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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0화

Author: 십일
이미숙은 조용히 말했다.

“내가 부르고 싶은데... 왜요, 안 돼요?”

“여보...”

소진헌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봤다.

“정은이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에요. 자기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조 교수랑 만나겠다고 한 것도, 우리 딸의 선택이에요.”

이미숙은 덧붙였다.

“우리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건, 존중 혹은... ‘확인’이에요.”

“확인...?”

“그래요.”

이미숙은 티 한 점 없이 잔잔한 어조로 말했다.

“딸이 사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부모로서 당연히 제대로 봐야죠. 좋은 사람인지, 성격은 어떤지, 책임감은 있는지... 모를 일이잖아요.”

소진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여전히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바로 불러오는 건... 뭔가 자존심이...’

이미숙은 그런 남편의 표정을 읽고는, 기침을 한번 가볍게 하며 정은에게 말했다.

“정은아, 조 교수한테 가서 말해. 아빠한테 진심으로 사과드려야지. 아무리 사랑이 전부라지만, 오늘은 너희가 잘못한 게 맞아.”

소진헌의 얼굴이 약간 풀렸다.

‘그렇지, 내가 괜히 화낸 건 아니잖아!’

정은도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췄다.

“알겠어요. 재석 씨한테 제대로 화내고, 반성도 시킬게요. 그러니까 아빠, 불러도 되죠?”

소진헌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불러와. 조재석... 그 녀석이 진심인지 아닌지,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

“네!”

정은은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며 후다닥 나갔다.

소진헌은 그런 딸의 뒷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야, 쟤 좀 봐라. 저렇게 좋아 티 내면 안 되지...”

“요즘 애들 진짜... 여자 쪽 체면이란 게 없어...”

...

정은이 재석을 찾았을 때, 그는 집 거실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상태였다.

“자기야?”

정은은 조심스레 불러봤다.

그제야 어둠에 녹아있던 실루엣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치 그림자에서 천천히 떨어져나오는 느낌이었다.

정은이 다가가 불을 켰다.

“어두컴컴한 데서 왜 불도 안 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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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78화

    강서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일단 밥부터 먹자.”지훈은 순간 멍해졌다.“왜? 안 배고파?”강서원이 물었다.“아니요... 진짜 배고프긴 하네요!”지훈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맞장구쳤지만, 속에선 계속 생각이 맴돌았다.‘셋 다 불러놓고 밥만 먹자고...? 그럴 리가 없지.’‘이거 뭔가 있어. 분명 뒤에 큰 거 하나 숨겨놨을 거야.’강서원이 2층에서 내려오자, 주방도 자동으로 바빠졌다.금세 음식이 차려졌고, 모두 식탁으로 모였다.조기봉이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오늘 너희 셋 다 운전하고 왔으니까 술은 패스. 국물이나 마셔. 반찬 많이 먹고, 밥은 적당히. 자, 먹자.”다섯 식구가 젓가락을 들었다.반찬은 각자 입맛에 맞게 다양하게 준비돼 있었지만, 유심히 보면 재석이 좋아하는 음식이 가장 많았다.사실 조기봉 부부가 막내를 더 아끼는 건, 셋 다 어릴 때부터 눈치채고 있던 일이었다.처음엔 지언과 지훈도 조금 섭섭했던 기억이 있지만, 재석은 어릴 때부터 너무 착했다. 결국 지언과 지훈도 재석한테 더 잘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부모의 그런 편애는 늘 반찬 하나 더 얹어주는 정도의 사소한 차이였고, 정작 중요한 것들... 가업은 지언에게, 자금은 지훈에게, 그리고 사랑과 관심은 재석에게 균형 있게 나뉘어져 있었다.그래서 세 형제는 이런 분배 구조에 익숙했고, 질투도 없었다.덕분에 형제끼리 사이도 늘 좋았다.그런데 오늘 식사 분위기는 뭔가 달랐다.평소 같으면 아들들 접시에 반찬도 덜어주고 먹는 속도까지 챙기던 강서원이, 오늘은 묵묵히 자기 밥만 먹었다.식사가 끝나갈 즈음, 강서원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너희는 천천히 먹어. 난 다 먹었어.”말을 마친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쪽으로 향했다.지언이 곧바로 말했다.“우리 강 여사님, 평소랑 다르다.”지훈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그걸 이제 알았어? 사람이라면 다 느꼈지. 그렇죠, 아버지?”조기봉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걸 나한테 왜 묻냐? 너희 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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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76화

    “운이 좋다면,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 함께 걸어가면 되는 거고, 그렇지 않거나 도중에 헤어진다고 해도, 혼자 걸어갈 준비와 능력은 있어야지.”“네.”정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럴게요.”“여자란 말이지, 참 신기한 존재야.”이미숙이 뜬금없이 말문을 열었다.“기댈 어깨가 있으면 잠깐 기대면 되는 거고, 없으면 안 기대면 그만이야.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기대고 안 기댄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안방에서 나온 소진헌이 웃으며 묻자, 이미숙은 바로 말렸다. “여자들끼리 얘기하는데, 남자는 말 좀 아껴요.”“네네.”소진헌은 손을 들며 순순히 항복 표시를 하고, 입에 ‘지퍼 잠그는’ 제스처까지 해 보였다.그 모습에 정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여보, 점심 뭐 먹고 싶어? 나 장 좀 보러 갈 건데.”소진헌이 물었고, 이미숙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능성어찜이랑, 동그랑땡 좀 해줘요.”“오케이! 바로 실행!”이미숙은 샌드위치를 한 입 먹고 나서, 슬며시 정은을 바라보며 웃었다.“엄마도 입맛이 없거나, 요구가 없는 사람은 아니야.” ‘다만,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지.’이미숙에게 있어 정은은 딸이지만, 진짜 ‘무조건 내 편’이자, ‘내 말 들어야 할 사람’은 사실 소진헌이었다.그건 관계의 무게이자, 오래도록 쌓인 신뢰의 차이였다....한편, 재석은 이미 실험실에 들어가 있었다.들어서자마자 바로 책상에 앉아 일에 몰두했다.전진욱이 잠시 연구실을 비운 터라, 그의 몫까지 일감이 쏟아진 상태였다.‘하... 일이 두 배네. 진욱이가 없으니까 진짜 티 난다.’재석은 실험뿐만 아니라 모든 결괏값 정리, 데이터 저장까지 책임져야 했다.이전엔 그 역할을 이수아가 맡았었다.이수아가 그만둔 뒤엔 손태민이 잠시 맡았지만, 손태민은 서비대학교 강의까지 맡고 있어서 매일 실험실 자리를 지키긴 어려웠다.잡일도 은근히 많으니 말이다.재석도 진욱이 두 달 쉰다고 했을 때부터 예감했지만, 막상 닥치니까 생각보다 빠듯했다. ‘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75화

    다음 날 아침.재석은 정은이 챙겨준 아침을 먹고 있었다.이미숙은 어젯밤도 정은의 집에 다시 와서 잤다.이 시간쯤이면 이미숙과 소진헌은 아직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정은은 조용히 일어나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었다.“저녁엔 뭐 먹고 싶어요? 나 장 보러 갈 건데요.”정은이 대충 물었다.셔츠 단추를 채우던 재석의 손이 불쑥 멈췄다. 이미 채운 두 개의 단추를 다시 풀어버리더니, 단추도 안 잠근 채로 정은 쪽으로 다가갔다.고개를 든 정은이 딱 마주친 건 남자의 탄탄한 가슴.본능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뭐 하는 거예요?”“단추 좀 잠궈줘.”재석이 느릿하게 다가서며 말했다. 그리고 한 발짝 더.정은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당신의 손은 장식이에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은 이미 남자의 셔츠에 가 있었다.하나씩, 천천히 단추를 끼워 넣으며.“할 줄은 아는데... 그래도 네가 해줬으면 해서.”재석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왜요?”정은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왜긴...”바로 그때, 남자의 입술이 내려왔다.이마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은 입맞춤.“이렇게 슬쩍 뽀뽀도 할 수 있으니까.”‘이 사람 진짜...’정은은 단추를 끝까지 잠가주고, 옷깃까지 가지런히 정리해주었다.“됐어요.”“오늘 오후엔 본가에 좀 들러야 해서, 저녁은 집에서 안 먹을 거야.”재석이 자연스럽게 말했다.“네.”정은은 이유를 묻지도, 가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다.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운전 조심해요.”두 사람은 연인이었다.평소엔 마치 서로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기대며 지냈다.하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결국은 각자의 삶이 있었다.사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부모도, 형제도, 부부도 마찬가지다.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거리는 필요하다.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면 비로소 서로를 바라볼 수 있으니까. ...재석을 배웅한 뒤, 정은은 다시 본채로 돌아왔다.벌써 일어난 이미숙은 식탁에 앉아 아침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74화

    “아무래도 그 귀걸이를 낀 사람이 너무 예뻐서 그런가 봐요! 아이고, 어쨌든 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꼭 하나 사야 속이 풀릴 것 같아요.”최화자가 연신 말을 이었고, 강서원은 짧게 대답했다.“그래요, 잊지 않을게요.”“에휴, 우리 아들도 그런 안목이 있었으면 좀 좋아요? 그렇게 예쁜 루비 귀걸이 한 쌍을 척하고 사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참, 사모님은 복도 많으시죠? 아들 셋이 다 하나같이 잘나가니 엄마 노릇도 안 힘드시겠어요.” “루비가 갖고 싶으면 한마디만 하시면 되잖아요? 설마 사모님이 말씀하시는데 막내가 못 들은 척할 수 있겠어요?”최화자가 아부를 이어가자, 겉으로는 변함없는 표정을 짓던 강서원이 속으로 싸늘하게 웃기 시작했다. ‘말만 하면 줄 거라고? 웃기지 마. 그 귀걸이, 여자 친구 엄마 비위 맞추려고 갖다 바친 거야.’‘옛날엔 아들을 낳느니, 차라리 찐 고기를 낳는 게 낫다는 말을 들으면 웃기만 했는데...’‘지금 보니, 웃긴 건 그 말이 아니라 나였어.’‘차라리 찐 고기는 먹을 수라도 있지, 아들은 대체 뭘 해? 엄마 속만 뒤집지!’...헛웃음만 남긴 채 시커먼 얼굴로 고옥에 도착하자마자, 강서원은 말도 없이 계단을 올랐다.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조기봉이 그걸 보고 눈을 굴리더니 곧 따라 올라가며 말했다.“왜 그래? 누가 속이라도 썩였어?”강서원은 아무 말 없이 계속 걸었다.“오늘 영화제 가서 연예인 본다고 하지 않았어? 연예인 많이 왔더라?”조기봉이 일부러 말을 붙이자, 강서원의 발이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허, 연예인은 못 보고... 당신 아들만 봤어요.”“우리 아들?”조기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둘째도 갔어? 걔 지난 달에 그 여자 연예인이랑 끝났다며?”강서원은 또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조기봉은 황급히 덧붙였다.“당신이 연예인들이랑 얽히는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둘째도 이젠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약속했잖아...”“둘째가 아니고...”강서원이 참다못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073화

    “네, 그럼 금방 갈게요.”재석은 짧게 한 마디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재석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잠시 후에 정은이가 날 보면... 깜짝 놀라겠지?’‘...’재석이 컨벤션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영화제 개막식이 막 끝나, 기자들과 참석자들이 하나둘씩 행사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그는 서쪽 출입구 쪽에 차를 세우고 내린 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어머니, 도착했어요.”[아, 재석아! 미안하다. 아까 기사분이 차 수리를 막 마쳤다고 해서 그 차를 타고 출발하던 참이야. 막 너한테 연락하려 했는데, 네가 먼저 전화했네. 괜히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네.]“괜찮아요. 집에 가서 푹 쉬세요.”[그래, 우리 아들, 고마워.]전화를 끊은 재석은 곧바로 차에 타지 않았다. 대신 차 옆에 기대어 서서 차 키를 손으로 빙글빙글 돌렸다.그 모습만 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누가 봐도 배우 아니야?’ 할 만큼 멋졌다.실제로 재석의 근처 지나던 파파라치 한 명은 그를 유심히 보다가 카메라를 들었다가 이내 내려놓았다.‘일반인이네...? 아깝다.’하지만 재석은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아니면 아예 신경을 안 쓰는 건지,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여 핸드폰만 들여다봤다.[자기야, 지금 내가 어디 있을 것 같아?][어딘데요?]정은의 답장도 빠르게 들어왔다. 재석은 행사장 정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냈고, 곧이어 웃으며 메시지를 덧붙였다. [여긴 갑자기 왜 왔어요?]재석의 메시지를 받은 정은은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널 데리러 왔지.]잠시 뒤, 행사장 안에서 소진헌, 이미숙, 그리고 정은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정은아! 여기야!”재석이 손을 흔들며 웃었다.재석을 본 정은의 얼굴엔 금세 환한 미소가 번졌다. ‘진짜 왔네...’소진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조 교수 참 성의 있네. 밤늦게 직접 운전해서 데리러 오다니.”이미숙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농담처럼 말했다.“우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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