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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or: 월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서하영은 자신의 처소에 있는 익숙한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힘겹게 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침상 곁에 앉아 있는 하윤성이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하영이 깨어난 것을 확인하자, 하윤성의 눈빛에는 순간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

그는 곧바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평소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정신이 드느냐? 몸은 좀 어떠한가? 아직도 많이 아픈 것이냐? 의원을 다시 부를까?”

서하영은 눈앞의 하윤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한 그의 표정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고, 귓가에 닿는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무감각해져 있었다.

“아닙니다.”

서하영의 목소리는 처참할 만큼 쉬어 있었다.

하윤성은 순간 멈칫했다.

“허면... 몸이라도 추스를 수 있도록 사람을 시켜 인삼탕이라도 좀 달여 오게 하는 게 어떠냐?”

“됐습니다.”

“...혹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 주방에 일러 준비시키겠다.”

“괜찮습니다.”

거듭된 거절에 하윤성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라면 진작 불쾌한 기색을 보였을 텐데, 오늘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인내심을 보였다.

“허면 원하는 게 뭔가? 말해 보거라. 다 들어주겠다.”

서하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눈동자는 깊은 어둠 속에 잠긴 듯,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하윤성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길어질수록, 하윤성의 마음속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마침내 서하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방님께서 나가 주셨으면 합니다.”

하윤성은 순간 굳어졌다. 그는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방금... 뭐라 했느냐?”

“제 방에서 나가 달라고 했습니다.”

서하영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순간, 하윤성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어머니께 거짓말한 일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어머니께서는 평생 규율과 예법을 엄격히 지켜 오신 분이다. 만약 그날 쓰러진 사람이 예진이라는 것을 아셨다면, 결코 그냥 넘기지 않으셨을 것이다. 예진이는 이제 막 몸을 회복한 터라 벌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또한 이제 막 승상부에 들어온 만큼 어머니께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다. 나로서도...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하윤성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다. 허니 원하는 게 뭔지 말해 보거라. 먹고 싶은 것이든, 가고 싶은 곳이든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

하윤성은 진심으로 사과하려는 듯 말했다.

그 평소답지 않은 다정함 속에는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풀어보려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예전의 서하영이었다면, 그가 이렇게 달래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서러움도, 억울함도 금세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오랜 시간 상처받은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이제 와 건네는 그의 다정함은 오히려 허탈하고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서하영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서방님께서는 동생에게 가보십시오.”

그 말에 하윤성은 문득 화가 났다.

“예진, 예진... 또 예진이냐. 서하영,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어째서 계속 나를 예진이 곁으로 밀어내는 것이냐?”

“하윤성.”

서하영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서늘함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저는 나리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예전의 나리께서는 제가 나리께 매달리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지요. 나리를 두고 질투하는 것도, 사소한 일로 투정 부리는 것도 못마땅해하지 않으셨습니까. 해서 지금은 나리께서 원하시던 대로 하고 있습니다. 매달리지도, 질투하지도, 투정 부리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제가 먼저 나리를 고예진 곁으로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헌데 나리께서는 어찌... 되레 기분이 상하신 것입니까?”

하윤성은 그녀의 질문에 순간 멈칫했다.

무언가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끝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네, 난 대체 왜 기분이 상한 것일까?’

‘줄곧 그녀가 얌전히 본분을 지키고, 자신과 예진 사이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막상 눈앞의 그녀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모습으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느껴지자 하윤성은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히는 듯했다.

그 답답함은 그 자신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 나는 그저...”

하윤성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유를 찾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네가...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 같어서.”

“그렇습니까.”

서하영이 차갑게 웃었다.

“만약 나리의 하나뿐인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유배되어,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면... 나리 또한 달라지실 겁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힘겹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하윤성을 등진 채 이불을 끌어올렸다.

“피곤합니다. 쉬고 싶으니, 서방님께서는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하윤성은 침상 곁에 선 채, 끝내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서하영을 바라보았다.

마음속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는 알고 있었다.

서하영이 아직도 아버지의 일 때문에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늘 자신만 바라보던 서하영은 사라졌다.

자신의 눈짓 하나에 기뻐하고, 말 한마디에 상처받던 서하영은 더 이상 없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눈앞의 평온하고도 거리감 있는 서하영이었다. 마치 다음 순간이라도 미련 없이 떠나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낯선 사람처럼.

그 생각이 들자 하윤성은 불편함을 넘어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는 곧 스스로를 달랬다.

‘서하영은 나를 그토록 연모하니, 지금은 그저 마음이 상해 투정을 부리는 것뿐, 결코 자신을 떠날 리 없어.

더구나 내가 화리서를 써주지 않는 한, 그녀가 화리를 원한다면 반드시 철정형을 받아야만 해.

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그녀가, 작은 상처에도 눈살을 찌푸리던 사람이 어찌 그런 잔혹한 형벌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자 하윤성의 마음은 조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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