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주호석이 앞으로 나서며 수민과의 거리를 좁혔다.수민은 경계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뭐 하는 거야?”“예전에 들었어. 조 대표도 한때 꽤 놀았다고. 아마 그때만은 아니겠지. 지금도 다르지 않을 텐데, 다만 예전보다 체면을 챙길 뿐, 남들 눈에만 안 보일 뿐이고.”“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주호석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잘 논다면서. 나도 그 대상으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어때?”“미쳤어?”주호석의 웃음이 잠시 멎었다.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괜히 빼지 마. 다 알아봤어. 조 대표도 남자 바꾸는 속도가 옷 갈아입는 거랑 다를 게 없더라. 좋게 말하면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문란한 거지. 조 대표 정도면, 좋은 거 나쁜 거, 향기 나는 거든 역한 거든 다 겪어봤겠지?”“누구랑 놀든 그게 그거야. 내가 보장할게. 조 대표가 헤어 나오지 못 하게 해줄 수 있어.”수민이 웃음을 흘렸다.수민을 아는 사람은 이 웃음의 의미를 알았다.이건 웃음이 아니라 터지기 직전의 신호라는 걸.남자가 밖에서 여러 여자와 어울리면 ‘사교성 좋다’, ‘남자답다’, ‘그럴 수도 있지’라며 미화된다.하지만 여자가 여러 남자를 만나고 즐기면, 그 순간 바로 ‘문란하다’라는 낙인이 찍힌다.“보니까 주 대표는 평소에도 꽤 놀았나 보네.”수민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주호석이 소리 내 웃었다.“서로 비슷하지.”“제발 그만해. 사람도 급이 있고, 물건도 값이 있어. 주 대표의 그런 이상한 취향과 나를 같은 선상에 올리지 마.”호석의 웃음이 입가에 굳어버렸다.“조수민, 네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내가 뭐라고 했는지 다시 말해줄까? 늙은이가 국물이나 겨우 천천히 떠먹듯이 뻔뻔하고 천박하다고. 이해 안 되면 반복해 줄게.”“너...!”“네가 뭔데? 아프면 병원 가. 괜히 내 앞에서 눈에 띄지 말고.”말을 마친 수민은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주호석이 뒤따라 붙으며 놓아주지 않았다.“나 보면 여자들이 파리처럼 들러붙
주호석은 찻잔에 차를 따르고는 수민 쪽으로 밀어주었다.“자, 한번 드셔 보시죠.”수민은 한 모금 마셨다.주호석이 바로 물었다.“어떠십니까?”“차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주호석은 바로 물었다.“그럼 조 대표님은 평소에 어떤 음료를 즐기십니까? 밀크티나 커피 쪽이신가요?”수민이 설명했다.“특별히 좋아하는 건 없고, 자주 마시는 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물이고, 두 번째는 커피입니다.”“음, 아주 합리적이네요. 하나는 갈증 해소라는 생리적인 필요고, 하나는 각성을 위한 정신적인 필요니까요.”수민은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 오늘 두 사람이 이야기할 구체적인 기획안이 정리된 자료였다.“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은 주호석 대표님과 신재생에너지 고급 세단 관련해서...”“수민 씨, 너무 급하십니다. 앉자마자 일 이야기부터 하신다니요.”주호석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수민이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자리에 앉았으면 일을 이야기하지,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그리고 방금 그 ‘수민 씨’라는 호칭까지.솔직히 말해, 수민은 소름이 돋을 뻔했다.“주 대표님.”수민은 미소를 조금 거두었다.“저희 관계는 아직 서로 이름을 그렇게 부를 정도로 가깝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계속 조 대표로 부르셔도 되고, 조수민으로 부르셔도 괜찮습니다.”다만, 지금 같은 방식은 아니었다.주호석은 잠시 말을 잃은 듯 멈칫했다. 수민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수민은 그 반응을 보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파일을 거두었다.“오늘은 주 대표님께서 말씀 나누시기엔 여건이 맞지 않나 봅니다. 괜찮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시죠.”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수민 씨, 잠깐만요!”수민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주호석은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수민의 뒤로 다가왔다. 말투에서 웃음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이렇게 성격대로 다 표현하시면, 사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말
동건은 재킷을 벗어 수민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밤바람 세니까 감기 걸리지 마.”수민이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동건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난 안에 들어가서 손님들 좀 챙길게. 너는 편하게 있어.”그 말을 남기고는 곧장 돌아섰다.도망치듯 빠른 걸음이었다.마치 수민이 재킷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바로 벗어서 돌려줄까 봐 겁이라도 난 사람처럼....수민은 정원에 약 20분 정도 머물렀다.안으로 들어가기 전, 어깨에 걸쳐 있던 재킷을 벗어 직원에게 건네며 동건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행사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백지영이 손짓했다.“수민아, 이리 와.”“엄마...”수민은 다가갔다.“이제 우리 갈 건데, 너도 같이 가.”물어보는 말이 아니라 정해진 통보였다.“네.”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오래 머물 생각도 없었다.‘이럴 바엔 집에 가서 잠이나 더 자는 게 낫지.’‘예복 입고 하이힐 신고, 만나는 사람마다 웃고 있는 것보다야.’동건이 다가왔다.“회장님이랑 사모님, 그리고... 수민이까지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백지영이 막 거절하려고 할 때, 동건은 이미 한발 앞서 예의를 갖춰 안내했고, 먼저 앞장서 걸어 나갔다.조씨 가문의 차량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동건은 그제야 시선을 천천히 거뒀다.그때 고창명이 어느새 곁으로 다가왔다.“아들아, 너 많이 달라졌구나.”최근 들어 동건의 변화에 대해 아버지인 고창명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네가 뭘 겪었는지는 우리도 몰라. 물어봐도 너는 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 묻겠다. 다만 한 가지만은 기억해라.”“네 인생을 진지하게 대해서 제대로 살고, 그리고... 남의 인생도 존중해라.”고집은 때로 남을 다치게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상처 입힌다.“알겠습니다.”동건은 그렇게 말하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어디 가?”“안에 엄마 계시잖아요. 아버지는 자기 여자를 두고 가시게요?”고창명은 말문이 막혔다.
정은은 수민의 눈이 반짝거리고 표정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수민이 정말로 기쁘다는 걸 알았다. 억지로 일하거나 타협한다는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수민이 말했다.“이 기분이 뭐랄까... 엄청난 연구 과제를 완성해서 그 성과가 인류 사회를 앞으로 십 년은 발전시키는 느낌이야. 그런 느낌 있잖아. 내가 무슨 말인지 알아?”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걸 끝까지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거지.”...8시 정각, 연회가 예정대로 시작됐다.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고창명의 연설을 소개했고, 이어서 동건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이 자리는 고씨 가문 두 부자에게 주어진 영광의 시간이었다. 객석을 채운 하객들은 모두 그 장면의 증인이었다.재석은 정은의 곁으로 돌아와 수민과 함께 객석 쪽으로 모여 서서 박수를 보냈다.사회자가 선포했다.“다음 순서로 고 대표님을 모시고 개막 무대를 열겠습니다!”동건은 무대에서 내려와 수민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손을 내밀고, 허리를 45도로 숙여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수민은 눈썹을 살짝 올렸지만, 이내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음악이 흐르고,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무대로 걸어 들어갔다.이번 성과는 고씨 가문과 조씨 가문이 함께 나누는 명예였다.동건이 수민에게 개막 무대를 청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렇게 되는 게 맞다.백지영은 참지 못하고 입술을 비틀었다.“저 녀석한테만 좋은 일이네.”조기동은 가볍게 헛기침하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고창명 부부에게 난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로 크게 말했는데 못 들을 리가 없었다. 전부 들렸을 터였다.백지영은 코웃음을 쳤다. 애초에 그 부부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고창명 부부는 시선을 낮추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화를 내지도, 언짢아하지도 않았다. 잘 익지도, 푹 무르지도 않는 단단한 콩처럼 요지부동이었다.백지영은 속으로 더 화냈다.‘정말 집안
“난 주호석을 부를 생각 없었어.”동건이 불쑥 그렇게 말했다.수민의 시선이 동건에게로 옮겨 갔다.“그래서?”동건이 말을 이었다.“그 말은 저 사람은 분위기 읽는 데 능하고, 겉으로 번지르르한 거 좋아하고, 말도 듣기 좋은 것만 골라서 한다는 뜻이야. 믿을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고, 선택할 가치도 없어.”수민은 가만히 동건을 바라봤다.마치 동건의 속을 전부 들여다보는 것처럼.“너 또 병 도진 거 아니야?”동건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수민은 더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려 조기동과 백지영 쪽으로 갔다.“아버지, 엄마...”백지영은 웃으며 다가와 수민의 팔을 끼었다. 다만, 시선이 자연스럽게 조금 떨어진 곳의 동건을 스쳤고 얼굴에 걸린 웃음은 살짝 옅어졌다.“오빠랑 정은이는 저쪽에 있어.”“그럼 나 정은이한테 갈게.”“그래, 다녀와.”동건만 아니면, 백지영은 딸이 누구와 있어도 괜찮았다.사실 조기동이 고씨 가문을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 백지영은 망설였다.고씨 가문의 아들이 수민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백지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여보, 당신 미친 거 아니야?! 우리 딸이 당한 건 다 잊은 거야? 이제 와서 고씨 가문을 돕겠다고?”“일단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들을 말 없어. 변명도 듣기 싫어.”“...”그날 백지영은 조기동의 말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그러다 수민이 집에 돌아와 부모가 다투고 있는 걸 보고 사정을 묻고 나서야 백지영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정리하자면, 저랑 아버지는 고씨 가문을 돕는 것도 아니고, 고동건이라는 사람을 돕는 것도 아니에요. 새로운 판,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거예요.”백지영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조금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입으로는 말했다.“그 뭐냐... 심해 에너지가 그렇게 중요해?”수민은 진지하게 답했다.“앞으로 전 세계 50년 에너지 전략이 다 바다에 있어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맙습니다.”수민은 잔을 받아 들고 향을 맡아보다가 조금 놀랐다.수민이 좋아하는 와이너리의 술이었다.요즘 두 집안이 협업하면서 수민과 동건의 조우가 잦았다.하지만 대화는 늘 일 이야기뿐이었고, 사적인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그렇게 지내다 보니 예전처럼 날이 서 있지도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꽤 평온했다.적어도 보기에는 그랬다.동건이 말했다.“조 회장님과 사모님도 다 도착하셨어. 내가 모시고 갈게.”“응.”수민은 오늘 초록색 실크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부드러운 소재와 몸에 밀착되는 재단이 수민의 몸매를 또렷하게 드러냈다.동건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수민은 티팬티를 입고 있었고, 상의 안에는 어떤 보정도 없다는 걸.느슨하고, 자연스럽고, 위험할 만큼 대담했다.바로 옆을 걸으면서도, 동건은 감히 곁눈질도 하지 못했다.몸 옆에 늘어진 손이 서서히 말려 들어갔다.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고, 숨결도 그에 맞춰 들쭉날쭉해졌다.“조 대표님, 또 뵙네요!”젊은 남자가 다가왔다.수민을 바라보는 눈에는 감탄이 숨김없이 담겨 있었다.수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주 대표님, 정말 우연이네요.”“이렇게 등장하시니까 오늘 다른 여성분들 미모가 빛이 바랜 것 같습니다.”“그 말은 제가 감당하기 힘들어요. 혹시나 맞을까 봐 무섭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계시고, 형님도 계시고, 지인들도 많은데, 괜히 저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주호석은 시원하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 말이 좀 직설적인 편이라서요. 그냥 제 취향을 말한 것뿐이고 사람마다 보는 눈은 다 다르잖습니까.”수민은 속으로 생각했다.‘이 사람, 꽤 재미있네.’저렇게 받아쳤는데도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 간다.분위기도 어색해지지 않았다.그 옆에서 동건의 기분은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동건은 주호석을 알고 있었다.인터넷 업계에서 급부상한 인물로, 준수한 외모를 앞세워 마케팅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인물.온라인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