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건강도 점점 더 나빠지셔. 매달 의사의 진료를 받으셔야 하고, 주사 맞고 약도 드셔야 하기에 돈이 많이 들어.”정지훈은 뻔뻔스럽게 그들이 이곳에 온 진정한 의도를 이윤미에게 말했다.“맞아, 나와 형은 수입이 높지 않고 또 가족도 부양해야 해.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지출을 아빠가 내셨어, 네가 돈을 벌고 나서 너도 돈을 좀 가져왔었지. 지금은 아빠가...엄마는 수입이 없으시고 너는 또 우리 집을 떠났어.”.“나와 형이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기도 어려운데 엄마를 부양할 돈이 어디 있겠어? 엄마는 주사를 맞고 약도 드셔야 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우리도 부담하기 힘들어.”이윤미는 김현미를 바라보았다.김현미는 이윤미의 눈길을 피하며 그녀를 마주 보지 못했다.이윤미에게 돈을 요구하러 온 것은 두 아들의 뜻이었다.사실 김현미는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윤미가 그들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릴 때 이윤미가 그들의 집으로 온 후 잘 대해주지 않았었다. 예전에 이윤미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미워도 돈을 벌면 생활비를 조금 주었다.나중에 진실이 드러나고 이윤미는 자신이 어릴 때 학대당한 이유를 알게 된 후 그들 가족에 대한 정이 사라졌다.남은 것은 원망과 미움뿐이었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간 후 김현미는 그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윤미가 점점 강해지고 이은화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윤미의 강세는 이윤정의 약세를 예시한다.그렇게 된다면 이윤정은 이씨 가문에서의 삶이 점점 힘들어진다.이윤정이 다시는 가주 자리에 앉을 기회도 없을 것이다.이 일을 알게 된 김현미는 마음속으로 이윤미를 원망하고 미워했으며 그녀가 자신의 딸을 열세에 몰리게 했다고 생각했다.오늘날 이윤정이 사고로 추락해 죽은 것도 그들과 관련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이윤정을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흥분해서 실수로 추락해 죽지 않았을 것이다.두 아들은 이윤정이 죽었고 그들의 희망도 사라졌기에 이윤미에게 어떻게든 돈을 달라고 해야
“비켜, 아니면 경비원 불러 끌어내라고 할 거야.”이윤미는 엄숙하게 말했다.‘나한테 기대어 피를 빨아먹으려고, 어림도 없어!’이윤미는 그 집안의 자식이 아닌 것은 물론 그 집안의 자식이었다고 하여도 그들이 마음대로 피를 빨아 먹을 수 있는 흡혈귀가 되고 싶지 않았다.“윤미야, 이렇게 무정하게 굴면 안 되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 엄마는 너의 양모이고 너를 키워줬어, 너와 이씨 가문에서는 우리 집안에 양육비를 줘야 해.”이윤미는 그들에게 되물었다.“우리 이씨 가문에서 윤정이를 키워줬는데 당신들은 우리 가문에 양육비를 준 적 있어? 우리 가문에서 윤정이에게 심혈을 더 많이 기울였고, 쓴 돈도 더 많아. 두 집안끼리 애를 키우는 데 쓴 돈을 정산한다면 당신들이 되려 큰돈을 보태서 돌려줘야 할 거야.”“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 나와 윤정이를 바꾼 건 당신들의 아빠야. 당신들의 아빠가 저지른 잘못인데 누구를 원망하겠어? 지나친 욕심을 가진 당신들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지.”그들은 이윤정이 이씨 가문 후계자가 되어 이씨 가문을 물려받으면 진실을 알려줌으로써 그녀를 통제해 이씨 가문으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얻기를 바랐다.그들은 바둑을 아주 크게 두었다.이윤미는 이은화가 총명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 전임 집사의 계략에 당했다.이윤미는 기가 막혔다.‘윤정이는 이씨 가문 사람들과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엄마는 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셋 셀 테니 가지 않으면 경비원 부를 거야.”말을 마친 이윤미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윤미야, 너에게 폐를 끼쳐서 미안해.”김현미는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두 아들이 꼭 가야 한다고 했다. 이제 그들도 단념할 것이다.이윤미가 십 대에 접어들면서 그들은 더 이상 그녀를 협박하지 못했다.예전에도 이윤미를 협박하지 못했던 그들이었기에 지금은 더 할 수가 없었다.이윤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잘못이었다. 그들이 아이를 바꿔 쳐서 이윤미가 그 집
이은화는 가끔 정윤혁에게 물건을 보내 이윤미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예전에 이씨 가문 대저택에 있을 때 정윤혁은 이은화의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이은화는 무조건 도움을 줄 것이다.그래서 고민을 거듭한 그들은 이윤미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다.그러나 그들은 이윤미에게 잘해주지 않았다. 이윤미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목숨이 단단하고 운이 좋았기 때문이고 또 이웃집 할머니와 삼촌들이 관심해 줬기에 그녀는 굶어 죽지 않았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갔을 때 어린 시절 그녀를 돌봐줬던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하지만 할머니의 자녀들이 살아 있었기에 이윤미는 그들에게 큰 금액의 돈을 주었다.그리고 자신의 명의 아래 있는 회사에서 그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주었다.어릴 때 그녀를 지켜주고 돌봐주며 먹을 것을 줬던 그들의 어머니에게 보답한 셈이었다.“아무리 그래도 키워줬잖아요! 엄마는 지금 연세도 있으시고 돈도 없는데. 윤미는 돈도 많으면서 일전 한 푼도 주려고 하지 않아요.”큰오빠인 정지훈은 불만을 터뜨렸다.작은오빠인 정현호도 불만을 터뜨리며 말했다.“윤미는 엄마의 친딸이 아니라서 주지 않는다고 해요. 그러나 윤정은 우리가 가족이란걸 알면서 우리를 만나러 오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돈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에게 일자리도 마련해주지 않았어요.”“우리에게 편안하고 수입이 높은 일자리를 마련해 줬더라면 형과 나도 매일 삼시세끼를 위해 이렇게 뛰어다니며 고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김현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윤정이는 어릴 때부터 이씨 가문에서 호의호식하며 자랐어. 줄곧 자신이 후계자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우리가 진짜 가족이란 걸 알았어. 이 사실을 윤정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야.”“이 가주는 윤정이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했어. 그래서 윤정이를 둘째 딸로 받아들였지. 윤정이는 이 가주에게 잘 보이기도 바쁠 텐데 언제 우리까지 돌볼 겨를이 있겠어?”“이젠 윤정이 유골함을 가지고 돌아가자.”자신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이윤미는 창문으로 내려다보았다.김현미와 정 씨 형제가 떠나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려 책상 앞에 다가가 앉았다.이윤미는 우선 방윤림에게 어머니가 멀리 여행을 떠난 후 아무 행동도 하지 말라고 문자를 했다.하예진의 말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가 파놓은 함정에 빠질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평상시에 이은화는 먼 길을 떠나도 가족들과 어디 가서 뭐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이은화가 지난번에 관성에 갔을 때 이윤미에게 회사를 잘 관리하라고 했다. 그것은 전씨 가문에서 보내온 청첩장 때문이었고 그들은 청첩장을 모두 보았기에 알고 있었다.정태윤의 결혼식은 공개적이고 투명하기에 숨길 필요가 없었다. 이은화는 결혼식에 참가하러 가기 전 그녀에게 회사 일을 당부했다.이은화는 이번에 여행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오래된 지인을 만나러 간다고 말해줬다.그녀는 어머니가 자신을 인정하고 신뢰한다고만 생각했다.이은화는 많은 일들을 겪은 후 그들이 모녀 사이이기에 친딸인 이윤미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윤미는 이은화가 자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다.이은화가 의심이 많고 마음이 깊다는 것을 간과했다.‘나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는 것일까?’모녀 사이에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방윤림에게 문자를 보낸 후 이윤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커피잔을 들고 일어나 커피를 끓이려고 다용도실로 갔다.어제저녁 그녀는 잠을 설쳤다.방금 하예진과 커피를 마셨지만 여전히 부족했다.그녀는 커피 한잔을 더 마셔야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따가 회의하러 가야 하고 점심에는 식사 자리도 있다.그녀의 일정은 꽉 차 있었다.이은화가 회사에 돌아와야만 그녀는 비로소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일들이 그녀에게 몰렸다.회사의 몇몇 원로들은 여전히 그녀를 인정하지 않고 때때로 그녀에게 트집을 잡으며 함정을 팠다. 이윤미는 매일 회사에 돌아오면 전쟁이라도 하듯 매사에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따르릉...”내선 전화가 울렸다.이윤미는 다용도실에서
이윤미의 목소리가 다용도실에서 들려왔다.“아직 업무 전이라 내가 직접 했어.”정일범이 그녀에게 말했다.“누군가 너의 커피에 독이라도 탈 까봐 두려운 거지.”“나는 비서가 커피에 독을 타는 것이 두렵지 않지만, 오빠가 나에게 독을 탈 까봐 두려워.”이윤미의 말을 들은 정일범은 안색이 어두워졌다.정일범은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너의 친오빠야, 왜 너에게 독을 타겠어?”비록 정일범은 그의 동생인 이윤미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의 털끝 하나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적어도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그녀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윤미가 그 자리를 물려받아 이씨 가문의 가주가 된다면 그녀를 해치려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윤미가 그에게 손을 쓰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인 것이다.이윤미는 다용도실에서 가볍게 웃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일범이 한참 동안 기다린 후에야 이윤미가 다용도실에서 나왔다.커피 두 잔을 손에 들고나온 이윤미는 소파 앞에 다가가 한잔을 정일범 앞에 놓았다.그리고 정일범 건너편에 앉았다.그녀는 건너편에 앉은 정일범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녀가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이 싫었던 정일범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기분이 언짢은듯 말했다.“왜 그렇게 오빠를 쳐다보는데? 오빠를 몰라보기라도 한 거야?”“응, 모르겠어, 오빠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이윤미는 거침없이 말했다.“어젯밤에 형수님에게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형수님에게 감정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오빠랑 애를 낳아 키운 오빠의 아내야, 오빠랑 십몇 년을 부부로 살면서 오빠한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오빠는 밖에서 여자를 만나 외도하면서 잘못을 저질러도 형수님은 자녀를 위해 참고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어. 그러나 오빠는 그런 형수님을 어떻게 대했는데? 나는 오빠의 동생이지만 여자이기도 해, 여자로서 오빠가 하는 걸 보면 진짜 한심해.”정일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동생의 말을 들은 정일범은 할 말이
“오빠!”이윤미는 엄숙하게 말했다.“만약 오빠가 윤정이와 바람피우지 않고 그런 일을 하지만 않았다면 형수님이 윤정의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데려가라고 했겠어?”“그리고 형수님이 윤정의 가족들을 부른 건 엄마의 뜻이었어, 형수님을 원망하지 말고, 배짱이 있으면 엄마한테 따져봐.”“윤정이가 죽으니 마음 아파? 그래, 오빠들 마음속에 동생은 오직 윤정이뿐이었지.윤정이만 이뻐했으니깐. 나 까짓거 친동생이 뭐라고?”“하지만 윤정이는 오빠들의 동생이 아니야. 형수님이야말로 오빠랑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야. 오빠와 형수님 사이에는 성장 중인 자녀들도 있어. 형수님을 그렇게 대하면, 형수님과 자녀들한테 미안하지 않아?”“엄마는 외부 사람들이 윤정의 죽음을 초래한 사람이 오빠라는 것을 모르게 했어,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자신이 잘못을 생각해 봐. 오빠가 윤정이와 외도하지만 않았어도 형수가 따지러 갔겠어? 그러면 윤정이도 죽지 않았겠지. 그래서 윤정이는 오빠가 죽인 거야.”“왜? 윤정이를 대신해 복수라도 해주고 싶어? 진짜 복수하고 싶다면 윤정이가 추락사 당한 곳으로 가서 뛰어내려, 그러면 윤정이 대신 복수할 수 있어. 윤정이를 죽인 사람은 오빠니까.”“나는 오빠들이 윤정이를 이뻐한다는 것은 알아. 윤정이가 무일푼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사는 것을 마음이 아파 볼 수가 없었겠지. 하지만 몰래 윤정이를 도와줬다면 엄마와 형수님이 알게 되더라도 기껏해야 야단을 치시고 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 아니야?”정일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미야.”정일범이 이윤미에게 물었다.“너의 형수가 어젯밤에 가져간 그 사진은 누가 준 거야? 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엄마 쪽 사람 아니면 너의 쪽 사람밖에 없어.”“나는 아니야. 나는 오빠 같은 바람둥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이윤미는 선을 그었다.“엄마의 비서가 찍은 사진이야. 엄마가 사진을 보고 화나서 어젯밤에 저녁도 드시지 않았어. 그 뒤로 엄마는 형수님을 불러서 사진을 건네주며 처리하
“윤미야, 내가 네 오빠야. 너처럼 오빠를 도와주지 않고 남을 도와주는 동생이 어디 있어? 설령 너의 형수라고 해도 너한테는 남 일뿐이야.”정일범은 이윤미가 자신을 돕지 않는다고 비난했다.사실 그는 이윤미에게 자신의 아내를 설득해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아이들도 다 컸는데 이혼한다니! 앞으로 밖에서 여자를 적게 만나면 될 것을!’“너도 조카들이 온전한 가족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것을 원하지 않잖아? 너의 형수한테 이혼하지 말라고 해줘, 윤이는 아직 젊은 줄 아는가 본데, 이혼하면 재혼할 수 있을 거 같아? 재혼한다 해도 늙은 영감탱이들과 결혼할 수밖에 없을 거야.”“너의 형수가 이혼하면 젊은 남자를 만날 수 있겠어? 나는 너의 형수랑 달라. 나는 사업도 성공했고 돈도 많기에 이혼해도 열여덟 살쯤 되는 젊은 여자와 다시 결혼할 수 있지만 너의 형수는 열여덟 살쯤 되는 젊은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또 아이들도 다 컸는데 무슨 이혼이야? 애들이 창피를 당하고 마음에 상처받는 것이 두렵지도 않은 건지?”정일범의 말을 들은 이윤미는 앞에 놓인 커피를 들어 올려 그에게 뿌렸다.정일범은 이윤미가 자신에게 커피를 뿌릴 줄 몰랐다.그는 아무 준비도 없이 이윤미가 뿌린 커피에 맞았다.커피가 뜨거워도 그의 피부가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커피에 얼굴을 맞은 정일범은 뜨거워서 펄쩍 뛰었다.커피는 그의 볼을 타고 내려와 화이트 셔츠와 겉옷을 적셨다.“이게 뭐 하는 짓이야?”정일범도 커피를 들어 이윤미에게 뿌리고 싶었지만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이윤미를 보고 감히 그러지 못했다.이윤미는 그의 어머니 이은화처럼 잔인해지기 시작하면 상대가 누구이던지 상관하지 않았다“그걸 말이라고, 오빠는 어쩜 그렇게 뻔뻔스러워?”이윤미는 정일범을 비난했다.“뻔뻔스럽게 나를 비난할 자격이 있어, 내가 오빠 부부를 이혼하라고 했어?”“지금 형수한테 아이들 감정을 생각하라고 하면서, 오빠는 윤정이와 바람을 피울 때 아이들을
이윤미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오빠의 그 따위 일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정일범은 그녀를 한참 매섭게 노려보다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갔다.‘동생이라면서 이 오빠는 안중에도 없어.”정일범이 다녀가자 이윤미는 화가 났다.소파에 몇 분간 앉아 있다가 일어난 이윤미는 사무실을 서성이었다.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 마신 후에야 화가 사그라지고 마음이 안정됐다.“이런 개자식!”이윤미는 정일범을 욕했다.“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랑 형수님이 이혼하지 않는다면 나는 형수님을 두 번 다시 안 볼 거야.”이런 것도 남편이라고 곁에 둘 필요가 있을까?이은화는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는지 하나같이 나빴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아마도 이은화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조윤은 이윤미를 찾아오지 않았다.친정에 돌아간 조윤은 정일범과 이혼할 것이라고 말했다.친정 부모 앞에서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조윤은 정일범이 저지른 일들을 샅샅이 폭로했다.정일범이 이윤정과 외도한 사실을 안 조윤의 친정 부모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특히 정일범이 이윤정을 위하여 그들의 딸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조윤의 친정 부모님은 참을 수가 없었다.그들은 조윤이 이혼하는 것을 찬성했다.비록 조윤의 친정은 이씨 가문보다 못하지만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잘못은 그들의 딸이 아닌 정일범이 했기 때문이다.정일범은 외도를 자주 했기에 누구였어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그 아빠에 그 아들이라고!정군호가 바람둥이라서 그가 낳은 아들도 착한 X 한 명 없었다.친정 식구들의 든든한 지지를 받은 조윤은 이 씨 대저택으로 돌아와 이은화를 찾아갔다.이은화는 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그 사람이랑 관련된 모든 물건을 가지고 가려고 했다. 분명 그가 보면 기억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이로써 그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했다.물건이 많지 않았기에 간단히 정리를 마친 이은화는 서재에서 글씨 쓰는 연습을 했다.기분이 언짢으면 그녀는 글씨 쓰는 연습을 하곤 했다. 자신이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