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010화

Penulis: 십일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재석이 그렇게 말하자, 강의실 안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왔다! 앞에 거는 다 이론이고, 이제부터가 진짜 핵심이야!’

‘...’

이제 재석은 강의실 중앙 통로로 걸어 나와 있었다.

걸음을 멈춘 그는, 무심한 듯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하지만, 민지와 서준은 동시에 깨달았다.

‘설마 그냥 찍었겠어?’

‘저건... 일부러야.’

재석이 가리킨 그 자리는 정은의 자리였다.

‘조 교수님... 너무 대놓고 하시는 거 아니야?’

민지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충격은 아직 시작도 아니었다.

재석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여기 앉아 있는 이 여학생을 관찰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가 관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장난스럽지만 또 어딘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 여학생이 제 여자 친구인지 아닌지...”

“와아아아...!”

강의실이 일순간 소란스러워졌다.

‘미쳤다.’

‘진짜 미쳤어.’

‘...’

학생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그리고요?!”

“교수님, 계속해 주세요!”

정은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민지와 서준은 서로 눈이 딱 마주쳤다.

서로의 눈에서 똑같은 감정... 경악과 충격을 읽었다.

‘조 교수님... 진짜 제정신인가?’

재석은 가볍게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에 따르면, 제가 여러분에게 이 여학생의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

“즉,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이 여학생은 ‘제 여자 친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여학생은 제 여자 친구다’ 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 상태는 확정됩니다.”

“그전까지는 입자가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가진 것처럼, 이 여학생도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가, 관찰이 이루어지는 순간, 하나로 고정되는 거죠.”

“이것이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kunci

Bab terbaru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10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재석이 그렇게 말하자, 강의실 안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왔다! 앞에 거는 다 이론이고, 이제부터가 진짜 핵심이야!’‘...’이제 재석은 강의실 중앙 통로로 걸어 나와 있었다. 걸음을 멈춘 그는, 무심한 듯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하지만, 민지와 서준은 동시에 깨달았다. ‘설마 그냥 찍었겠어?’ ‘저건... 일부러야.’ 재석이 가리킨 그 자리는 정은의 자리였다. ‘조 교수님... 너무 대놓고 하시는 거 아니야?’ 민지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하지만 충격은 아직 시작도 아니었다.재석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여기 앉아 있는 이 여학생을 관찰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가 관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장난스럽지만 또 어딘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이 여학생이 제 여자 친구인지 아닌지...” “와아아아...!” 강의실이 일순간 소란스러워졌다.‘미쳤다.’ ‘진짜 미쳤어.’ ‘...’학생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웅성거렸다.“그리고요?!” “교수님, 계속해 주세요!” 정은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민지와 서준은 서로 눈이 딱 마주쳤다. 서로의 눈에서 똑같은 감정... 경악과 충격을 읽었다.‘조 교수님... 진짜 제정신인가?’ 재석은 가볍게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에 따르면, 제가 여러분에게 이 여학생의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즉,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이 여학생은 ‘제 여자 친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하지만 제가, ‘이 여학생은 제 여자 친구다’ 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 상태는 확정됩니다.”“그전까지는 입자가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가진 것처럼, 이 여학생도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가, 관찰이 이루어지는 순간, 하나로 고정되는 거죠.”“이것이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9화

    ‘세영’이라는 이름이 재석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정은은 직감했다. ‘역시, 눈치챘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아마 오미선 교수가 뭔가 귀띔했을 터였다.정은은 몸을 돌려 웃었다. “네, 알아요.” 재석이 눈을 깜빡였다.“뭔지 궁금하지 않아?” 그 물음에, 정은은 잠시 멈칫했다가, 가볍게 걸음을 돌려 다시 다가갔다.“뭔데요?” 재석은 눈을 떨구었다. ‘역시, 별 관심 없구나... 괜히 혼자 신경 썼나?’ 하지만 이내 솔직하게 말했다. “촛대야.” 그리고 거실 테이블을 가리켰다. “저거.” 정은은 다가가 테이블 위를 살폈다.흰색 촛대 하나. 표면은 울퉁불퉁한 달 표면을 본뜬 모양이었다. 만져보니 오목조목한 촉감이 느껴졌고, 동그란 초 하나가 함께 놓여 있었다.“이게 다야. 다른 건 없어.” 재석이 덧붙이자, 정은은 웃으며 초를 가리켰다. “오늘 밤에 시간 나면 한 번 켜봐요. 혹시 모르잖아요, 깜짝 놀랄 만큼 예쁠지도?” 그러고는 싱긋 웃으며 재석의 손목을 덥석 잡아끌었다.“그보다 지금...” “이제 빨리 가요! 늦겠어요!” 오늘은 둘 다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다만 재석은 강의하고, 정은은 청강하는 입장이었다.그것도, 같은 과목. 재석이 이번 학기에 개설한 물리학과 생명과학의 융합 수업은 이었다.정은, 서준, 민지 셋 다 이 수업을 신청했다.강의실에 도착하자, 민지가 손을 흔들었다. “정은 언니! 여기예요!” 민지는 미리 자리를 잡아두고 있었다. “오늘의 아침은 잡곡전인데, 언니도 먹어볼래요?” 그녀는 서준에게 일부러 네 개나 챙겨오라고 했다.민지 두 개, 서준 하나, 정은 하나. 만약 정은이 거절하면... 민지는 자신이 세 개를 다 먹을 생각이었다. 정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 아침 먹고 왔어. 너 다 먹어.” “진짜요? 좋아요!” 민지는 신이 나서 남은 전을 챙겼다.‘귀엽네.’ 정은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8화

    “없었어요. 한 번도 제 앞에서 그런 얘기 한 적 없어요.” 재석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만도 하지.” 오미선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너, 우리 과 수업 듣느라 바빴잖아. 거기에다 물리학까지 따로 공부하고, 지도 교수님도 두 명이나 붙어서 프로젝트까지 병행했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는데, 그런 소문에 신경 쓸 틈이 어디 있었겠니?”‘그랬지.’ 재석은 어렴풋이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늘 혼자였다. 수업이 끝나면 연구실, 연구실이 끝나면 또 다른 연구실이었다. 그리고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다른 학생들은 그를 존경했지만,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려워했다. ‘항상 한 겹 투명한 벽이 있었지.’ 그러니, 누가 감히 재석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근데 교수님...” 재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정은이한테도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그렇지.” 오미선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제야 상황이 이해된다.’ “재석아, 나... 실수한 거니?” 학회 세미나를 수십 번을 겪으면서도 긴장한 적 없는 오미선 교수가, 이 순간만큼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근데...” 오미선이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웃으며 말했다. “정은이 표정 봐선 괜찮은 것 같던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더라.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으니까.” 그렇게 말은 했지만, 재석의 마음은 쉽게 놓이지 않았다.서재에서 나온 이후, 줄곧 정은의 기색을 살폈다. 다행히 오미선이 한 말처럼 정은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심지어 재석이 상자를 구경하자며 불러도, 정은은 가볍게 웃으며 거절했다. 사실 재석의 본심은 이 기회에 ‘세영’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어, 정리하고 싶었던 거였다. 괜한 오해를 남기고 싶지 않았으니까.하지만 정은은, ‘그런 거엔 전혀 관심 없다’는 태도로, 쿨하게 돌아서 버렸다.‘정말 괜찮은 걸까?’ ‘아니면, 화가 났는데 나만 모르는 걸까?’ 재석의 머릿속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7화

    오미선 교수와 재석이 서재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은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사이 박애영과 함께 고기소를 버무려 만두를 빚었으니 말이다. 둘이 함께 거의 백 개 가까이 만들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아휴, 진짜 잘됐다!” 박애영이 신나게 웃었다. “교수님은 네가 만든 소를 제일 좋아하시잖아. 오늘 만든 거면 한동안 걱정 없겠다.” “다음엔 배추 소로 해볼까요?” 정은이 웃으며 말했다. “좋지! 그럼 미리 고기랑 배추 준비해 둘게!” 박애영은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부엌까지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야, 서재 문이 열리고 재석과 오미선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시간이 꽤 늦었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얼른 들어가.” 오미선이 말했다. “교수님, 안녕히 계세요.” 정은이 정중히 인사했다. “그래, 운전 조심하고.” 오미선 교수는 두 사람을 따뜻한 눈길로 배웅했다. 재석과 정은은 각자 차를 몰고 온 터라 돌아갈 때도 따로 움직였다.잠시 후, 주차장에서 다시 마주할 수 있었는데, 차를 세운 정은이 슬쩍 트렁크 쪽으로 걸어갔다. “재석 씨, 이리 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트렁크 뚜껑이 열렸다. 재석도 천천히 걸어갔다. 정은은 그 안에 있는 철제 상자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교수님이 그러시는데, 이거 다 예전 선배님들이 마음 담아 준비한 거라네요. 오랫동안 교수님이 보관하셨는데, 이젠 돌려주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재석은 철제 상자를 바라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정은을 바라보았다. “열어봤어?” “교수님이 뚜껑 여는 거 옆에서 살짝 봤어요. 근데 안에 있는 물건엔 손 안 댔어요. 왜요?” “아니야, 그냥.” 재석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괜히 마음이 묘하네...’ 그렇게 말한 뒤, 철제 상자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상자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몇몇 선물 박스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6화

    “아이고!” 박애영이 소리치자, 재석과 정은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네 사람의 눈이 서로를 마주하고, 짧은 침묵이 거실을 가득 메웠다.가장 먼저 몸을 일으킨 건 정은이었다. “교수님...” 오미선이 놀람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몇 초가 지나서야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정은아, 너랑 재석이...?” 잠시 후, 재석이 자연스럽게 정은의 손을 잡았다. “교수님, 저희... 사귀고 있어요.” 오미선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재석을 바라보는 듯하면서도, 왠지 다른 누군가를 겹쳐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참 잘됐다. 언제부터야?”“얼마 전부터요. 이제야 확실해졌어요.” 재석이 담담하게 말했다.“어쩐지... 오늘 밤 갑자기 오겠다 하더니.” 오미선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번졌다. “나를 보러 온 게 아니었구나?”재석이 어색하게 헛기침했다. ‘으악, 뭔가 다 들킨 기분이다.' “자자, 다 앉아. 애영아, 그 호박죽 좀 재석이한테 줘.” “네!” 박애영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릇을 집어 들었다. “진짜야? 재석이랑 정은이, 진짜로 사귀는 거야?”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제 교수님 댁에 올 때 둘이 같이 오는 거야?” “아마도요. 아주머니께서 한 사람 밥을 더 해주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정은이 웃으며 말했다.“그게 뭐 어렵니? 한 사람은커녕, 나중에 너희 둘 결혼해서 애까지 낳으면, 그 애도 데리고 오렴. 난 하나도 귀찮지 않아!” ‘크악... 이걸... 어떻게 받아쳐야 하지? 답이 없네.' 재석은 속으로 생각하며 조용히 그릇을 비웠다. 오미선이 물었다. “더 먹을래?” 재석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충분히 먹었어요.” “그래, 그럼 나랑 서재 좀 다녀오자.” “네??” 재석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정은도 괜히 궁금해져서 따라가려 했지만, 박애영이 잽싸게 그녀를 붙잡았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5화

    정은이 철제 뚜껑을 열자, 상자 안에는 작은 박스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떤 것들은 정성스럽게 포장까지 되어 있었다. 맨 위에 있던 건 분홍색 박스였다. 정은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검정 매직으로 휘갈겨 쓴 ‘세영’이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참, 기가 막히게도...’졸업사진 속에서도 정은은 단박에 세영을 알아봤다. 단지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찰칵- 셔터 소리와 함께, 모든 게 멈춰버린 순간. 남자애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옆에 서 있는 여자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이 찍힐 때, 아마 세영은 막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미세한 움직임은 사진 속에서 크지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확실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바로 재석을 향해 있었다. 오미선이 물었다. “오늘 차 가지고 왔지?” “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다. 이 상자 좀 재석이한테 전해줘. 그동안 내게 맡겨져 있었는데, 나도 거의 잊고 있었네.” “알겠어요.” 정은은 상자를 들고 차 트렁크에 실었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돌아가, 오미선과 함께 TV를 봤다.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족욕을 끝낸 오미선을 확인한 후, 정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밖에서 박애영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조금 거리가 있어서, 또 끊겨서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어? ...너잖아? 여기 웬일이야?” “빨리빨리, 어서 들어와!” 몇 초 지나지 않아, 박애영이 쿵쿵 뛰어 들어왔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소리쳤다. “교수님, 보세요! 누가 왔는지!” 오미선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재석아! 어쩐 일이야?!” 재석은 담담하게 말했다. “교수님 뵈러 왔어요.” ‘거짓말도 적당히 하지.’‘밤늦게 빈손으로 찾아오는 사람치고, 진짜 어른을 뵈러 오는 경우는 없지.’ ‘핑계도 참 허술하다니까.’정은은 속으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4화

    “아... 세영이 말하는구나.” 오미선이 바로 대답했다.“세영이요?”“응, 본명은 구세영이야. 재석이랑 동기였는데, 들은 얘기로는 그때 학교에서 제일 예뻤다더라.”정은은 사진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예쁘네요.”구세영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옆으로 내린 앞머리, 높이 묶은 포니테일... 평범하기 그지없는 차림이었지만, 눈에 확 띄었다.그녀는 아무리 꾸밈없어도, 예쁜 건 숨길 수가 없었다.오미선이 웃으며 덧붙였다. “세영이랑 재석이, 한때 학교에서 사귄다는 소문도 있었지.”그러면서 옛일을 떠올리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근데 재석이는 다른 학과로 전과하고, 세영이는 유학 가버려서... 소문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잠시 뜸을 들이던 오미선이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재석이 그 뒤로도 연애도 한 번 제대로 안 했거든. 혹시 아직도 옛날 생각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근데 왜 갑자기 세영 얘기가 궁금했어?”정은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냥요. 사진 보다가 궁금했거든요.”“애영이는 어디 갔지? 네가 온다고 해서, 내가 애영이한테 호박죽에 찹쌀떡 좀 끓여달라고 부탁했거든.”오미선이 말했다.“애영 아주머니는 장 보러 가셨어요. 괜찮아요, 제가 직접 덜어 먹을게요.”“그래? 그럼 나도 조금만 가져다줘. 반 공기만.”정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오미선이 눈을 크게 떴다.“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당을 줄여야 한다고요.”정은이 다시 설명했다.오미선은 당황해서 손사래 쳤다. “아니, 호박죽에 들어간 약간의 찹쌀떡은 당도 아니야! 설탕도 아주 조금 넣었는데!”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 돼요.”‘아, 완전 단호하다.’오미선은 겉으로 정은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속으로는 제자의 마음을 이해했다. 정은은 다정하게 덧붙였다. “대신 제가 소고기 버섯 죽 끓여드릴게요.”“좋다, 좋아!”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오미선이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3화

    이건 재석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데 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내 여자 친구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지. 이것도 나름대로 시간 아끼는 거지. 그리고... 내 마음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실험실에는 정은이 이미 와 있었다. 조금 뒤에 서준과 민지가 들어왔다.“정은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 “응, 좋은 아침.” 민지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저 아침 가져왔어요! 한입 해볼래요?”정은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먹었지만, 서준이 요리 솜씨는 한번 맛봐야지.”민지는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서준이가 만든 건지 어떻게 알았어요?”정은은 실험복을 입는 서준을 힐끔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냥 느낌!”“느낌이라니요...?” 민지가 재차 물었다.정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먹는 걸 사랑하는 애를 잡으려면, 서준이도 실력이 있어야지.”‘헉, 부끄러워...’ 민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정은은 이미 관심을 돌려 음식 맛을 보기 시작했다.“꽤 솜씨 있는데? 꽈배기도 아주 폭신하고 모양도 예뻐. 평소에도 연습 많이 한 것 같아.”민지는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네, 저도 진짜 맛있다고 생각했어요...”...오후, 정은은 약속보다 일찍 자리를 정리하고 오미선 교수의 집으로 향했다. “정은이 왔구나...” “아주머니.” 정은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박애영은 얼른 정은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받아서 들었다. “또 뭘 이런 걸 사 오고 그래? 교수님 보면 또 잔소리하신다니까.”정은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주머니한테 뭐라고는 하시겠지만, 과일 깎아서 옆에 내놓으면 결국 다 드실 거예요.” “그건 그래.” 박애영은 피식 웃었다. “정은이가 사 온 거라면, 입맛 없어도 몇 조각은 꼭 드시거든.”정은은 신발을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섰다. “교수님은 어디 계세요?”“서재에 계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02화

    저녁은 분위기 좋은 양식집에서 먹기로 했다.자리에 앉자마자 미진이 살짝 태민의 소매를 당겼다. 작게 속삭이며 물었다. “여기 꽤 비싼 데 아니야?”태민이 고개를 돌려 조용히 답했다. “누나, 1인당 15만 원이요.” 미진은 숨이 턱 막힌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 교수... 진심 작정하고 조 교수를 지갑 털기로 했구나.” 태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데 말이죠, 조 교수님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예요. 실험실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웃고 계세요.”“그러고 보니 그렇네. 네가 말 안 했으면 몰랐겠다. 요즘 조 교수님 표정이 엄청나게 부드러워졌더라? 사람이 달라졌어. 친절하고 말도 예쁘게 하고.”태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만 느낀 게 아니었군요. 근데... 뭔가 좋은 일 있으신 걸까요?”미진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근데 진짜 이상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음식은 가격 값을 톡톡히 했다. 다들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사를 이어갔다.정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푸아그라 괜찮네요.”바로 그 순간, 정은 접시에 푸아그라가 하나 더 놓였다. 재석이 포크를 슬쩍 치우며 말했다. “마음에 들면 더 먹어.”자기 몫을 그냥 내어준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진욱이 바로 반응했다. “재석아, 나는 스테이크 맛있던데.”“응, 나도 좋더라.”‘뭐야, 진심 그게 다야?! 줘도 못 먹네...’진욱은 주변을 둘러봤다. 미진과 태민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아니, 지금 음식 나눠 먹고 있는데도 아무 반응 없어...?’‘둘이 원래 그렇게까지 친했나?!’그때 마침 정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다 먹었어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재석이 정은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더 시킬 거 있어?”다들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배불러요.”“그럼 계산하고 올게.”말을 끝내자마자 재석도 일어섰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정은의 뒤를 따라 나갔다.진욱은 혀를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