문을 닫으며 왼편으로 차를 몰았다.그의 차가 떠난 후에야 심효진의 경호원은 다시 차를 몰고 오른쪽으로 향했다.소씨 가문 사람은 모두 모여 살았다.이 지역에서 사는 주민들은 모두 소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다.소정남과 소지훈은 사촌지간이다. 소정남의 집은 소씨 가문의 권력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 겨우 몇 분밖에 안 되는 위치에 있었다. 경호원은 고풍과 현대화가 서로 어우러진 큰 별장 입구에서 차를 멈췄다.“들어갈 필요 없어요. 좀 있으면 또 나갈 가능성이 크니까.”시어머니가 그녀에게 전화해서 집으로 오라고 한 목적은 아마도 그녀가 소씨 가문을 대표하여 하예정에게 임신 선물을 보내려 하기 위함일 것이다.심효진과 하예정은 절친이었기 때문에 편리했다.“알겠습니다.”경호원은 공손하게 대답했다.심효진은 혼자 차에서 내려 큰 별장으로 들어갔다.별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여느
영양사 최서우는 밖에서 먹는 사람들의 자유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고모에 의해 집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의 식단을 책임진 사람이었기에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의 식단만 책임졌을 뿐 오지랖 넓게 집 밖의 사람들의 식단에는 관여하지 않았다.지금 최서우의 중점 관심 대상은 바로 사촌 동생의 아내였다.소정남은 같은 세대 중 가장 먼저 결혼한 사람이라 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다음 세대의 첫 후대었다. 하여 최민주뿐만 아니라 소씨 가문의 사람들 전부 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를 매우 중히 여겼다.심효진이 건강하고 똑똑한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최서우가 그녀에게 만들어준 임산부 식단은 영양이 풍부하고 종류들도 다양했다. 하지만 심효진이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식단이 반복되게 올려질 뿐 바뀌지는 않았다.다행히 심효진은 편식하지 않는 먹보라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그동안 별일 없이 잘 지내왔다.발소리가 들려오자 최민주와 최서우는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바라보았다.“효진아.”며느리가 돌아온 모습을 보자 최민주는 서둘러 손에 든 선물들을 내려놓고 심효진에게 다가가면서 웃었다.“더운 날 오느라 고생 많았지?”“차에 에어컨이 있어서 시원하고 괜찮았어요.”심효진은 웃으며 그 선물들을 바라보았고 또 최서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언니.”최서우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효진도 최서우의 침묵에 익숙했다.“내가 선물을 준비해서 예정에게 직접 주려고 했는데 너도 분명 예정이에게 임신 선물 줄 것 같아서 차라리 너에게 함께 보내는 게 낫겠다 싶어서 불렀어.”최민주는 며느리에게 목이 마르냐고 관심했다.“안 말라요. 어머님, 고마워요. 이렇게 꼼꼼히 생각해주셔서.”심효진이 시어머니 곁으로 걸어오면서 곁에 있던 선물들을 힐끗 보았다. 시어머니께서 준비하신 선물들은 모두 임신부에게 적합한 선물들이었고 최서우가 곁에서 조언도 해주었기에 심효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효진 씨 매운 김치 비빔국수 드셨어요?”최서우가 갑자기 심효진에게 물었다.심효진은
최서우는 최민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더니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어쨌든 고모의 며느리였기 때문이다.배 속의 아기도 소씨 가문의 후대이고 최서우는 단지 영양로서 조언해 줄 뿐이다.최민주도 사실 뭐라고 잔소리할 것 없었다. 그 김치는 사돈집에서 직접 만든 것이고 게다가 며느리도 날마다 친정집으로 가서 먹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두 번 먹들뿐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심효진은 말을 마친 뒤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심효진이 자리를 뜨자 최서우는 조용히 말했다.“고모, 효진 씨가 제가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절인 음식은 정말로 많이 먹으면 안 돼요. 일반적인 사람들도 적게 먹어야 하는걸요.”“우리 두 집안 식탁에서도 그런 음식이 나타난 적도 없는데, 효진 씨는 너무 즐겨 먹는 것 같네요.”“심지어 친정집에 가서 먹다니, 제가 만들어준 식단이 입에 안 맞는 거 아닐까요? 저도 고모님께서 도와달라고 하셔서 왔거든요. 고모를 위해서, 정남이를 위해서 온 거예요.”최민주는 부드럽게 조카에게 말을 건넸다.“임신한 사람은 입맛이 달라지거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먹어야 해. 네가 효진이에게 짜준 식단도 너무 좋아. 영양도 풍부하고 고기와 야채도 적당히 들어있어서 효진이가 살도 잘 쪘잖아. 안색도 많이 좋아지고.”“20년 넘게 친정집의 음식을 먹으면서 자라서 친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이 더 익숙할 거야. 가끔 친정집의 밥을 찾는 것도 이해해 주어야 해. 너도 마음에 담아 두지 마. 효진이는 널 싫어하거나 속셈이 많은 사람이 아니야.”“그렇다고 효진이를 친정집으로 가지 못하게 할 순 없잖아.”“많이 먹지도 못했을 거야. 먹는 것도 한두 번일 뿐이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의사 선생님께서도 검사를 보시더니 배 속의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란다고 말씀하셨어. 효진이가 잘 먹는 것도 복이야.”최민주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지금 절친인 예정이도 임신 중이고 하니 전씨 가문에서도 영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