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진소아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할머니는 정말 재미있으신 분이시네요. 그래서 다들 그러는군요. 전씨 가문에 시집가는 여자는 모두 행복하다고. 많은 재벌집 따님이 전씨 가문에 시집가고 싶어 한대요.”전유림이 살짝 웃으며 받아넘겼다.그 말은 사실이었다.“그런데 조카딸은 이제 몇 살이에요? 아마 한 살 조금 넘었겠네요, 작년에 태어난 걸로 기억하는데. 전씨 가문에서 그 애가 태어났을 때 축하 봉투를 너무 많이 뿌려서 관성 시민 모두가 알게 되었잖아요.”평범한 사람인 그녀조차 그 소식을 들었을 정도였다. 전씨 그룹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받은 봉투가 한 달 생활비에 맞먹는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월급보다 더 많이 받았다고 했다.“네, 한 살 조금 넘었어요. 이제 걸음마를 떼긴 했는데 말은 아직 좀 서툴러요. 그래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여름방학 한 달 사이에 벌써 말을 꽤 많이 하게 되었어요. 좀 더 크면 분명 말도 잘하고 더 사랑스러울 거예요.”전하연의 이야기가 나오자 전유림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지금 조카들은 모두 학교에 가서 이제 하연이만 할머니 곁에 모시고 있어요. 하연이가 잠들면 할머니는 심심하셔서 제가 새집을 샀다고 하니까 한번 보러 오신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가 진 선생님을 보시고 오해하신 것 같더라고요. 저한테 몰래 묻더군요. 진 선생님이 제 여자 친구냐고.”진소아가 말했다.“제가 이미 해명해 드렸는데 여전히 오해하셨다고요?”“지금은 아마 믿으셨겠죠. 그래도 할머니가 진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시는 모양이던데... 보세요, 할머니는 진 선생님과 이야기하느라 저 같은 친손자는 쳐다보지도 않으시잖아요.”진소아가 피식 웃었다.“유림 씨는 할머니 친손자시니까 언제든 이야기 나누실 수 있잖아요. 저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고 어쩌다가 말이 통하니까 조금 얘기 더 나눈 것뿐이에요.”두 사람은 걸으며 진씨 진료소로 향했다.“소아야.”갑자기 임도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임도준이 손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방 하나를
진소아는 전씨 할머니의 말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아홉 명의 며느리를 모으면 드래곤볼이라도 소환할 수 있단 말인가.진소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할머니, 할머니는 오래오래 사실 거예요. 이렇게 훌륭한 손자들과 효도하는 며느리들을 두셨고 증손자까지 보셨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르신이세요. 행복한 어르신은 모두 오래 사신대요.”그때 할머니가 전유림에게 말씀하셨다.“들었냐? 진 선생님 말씀과 네가 한 말을 다시 생각해 봐. 비교가 되지? 역시 여자애들 말은 듣기가 좋구나.”전유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진소아에게 말했다.“보이시죠? 저희 할머니는 이렇게 공공연하게 편애하세요. 큰형이 하연이를 낳아 드리지 않았더라면 할머니는 더 심하게 며느님들을 편애하셨을 거예요.”진소아는 과장을 통해 전씨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들은 적이 있었다.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에게 딸이 생겼는데 온 가족이 무척 아끼고 있어서 아직 그 아이의 정면 얼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없다는 소식이었다.그 아이뿐만 아니라 전씨 가문의 다음 세대 자식들은 모두 언론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보호받고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외출하는 데 지장은 없었고 또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된 뒤에야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만약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공식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 얼굴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가령 전유림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가 전씨 가문의 도련님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진소아의 과장이 우연히 전태윤을 보지 않았다면 전유림의 신분을 알아차릴 수 없었을 정도였다.전씨 가문의 아홉 도련님 중 가장 유명한 분들은 전태윤과 전이진, 그리고 전호영 세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비교적 조용히 지내며 언론에 거론되는 일도 드물었다.전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지 않는 가문에서는 막냇동생 중에서도 대해 잘 알지 못했다.진소아가 말했다.“역시 여자애들이 더 사랑스러워요. 저도
“할머니, 이제 증손녀도 생겼으니까 더는 우리 손자들을 깎아내리지 좀 마세요.”“겨우 한 명뿐인 증손녀잖니? 나는 좀 더 많은 증손녀를 원한단다.”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욕심이 끝도 없는 모양이다.하나의 소망이 이루어지면 그다음에는 더 큰 바람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예전에 전하연이 태어나기 전만 해도 전씨 가문의 식구들은 그저 여자아이 하나만 태어나길 바랐다.그런데 막상 그 한 명이 태어나자 ‘전씨 집안은 딸을 못 낳는다’는 굳은 관념이 깨지면서 모두의 마음이 조금씩 더 커졌다.이제는 여자아이를 몇 명 더 낳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전씨 할머니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너희 형제들이 아들딸을 모두 갖게 된다면 할머니는 저승에 가서도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전유림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할머니! 그런 말씀은 마세요. 죽고 사는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도 마세요. 우리가 아들딸 모두 갖고 싶어도 그럴 팔자가 되어야 하는걸요.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서 시험관 시술을 받으면 원하는 만큼 딸을 낳을 수 있다고들 하더군요.”할머니가 눈을 흘기시며 꾸짖었다.“왜 시험관 시술로 그 고생을 왜 하냐? 너희 남자들은 괜찮겠지만 내 며느리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겪거든! 자연 임신이 가능하면 좋지만 안 되어도 절대 시험관 시술은 하지 마. 팔자에 있으면 반드시 오는 법이요, 없으면 억지로 구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란다. 딸 낳을 팔자가 있는 사람은 결국 딸을 낳게 마련이지. 너희 큰형과 큰형수님 좀 봐. 예전에 점을 쳤더니 아들딸 모두 낳는다고 하지 않았더냐? 봐, 결국 하연이가 태어났잖아.”전씨 할머니는 며느리들이 딸을 낳기 위해 시험관 시술로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게다가 병원에서 하는 시험관 시술은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지도 않는데 고통만 겪게 할 뿐이었다.자연 임신으로 딸을 낳으면 낳는 것이고 낳지 못한다면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어차피 전하연이 태어났기에 전씨 할머니는 앞으로 증손녀를 더 얻을 수 있을지는 순리에 맡기기로 하셨다.전유림
“지금은 겨울 씨가 신의님 자리를 이어받았어요. 그런데 그분은 스승님보다 훨씬 친근해 보여요. 적어도 환자나 병을 가리지는 않거든요. 다만 너무 바빠서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만나기 어렵지만요. 겨울 씨를 만나고 싶다면 앞으로 기회가 많을 거예요. 그분은 우리 집 며느리들과도 아주 가깝게 지내서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오거든요. 나중에 겨울 씨가 오면 진 선생님께 알려줄 테니까 그때 유림이 따라 우리 집에 오세요.”진소아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고마운 마음에 전씨 할머니께 연신 감사 인사를 드렸다.자신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탁했는데도 전씨 할머니는 무례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회가 닿으면 연결해 주겠다고 하셨다.세상에 소문난 그 엄청난 할머니가 생각보다 훨씬 평범하셨고 소문처럼 그렇게 무서운 분이 아니었고 그저 자상한 노인이었을 뿐이었다.진소아는 전씨 할머니에 대한 인상이 무척 좋았다.단순히 자신과 정겨울을 연결해 주려는 마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할머니에게서 느껴지는 그 자상함이 마치 부처님 같아서 함께 있으면 어느새 마음의 벽을 내려놓게 되었고 무슨 말이든 털어놓고 싶어졌다.“사실 겨울 씨랑은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나중에 둘이 친해지면 의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도 좋잖아요.”진소아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제가 정 선생님께 지도라도 받으면 큰 행운인데 어떻게 감히 의술에 관해 얘기를 나누겠어요.”정겨울이 진소아보다 몇 살 많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신의 김청산을 따라 의술을 배워 왔다.진료 경력은 자칫 진소아의 과장보다도 많았고 그 실력은 좋은 의사들이 우러러볼 정도였다.게다가 김청산은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던가.만약 정겨울을 만날 수 있고 전씨 할머니 말씀처럼 앞으로 친해진다면 어쩌면 우상 중 한 명인 신의도 뵐 수 있을지 모른다.진소아의 두 우상은 바로 정겨울과 그 스승, 바로 그 두 분이었다.“겨울 씨도 처음에는 좀 차가워 보이지만 친해지면 보통 사람이랑 똑같아요.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사람인 이상, 똑같이 밥 먹고 사는 사람
할머니와 손자는 잠시 시선을 나누었다. 그 단 한 번의 마주침만으로도 서로의 뜻이 곧바로 전해졌다.10분 후.전씨 할머니는 손자가 새로 산 집을 대충 훑어보셨다.진소아 말처럼, 아직 인테리어 중이라 여기저기 지저분했고 당장은 어떤 느낌인지 알기 어려웠는데 인테리어가 끝나고 청소까지 마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모습을 알 수 있을 터였다.전유림 일행은 진소아의 새집으로 자리를 옮겼다.문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는 집 인테리어 스타일이 너무 좋다고, 소파 한 번 둘러보고도 감탄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그런데 그 칭찬이 듣는 이에게 진심으로 와닿았고 누군가를 의식해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진소아는 먼저 주전자를 씻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평소에 여기서 살지 않아서 물이 없네요. 지금 끓여 드릴게요.”“괜찮아요, 우리도 목마르지 않아요.”할머니는 웃으시며 진소아가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손자 전유림을 살짝 쳤다.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으셨다.“마음에 드는 분이셔?”전유림은 할머니가 오시면 세상 모든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여 그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직 고백도 못 했어요. 티 내면 안 돼요.”“나도 알아. 걱정하지 마. 할머니가 네 계획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 너 이 녀석, 여기에 집을 사더니 직접 인테리어까지 챙기는 걸 보니까 별도의 속셈이 있었구나.”전지율은 아직 어려서 여덟째 형이 무슨 꿍꿍이인지 눈치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전태윤과 같은 경험 있는 형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소아 씨는 복도 많아 보이고 보면 볼수록 너무 마음에 들어. 나도 너무 좋아.”전유림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역시 제 안목이 높죠? 저는 첫눈에 반했어요.”전씨 할머니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리더니 이제야 전유림이 예전에 병원에 그렇게 오래 입원해 있던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모두 진소아 때문이었던 것이다.‘나도 이제 의사 손자며느리를 얻게 생겼네.’진소아의 가정 환
“그래서 진 선생님께서 경험이 있으시니까 진 선생님 집도 구경하고 인테리어 기사님도 소개받았어요. 자재 구매할 때도 선생님께서 저를 데리고 가 주셨어요. 경험이 있으시니까요. 아까도 진 함께 자재를 보러 갔다 오는 길이었어요. 원래는 선생님을 먼저 집에 모셔다드리고 오려 했는데... 아, 민심대로에 있는 건물 한 채가 진 선생님 댁이래요. 1층은 진료소고 작은아버지께서 운영하신대요. 진 선생님께서 민심 아파트에 사시는 집은 인테리어는 끝났지만 아직 진짜로 입주하신 건 아니라고 하시더군요.”할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낯설었구나. 네 새 이웃이었구나. 진 선생님도 민심대로에 사세요?”진소아가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네, 저희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땅을 사서 집을 직접 지으셔서 온 가족이 다 거기 살았어요. 나중에 저희 아빠가 따로 집을 사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그 집에 있는 게 더 좋아요. 사람도 많고 북적거리고 어릴 적부터 살던 곳이라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민심 아파트에 집을 산 것도 본가에서 가깝고 밥을 얻어먹기도 편해서였어요.”진소아는 일이 너무 바빠서 직접 요리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매일 배달 음식을 시켜 먹자니 건강에 좋지 않아서 결국 본가에 머물며 매일 따뜻한 밥을 먹기로 한 것이었다.“집에서 가까운 게 좋죠.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 바쁘신데 요리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집에 가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배달 음식보다 훨씬 낫죠. 우리 유림 집의 인테리어가 다 끝나가고 진 선생님도 새집으로 들어가시게 되면 식비 좀 내고 유림 집에서 식사하시는 건 어떠세요? 우리 유림이가 요리는 끝내주게 잘하는데.”전씨 할머니는 진소아가 그냥 얻어먹게 하지는 않으셨다. 아직 전유림이 전씨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는 걸 보니 두 사람 사이가 아직 시작 단계도 아닌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할머니는 당연히 손자의 연애에 방해가 될 일은 하지 않으셨다.만약 진소아가 식비를 조금 낸다면 진소아가
“따뜻할 때 마셔요. 김이 모락모락 날 때 마셔야 몸이 제대로 따뜻해져요.”“네.”전이혁은 작게 대답하고 다시 휴지로 코를 닦았다. 이미 쓰다 버린 휴지가 가득 쌓인 휴지통을 보고 나니 왠지 더 민망했다.그는 조심스레 김이 피어오르는 생강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악! 너무 매워!’혀가 얼얼할 정도의 매운맛에 그만 뿜을 뻔했지만 옆에 앉은 도아영을 의식하면서 간신히 삼켜냈다.단 한 모금 만에 전이혁은 그대로 잔을 내려놓았다.“너무 뜨거워서요. 조금 식히고 나서 마실게요.”사실은 너무 매워서 다시 도전해 볼 용기가 나
“전이혁 씨, 왜 그렇게 저를 쳐다보세요?”그가 막 대답하려던 순간 도아영의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렸다.그녀는 화면을 힐끗 보았다.발신자는 엄마였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엄마, 무슨 일이세요?”평소 그녀는 근무 시간에 사적인 전화를 거의 받지 않았다.가족에게서 오는 전화라면 반드시 급한 일이 있을 때였다.급하지 않다면 그녀의 부모님은 언제나 그녀가 바쁠 것을 알고 전화를 하지 않았다.“이번 주말에 시간 있지?”“왜요?”“일단 시간 있는지부터 말해봐. 엄마가 네가 직접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
이미 이렇게까지 매워진 이상, 더 매워 봐야 거기서 거기였다.전이혁은 결국 가족들이 말한 대로 고추를 한 움큼씩 집어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매운맛이 훅 치고 올라와 눈물이 흘렀고 입안은 부은 것처럼 화끈거렸다.도아영도 그 댓글들과 전이혁이 고추를 한입 가득 먹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그러다가 더는 전이혁이 그렇게 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핸드폰을 꺼버렸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업무에 집중되는 것도 아니었다.괜히 속이 불편하고 초조했다.잠시 후, 도아영은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자리에서
“준비 좀 해주세요.”그도 슬슬 배가 고픈 듯했다.도아영은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따뜻한 차 한잔과 평소 즐겨 먹던 간식을 조금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잠시 뒤, 집사가 차를 내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에게 건네며 말했다.“이제 시작해 보세요. 지어내실 거라면 그럴듯하게.”전이혁은 다급히 손을 저었다.“도아영 씨, 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도아영 씨... ‘여우’죠?”도아영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전이혁 씨, 제가 그 ‘여우’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여우는 동물이에요. 동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