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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or: 월이
“허면 푹 쉬거라. 이따 다시 들르겠네.”

하윤성은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예진 곁에서 보냈다.

그럼에도 하루 한두 시진 정도는 서하영의 처소를 찾아왔다.

서하영이 매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그를 돌려보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윤성 대신 그의 서재에서 시중드는 측근 시녀 홍단이 찾아왔다.

그녀는 공손히 예를 올리고,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님, 나리께서 요 며칠 입맛이 없으시다며 갑자기 마님께서 만드신 칠교 화과자가 몹시 생각나신다고 하셨습니다. 해서 특별히 소인을 보내 마님을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마님께서 혹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서하영은 창가에서 난초 화분의 마른 잎을 다듬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 그녀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칠교 화과자는 과거 그녀가 그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궁에서 물러난 대령숙수에게 배운 음식이었다.

복잡한 공정과 까다로운 재료 선정 탓에, 한 번 만들 때마다 꼬박 반나절이나 걸렸다.

그때 하윤성은 한입 먹고는 드물게 칭찬 한마디를 건넸다.

“괜찮군.”

그 한마디에 그녀는 기뻐하며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법을 알려 달라고 했을 때만큼은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야 훗날 그가 다시 칠교 화과자가 생각나면 가장 먼저 그녀를 찾을 것이고, 그녀 또한 줄곧 그를 위해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바람이었다.

서하영은 손에 든 가위를 내려놓고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자네는 지금 나 따라 부엌으로 오너라. 그리고 내가 만드는 걸 곁에서 잘 보아 두거라. 만드는 법도 하나하나 익혀 두고.”

홍단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부엌으로 들어선 서하영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반죽을 치대고, 소를 만들고, 틀에 모양을 잡는 손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녀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과정마다 필요한 요령을 조용히 일러 주었다.

칠교판을 닮은 맑고 투명한 화과자 한 시루가 막 쪄져 나왔을 무렵에는 이미 오후가 되었다.

서하영은 화과자를 가지런히 식함에 담아 홍단에게 건넸다.

“만드는 법은 모두 익혀 두었느냐?”

홍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님. 모두 익혔습니다.”

“허면 됐다.”

서하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나리께서 다시 이 화과자가 드시고 싶으시면, 나를 찾지 말고 오늘 배운 대로 네가 직접 만들어 드리거라. 그리고 앞으로 나리의 의식주며 취향 또한 더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밖에서 하윤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 상관없다는 것인가?”

홍단은 화들짝 놀라 급히 예를 올렸다.

“나리께서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하윤성은 안으로 들어서며 식함을 힐끗 바라본 뒤, 서하영을 향해 말했다.

“만드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더구나. 예진이가 기다리다가 배가 고프다 해서 직접 와 보았소.”

서하영은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나, 먹고 싶었던 사람은 하윤성이 아니라 고예진이었어. 내가 고예진을 위해 안 만들어 줄까 봐, 자신이 먹고 싶다고 핑계를 댄 것이었어.’

예전이었다면 이런 수모를 당한 순간, 그녀는 분명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서하영은 달랐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식함을 내밀었다.

“만드는 법은 이미 홍단에게 일러 두었습니다. 앞으로 동생이 먹고 싶으면 홍단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어서 가져가세요. 동생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시고요.”

하지만 하윤성은 식함을 건네받지 않고, 미간을 찌푸린 채 서하영을 바라보았다.

“지금... 화과자를 만드는 법을 남에게 가르쳐 줬다는 것이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예전에 자신이 조리법을 물었을 때, 서하영은 얼굴을 붉힌 채 수줍게 웃으며 말한 적이 있었다.

“안 가르쳐 줄 거예요. 나중에... 서방님께서 또 드시고 싶어지시면, 결국 저를 찾으실 수밖에 없잖아요. 허면 저 또한... 평생 서방님을 위해 만들어 드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약조를 저버렸다.

이제는 자신이 아니어도 된다고, 다른 사람이 대신 만들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하윤성은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불안이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었다.

하윤성이 다시 입을 떼려는 순간, 홍단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나리, 둘째 마님께서...”

하윤성은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식함을 받아든 그는 서하영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서하영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물건과 귀중품만 하나씩 챙겼다.

떠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떠날 채비를 해야 할 때였다.

짐을 채 절반도 정리하지 못했을 때였다.

쾅!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하윤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고, 눈에는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일렁였다.

그는 들고 있던 식함을 서하영 앞에 거칠게 내팽개쳤다.

“서하영! 화과자에 대체 무엇을 넣은 것이냐?! 예진이가 한입 먹자마자 배를 부여잡고 복통을 호소했다. 의원이 맥을 짚어 보더니 독에 중독되었다고 하더구나! 네가 이리도 독한 사람이었더냐! 그 아이는 그저 화과자 하나 먹고 싶어 했을 뿐인데, 헌데 그 아이를 죽이려 들다니!”

식함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뚜껑이 열리며 화과자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정성껏 빚은 화과자는 바닥을 구르다 이내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서하영은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차분한 눈으로 하윤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변명하지도, 억울하다고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가 말을 모두 쏟아낸 뒤에야 담담히 입을 열었다.

“서방님의 시녀 홍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곁을 지켰습니다. 재료를 손질할 때부터 화과자가 완성될 때까지 단 한순간도 자리를 비운 적이 없습니다. 그런 홍단이 지켜보는 앞에서 제가 무슨 수로 독을 넣었겠습니까?”

서하영은 잠시 말을 멈췄다. 이내 입가에 아주 옅은 비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제가 제 손으로 제 죄를 입증할 증거를 남길 만큼 어리석어 보이십니까? 하윤성, 그대처럼 영민한 사람이라면 이 일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쯤은 진즉 알아차렸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고예진을 너무 아끼신 나머지, 그녀의 말이라면 의심 한 번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냥 절 벌하십시오.”

하윤성은 그녀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그게 지금 무슨 태도냐! 우리는 부부다. 예진이가 네가 만든 것을 먹고 변을 당했는데, 내가 너를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 네가 하지 않았다면 해명하면 될이다. 허면 내가 직접 네 억울함을 풀어주겠다!”

“해명이요?”

서하영이 나직이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눈에 닿지 않았다.

“좋습니다. 허면 제가 직접 보여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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