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hor: 물결
아들의 울음 섞인 말을 듣자 소지연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다시 품에 돌아온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눈물을 쏟았다.

“곧 떠날 거야, 유안아. 엄마가 정말 곧 데리고 갈게. 아무도 우리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가자. 다시는 누구도 너를 해치지 못하게.”

최유안을 겨우 달랜 뒤, 소지연은 아이를 안고 세 시간이나 산길을 걸었다.

발과 다리에는 물집이 터져 피가 배어 나왔고, 온몸은 풀잎과 나뭇가지에 긁혀서 상처투성이였다.

바닥에 찧은 이마에는 피딱지가 엉겨 있었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소지연은 마지막 힘을 내서 버티면서 아들을 데리고 집까지 돌아왔다.

문을 열자 최재빈이 이채은 모자와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최재빈은 직접 새우 껍질을 벗겨 이채은의 접시에 올려 주고, 한시원이 싫어하는 파와 마늘은 하나하나 골라내며 밥을 먹였다.

두 사람이 먹다 남긴 간식을 건네도 거리낌 없이 웃으며 받아먹었다.

기진맥진한 데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소지연은 멀리서 한 가족처럼 다정한 세 사람을 바라봤다.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방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최재빈이 차갑게 불러 세웠다.

“앞으로 유안이에게서 떨어져 있으라고 했지. 또 어디를 데리고 다닌 거야? 아이 상태가 왜 이래?”

오히려 자신을 나무라는 말을 듣자, 그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졌다.

“유안이 이렇게 다치고, 그동안 온갖 일을 겪은 게 정말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당신 때문인지 몰라서 묻는 거야?”

“유안이 앞도 못 보는데 당신은 시원이 뜨거운 걸 쏟고,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걸 계속 내버려 뒀어! 오늘은 산 절벽에 혼자 버려졌다고!!”

“내가 찾아가지 않았으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했을 수도 있어. 자기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관심도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따져!!”

소지연이 울면서 쏟아 낸 말에 최재빈도 흠칫하며 표저이 굳어졌다.

최유안의 몸에 새로 생긴 상처들을 본 최재빈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을 열려는데, 이채은이 억울한 표정으로 먼저 끼어들었다.

“시원이 아직 어리고 워낙 활발해서 힘 조절을 잘 못했을 뿐이야. 그래서 유안이가 다친 거지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야.”

“혼자 있는 유안이가 안쓰러워서 같이 놀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오늘 체험학습에서도 유안이한테 꽃을 따다 주려다가 시원이 발목까지 삐었어. 내가 너무 놀라서 유안이를 잠깐 잊어버린 거고...”

이채은은 몇 마디 말만으로 모든 일을 가벼운 실수처럼 만들어 버렸다.

최재빈의 관심도 곧바로 한시원에게 향했다. 허리를 숙여 한시원의 다리를 살피는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발목을 삐었으면 왜 바로 말하지 않았어? 많이 다쳤어? 아직도 아파? 지금 병원 가자.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겠어.”

최재빈은 걱정스러운 말을 이어 가며 한시원을 안아 들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급히 멀어지는 최재빈의 뒷모습과 품 안에서 지쳐 늘어진 상처투성이 아들을 번갈아 보면서 소지연은 코끝이 시큰해졌다.

울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최유안을 안고 안방으로 돌아간 소지연은 상처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치료했다.

잠이 든 뒤에도 최유안은 계속 울먹이며 엄마를 불렀다.

소지연은 아이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빨리 갔으면...’

소지연은 이 모든 일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영원히 사라지고 싶었다.

그 뒤 며칠 동안 최재빈과 이채은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소지연은 두 사람이 어디 있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아들을 돌보면서 한편으로는 떠날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했다.

지난 이혼 때 받은 재산은 여러 차례에 나눠 생활 여건이 어려운 산간 지역을 돕는 단체들에 기부했다.

그중 일부만 아무도 모르는 별도 계좌로 옮겨서, 모자의 새 생활에 쓸 돈으로 남겨 뒀다.

최유안의 진료 기록과 검사 결과도 모두 복사해 두었다. 훗날 다시 검사와 치료를 받을 때 필요할 자료였다.

SNS 기록과 메시지, 통화 내역까지 전부 지워서 자신들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당신을 용서한 그날부터   제21화

    최재빈이 갑자기 웃었다. 웃음 속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씁쓸함이 가득했다.떨리는 손으로 정장 단추를 풀더니 셔츠까지 거칠게 걷어 올렸다.왼쪽 배를 가로지른 흉터가 길게 남아 있었다. 두껍고 울퉁불퉁한 상처는 보기에도 섬뜩했다.봉합 자국도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아서 붉게 부어 있었다.“지연아, 유안아. 이것 좀 봐...” 최재빈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나 정말 신장 기증 수술을 받았어... 내가 진짜 잘못했다는 걸 알아. 이걸로 조금이라도 갚은 게 될까?”“나한테 기회를 한 번만 주면 안 돼? 용서해 주면 안 될까?”임이안은 겁을 먹고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임지연은 아들이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 채 최재빈의 불안정한 표정을 바라봤다. 마음 한쪽이 싸늘해졌다.“다음 주에는 눈 수술도 받을 거야. 내가 유안이 눈을 빼앗았으니까 내 눈도 내놓을게.” 최재빈은 비틀거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 표정에는 광기에 가까운 절박함이 어려 있었다.“이 정도면 돼? 이러면 너희가 다시 돌아올 수 있어?”“지연아, 대답해 줘. 제발 말 좀 해!”더는 참지 못한 심주현이 앞으로 나서면서 최재빈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하게 때렸다.퍽!최재빈은 그대로 넘어져서 빗물이 고인 바닥에 처박혔다.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그런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웃음소리가 빗소리와 뒤섞이면서 텅 빈 거리에 퍼졌다.“이제 알았어...” 최재빈은 얼굴의 피와 빗물을 손으로 닦았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면서 남자의 목소리에는 깊은 무력감이 묻어 있었다.“그날 네가 그렇게 말한 건 그냥 나를 쫓아내려고 한 거였구나. 너희는 평생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고...”“최재빈.” 임지연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혹시 알아?” 아들의 눈을 가리던 손을 내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생각했어. 당신도 우리가 겪은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하고.”최재빈의 눈동자가 크게

  • 당신을 용서한 그날부터   제20화

    그날 최재빈을 단호하게 돌려보냈지만, 그 뒤 보름 동안 임지연은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다.임이안을 유치원에 데려다줄 때마다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몇 번씩 확인했다. 퇴근길에 뒤에서 발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돌아봤다.한밤중에 악몽을 꾸다 깨어나는 날도 있었다. 최재빈이 찾아와 아들을 빼앗아 가는 꿈이었다.임지연은 알지 못했다. 최재빈은 매일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아침에 임지연이 집을 나설 때도, 임이안을 유치원에 들여보낼 때도, 늦은 퇴근길에 혼자 걸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최재빈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멀리서 모자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러던 어느 날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고, 임지연은 늦은 시간까지 야근했다.대중교통 운행마저 중단되어 결국 눈보라를 뚫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그때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다가오지 마!” 임지연은 곧바로 몸을 돌려 호신용 스프레이를 앞으로 겨눴다.최재빈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검은 코트에는 눈이 가득 붙어 있었고, 손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우산이 들려 있었다.“나는 그냥... 우산을 주려고 왔어.” 최재빈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을 혐오하듯 바라보는 임지연의 눈길에 가슴이 쓰라렸다.“그런데... 네 곁에 있던 그 남자는 왜 이런 날에도 너랑 이안을 혼자 두는 거야?”임지연은 스프레이를 최재빈의 눈 쪽에 정확히 겨냥한 채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이제 내 앞에서 사라져. 얼굴만 봐도 역겨우니까.”“하지만...” 최재빈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붙잡으려 했지만 임지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멀어졌다.그리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오래도록 임지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최재빈은 마침내 뭔가 결심한 듯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사라졌다.그 뒤 최재빈은 정말 임지연 앞에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현관 앞에 정체를 알 수 있는 물건들이 가끔 놓여

  • 당신을 용서한 그날부터   제19화

    새벽 3시, 북유럽의 작은 마을에는 눈이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최재빈은 사진에서 확인한 하얀 목조 주택 앞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검은 코트 위에는 두꺼운 눈이 쌓여 있었다.속눈썹에는 하얀 서리가 맺혔고 손가락은 추위에 자줏빛으로 변했지만, 최재빈은 불이 켜진 2층 창문만 집요하게 바라봤다.창문 너머로 임지연이 임이안에게 잠들기 전 읽어 줄 동화책을 펼치고 있었다.“엄마, 주현 아빠는 언제 돌아와?” 임이안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물었다.“주현 아빠는 요즘 다른 지역에 일이 있어서 갔어. 며칠 뒤에 돌아올 거야.” 임지연은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대답했다.불을 끄기 전 임지연은 습관처럼 창밖을 한번 바라봤다.그 한 번의 시선으로 숨이 멎을 듯이 굳어졌다.눈밭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알아볼 수 있었다.최재빈이었다.‘어떻게 여기를 찾아왔어?’‘이름도 바꾸고 이렇게 멀리까지 떠나왔는데...’‘대체 어떻게 우리를 찾은 걸까?’임지연은 두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지난 5년 동안 겪었던 끔찍한 기억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덮치면서, 몸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엄마?” 임이안이 잠결에 엄마를 불렀다.“아무것도 아니야. 자자.” 임지연은 떨림을 억누르며 창문을 잠그고 커튼을 닫았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참지 못해 커튼 사이로 계속 밖을 확인했다.최재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깨와 머리 위로 눈이 잔뜩 쌓여 있어서, 멀리서 보면 얼어붙은 조각상 같았다.임지연은 그날 밤 내내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날이 희미하게 밝아 오자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관 앞에서 오랫동안 망설이며 문을 열지 못했다.하지만 위층에서 잠든 임이안을 생각하자 더는 피할 수 없었다.문을 여는 동시에 찬바람과 눈발이 집 안으로 밀려들었다. 가슴도 함께 차갑게 식었다.최재빈은 정말 밤새 문 앞을 떠나지 않고 서 있었다.“지연아...” 입술이 파랗게 질린 최재빈이 갈라진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두 눈은 붉게

  • 당신을 용서한 그날부터   제18화

    그날 이후 최재빈은 집에서 과거 CCTV 영상을 계속 돌려봤다. 자신이 소지연 모자를 수도 없이 오해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보상하려고 했지만... 이미 사과할 기회조차 사라진 뒤였다.최재빈은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집 안에 틀어박혔다. 세 사람이 함께 살았던 공간과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소지연의 흔적만 매일 바라봤다.그제야 자신이 모자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깨달았다.두 사람을 믿어 준 적도 없었고 제대로 걱정하거나 돌봐 준 적도 없었다.영상 속에서 마른 몸으로 끊임없이 집안일을 하던 소지연과 차갑게 외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칼로 베이는 듯했다.술로 정신을 흐리지 않으면, 밀려드는 절망을 버티며 하루를 보내기도 어려웠다.그러던 어느 날, 집사가 겁먹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최재빈은 며칠째 제대로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도 않은 상태였다. 집 안에는 독한 술 냄새가 가득했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어. 나가!”최재빈이 차갑게 소리쳤다.“대표님... 사모님이 살아 계신 흔적을 찾은 것 같습니다!”최재빈은 벌떡 몸을 일으키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집사를 바라봤다. 믿기 어렵다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말도 안 돼. 그날 내가 직접 두 사람의 시신을 봤어...”“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지?”말을 하는 동안에도 목소리와 몸이 계속 떨렸다.집사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어 갔다. “사모님께서 예전에 생활이 어려운 산간 지역 아이들을 위해 후원금을 보내신 적이 있습니다. 어제 그쪽 단체에서 집으로 감사 편지가 왔습니다.”“자세히 알아보니 사모님께서 후원하던 아동 지원 사업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쓰시던 계좌에서는 더 이상 돈이 나가지 않지만...”“해외 계좌 하나에서 지금도 정기적으로 후원금이 입금되고 있습니다.”최재빈의 눈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아왔다. 믿음이라기보다 광기에 가까운 희망이 차올랐다.“정말이야?”“그럴 줄 알았어. 나는 알고 있었

  • 당신을 용서한 그날부터   제17화

    그 무렵, B시.이채은은 고급 브랜드 매장에서 가방을 고르고 있었다.새로 나온 악어가죽 가방에는 수천만 원대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지만, 이채은은 망설이지 않고 직원에게 포장해 달라고 했다.한시원은 옆에서 이채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계속 떼를 썼다.“엄마! 나 저 로봇 사 줘! 어제 사 준다고 했잖아!”“알았어. 사 줄게, 다 사.” 이채은은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린 채 건성으로 대답하고 카드를 내밀었다.최재빈에게 받은 가족카드를 바라보며, 오늘 밤에는 어떻게 말해야 새 차까지 받아낼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최재빈’이라는 이름을 본 이채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응, 재빈아?” 전화를 받은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럽고 다정했다.“나 지금 시원이랑...”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평소의 다정함도 애정도 없었다.[지금 집으로 돌아와.]최재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무슨 방법을 써서든 30분 안에 내 앞에 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이채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재빈이 나에게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거야?’‘설마 뭔가 알아낸 건가?’‘그럴 리가 없을 텐데...’크루즈선 CCTV는 돈을 써서 이미 지웠고, 소지연 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모든 일은 빈틈없이 끝났어야 했다. 그날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엄마?” 한시원이 짜증을 내며 이채은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내 장난감 언제 사 줄 건데!”머릿속이 복잡해진 이채은은 아이를 달랠 여유도 없이 손을 잡아끌고 급히 매장을 나섰다.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차창 밖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운전대를 너무 세게 쥔 나머지 손톱이 핸들 가죽을 파고들 정도였다. 이채은은 마음속으로 계속 자신을 달랬다.‘괜찮아. 재빈이 알 리 없어.’집 문을 열고 들어간 이채은은 평소 환하게 밝혀져 있던 집 안이 어둠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 당신을 용서한 그날부터   제16화

    임이안이 퇴원하는 날, 심주현은 직접 차를 몰고 모자를 데리러 왔다.병실 문 앞에 선 심주현은 흰 가운 대신 짙은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해바라기 모양의 작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아저씨!” 기뻐하며 달려간 임이안이 심주현의 다리를 끌어안았다.아이와 눈높이를 맞춰서 앉으면서 심주현이 부드럽게 물었다. “눈은 아직 아파?”임이안은 얌전히 고개를 저었다. 눈을 감싼 붕대 끝을 살짝 들추자 아직 붉은 기운이 남은 눈가가 보였다.심주현은 아이의 볼을 아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앞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아저씨가 데리러 와서 같이 검사 받으러 갈까?”짐가방을 든 채 옆에 서 있던 임지연은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그렇게까지 하면 선배가 너무 힘들지 않아요?”“이게 뭐가 힘들어?” 심주현은 임지연이 든 가방까지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다.“어차피 가는 길도 비슷한데.”임지연은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병원은 도시 동쪽 끝에 있고 자신들이 사는 곳은 서쪽 끝이었다. 같은 방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었다.그래도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심주현이 임이안을 뒷좌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꼼꼼하게 매 주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차는 사람이 거의 없는 넓은 거리를 지나갔다. 임이안은 창가에 붙어서 길가의 순록 조형물이 몇 개인지 세고 있었다.심주현은 룸미러로 아이를 한 번 바라본 뒤 임지연에게 말했다.“다음 주 수요일이 내가 쉬는 날이야. 그날이면 이안도 눈에 감은 붕대를 완전히 풀 수 있어.”“그러니까 검사 끝나고 셋이 놀이공원에 갈까?”임지연은 난처한 듯 눈썹을 살짝 모았다. 심주현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겨우 얻은 휴일에 아이까지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면 심주현은 제대로 쉬지도 못할 것이다.“걱정하지 마, 지연아. 수술 잘 끝난 기념이라고 생각하면 돼.” 심주현은 운전대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대학 다닐 때 네가 말했잖아. 언젠가 가정을 꾸리면 아이랑 자주 밖에 놀러 다니고 싶다고. 가능하면 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