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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7화

작가: 네입클로버
다음 날 장시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언니, 오빠 오늘 오후 비행기로 귀국한대요. 저도 같이 가서 집에서 설 보내려고요. 언니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우리 내년에 봐요.]

강지연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답했다.

[그래.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그 뒤로 며칠 동안 강시우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전화로만 밖에서 처리할 일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했다.

강지연은 그가 이하나의 일을 마무리하고 있겠다고 짐작했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돌아온 그의 얼굴은 보기 드물게 흐트러져 있었다. 턱에는 수염이 거뭇하게 올라와 있었고 늘 쓰던 장식용 안경도 없었다.

단정하고 빈틈없던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제 끝났어. 완전히 정리됐으니까 걱정하지 마.”

샤워하고 수염을 깎은 뒤, 그는 다시 말끔한 차림으로 며칠간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장시범이 찾아왔던 그날 이하나는 체포되었고 그녀의 뒤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끝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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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09화

    강지연은 그의 말에 맞춰 봉투를 열었다.“파운드야, 아니면 원화야?”온하준은 숨을 고르듯 한 마디씩 힘겹게 말을 이었다.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얼굴이 미세하게 찡그러졌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강지연은 그런 온하준의 모습에 눈을 흘겼다.“힘들면 말하지 마.”온하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이 어디를 건드렸는지 잠깐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억지로 다시 펴졌다.“어떻게 말을 안 해. 하고 싶은데.”강지연은 봉투 안을 꺼내 보였다. 반듯한 오만 원권 지폐가 한 묶음 들어 있었다.“신사임당이네. 두툼하다. 완전히 명절 분위기 나지?”“그러네.”온하준은 한동안 그 돈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할머니는 항상 그랬어. 설 전에 새 돈으로 바꿔 놓고 우리 세뱃돈 봉투 준비하시고 몇 년은 일련번호까지 맞춰 넣어 주셨잖아.”홍순자만의 세심하고도 고집스러운 의식이었다. 강지연은 지폐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그때 온하준이 문득 물었다.“내가 설에 할머니께 돈 드리는 거 선 넘는 거야?”그녀의 손이 잠시 멈췄다. 결혼한 오 년 동안 그는 돈에 인색한 적이 없었다.설이면 받은 세뱃돈의 몇 배를 다시 돌려드렸고 평소에도 매달 생활비를 보탰다.그녀의 침묵을 오해했는지 그가 덧붙였다.“그냥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 너한테는 안 줄게. 그건 안 맞는 거 아니까.”강지연은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가 아직도 이런 걸 신경 쓰고 있을 줄은 몰랐다.문득 강지연의 머릿속에는 예전 설날 풍경이 떠올랐다. 할머니 댁 거실에서 나란히 앉아 동시에 그녀를 막내 취급하며 세뱃돈을 쥐여 주던 모습.“온하준.”그녀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너, 지금 돈이 얼마나 있어?”그는 눈을 살짝 치켜뜨며 웃었다.“왜? 아직도 내 돈에 관심이 있어?”강지연은 곧장 눈을 흘겼다.“누가 네 돈에 관심이 있대. 나는 그냥...”‘그냥 네가 돈도 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려는 건지 걱정돼서 그러지.’하지만 그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차라리...”강지연이 머뭇거리자 온하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08화

    온하준은 깨어 있었다.얼굴빛은 창백하다 못해 잿빛에 가까웠고 지난 몇 년 사이 급격히 마른 탓에 이불 아래의 몸은 굴곡조차 느껴지지 않았다.바람 한 번 스치면 그대로 부서질 것처럼 앙상하고 쇠락한 모습이었다.그러나 눈만은 달랐다. 그녀와 할머니를 보는 순간, 드물게 그의 눈동자에 빛이 어렸다.“할... 할머니...”떨리는 목소리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반짝임은 빛이 아니라 눈물이었다.홍순자가 침상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매우 아프니?”온하준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아니요... 안 아파요.”홍순자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집에서 싸 온 반찬을 침대 옆 탁자 위에 차곡차곡 올려두었다.“설이잖니. 외국이라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다지만 우리는 그래도 입에 맞는 음식은 먹어야지.”“감사합니다, 할머니.”목이 쉬어 한 마디를 꺼내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바보 같은 소리 말거라. 네 마음 다 아니까 힘들면 말 안 해도 된다.”홍순자는 돈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오늘은 섣달그믐이니 세뱃돈은 줘야지. 오래오래 건강하고 평안해지라고 주는 거다.”그 말에 온하준의 표정이 무너졌다. 눈을 감은 채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고 떨리는 입술 사이로 간신히 말이 이어졌다.“감사합니다. 할머니, 저... 꼭... 평안하게 오래오래 살게요.”한 문장을 말하는 데 온몸의 힘을 다 쏟아부은 듯했다. 홍순자는 휴지로 그의 눈가를 조심스레 닦아 주었다.“하준아, 울지 말고 얼른 나아. 그러면 할머니가 맛있는 거 해 줄게.”“네.”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할머니의 눈도, 그 뒤에 서 있는 강지연의 얼굴도 감히 마주하지 못하겠다는 듯.네 번째 봉투는 안나에게 건네졌다.“얘야, 우리나라에서는 설이면 어른이 용돈을 주기도 한단다. 이거 받아라. 내년에는 하는 일마다 잘되고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란다.”안나는 온하준을 바라봤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봉투를 받아 들고 공손히 인사했다.“저 그릇 좀 씻고 올게요.”빈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07화

    다음 날 장시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언니, 오빠 오늘 오후 비행기로 귀국한대요. 저도 같이 가서 집에서 설 보내려고요. 언니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우리 내년에 봐요.]강지연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답했다.[그래.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그 뒤로 며칠 동안 강시우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전화로만 밖에서 처리할 일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했다.강지연은 그가 이하나의 일을 마무리하고 있겠다고 짐작했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어느 날 밤 돌아온 그의 얼굴은 보기 드물게 흐트러져 있었다. 턱에는 수염이 거뭇하게 올라와 있었고 늘 쓰던 장식용 안경도 없었다.단정하고 빈틈없던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이제 끝났어. 완전히 정리됐으니까 걱정하지 마.”샤워하고 수염을 깎은 뒤, 그는 다시 말끔한 차림으로 며칠간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장시범이 찾아왔던 그날 이하나는 체포되었고 그녀의 뒤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끝내 말해 주지 않았다.“이하나는 그 사람 약점을 쥐고 도망 다니다가 귀국한 거야. 거기선 못 찾을 거로 생각하고 마음 편히 지냈겠지. 그런데 또 사고를 쳤잖아.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자 다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유럽으로 빼돌려 준 거야. 그러면서 계속 약점을 이용해 널 해치라는 명령을 내린 거고.”약점을 잡혔다는 사람도 결코 선한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강지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사람, 무서운 사람이에요?”강시우는 옅게 웃었다.“보통 사람들에겐 그렇겠지. 하지만 나한텐 아니야. 이제 다 끝났어.”강지연이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강시우는 손을 들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난 법 지키는 사람이야. 불법은 절대 안 해.”그 말에 강지연은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곧 설이잖아. 소원 같은 거 없어?”강시우가 웃으며 물었다.“이제 산타는 안 믿겠지만 선물은 줄 수 있어. 뭐든 말해. 오빠가 사 줄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06화

    이 감정이 끝난 뒤에도 상처가 남지 않기를, 더는 어떤 불씨도 남지 않기를 바랐다. 차갑게 밀어내고 단호하게 끊어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홍순자는 마지막만큼은 바람처럼 부드럽게 가라앉기를 원했다.“선배!”장시범의 외침이 한 번 더 울렸지만 차는 이미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아직 타지 않은 경호원을 붙잡았다.“나, 이하나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걸 까먹을 뻔했네.”경호원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장시범이 휴대전화에 적어 둔 주소를 보여 주자 경호원이 곧바로 사진을 찍었다.“잘 찍었어요? 빨리 사람 보내요.”“고맙습니다.”경호원은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즉시 강시우에게 보고했다.멀어지는 차량을 바라보는 장시범의 가슴은 텅 빈 듯했다. 이렇게 제대로 작별한 적은 없었다.어쩌면 그는 이런 작별을 일부러 피해 왔는지도 모른다. 끝까지 이별을 말하지 않으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닐 것 같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아직 여지가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언젠가 다시 만나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면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어리석게 믿고 싶었다.하지만 오늘 모든 것은 또렷하게 마무리되었고 이제 정말로 끝이었다.장시범은 천천히 돌아섰다. 속이 쓰리고 씁쓸하고 아프고 허전했다.‘강지연, 내가 사랑한 게 진짜 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분명 많이 사랑했어.’경호원은 장시범에게서 받은 정보를 강시우에게 전했다. 그가 왔다는 말을 듣자 강시우는 가장 먼저 강지연의 상태를 물었다. 별일 없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야 짧게 말했다.“알아. 이하나 위치는 이미 파악했어. 우리 쪽이랑 경찰이 다 출동했으니까 너희는 할머니랑 지연이 보호에만 집중해.”“네.”집으로 돌아왔지만 장시범의 정신은 여전히 흐릿했다.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그는 한참 동안 강지연의 집 대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한때는 아무 거리낌없이 드나들던 문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문이 되어 버렸다. 쓴웃음이 새어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05화

    “네가 그렇게 나를 바라보면 나는 결국 널 달랠 수밖에 없었어. 네가 다시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이 좋았거든.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사실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 오히려 힘들었지.”강지연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너도 알다시피 나한테는 단점도 많아. 네가 말한 다정함이나 이해심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야. 속은 자주 지쳤어. 나도 가끔은 너처럼 슬픈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싶었고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안기듯 기대고 싶었어. 나를 달래 주는 사람이 필요했어.”“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 선배가 그렇게 하면 내가 안아 줄 수도 있고 달래 줄 수도 있어.”장시범이 다급하게 끼어들자 강지연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그게 안 됐어. 네 앞에 서면 나는 늘 이해심 많은 누나가 되어야 했거든. 네가 서운해하면 달래야 했고 네가 삐치면 내가 먼저 감싸야 했어. 나도 네가 나를 달래 주길 바랐지만 막상 그러려고 하면 너무 어색했고 마치 연기하는 기분이 들었어.”그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장시범, 나는 네 앞에선 늘 이성적이었지. 그런데 사실 나는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이야. 알고 있었어?”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니까 넌 진짜 나를 모르는 거야.”낮고 잔잔한 목소리였다.“한동안 생각해 봤는데 어쩌면 우리 그때 그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어.”그 한마디에 장시범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울지 마.”강지연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 시간도 다 우리 인생의 일부였어. 이미 지나간 일이야. 이제는 서로 앞으로 나아가자. 언젠가 네 곁에 진짜로 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거야. 그때는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소중해서 백 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사랑하고 싶어질 거야. 오늘 죽어도 좋다는 마음이 아니라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다고 느끼는 사랑을 하게 될 거야.”“하지만...”장시범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난 아직도 선배가 그리워. 귀국하고 집에 돌아가도 항상 보고 싶었어.”“그건 당연해.”강지연은 부드럽게 답했다.“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04화

    장시범은 말을 잇다 결국 감정이 터져 버렸다.“선배, 그거 알아?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그랬으면 선배는 나를 좀 불쌍하게라도 봐줬을까? 고마워해 줬을까? 다시... 다시 받아 줬을까?”그의 눈에 익숙한 열기가 번뜩였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강지연의 가슴이 반사적으로 조여 왔다. 숨이 막히는 듯해 그녀는 차창을 조금 더 올렸다.“장시범, 그럴 수 없어. 우린 이미 헤어졌어. 난 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바라.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강지연은 더 이상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가 행복해지길 바랐다.“아니!”장시범은 울먹이며 소리쳤다.“그건 아니야! 선배는 이미 온하준을 용서했잖아. 병문안도 가고 걱정도 하잖아. 예전에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했으면서 이제는 다 용서하고 불쌍해하고 관심도 주잖아. 왜 선배를 구해준 사람이 내가 아니었을까? 왜...”‘왜’라는 말이 반복될 때마다 유리창이 둔탁하게 울렸고 강지연은 관자놀이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그때 홍순자가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천천히 두드리며 차 밖을 향해 부드럽게 불렀다.“시범아, 장시범.”낮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강지연의 통증이 조금씩 잦아들었고 장시범도 울음을 삼켰다.“할머니, 저는 정말 강지연을 사랑해요. 제 마음 아시죠?”“알지, 알고말고.”홍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마디에 장시범은 기댈 곳을 찾은 아이처럼 흐느꼈다.“저는 지연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어요. 할머니, 저는 정말... 정말 사랑해요.”홍순자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할머니도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하면 안 되는 거란다. 정말 사랑하면 오히려 죽으면 안 되는 거야.”장시범은 순간 말을 멈췄다.강지연은 홍순자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시 생각한 뒤 창문을 반쯤 내리고 눈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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