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네가 새장을 싫어한다면, 세상 전체를 너의 새장으로 만들어주지.
더 보기북부의 겨울은 언제나 짐승의 아가리처럼 잔인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살을 에이는 듯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고,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성채를 짓눌러버릴 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복도는 그 날씨만큼이나 서늘하고 적막했다. 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횃불들만이 위태롭게 일렁이며 복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일라는 얇은 숄을 어깨에 두른 채, 숨 막히는 적막을 뚫고 대공의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야말로, 끝내야 해.'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목 위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지만, 아일라의 기억 속에는 달랐다. 이전 삶에서 그녀의 두 손목과 발목을 옥죄고 있던 차갑고 묵직한 황금 사슬의 감각이 여전히 피부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과거의 아일라는 북부대공, 카일락 에이든하르트의 완벽하고 순종적인 약혼녀였다. 그녀는 북부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오직 그만을 바라보며 웃었고, 그가 원하는 대로 숨을 죽이고 살았다. 하지만 그녀가 완벽한 인형이 되어갈수록 카일락의 집착은 기괴한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그는 아일라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참지 못했고, 외출을 금지했으며, 종국에는 빛조차 들지 않는 대공성 깊은 곳의 유리 온실에 그녀를 가두었다.
"나의 아름다운 아일라. 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저 여기서 나와 함께 숨만 쉬면 돼. 평생토록."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던 그 서늘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떠올릴 때면 아일라는 여전히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 숨 막히는 통제와 고립 속에서 아일라는 결국 정신이 무너져 내렸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그 끔찍한 생을 마감했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카일락과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기 1년 전으로 회귀해 있었다.
'두 번 다시 그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겠어.'
집무실을 향해 걷는 아일라의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지만,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이채를 띠고 있었다. 북부를 떠날 것이다. 저 미친 남자에게서 벗어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남부의 따뜻한 영지로 가서 온전한 내 삶을 살 것이다. 그것만이 이 지독한 운명에서 벗어날 유일한 구원이었다.
마침내 거대한 흑단목으로 만들어진 집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예를 갖추며 문을 열어주었다.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코끝을 찌르는 짙은 시가 향과 서늘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집무실의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과 붉은 융단,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거대한 집무 책상. 그곳에 북부의 지배자이자, 아일라를 파멸로 몰아넣었던 장본인인 카일락 에이든하르트이 앉아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뒤로 넘겨져 있었고,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 위로 떨어지는 붉은 눈동자는 감정의 동요를 전혀 읽을 수 없을 만큼 짙고 서늘했다.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깃펜을 움직이는 손가락은 조각처럼 길고 우아했다.
"아일라."
정적을 깨고 카일락의 낮은 목소리가 집무실 안을 울렸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아일라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 시간에는 방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어야 할 텐데. 날씨가 춥습니다. 이리 와서 앉으시지요."
그는 서류에서 시선을 거두고 아일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동자에 아일라의 모습이 담기는 순간,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다정하고 헌신적인 약혼자의 미소였겠지만, 아일라는 그 미소 뒤에 숨겨진 기괴한 소유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는 지독하게 정중하고 우아했으나,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적인 독니는 아일라의 잿빛 눈동자 속에서 완벽하게 해부되고 있었다.'교활한 늙은이 같으니.'아일라의 붉은 입술 사이로 서늘한 조소가 흘러나왔다.황제는 북부의 내부가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다. 바르토 백작의 고립, 카엘 자작의 배신, 그리고 기사단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군수 자금의 동결. 북부를 지탱하던 견고한 파벌들이 무너지고 가신들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는 이 이상 기류의 냄새를, 대륙의 가장 교활한 포식자가 놓칠 리 없었다.그래서 황제는 덫을 놓은 것이다.대공을 수도의 사열식으로 불러내어, 북부의 무력이 정말로 마비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건재한지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는 수작. 만약 카일락이 이 초청을 거부한다면, 황실은 북부의 군권에 심각한 내분이 생겼음을 확신하고 정당한 명분 아래 토벌대를 파견하거나 북부의 이권을 물어뜯으려 들 것이다.하지만 아일라의 이성을 가장 차갑게 벼려낸 부분은 서신의 마지막 구절이었다.'나를 함께 수도로 부르겠다.'황제는 북부의 폭군을 얌전하게 만든 정체불명의 여자, 갑작스럽게 권력의 중심에 나타난 아일라의 존재를 명확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폭군의 유일한 약점이자 목줄. 황제는 아일라를 수도로 끌어들여 인질로 삼거나, 그녀를 이용해 카일락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서늘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아일라. 표정이 왜 그래. 그 늙은이가 감히 네 심기를 거스르는 개소리라도 적어놓은 거야?"바닥에 엎드려 아일라의 눈치를 살피던 카일락이 낮게 으르렁거렸다."당장 그 종이 쪼가리를 찢어버려. 내가 수도를 불태우러 갈 테니까, 넌 여기서 나만 기다리고 있으면 돼.""아니요."아일라가 친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서늘하게 대답했다."이건 당신이 칼을 휘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내부의 적을 정리하기도 전에 마주한 외부의 거대한 포식자. 황실의 개입은 분명 아일라가 치밀하게 쌓아 올리던 방패에 균열을 낼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집무실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서늘한 긴장감으로 얼어붙어 있었다.창백하게 질린 기사단 부단장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들어 올린 서신. 그 위에 찍힌 황금빛 밀랍은 대륙의 심장부인 로젤 황실을 상징하는 화려하고도 오만한 문양을 품고 있었다. 수십 년간 북부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숨을 죽이고 눈치만 살피던 중앙의 권력이, 기어이 이 얼어붙은 설원을 향해 징그러운 촉수를 뻗어온 것이다."로젤의 늙은 황제 새끼가, 기어이 노망이 났군."카일락의 목구멍에서 짐승의 뼈를 긁어내는 듯한 기괴하고 흉포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방금 전까지 아일라의 허리를 안고 맹목적으로 체향을 들이마시던 그는, 외부에서 날아든 이 불경한 종이 쪼가리가 자신과 아일라의 완벽한 세상을 침범했다는 사실에 끔찍한 살기를 폭발시키고 있었다.스릉카일락의 커다란 손이 허리춤의 검자루를 거칠게 틀어쥐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바닥에 엎드린 기사단 부단장의 목덜미를 당장이라도 찢어발길 듯 번들거렸다."내 성벽 안으로 저딴 쓰레기를 함부로 들인 이유가 무엇이냐. 황실의 전령이 이 서신을 들고 북부의 국경을 넘을 때, 그 새끼의 사지를 잘라 국경선에 매달지 않고 내 눈앞까지 가져온 이유가 뭐냐고 묻고 있잖아!""주, 주군! 그것이, 황제의 친서를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로젤 황실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가 되옵기에……!""선전포고? 그게 두려워서 내 심기를 거스르겠다는 건가!"카일락이 짐승처럼 포효하며 장검을 뽑아 들려던 찰나였다."그만."아일라의 하얗고 차가운 손이 카일락의 억센 팔뚝을 가볍게 내리눌렀다. 단 하나의 짧고 서늘한 단문. 하지만 그 가벼운 통제 한 번에, 대륙을 피로 물들이려던 괴물의 살기는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멈춰 섰다.카일락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핏발 선 눈으로 아일라를 내려다보았다. 왜 자신을 말리느냐는 원망과,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는 맹목적인 복종이 기괴하게 뒤엉킨 짐승의 눈빛.아일라는 턱짓으로 기사단 부단장을 물렸다."두
유령 기사단의 자금줄이 완벽하게 끊기자, 횡령으로 배를 불리던 군부 수뇌부와 재무 장관 일파는 혼란과 극도의 공포에 빠졌다. 그들은 대공이 이 사태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얄팍한 명분을 내세워 재무부 실무진을 압박하려 했으나, 아일라의 통제 아래 있는 관료는 '대공의 명령'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단 한 닢의 은화도 내주지 않았다.궁지에 몰린 그들은 결국 썩어 문드러진 틈새를 스스로 벌리고 말았다."늙은 재무 장관이 결국 꼬리를 잘랐사옵니다."어둠이 내린 집무실, 관료가 은밀히 바친 보고서는 아일라의 예상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동부 능선의 기사단장이 독단으로 자금을 빼돌렸다는 거짓 자백서를 대공성에 바치고, 기사단장 본인은 어젯밤 영지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하옵니다. 그리고 장관은 그 죗값을 치르겠다며, 군수 자금의 배급 실무 권한을 재무부 관료인 소인에게 절반 넘게 이양하겠다는 타협안을 보내왔사옵니다."아일라의 하얀 손가락이 타협안이 적힌 양피지를 가볍게 쓸어내렸다.기사단장이라는 거대한 꼬리를 잘라 자신들의 치부를 덮고, 실무 권한의 절반을 내어주는 대가로 더 이상의 추궁을 막아보려는 늙은 여우의 처절한 몸부림. 하지만 그들이 내어준 그 '절반의 권한'은 에이든하르트 대장부를 둘러싼 견고한 성벽의 핵심 문빗장을 아일라의 손에 쥐여준 것이나 다름없었다."수고했어요. 당분간은 그 절반의 권한으로 실무를 옥죄며 장관 일파의 숨통을 말려두세요."무력으로 단숨에 목을 치는 대신, 가신들이 살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헌납하게 만드는 완벽하고도 잔혹한 포식자의 방식이었다. 카일락이라는 압도적인 흉기를 등 뒤에 세워둔 채, 북부 재정의 심장부가 그녀의 발밑으로 서서히 함락되어 가고 있었다."아일라."관료가 물러간 후, 집무실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카일락이 낮게 으르렁거렸다.그는 늪을 걷는 듯한 발걸음으로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아침은 묘하리만치 고요했다.어젯밤, 대공이 눈이 뒤집혀 미친 듯이 성을 휘젓고 다녔다는 소문이 하룻밤 새 핏빛 서리가 되어 가신들의 입방아를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 광포한 폭풍이 남긴 흔적이라고는 내실 화로에 쌓인 검은 잿더미와, 대공의 비호 아래 다시 서늘하게 자리 잡은 아일라의 모습뿐이었다.아일라는 집무실의 흑요석 책상 앞에 앉아, 잿빛 머리카락의 총괄 관료가 벌벌 떨며 새로 올린 양피지 뭉치들을 건조한 시선으로 훑고 있었다.그녀의 등 뒤에는 거대한 짐승이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다. 대공 카일락 에이든하르트. 그는 지난밤 밀실에서 벌어진 끔찍한 심리전의 여파로 짐승처럼 앓던 숨소리마저 완벽하게 죽인 채, 오직 아일라의 시선이 자신의 발밑을 향해 있다는 기만적인 안도감에만 매달려 있었다.아일라가 선고했던 '무력 없이 껍데기만 남은 자는 필요 없다'는 그 잔혹한 진실. 카일락은 자신이 아일라 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녀가 북부의 실권을 뜯어먹는 그 오만한 사냥을 방해 없이 뒷받침하는 '힘의 과시'로서 얌전히 존재해야 한다는 기괴한 속박에 짓눌려 있었다."전하, 어젯밤 주군께서…… 그, 서류들을 전부 불태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사옵니다만."관료가 식은땀을 흘리며 카일락의 거대한 그림자를 곁눈질했다. 유령 기사단의 횡령을 폭로할 결정적인 명분이 잿더미로 변해버렸으니, 대장부를 거머쥐려던 아일라의 사냥이 완벽하게 실패로 끝났다고 착각한 것이다."그래서요."아일라의 하얗고 차가운 손가락이 깃펜의 끝을 느릿하게 매만졌다."종이 쪼가리 몇 장 타버렸다고 해서 당신이 동결시킨 군수 자금의 흐름이 다시 열리기라도 한답니까?"관료의 어깨가 흠칫 튀어 올랐다."아, 아니옵니다! 한 번 동결된 은화는 전하께서 쥐신 새로운 금고로 완벽하게 묶여 있사옵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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