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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작가: 네입클로버
강지연은 뺨 위에 마르지 않은 눈물을 그대로 둔 채 눈앞의 사람들을 전부 공기처럼 지워버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가 갖고 있어요.”

등 뒤에서 떠들어대던 소란스러운 소리가 그 한마디에 싹 가라앉았다.

강지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하준아,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안 돼?”

“이하나, 설마 정말 너야?”

“미안해, 하준아. 난 그냥 강지연한테 장난 좀 치고 싶었을 뿐이야. 하준아, 내 말 좀 들어봐. 나 진짜 강지연을 죽이려던 건 아니야. 나는 그냥 도윤이와 도진이 대신 화풀이하고 싶었어. 회사에서 조금 망신만 주려고 그랬던 거야. 그래서 노유진한테 망고 주스 가져가라고 한 것뿐이야...”

그 대화는 회의실에서 불이 난 뒤 강지연이 구조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날 병실에 찾아온 이하나와 온하준이 나눴던 대화였다.

“이하나가 직접 말했어요. 노유진을 시켜서 망고 주스를 가져오게 한 사람은 자기라고.”

강지연이 또렷하게 덧붙였다.

“설마, 그걸 녹음한 거야?”

이하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김도윤과 온하준은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이 녹음, 왜 경찰한테 제출하지 않은 건데?”

말 그대로 강지연은 그때 이 녹음을 제출하지 않았다.

분노와 혼란이 뒤엉킨 와중에 이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래서 온하준이 데려온 변호인단도 이 패는 전혀 모른 채 아무 대처도 못 했던 거였다.

이하나는 다급해진 마음에 허겁지겁 변명을 쏟아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내가 너한테 망고 주스를 줬다는 건 알겠어. 근데, 그게 어때서? 불 난 거랑은 상관없잖아?”

“맞아!”

김도윤과 김도진이 곧장 맞장구를 쳤다.

“이하나는 그냥 네가 알레르기 때문에 망신이나 당하게 하려던 거지 불은 또 딴 문제잖아. 불이 어떻게 났는지는 너 말고 누가 알아?”

이 상황에서도 그 들은 온갖 더러운 물을 강지연 쪽으로만 끼얹고 있었다.

강지연은 아무 말 없이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었다.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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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27화

    잠시 뒤 휴대전화 화면에 알림이 떴다. 이제 막 탑승구로 향한다는 온하준의 문자였다.이제 그의 일정이 어떻게 흘러가든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던 강지연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직 하나, 내일이면 자신도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그녀는 새벽 네 시로 알람을 맞춰 두었다. 홍순자를 모시러 갔다가 곧바로 공항으로 가 이른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이제는 자야 했다.하지만 온하준은 멈추지 않고 다시 영상통화를 걸어왔다.강지연은 그가 아직 탑승 전이라면 받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결국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화면이 켜지자 비즈니스 라운지의 은은한 조명 아래, 소파에 기대앉은 온하준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웃으며 말했다.“자고 있었어? 내가 깨운 거야?”“응.”강지연은 노골적으로 귀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별일은 아니고 그냥 네가 뭐 하는지 보고 싶어서 걸었어. 방해 안 할 테니까 얼른 자. 난 이제 탑승 준비해야 해.”그가 말하는 사이 화면 한쪽으로 이하나의 얼굴이 쓱 끼어들었다. 그녀는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강지연, 미안해. 내가 사정이 있어서 일주일 뒤에는 시간이 안 되거든. 하준이가 어쩔 수 없이 나랑 먼저 섬에 가기로 한 거니까 화내지 마.”“괜찮아, 강지연은 화 안 내. 가자.”온하준이 강지연 대신 대답을 끝내고는 전화를 끊었다.강지연은 휴대전화를 한쪽으로 내던지고 다시 눈을 감았지만 푹 잘 수 없었다.뒤척이다가, 눈을 감았다 뜨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새벽 세 시 반에 완전히 포기하고 일어났다.간단히 씻고 옷을 입자 거의 네 시가 되어 있었다.문득, 떠나기 직전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던 온하준의 말이 떠올랐다.그리고 과연 온하준은 텅 빈 옷장을 보고 그녀가 완전히 떠났음을 알아차릴지 궁금했다.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둔 이혼 합의서와 편지가 대신 모든 걸 말해줄 테니까.마지막으로 그녀는 지난 5년을 보낸 집 안을 한 바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26화

    강지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헛소리하고 있네.’반면 온하준은 그저 한 번 내뱉은 말이었을 뿐 정말로 그녀에게 짐을 싸라고 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그는 방으로 들어와 먼저 샤워를 한 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짐을 다 싸놓고도 한동안 서성거리며 나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빨리 홍순자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던 강지연은 계속 방안에 버티고 서 있는 온하준이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안 꺼지고 뭐 해?”참다못해 그녀가 먼저 쏘아붙였다.“좀 부드럽게 말할 수 없어?”온하준은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풀고 있는 그녀의 뒤로 다가가더니 몸을 숙여 뒤에서 강지연을 끌어안았다.거울 속에는 그녀의 얼굴 옆으로 바짝 붙은 그의 얼굴이 나란히 비쳤다.강지연은 이제 온하준이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이하나의 향이 겹쳐 올라오는 것 같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몸을 살짝 웅크리려는 순간, 그의 팔이 더 세게 조여왔다.“남편이 먼 곳으로 떠나는데 잘 다녀오라는 말도 안 해주는 거야?”그가 귓가에 웃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지금까지 내가 정말 너무 착했지. 조금이라도 더 독했으면 지금쯤 유산 상속을 진행했을 텐데.’강지연은 거울 속 그의 얼굴을 노려보며 물었다.“내가 저주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너는 엄청난 재산을 가진 사람이잖아.”“너처럼 착한 애가 그럴 리 없잖아.”온하준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강지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만원으로 나를 먹여 살리겠다던 사람이 날 저주할 리 없잖아?”강지연은 온몸이 불편했고 동시에 알 수 없는 기분이 스쳤다.‘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12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다니. 그 시절, 자신을 좋아했던 나를 그토록 못마땅해하면서.’“강지연.”온하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자꾸 불안해. 가슴이 허전하고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아.”강지연은 잠깐 멈칫했다.‘일은 터지겠지. 하지만 내가 네 옆에서 사라지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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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24화

    온하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있잖아. 아니면 직원을 불러서 까 달라고 하면 되는데.”“난 그냥 게살 밥 먹을 거야. 대게 먹고 싶으면 네가 따로 시키면 될 거 아니야.”드문 고집이었다. 그를 위해 입맛을 맞춰 온 지난 5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강지연의 반응이 뜻밖이라 온하준은 잠시 멍해졌다.예전의 그녀라면 늘 그가 뭘 먹고 싶은지 먼저 물었고 그가 먹자면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며 뭐든 좋다고 하던 사람이었다.분위기가 평소와 달라 보였지만 온하준은 그저 가볍게 웃고 넘겼다.“게살 밥 한 그릇일 뿐이야. 우리가 그거 못 먹을 형편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그는 메뉴판을 덮고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이대로 주세요. 채소는 제철 나오는 걸로 하나 더 알아서 골라 주시고요.”강지연은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온하준이 괜히 살갑게 굴 때는 반드시 무언가 속셈이 있을 때였다.오늘도 그랬다. 느닷없이 단둘이 저녁을 먹자고 불러내고 또 유난히 그녀에게 이것저것 고르라며 다정한 척하는 건 분명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 전조였다.그녀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밥 먹는 동안만큼은 입을 열지 않기를.오늘은 그저 조용히 이곳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기분 좋게 끝내고 싶었다.다행히 온하준은 분위기를 깨지 않았다.강지연은 오랜만에 입맛이 돌았다. 물론 이 집 음식이 대부분 한 입 거리인 것도 한몫했다.이를테면 돼지고기볶음 한 접시에도 고기가 열점 남짓뿐이었고 둘이 나눠 먹으니 금세 접시가 비었다. 남은 건 걸쭉한 양념뿐이었다.그녀는 그 소스를 하얀 밥에 비벼 깨끗이 비워냈다.조금 더 먹고 싶었지만 게살 밥이 남아 있으니 굳이 욕심내지 않았다.그러나 온하준의 시선이 계속 거슬렸다. 그는 젓가락질하다 말고 틈만 나면 그녀를 힐끗거렸다.강지연은 모른 척 밥만 떠넣었다. 배가 완전히 불렀다고 느껴질 즈음에서야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속에 뭐 꿍꿍이 숨겨놨으면 그냥 말해.”온하준이 젓가락을 들던 손을 멈췄다.“말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23화

    “사모님, 이건 너무 많아요.”진경숙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당연히 드려야 할 돈이에요.”강지연이 담담히 말했다.“이번에 이렇게 크게 다치셨는데 두세 달은 제대로 일을 못 하실 거잖아요. 그동안의 손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연락하세요. 비록 해성에 없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도와볼게요.”얼마 지나지 않아 곧이어 온하준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어디야?”“병원. 아주머니 보러 왔어. 집이야?”강지연은 온하준이 이혼 합의서를 본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응, 집에 왔는데 네가 없더라고. 언제쯤 끝나? 내가 데리러 갈게.”“금방 갈 거야.”아직은, 못 본 모양이었다.“그러면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 바로 갈게.”“알았어.”원래는 이쯤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온하준이 온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오늘에는 왜 이렇게 일찍 퇴근한 거야?’“대표님이세요?”진경숙이 조심스레 묻자 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온하준한테 부탁해도 돼요. 그 사람 웬만한 일은 도와줄 거예요.”양심에 손을 얹고 말하자면 온하준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이하나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는 기꺼이 도움을 줄 사람이었다.무엇보다 진경숙의 삶에는 아직도 한 가지 불안이 남아 있었다.시골에 남아 있는 그 화근이 다시 들이닥쳐 그녀와 딸을 또다시 괴롭힐 수도 있었다.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던 진경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 사모님. 앞으로는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그럴 거예요.”강지연은 자신 있게 답했다. 바로 그 행복을 위해 그녀는 해성을 떠나고 이 사람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병원은 집에서 멀지 않았다. 십몇 분 뒤, 온하준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 또한 간단히 인사를 건네며 진경숙의 상태를 확인했다.시간이 조금 지나자 진경숙이 먼저 그들을 재촉했다.“와줘서 고마워요. 얼른 돌아가세요.”“그러면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필요한 게 있으면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22화

    전화를 받자 온하준 쪽에서는 회의가 막 끝난 듯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어지럽게 섞여 들렸다.목소리로 짐작건대 그는 막 회의실을 나가는 중인 것 같았다.“강지연, 비행기표 봤어. 우리 내일 점심에 은하시로 가는 거야?”“응. 은하시에 도착해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차 한 대 렌트해서 자가운전으로 가자.”강지연은 이미 모든 일정을 완벽하게 준비해 둔 사람처럼 태연하게 말했다.“좋네.”온하준은 주저 없이 응했다.“그런데 나를 차단한 걸 좀 풀어줄래? 뭐 좀 보내려고 해도 너무 불편해.”“알았어.”그제야 강지연은 지금까지 온하준과 전화와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그때, 온하준 옆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농담을 던졌다.“어이쿠, 누가 감히 우리 온 대표님을 차단까지 하나요?”곧이어 온하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손재민 씨, 우스운 꼴을 보였네요. 실수로 아내를 화나게 해서요.”손재민이라는 이름은 강지연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긴, 온 대표님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모님밖에 없죠.”“알았어, 강지연. 나중에 집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 여기 손님이 와서.”온하준은 짧게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내려놓은 뒤, 강지연은 짐을 어떻게 싸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이번에는 최대한 가볍게 나갈 생각이었다.가지고 나가는 물건이 적을수록 눈에도 덜 띄고 필요한 건 수도에 가서 새로 사면 됐다. 그래서 가방 하나에 중요한 물건만 간단히 챙겼다.그다음 해야 할 일은 이혼 합의서를 쓰고 온하준에게 남길 편지를 쓰는 것뿐이었다.합의서 작성은 어렵지 않았다.지금 그녀 통장에는 이미 열 자릿수를 넘긴 돈이 들어 있었기에 더는 온하준에게 손을 벌릴 필요가 없었다.해성에 있는 집 가운데 그녀 이름으로 된 것은 모두 다섯 채였다.지금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까지 포함해서였다.그중 네 채만 자신이 가져가고 현재 거주 중인 이 집은 두고 가기로 했다.이 집 비밀번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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