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음 날 오전.
대통령 집무궁.
World Harmony Fest 개막 하루 전.
한채린이 집무실에 들어오며 내민 것은 일정표가 아니었다.
강시온은 태블릿 첫 화면을 확인했다.
어젯밤 공연장 시스템에서 사라진 4초.
본 기록과 백업 기록 모두 복구되지 않았다.
“누가 지웠는지는요?”
“아직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강시온은 화면을 한 번 더 넘겼다.
“접근 권한을 전부 막으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하면 오늘 운영 자체가 멈춥니다.”
“필요한 사람만 남기고요?”
“이미 그렇게 조정했습니다. 문제는 어제 사용된 권한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강시온은 잠시 말이 없었다.
문을 잠그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대였다.
어디까지 들어왔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오전 8시 30분.국가정보원 지하 분석실.대형 모니터에는 World Harmony Fest 폭발 당시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그 앞에 국가정보원 실장 박은호가 말없이 서 있었다.모니터 앞에 선 요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실장님.”“폭발 장치 분석 결과입니다.”박은호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말해.”“현장 장치 자체는 복잡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설치 경로가 문제입니다.”화면이 바뀌었다.행사장 지하 운영 통로.설비함.출입 기록.삭제된 로그 일부.요원이 낮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외부 침입 흔적은 없습니다.”“정식 권한을 가진 내부자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입니다.”박은호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정식 권한.”“네.”“하지만 사용된 권한은 이미 삭제됐습니다.”“누군가 기록을 지웠습니다.”박은호는 말없이 화면을 넘겼다.최민규.삭제된 로그.사라진 USB.분석실 안이 조용해졌다.박은호는 뒤늦게 강시온의 영상을 다시 보았다.피 묻은 셔츠.붕대를 감은 팔.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손을 잡으라고 말하던 대통령.잠시 후.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이 대통령은.”“참 이상한 사
한채린은 천천히 서류를 내려다봤다.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상대가.""생각보다 훨씬 먼저 움직였습니다."회의실 안은 잠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한채린은 천천히 공문을 다시 내려다봤다.청문회 증인.첫 번째 이름.『대통령 비서실장 한채린』오민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비서실장을 먼저 부르겠다는 겁니까."한서준의 표정도 굳어졌다."대통령보다 먼저.""비서실장을 압박하겠다는 뜻입니다."한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분히 다음 장을 넘겼다.청문회 안건.행사 준비 과정.경호 계획.대통령 현장 투입 결정.비상 대응 체계.질문은 비서실장을 향하고 있었지만.답은 모두 대통령을 겨누고 있었다.회의실 안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이번 청문회는.사실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강시온을 흔들기 위한 첫 번째 정치 무대가 될 수도 있었다.잠시 후.강시온이 조용히 말했다."안 나가셔도 됩니다."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한채린이 그를 바라봤다."각하.""제가 요청하겠습니다.""비서실장을 증인으로 세울 이유는 없습니다."한채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제가 나가겠습니다.""하지만.""각하를 대신해서."시온은 말을 잇지 못했다.한채린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이번 공격은.""각하를 향한 공격입니다."
World Harmony Fest 10일차 마지막 날.오후 4시.대통령 집무궁.상황실.회의실 안은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모니터에는 폭발 사고 이후 상황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부상자 현황.현장 복구 상황.국내외 언론 반응.그리고.끊임없이 올라오는 속보.한서준이 새로 도착한 문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국회에서 공문이 왔습니다."강시온이 문서를 받아 들었다.첫 줄을 읽은 순간.회의실 안의 공기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국회 긴급 청문회 출석 요구』오민석이 작게 숨을 삼켰다."...생각보다 빠르네요."임태건은 아무 말 없이 시온의 표정만 바라봤다.한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출석 일정은.""내일 오전입니다."강시온은 문서를 덮었다."...예상했던 일입니다."한채린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아직 현장 수습도 끝나지 않았습니다.""연기 요청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한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자료가 부족합니다.""내부 협조자도 찾지 못했습니다.""성급하게 나가면.""공격만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회의실이 다시 조용해졌다.잠시 후.강시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니요."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가겠습니다."오민석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각하.""지금요?""네.""국민은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피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닙니
처음이었다.한채린이 이렇게 선명하게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그녀는 늘 차분했다.언제나 판단이 먼저였고.감정은 가장 뒤로 미뤘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그녀는 강시온이 공격받는 것을.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시온은 조용히 말했다.“한 실장님.”“네.”“저보다 화나신 것 같습니다.”한채린은 대답하지 못했다.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시온은 작게 웃었다.“그래도 든든합니다.”그 한마디에.한채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밖에서는 다시 기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비상 브리핑 요청.책임자 문책 요구.대통령 공식 입장 발표 요구.축제의 폭발은 끝났지만.이제 또 다른 폭발이 시작되고 있었다.정치라는 이름의 폭발이었다.그리고 그 중심에는.피가 마르기도 전인 강시온이 서 있었다.오후 1시.대통령 집무궁 브리핑실.수십 대의 카메라가 단상을 향하고 있었다.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기자들의 질문도 쉬지 않았다."대통령 경호 실패 아닙니까?""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은 누가 집니까?""내부 협조자가 있었다는 의혹도 사실입니까?"질문이 쏟아지는 가운데.강시온이 천천히 단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왼팔에는 아직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한채린은 단상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그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하지만
World Harmony Fest 10일차 마지막 날.오전 11시 20분.대통령 집무궁 임시 의료 구역.강시온은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의료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깊은 상처는 아닙니다.”“하지만 움직이면 다시 벌어질 수 있습니다.”시온은 팔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시선은 계속 의료 구역 밖으로 향해 있었다.아직도 복도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부상자 확인.대표단 대피.현장 통제.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한채린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각하.”“네.”“지금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잠깐만 확인하고 오겠습니다.”“안 됩니다.”짧고 단호한 말이었다.시온은 멈칫했다.평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였다.하지만 그 안에 숨은 감정은 차갑지 않았다.불안.걱정.그리고 화.한채린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시온 앞에 섰다.“이번에는 제 판단을 따르신다고 하셨습니다.”시온은 대답하지 못했다.그 말은 자신이 한 말이었다.“그러니 지금은 앉아 계십시오.”“한 실장님.”“사람들은 이미 대피 중입니다.”“대표단도 안전 구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레오나르드입니다.”짧은 웃음소리.“그럼 어디까지 지킬 수 있는지 보겠다.”스크린이 꺼졌다.동시에 행사장 곳곳에서 비상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사람들의 공포는 더 커졌다.하지만 시온은 고개를 들었다.“한 실장님.”“네.”“방송 할 수 있습니까?”“위험합니다.”“알고 있습니다.”“그래도 해야 합니다.”시온은 무대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한채린은 그의 피 묻은 소매를 바라봤다.잡아야 했다.막아야 했다.하지만.그가 지금 멈추면.저 수많은 사람이 더 무너진다는 것도 알았다.한채린은 이를 악물고 무전기를 눌렀다.“오 비서관.”“비상 마이크 연결하십시오.”“각하 발언 나갑니다.”잠시 후.끊기던 스피커에서 잡음이 흘렀다.그리고 강시온의 목소리가 행사장에 퍼졌다.“여러분.”그의 목소리는 완벽하지 않았다.숨이 조금 거칠었고.떨림도 있었다.하지만.사람들은 고개를 들었다.“뛰지 마십시오.”“서로 밀지 마십시오.”“지금 가장 위험한 건 폭발이 아니라.”“서로를 놓치는 겁니다.”비명 속에서 몇몇 사람들이 멈췄다.“옆 사람 손을 잡아 주십시오.”“넘어진 사람이 있으면 일으켜 주십시오.”“저희가 반드시.”“여러분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겠습니다.”한채린은 무대 아래에서 시온을 바라봤다.그의 셔츠 소매는 붉게 젖어 있었다.그런데도 그는.사람들에게 웃어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