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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맑은 눈에 사무친 원망을

그대 맑은 눈에 사무친 원망을

By:  서홍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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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가 아이를 더 원하고 있다.” 소무경은 그녀의 침의를 벗기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수태가 잘되는 몸이니, 아이를 하나 더 갖도록 하거라.” 열 달 뒤, 서하연은 딸을 낳았다. 산파는 탯줄을 자르자마자 포대기조차 만져보지 못하게 하고는 아이를 안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벌써 두 번째였다. 궁 안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황후가 과거 폐하를 따라 전장을 누비다 몸을 상하여 더는 자식을 품을 수 없는 처지가 되지만 않았어도, 이 궁에 다른 여인이 들어올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태사(太師)의 적녀인 서하연은 그저 때를 잘 타고나, 황실의 대를 잇기 위해 이용되는 '씨받이' 에 불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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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장

3년 전 황자를 낳았을 때도 매한가지였다.

아이의 핏기 어린 얼굴조차 보지 못한 그녀를 두고, 소무경은 친히 아이를 품에 안고 나가며 그저 냉랭한 한마디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이 아이는 이제부터 황후의 적장자다. 네가 감히 다른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는 울부짖으며 매달릴 기력이 남아있었다. 침상에서 내려가 아이를 쫓아가려 발버둥 치다 시녀들에게 무참히 짓눌리면서도 목을 놓아 소리를 지르곤 했었다.

그 처절한 발악 끝에 그녀가 배운 것은 궁의 법도였다. 게다가 매일 아침 봉의궁으로 가 문안 인사도 올렸다. 오직 가리개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의 숨소리라도 훔쳐듣기 위해.

소무경은 처음에는 이를 묵인했으나, 이내 황후가 ‘황자의 정서에 안정이 필요하다’고 넌지시 읊조리자 그녀는 두 번 다시 아이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두 번째 아이마저 빼앗겼다.

서하연은 오물이 묻은 산실의 침상 위에 멍하니 누워있었다. 마치 혼이 통째로 빠져나간 빈 껍데기처럼. 이제는 정말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산후조리 기간도 채 끝나지 않았건만, 봉의궁의 상궁이 찾아와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문안 인사를 거르지 말라며 전갈을 보냈다.

그렇게 서하연은 채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봉의궁으로 향했다.

황후 유해원은 공주를 품에 안고 어르고 있었다. 그러다 서하연의 창백한 안색을 보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왔느냐? 숙비(淑妃)의 낯빛이 이리도 험악하니, 내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모양인게로구나.”

“그런 불충한 마음은 품은 적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황후는 아이를 유모에게 넘겨주며 느릿하게 옷소매를 정리했다.

“궁에 들어왔으면 네 본분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지. 폐하께서 너를 맞아들이신 것은 태사의 명망을 높이 보시고 문신들을 장악해 조정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너는...”

그녀는 말을 멈추고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저 아이를 낳는 도구일 뿐이다. 내게 황자와 공주를 낳아 바치는 것, 그것만이 네 유일한 가치란 말이다.”

전각 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황후는 돌연 웃음기를 거두었다.

“방금 들어올 때 보니 미간을 찌푸리더구나. 감히 본궁을 향해 불경한 마음을 품은 게지. 마당에 나가 무릎을 꿇고 정신이 맑아질 때까지 자성을 하거라.”

박석 바닥 위로 눈이 점차 쌓여갔다.

서하연은 차디찬 눈밭 위에 강제로 꿇려 앉혀졌다.

가만히 전각 안을 들여다보니, 황후는 방금 태어난 지 한 달 된 그녀의 딸을 안고 부드럽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 능숙한 몸짓은 마치 진짜 친어머니 같았다.

무릎의 감각이 저릿한 통증에서 마비로, 이내 완전한 무감각으로 변해갔다. 시야가 검게 흐려지려 할 때쯤, 태감의 날카로운 전갈이 울려 퍼졌다.

“폐하 납시었사옵니다.”

곤룡포 자락이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쳐 전각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어찌 저 사람을 눈밭에 꿇려둔 것이오?”

소무경의 목소리였다.

황후는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교태를 부렸다.

“신첩은 그저 궁의 법도를 조금 가르치려 했을 뿐인데, 저리도 병약한 척 가련하게 굴지 뭡니까.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신첩은 무장 가문 출신이라 성정이 곧아 음흉한 꾀를 부릴 줄 모릅니다.”

정신을 잃기 전, 소무경의 무심한 한마디가 서하연의 귓가에 꽂혔다.

“그만두시오. 여봐라, 어서 처소로 메어 가도록 하거라.”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짙게 깔린 황혼녘이었다.

소무경은 침상 머리에 앉아있다가, 그녀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찌푸렸던 미간을 폈다.

“깨어났느냐? 어의 말이 산후 조리 중에 몸이 허해진 데다 한기까지 들어 그렇다더구나. 황후도 악의 없이 한 행동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거라.”

서하연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한때 그녀의 규방 시절, 꿈속을 누비던 전장의 영웅이었다. 그녀는 그를 위해 시를 짓고,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영웅은 눈앞에서 용포를 입은 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로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었다.

“신첩, 잘 알고 있사옵니다.”

잔잔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파문도 일지 않았다.

“황후마마께서는 폐하의 조강지처이시니 신첩이 공경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원망하는 마음을 품겠습니까.”

한 자, 한 자가 지극히 평온하고 공손했다.

소무경은 순간 멈칫했다.

그의 기억 속 서하연은 이런 여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채 제발 아이를 보게 해달라며 그에게 애원하곤 했고, 거절당하면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때면 그녀의 눈동자 속 빛은 조금씩 흐려져만 갔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썩어 문드러진 고인 물처럼 고요할 뿐이었다.

“아이의 일은....”

소무경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라도 찾아내려 애쓰는 듯한 기색이었다.

“황후의 밑에서 자라면 적장자가 되는 것이니, 향후...”

“아이에게는 과분한 복이지요.”

서하연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심지어 입가에는 엷은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지만, 시리도록 차가운 미소였다.

“신첩의 신분이 비천하거늘, 황후마마께서 길러주신다니 이는 폐하와 마마의 지극한 은덕이옵니다.”

은덕이라.

소무경은 목구멍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마침 전각 밖에서 태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황후마마께서 친히 인삼탕을 달이시어 눈 오는 날 한기를 쫓으라 청하옵니다. 황자 전하께서도 폐하를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소무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 위의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서하연은 어느새 눈을 감은 채, 다시 잠든 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문가로 걸어가다 말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숙비, 황후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 내 늘 마음의 빚이 있다. 너는 사리에 밝은 사람이니 내 뜻을 헤아려 주길 바란다. 몸을 잘 추스르거라.”

그는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었다.

“다음에 다시 수태를 한다면, 그때는 필히 네 곁에 두고 키우게 하겠다.”

서하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천장을 바라보며 멀어져 가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곁을 지키고 있던 시녀 청아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폐하께서 옥좌에 오르신 지 세 해가 지났더냐?”

“예, 마마.”

“천하는 태평하느냐.”

“북방은 평안을 되찾았고, 남방의 수환 역시 모두 다스려졌사옵니다. 조정 내부에서는 태사 대감께서 문관을 통솔하며 무관들과 소소한 조율을 거치고 있으나, 대세는 더없이 안정적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서하연은 마침내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겨울날 매서운 바람 끝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처럼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그거면 되었다.”

그녀가 속삭였다.

“내 드디어, 죽을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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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3년 전 황자를 낳았을 때도 매한가지였다.아이의 핏기 어린 얼굴조차 보지 못한 그녀를 두고, 소무경은 친히 아이를 품에 안고 나가며 그저 냉랭한 한마디만을 남겼을 뿐이었다.“이 아이는 이제부터 황후의 적장자다. 네가 감히 다른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될 것이다.”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는 울부짖으며 매달릴 기력이 남아있었다. 침상에서 내려가 아이를 쫓아가려 발버둥 치다 시녀들에게 무참히 짓눌리면서도 목을 놓아 소리를 지르곤 했었다.그 처절한 발악 끝에 그녀가 배운 것은 궁의 법도였다. 게다가 매일 아침 봉의궁으로 가 문안 인사도 올렸다. 오직 가리개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의 숨소리라도 훔쳐듣기 위해.소무경은 처음에는 이를 묵인했으나, 이내 황후가 ‘황자의 정서에 안정이 필요하다’고 넌지시 읊조리자 그녀는 두 번 다시 아이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하게 되었다.그리고 지금, 두 번째 아이마저 빼앗겼다.서하연은 오물이 묻은 산실의 침상 위에 멍하니 누워있었다. 마치 혼이 통째로 빠져나간 빈 껍데기처럼. 이제는 정말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산후조리 기간도 채 끝나지 않았건만, 봉의궁의 상궁이 찾아와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문안 인사를 거르지 말라며 전갈을 보냈다. 그렇게 서하연은 채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봉의궁으로 향했다.황후 유해원은 공주를 품에 안고 어르고 있었다. 그러다 서하연의 창백한 안색을 보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왔느냐? 숙비(淑妃)의 낯빛이 이리도 험악하니, 내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모양인게로구나.”“그런 불충한 마음은 품은 적 없사옵니다.”“그렇다면 다행이구나.”황후는 아이를 유모에게 넘겨주며 느릿하게 옷소매를 정리했다.“궁에 들어왔으면 네 본분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지. 폐하께서 너를 맞아들이신 것은 태사의 명망을 높이 보시고 문신들을 장악해 조정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너는...”그녀는 말을 멈추고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그저 아이를 낳는 도구일 뿐이다. 내게 황자와 공주를 낳아 바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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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삼 년 전, 첫아이를 빼앗기던 그날 밤, 서하연은 죽음을 생각했다.서하연은 태사의 외동딸로, 어려서부터 시서에 능통해 도성 안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새 황제가 즉위하여 조정이 어지럽지 않았다면, ‘문신은 마땅히 황제와 뜻을 같이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궁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터였다. 본래대로라면 내로라하는 사대부가에 시집가 시와 술을 나누며 평생을 고귀하고 자유롭게 살았을 목숨이었다.입궁은 서하연이 원한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새 황제는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했기에 조정이 불안했고 백성들의 삶도 안정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는 문신들의 영수였고, 이 혼인은 군신 간 동맹의 상징이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교지를 받들었다.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스스로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은밀한 기대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폐하, 소무경을 연모했으니까.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온 장수, 반란을 진압한 영웅. 대전 위에서 당당하게 백관의 조하를 받던 그의 영명한 모습을 연모했었다. 그리하여 은밀한 기대를 품고 궁궐로 들어온 것이었다. 적어도 한 자락의 진심은 얻을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임신 네 달째 되던 날, 후원의 가산 뒤에서 소무경이 황후에게 건네는 말을 훔쳐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황후, 안심하시오. 짐의 마음속에는 오직 그대뿐이오. 하연이는 그저 황실의 대를 잇기 위한 씨받이일 뿐이니, 아이가 태어나는 대로 황후의 슬하로 데려와 키우게 할 것이오.”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그녀의 모든 환상을 찢어발겼다. 그날 밤, 그녀는 침전에서 날이 샐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밤을 지새우곤 했었다. 그러나 눈물은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그녀는 영웅에게 시집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바둑돌이자, 아이를 담는 그릇에 불과했을 뿐.죽고 싶었으나, 그때는 나라의 기틀이 겨우 잡혀가던 차라 조정이 지극히 불안했었다. 게다가 후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불효이자 큰 죄이니 아버지에게 누를 끼칠 것이요, 가짜 죽음으로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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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그날 밤 소무경이 처소로 찾아온 것은 자시(子時)가 가까워진 무렵이었다.이제 막 자리에 들려던 서하연은 전갈을 듣고 서둘러 겉옷을 걸쳤다. 지밀시녀인 청아가 머리를 얹어주려 서두르자, 서하연은 가만히 손을 내저었다.“괜찮다.”매서운 밤바람을 날것으로 품고 들어선 소무경은, 속적삼 차림에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서하연을 보자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폐하를 뵙옵니다.”서하연이 고개를 숙이며 엎드려 예를 갖추었다.“일어나거라.”소무경은 탁상 옆에 가 앉으며 스스로 찻잔을 채웠다.“황후가 공주의 이름을 정했다. 하은이라 하기로 하였지. 짐이 생각하기에, 그래도 네가 명색이 생모인데 네 뜻도 물어보아야 마땅할 듯싶어 왔다.”서하연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공주 전하의 어머니는 황후마마이시옵니다. 마마께서 지으신 이름이니 어찌 좋지 않겠사옵니까.”찻잔을 쥔 소무경의 손가락 끝에 핏기가 가셨다. 고요한 전각 안, 화로 속의 숯이 툭 하고 튀는 소리만이 적막을 깰 뿐이었다.“네가 그리 생각해주니 다행이구나.”소무경은 들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오늘 네 처소에 들른 것은, 또 다른 연유가 있어서다. 황자가 올해로 세 살이 되었으니 이제 글공부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 스승은 황후가 친히 가려 뽑을 것이다.”서하연은 그저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소무경은 잠시 말을 고르듯 뜸을 들였다.“하여… 짐의 생각엔, 네가 앞으로는 황자를 멀리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생모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괜한 분란이 생길까 염려스러워서 그러는 거다. 그저 황후만을 유일한 어머니로 알고 자라는 것이, 모두에게 평안한 길이 아니겠느냐.”그제야 서하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빛바랜 촛불 아래, 그녀의 눈동자는 깊은 가을의 못물처럼 잔잔하여 그 어떤 파문도 일지 않았다.“신첩, 폐하의 뜻을 따르겠나이다.”그 말에 소무경은 순간 짜증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차라리 매달려 울기를 바랐다. 예전처럼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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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이튿날, 동틀 녘의 푸르스름한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이었다. 봉의궁의 상궁이 예고도 없이 서하연의 처소로 들이닥쳤다.어젯밤 폐하가 숙비의 처소를 나서실 때 기색이 몹시 좋지 않으셨으니, 이는 필시 숙비가 시중을 제대로 들지 못해 폐하의 성심을 어지럽혔음이 자명하니 황후가 친히 황실의 규율을 가르치겠다는 전갈이었다.길에는 밤새 내린 눈이 얄팍하게 깔려 있었고, 벼려진 칼날 같은 아침 삭풍이 살을 감쌌다.서하연이 봉의궁 전각 앞 광장에 다다랐을 때, 황후 유해원은 여우 털 가죽옷을 걸치고 화로를 품에 안은 채 회랑 아래 안락하게 앉아 있었다.“숙비는 정녕 제 죄를 모르겠느냐?”유해원이 느긋하고도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황후뿐만이 아니었다. 아침 문안을 온 몇 명의 후궁들과 그곳을 지나던 시녀, 태감들까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숙비가 어제 폐하께 대들며 심기를 어지럽게 만들었다는데, 그것이 정녕 사실인 것이냐?”황후는 상석에 곧게 앉아 아무 말 없이 호갑을 까딱이며 만질 뿐이었다.서하연은 무릎을 꿇으며 답했다.“신첩, 결단코 그런 적 없사옵니다.”“없다고?”유해원이 코웃음을 쳤다.“본궁의 귀가 먹은 줄 아느냐? 폐하께서 어젯밤 네 처소를 나서실 때 안색이 몹시 참담하셨다 들었다. 너는 황제를 모시는 비첩으로서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진노하시게 만들었으니 그 죄를 어찌 다스려야 마땅하겠느냐?” “신첩이 어리석고 둔하여 그러하오니, 마마께서 명확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어리석고 둔해? 본궁이 보기엔 둔한 게 아니라 딴마음을 품은 게지!”유해원의 목소리가 순간 서슬 퍼렇게 돌변했다. “어제 폐하께서 옥보를 굽혀 너를 보러 가셨거늘, 너는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감히 폐하를 노하게 하여 발길을 돌리시게 만들었다! 이것이 네 서가에서 배운 예법이더냐? 경성 제일의 재녀라 불리던 네 교양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이냐!”서하연은 고개를 숙인 채, 길게 늘어진 소매 속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보아하니 여전히 불복하는 낯빛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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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이곳에서 무슨 소란이냐?”공기를 찢는 묵직한 호통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소무경은 어느새 궁문 앞에 서 있었다. 조회를 방금 마친 듯, 조복조차 갈아입지 못한 차림새였다.그의 시선이 얼음장 같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뺨이 붉게 부어오른 서하연에게 머물렀다. 이어 잔뜩 독기를 품은 유해원의 얼굴을 바라보던 소무경의 미간이 깊게 비틀렸다.유해원은 소무경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낯빛을 바꾸었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기다렸다는 듯 억울한 척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폐하, 숙비의 오만방자함을 좀 보시옵소서! 신첩이 그저 약간의 훈계를 더했을 뿐이거늘, 저 아이는 제 아비인 서태사의 권세를 들먹이며 신첩을 핍박하였습니다! 구구절절 말대꾸를 일삼으며 행실을 뉘우칠 기색조차 보이지 않기에 신첩이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소무경은 서하연의 얼굴에 남은 상흔을 가만히 응시했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 위로 선명하게 돋아난 붉은 종창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소무경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미세한 통증이 밀려왔다.하지만 이내 눈물을 흘리는 유해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가 끝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황후의 상처. 그 지독한 부채감이 가슴속 통증을 순식간에 짓눌러 버렸다.그는 궁인들이 보는 앞에서 황후를 문책하여 그 위엄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소무경은 서하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음성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숙비, 정녕 네 죄를 모르겠느냐? 황후가 육궁을 관장하며 후궁들을 훈육하는 것은 마땅한 본분이거늘, 감히 윗사람을 능멸하고 황후를 진노케 하였으니 그 죄를 어찌 감당하려 하느냐?”서하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바닥에 깔린 잔설보다 차가웠고, 살을 에이는 삭풍보다 날카로워 소무경의 가슴 깊은 곳을 찔러왔다. 원망도, 애원도 없었다. 오직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황량한 깨달음만이 그 맑은 눈동자에 넘실거렸다.서하연은 천천히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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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출궁을 앞두고, 소무경은 장신궁을 찾았다. 마당에서 볕을 쬐고 있던 서하연은 그의 기척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법을 갖추었다. “짐은 서산에 사흘간 머물 것이다. 너는... 몸을 잘 추스르고 있거라.” 서하연의 여전히 붉게 부어오른 뺨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무슨 말인가를 덧붙이려던 소무경은 끝내 입술을 다물며 말을 삼켰다. “신첩, 폐하를 배웅하옵니다.” 소무경은 한동안 미동도 없이 서 있더니 소매 안에서 자그마한 백자 병 하나를 꺼내 놓았다. “어혈을 가라앉히는 고약이다. 바르거라.”서하연은 그것을 받아들었으나, 끝끝내 그의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소무경의 발걸음이 멀어졌다. 서하연은 손에 쥔 백자 병을 가만히 응시했다. 멀리서 들려오던 가마 행렬 소리가 완전히 잦아들어 침묵만이 남았을 때, 그녀는 마침내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그때, 바닥에 부딪힌 백자 병이 처참하게 깨어지며 걸쭉한 약고가 사방으로 흘러내렸다. “마마!” 청아가 비명을 지르며 다가왔다. “치우거라.” 서하연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사흘 뒤.궁내에 은밀한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숙비가 입궁하기 전, 마음 깊이 연모하던 정인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시를 주고받으며 가약을 약속했던 수려한 공자가 있었다고. 얄궂은 간택령만 아니었다면 필시 대륙이 칭송할 가약이 되었을 것이라는 살이 붙었다. 소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숙비가 궁에서 한 폭의 초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그림 속 준수하고 풋풋한 소년은 단연코 폐하가 아니었다는 구체적인 목격담까지 돌았다. 그렇게 추문은 마른 벌판의 들불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육궁을 집어삼켰다.그날 오후, 황후는 궁의 기강을 바로잡고 해괴한 유언비어를 척결하겠다는 구실로 서하연을 장신궁에서 자신의 처소인 봉의궁으로 압송하듯 불러들였다. “감히 황후를 더럽히고 궁을 모독하다니. 서하연, 네 년이 정녕 미친 것이냐.” 유해원의 음성은 낮았으나 문장마다 서슬 퍼런 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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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서쪽 산에 위치한 주둔지에서 경성까지는 삼백 리나 떨어져있었다.소무경은 가마마저 내팽개친 채 군마에 올랐다. 오직 수십 명의 병사들만 거느린, 무모하기 짝이 없는 밤샘 질주였다. 궁문에 당도했을 때, 하늘은 짙은 새벽빛에 잠겨 있었다. 장신궁이 있는 방향에선 여전히 검은 연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사방에 매캐한 탄내가 진동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장신궁으로 폭주하듯 직진했다.화마는 이미 진압된 뒤였다. 그러나 아름답던 편전은 타버려 검게 그을린 뼈대만 남았고 몇 군데의 대들보와 기둥에서는 여전히 허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곤 했다.한편, 궁인과 태감들은 마당에 무릎을 꿇은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숙비는.”소무경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찢겨 있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이 잿더미가 된 폐허를 훑었다.“숙비는 어디 있느냐.”그때, 내시총관이 사지를 바들바들 떨며 머리를 조아렸다.“폐하... 불길이 워낙 순식간에 번진 탓에 발견했을 때는 이미 편전이 모두...” “내가! 숙비는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느냐!” 소무경은 눈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태감의 가슴팍을 거칠게 걷어찼다.“너희같이 미천한 것들은 사지 멀쩡히 살아 나왔거늘, 어찌 숙비가 나오지 못했다는 말이냐! 어찌!” 나가떨어진 태감이 붉은 피를 토해내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침묵 속, 맨 뒷줄에 꿇어앉아 있던 어린 궁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폐하, 살려주시옵소서. 어젯밤 황후마마께서 궁을 봉쇄하여 그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문을 지키는 상궁이 황후마마의 명령을 받고 막아섰으니 저희는 구하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궁을 봉쇄해?”소무경이 홱 돌아섰다.“황후가 왜 장신궁을 봉쇄한단 말이냐?” 사방이 죽은 듯 고요해졌다. 오직 잔해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새벽바람만이 구슬프게 울 뿐이었다. “말하라!” 그때, 한 늙은 태감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황, 황후마마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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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설령 무정하게 버림받을지언정,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으리.’이 글귀를 적어 내릴 때 그녀는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언젠가 자신이 냉정하게 버려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그래서 끝내 버림받더라도, 적어도 사랑했던 마음만큼은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걸까.“짐은 황후와 약조한 바가 있다.” 그날 밤 그가 잔인한 말을 뱉어낼 때, 이 화폭을 홀로 바라보았을 그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폐하...”유해원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그녀는 다급히 손을 뻗어 그의 소매를 붙잡으려 했다. “신첩은 이 화폭에 그려진 이가 누구인지 정말 몰랐사옵니다...”“정녕 몰랐단 말이냐?” 소무경이 거칠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붉게 충혈된 눈이 그녀를 향했다.“유해원, 이 화폭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게냐! 이 글귀를 보란 말이다! 이것이 대체 뭐가 궁을 어지럽히는 추문이란 게냐? 여기에 그려진 것은 바로 짐이다!”소무경은 화폭을 유해원의 발치로 내던졌다.“말해 보거라. 짐의 초상화를 숨겨두고 밤낮으로 연모한 것이 무슨 죄가 된다는 것이냐?”유해원이 몸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윽고 입술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신첩은 그저 궁인들 사이에 도는 소문을 듣고...”“소문?”소무경이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는 것보다도 더 처절한 웃음소리였다.“고작 몇 마디 소문 때문에 숙비에게 곤형을 내리고 궁을 폐쇄했단 말이냐?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을 편전에 가두어 불길이 치솟는 순간에도 도망치지 못하게 해?” 그는 검게 그을린 폐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목소리는 이미 쉰 지 오래였다.“유해원, 두 사람의 목숨이었다! 아이를 낳은 지 겨우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몸이었어! 네 원망이 대체 얼마나 깊었기에, 기어이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했느냐!”“신첩이 불을 지른 것이 아니옵니다!”유해원이 비명을 지르듯 날카롭게 소리쳤다. “사고였습니다! 그저 우연히 일어난 화재란 말입니다!” “우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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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소무경은 그 화폭을 건청궁으로 가져왔다.그는 전내에 불을 몇 개나 더 밝히게 한 뒤 침전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화폭을 걸었다. 화폭 속 소년 장수는 말을 몰며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예리한 눈빛과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한 기상.그것은 삼 년 전의 소무경이자 동시에 서하연의 눈에 새겨진 그의 모습이기도 했다.지금의 그는 용포를 입고 차가운 용상 위에 앉아 있었다.하지만 화폭 속 소년에게 있던 그 눈부신 생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그는 모든 시종을 물리고 홀로 등불 아래 앉아 화폭을 바라보았다.한참을, 아주 오랫동안.그러다 어느 순간 시야가 흐려지더니 수많은 기억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막 입궁했을 무렵의 서하연은 어원의 매화 가지를 꺾어 화병에 꽂아두곤 했다. 가냘픈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건네고, 연회 때면 저를 남몰래 훔쳐보다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첫아이를 가졌을 때의 서하연의 모습도 눈에 선했다.그녀는 조심스레 아랫배를 감싸 쥔 채 물었다.“폐하, 황자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공주를 바라십니까?” 그때 무어라 답했던가. “황후가 황자를 원하니, 황자이면 좋겠구나.” 그 말에 서하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하지만 끝내 웃으며 말했다.“신첩 역시 황자이기를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폐하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윽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는 손수 처소로 들어가 아이를 빼앗아 안았다. 서하연은 울면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왜냐고 물었다.어째서냐고.그때의 소무경은 냉정하게 대답할 따름이었다.“이 아이는 이제부터 황후의 적자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거라.”그제야 서하연은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그리고 그 순간.눈동자에 남아 있던 마지막 빛도 함께 사라졌다.그날 이후였다.그녀는 다시는 황자가 좋은지 공주가 좋은지 묻지 않았다. 어원의 매화를 꺾는 일도, 연회에서 제 눈치를 살피며 훔쳐보는 일도 없었다. 그녀는 황실의 법도를 익혔고 공순함을 배웠으며 가장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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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경성 교외, 서가의 별원.깊은 밤, 사방이 적막에 잠겼으나 서재만큼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서기백은 의자에 앉아 눈앞의 딸을 바라보았다. 늘 냉철하고 날카롭던 눈빛 속에 오늘만큼은 짙은 고통과 분노가 일렁였다.서하연은 소박한 소복 차림이었다.얼굴의 붓기는 가라앉았으나 안색은 여전히 핏기 없이 창백했다. 스치듯 지나는 바람에도 고꾸라질 것처럼 가냘픈 자태였다. 등에 입은 상처는 겨우 약을 바르고 붕대로 고정해 둔 상태라 미세한 움직임에도 뻣뻣하게 굳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버지.”서하연이 나지막이 부르자 서기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의 앞으로 다가간 그는 손을 뻗어 뺨을 어루만지려다 차마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춰 섰다. 조정을 호령하며 천하의 패권을 논하던 거침없는 손이었다. 그런 손이 지금은 부들부들 떨리며 차마 제 딸을 만지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었다. “... 이 아비 잘못이다.”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너를 궁으로 보내는 게 아니었다. 내 품에서 떠나보내도 너 하나는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다. 폐하께서 적어도 내 체면을 보아서라도, 너를 귀하게 여겨 줄 거라 믿었거늘.”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내가 너무 순진했다.”“아버지 잘못이 아닙니다.”서하연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덤덤했다. “그 당시 조정은 위태로웠고 문무관의 대립은 극에 달했습니다. 아버님께서 저를 입궁시키신 것은 대국을 위한 결단이자 천하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이해한다고?” 서기백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삼 년을 그렇게 참고 견딘 것이냐. 강남을 순찰하던 이 애비의 귀에는 네가 궁에서 평안히 잘 지낸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네가 눈밭에 무릎 꿇려 모욕을 당하고, 핏덩이 같은 아이를 빼앗기고, 뺨을 맞다 못해 곤장까지 맞은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이다! 이 애비가 눈이 멀었고 무능했다!” 울분을 토해내는 서기백의 목소리가 끝내 물기 어린 소리로 갈라졌다. 조정의 백관을 쥐락펴락하며 천자조차 예우를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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