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소지연은 마침내 최재빈이 자신을 사랑할 일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다. 더는 헛된 기대에 매달리지 않기로 한 그녀는 결국 이혼을 선택했고, 아들 최유안의 손을 잡고 최재빈의 곁을 떠났다. 그런데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관계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늘 차갑고 무심하기만 했던 최재빈이 뒤늦게 그녀를 붙잡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의 냉담함은 온데간데없이 매일같이 소지연을 찾아와 용서를 구했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아들과 함께하며 서툰 방식으로 빈자리를 채워 갔다. 크고 작은 깜짝 선물까지 준비하며, 잃어버린 두 사람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두 사람을 지키려다 결국 납치범의 칼에 찔려서 생사까지 오가게 되는 최재빈. 아들의 간절한 바람 앞에서, 굳게 닫혀 있던 소지연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최재빈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다시 부부가 된 그날. 이번에는 정말 모든 불행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소지연과 최유안이 탄 차가 사고를 당했다. 십여 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소지연은 신장 하나를 잃었고, 아들 유안은 두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리고 사고 다음 날. 아들의 손을 잡고 진료실 앞을 지나던 소지연은, 우연히 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그녀가 믿었던 모든 것이 다시 무너져내렸다.
View More최재빈이 갑자기 웃었다. 웃음 속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씁쓸함이 가득했다.떨리는 손으로 정장 단추를 풀더니 셔츠까지 거칠게 걷어 올렸다.왼쪽 배를 가로지른 흉터가 길게 남아 있었다. 두껍고 울퉁불퉁한 상처는 보기에도 섬뜩했다.봉합 자국도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아서 붉게 부어 있었다.“지연아, 유안아. 이것 좀 봐...” 최재빈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나 정말 신장 기증 수술을 받았어... 내가 진짜 잘못했다는 걸 알아. 이걸로 조금이라도 갚은 게 될까?”“나한테 기회를 한 번만 주면 안 돼? 용서해 주면 안 될까?”임이안은 겁을 먹고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임지연은 아들이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 채 최재빈의 불안정한 표정을 바라봤다. 마음 한쪽이 싸늘해졌다.“다음 주에는 눈 수술도 받을 거야. 내가 유안이 눈을 빼앗았으니까 내 눈도 내놓을게.” 최재빈은 비틀거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 표정에는 광기에 가까운 절박함이 어려 있었다.“이 정도면 돼? 이러면 너희가 다시 돌아올 수 있어?”“지연아, 대답해 줘. 제발 말 좀 해!”더는 참지 못한 심주현이 앞으로 나서면서 최재빈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하게 때렸다.퍽!최재빈은 그대로 넘어져서 빗물이 고인 바닥에 처박혔다.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그런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웃음소리가 빗소리와 뒤섞이면서 텅 빈 거리에 퍼졌다.“이제 알았어...” 최재빈은 얼굴의 피와 빗물을 손으로 닦았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면서 남자의 목소리에는 깊은 무력감이 묻어 있었다.“그날 네가 그렇게 말한 건 그냥 나를 쫓아내려고 한 거였구나. 너희는 평생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고...”“최재빈.” 임지연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혹시 알아?” 아들의 눈을 가리던 손을 내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생각했어. 당신도 우리가 겪은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하고.”최재빈의 눈동자가 크게
그날 최재빈을 단호하게 돌려보냈지만, 그 뒤 보름 동안 임지연은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다.임이안을 유치원에 데려다줄 때마다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몇 번씩 확인했다. 퇴근길에 뒤에서 발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돌아봤다.한밤중에 악몽을 꾸다 깨어나는 날도 있었다. 최재빈이 찾아와 아들을 빼앗아 가는 꿈이었다.임지연은 알지 못했다. 최재빈은 매일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아침에 임지연이 집을 나설 때도, 임이안을 유치원에 들여보낼 때도, 늦은 퇴근길에 혼자 걸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최재빈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멀리서 모자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러던 어느 날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고, 임지연은 늦은 시간까지 야근했다.대중교통 운행마저 중단되어 결국 눈보라를 뚫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그때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다가오지 마!” 임지연은 곧바로 몸을 돌려 호신용 스프레이를 앞으로 겨눴다.최재빈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검은 코트에는 눈이 가득 붙어 있었고, 손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우산이 들려 있었다.“나는 그냥... 우산을 주려고 왔어.” 최재빈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을 혐오하듯 바라보는 임지연의 눈길에 가슴이 쓰라렸다.“그런데... 네 곁에 있던 그 남자는 왜 이런 날에도 너랑 이안을 혼자 두는 거야?”임지연은 스프레이를 최재빈의 눈 쪽에 정확히 겨냥한 채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이제 내 앞에서 사라져. 얼굴만 봐도 역겨우니까.”“하지만...” 최재빈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붙잡으려 했지만 임지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멀어졌다.그리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오래도록 임지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최재빈은 마침내 뭔가 결심한 듯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사라졌다.그 뒤 최재빈은 정말 임지연 앞에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현관 앞에 정체를 알 수 있는 물건들이 가끔 놓여
새벽 3시, 북유럽의 작은 마을에는 눈이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최재빈은 사진에서 확인한 하얀 목조 주택 앞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검은 코트 위에는 두꺼운 눈이 쌓여 있었다.속눈썹에는 하얀 서리가 맺혔고 손가락은 추위에 자줏빛으로 변했지만, 최재빈은 불이 켜진 2층 창문만 집요하게 바라봤다.창문 너머로 임지연이 임이안에게 잠들기 전 읽어 줄 동화책을 펼치고 있었다.“엄마, 주현 아빠는 언제 돌아와?” 임이안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물었다.“주현 아빠는 요즘 다른 지역에 일이 있어서 갔어. 며칠 뒤에 돌아올 거야.” 임지연은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대답했다.불을 끄기 전 임지연은 습관처럼 창밖을 한번 바라봤다.그 한 번의 시선으로 숨이 멎을 듯이 굳어졌다.눈밭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알아볼 수 있었다.최재빈이었다.‘어떻게 여기를 찾아왔어?’‘이름도 바꾸고 이렇게 멀리까지 떠나왔는데...’‘대체 어떻게 우리를 찾은 걸까?’임지연은 두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지난 5년 동안 겪었던 끔찍한 기억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덮치면서, 몸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엄마?” 임이안이 잠결에 엄마를 불렀다.“아무것도 아니야. 자자.” 임지연은 떨림을 억누르며 창문을 잠그고 커튼을 닫았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참지 못해 커튼 사이로 계속 밖을 확인했다.최재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깨와 머리 위로 눈이 잔뜩 쌓여 있어서, 멀리서 보면 얼어붙은 조각상 같았다.임지연은 그날 밤 내내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날이 희미하게 밝아 오자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관 앞에서 오랫동안 망설이며 문을 열지 못했다.하지만 위층에서 잠든 임이안을 생각하자 더는 피할 수 없었다.문을 여는 동시에 찬바람과 눈발이 집 안으로 밀려들었다. 가슴도 함께 차갑게 식었다.최재빈은 정말 밤새 문 앞을 떠나지 않고 서 있었다.“지연아...” 입술이 파랗게 질린 최재빈이 갈라진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두 눈은 붉게
그날 이후 최재빈은 집에서 과거 CCTV 영상을 계속 돌려봤다. 자신이 소지연 모자를 수도 없이 오해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보상하려고 했지만... 이미 사과할 기회조차 사라진 뒤였다.최재빈은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집 안에 틀어박혔다. 세 사람이 함께 살았던 공간과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소지연의 흔적만 매일 바라봤다.그제야 자신이 모자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깨달았다.두 사람을 믿어 준 적도 없었고 제대로 걱정하거나 돌봐 준 적도 없었다.영상 속에서 마른 몸으로 끊임없이 집안일을 하던 소지연과 차갑게 외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칼로 베이는 듯했다.술로 정신을 흐리지 않으면, 밀려드는 절망을 버티며 하루를 보내기도 어려웠다.그러던 어느 날, 집사가 겁먹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최재빈은 며칠째 제대로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도 않은 상태였다. 집 안에는 독한 술 냄새가 가득했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어. 나가!”최재빈이 차갑게 소리쳤다.“대표님... 사모님이 살아 계신 흔적을 찾은 것 같습니다!”최재빈은 벌떡 몸을 일으키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집사를 바라봤다. 믿기 어렵다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말도 안 돼. 그날 내가 직접 두 사람의 시신을 봤어...”“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지?”말을 하는 동안에도 목소리와 몸이 계속 떨렸다.집사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어 갔다. “사모님께서 예전에 생활이 어려운 산간 지역 아이들을 위해 후원금을 보내신 적이 있습니다. 어제 그쪽 단체에서 집으로 감사 편지가 왔습니다.”“자세히 알아보니 사모님께서 후원하던 아동 지원 사업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쓰시던 계좌에서는 더 이상 돈이 나가지 않지만...”“해외 계좌 하나에서 지금도 정기적으로 후원금이 입금되고 있습니다.”최재빈의 눈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아왔다. 믿음이라기보다 광기에 가까운 희망이 차올랐다.“정말이야?”“그럴 줄 알았어. 나는 알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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