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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Autor: 꽃솜
석가산 뒤의 목소리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늦가을 찬바람이 얇은 옷깃을 파고들어서야 김수정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몸을 돌려 처소로 향했다. 그 걸음에는 어느 때보다도 굳은 결심이 담겨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더는 이곳에 허비할 수 없었다.

막 자신의 거처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그림자가 다가왔다.

이현이었다.

그녀가 돌아오자, 이현은 삼 년 전 상국사에서처럼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수정아, 어디 다녀온 것이냐? 밤바람이 차가운데 몸도 약하지 않느냐."

이현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려 했다. 하지만 김수정은 티 나지 않게 몸을 피했다.

이현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눈빛에 잠시 당혹감이 스쳤지만,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네 마음이 상했다는 건 안다. 첩으로 들이려는 것도 내 본심은 아니다. 모두 어쩔 수 없는 방편일 뿐이야."

이현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부드러웠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십수 년을 함께 자라온 사이가 아니냐. 지금은 그저 세간의 입을 막기 위한 것뿐이니 소란이 잠잠해지면 네게 마땅한 지위와 영예를 돌려주마."

예전 같았으면 김수정은 아직도 이현의 마음속에 자신이 남아 있다고 믿으며 감동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다정한 말들이 그저 우스꽝스럽게만 들렸다.

"전하께서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에는 원망도 기쁨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피곤해서 이만 쉬고 싶습니다."

이현이 준비해 온 말들은 그녀의 담담한 한마디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는 낯설게 변한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눈앞의 김수정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그는 입을 열어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김수정은 이미 그의 곁을 지나쳐 갔고 그를 홀로 남겨 두었다.

......

다음 날, 경성에서 가장 이름난 달향각에서는 대공주 이선이 다례를 열었다. 경성의 이름난 아가씨들이 모두 모였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당연히 곧 셋째 황자비가 될 김서월이었다.

김서월은 연보랏빛 비단 치마를 입고 대공주 바로 아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줍은 표정으로 셋째 황자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주변 아가씨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연신 그녀를 추켜세웠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던 그때, 김수정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그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던 계화떡을 사러 왔을 뿐인데 공교롭게도 이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상서(尚書) 집안 아가씨가 비웃듯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한때 경성에서 이름을 날리던 김수정 아가씨 아닙니까? 임씨 집안도 몰락했는데, 아직도 이런 자리에 얼굴을 들이밀다니요?"

다른 아가씨도 웃으며 거들었다.

"언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분은 이제 셋째 전하의 첩이 되실 분입니다. 다만, 첩은 대공주의 다례에 참석할 자격이 없지 않습니까?"

독한 말들이 김수정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자 김서월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김수정을 감싸는 척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언니들,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김서월은 김수정에게 성큼 다가가 친한 척하며 그녀의 팔을 잡으려 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언니, 여긴 어쩐 일입니까? 이곳은 평범한 자리가 아닌데 괜히 왔다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드시고 싶은 게 있으셨다면 제가 가져다드렸을 텐데요. 굳이 직접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겉으로는 걱정하는 말 같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김수정의 처지를 비웃는 말이었다.

김수정은 이번에도 그녀의 손길을 담담히 피한 뒤, 점원에게 말했다.

"저 계화떡 포장해 주게."

김서월의 얼굴에 순간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김서월은 금세 표정을 가다듬고 눈시울을 붉혔다.

"언니, 아직도 절 원망하시는 겁니까?"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가 저와 함께 전하의 후실이 돼서 억울하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우린 친자매잖아요. 앞으로는 제가 언니를 잘 보살피겠습니다."

"자매?"

김서월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김수정이 덤덤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김수정은 마침내 고개를 돌려 연기에 빠진 이복여동생을 똑바로 바라봤다.

"어머니께서는 딸을 나 하나만 두셨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김수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네게 능력이 생겼으니, 어머니부터 모셔 가 직접 돌보는 게 어떠하겠느냐. 그러면 병도 금세 나을지 누가 알겠느냐."

말이 끝나자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유씨가 김서월 때문에 미쳤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김서월 역시 그 덕에 효녀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김수정이 사람들 앞에서 친어머니를 모셔 가라고 하다니. 거절하면 불효가 되고, 받아들이자니 미친 사람을 곁에 두고 어떻게 예비 황자비의 체면을 지킬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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