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모든 사람이 이 일을 알게 되었다. 소씨네 대청에는 김단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산군과 임씨 부인도 왔다.임원은 대청에 무릎을 꿇고, 얼굴에는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제가 그러지 않았어요. 아버님, 어머님, 제발 믿어주세요. 제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소하는 의자에 앉아 표정이 아주 어두웠다.“잡힌 사람이 모두 당신의 지시라고 말했고, 쇠돌이도 당신이라고 지목했소.”“정말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임원은 억울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제가 무서워한 것은 맞아요. 어머님께서 소씨네 집안일을 도맡으라고 하셨는데, 언니가 계속 쇠돌이를 이용해 저를 협박했어요. 제가 전에 잘못한 일이 들통나면 어머님이 실망할까 봐 두려워서 명희에게 쇠돌이를 데리고 가라고 시켰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로 사람을 시켜 쇠돌이를 죽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 쇠돌이를 좋은 가정에 입양 보내려고 했을 뿐입니다!”임원은 일이 이렇게 빨리 들통날지 몰랐고 쇠돌이가 아직 살아 있을 줄도 생각 못했다!그러나 일이 들통난 마당에 그녀는 모든 죄를 뿌리쳐야 한다!소씨 부모님의 얼굴도 역시 어두워졌다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은 임원이 전에 거지를 매수하여 결국 거지들의 목숨을 해친 일도 알게 되었다. 거지를 해친 일은 무심이라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살인을 지시한 것이었다.소씨 부모님은 임원이 이런 사람일 줄 상상도 못했다!그러나, 그들은 임원의 변명도 도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임원은 쇠돌이를 입양할 사람을 찾으려고 했으나, 김단의 위협이 두려워서 이런 짓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임원의 눈물에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그러나 임학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명희도, 네가 자기를 해쳤다고 했어.”명희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노여움을 가득 담아서 한 말이다. 임원을 죽을 만큼 원망하지 않으면, 명희는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임원은 멍하더니 바삐 임학을 보면서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임씨 부인도 임원을 안고 그녀의 머리를 살살 만졌다.“원이야, 무서워 하지 마, 난 네가 절대로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믿어!”말이 나온김에, 임씨 부인은 소씨 부모님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목숨을 걸고 담보할 수 있어요. 원이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일은 단이가 원이를 계속 협박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으면 원이도...”“임 부인!”소하가 갑자기 큰 소리로 임씨 부인의 말을 끊었다.소하는 더 이상 노여움을 억제하지 못했다.“누구든 오늘 일을 단이에게 덮어씌우려 한다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소하는 실권이 없었지만, 그의 손에는 많은 부하가 있어 주상 앞에서도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산군댁은 절대로 그와 맞설 수 없었다.임씨 부인도 그제야 그녀가 급한 마음에 무엇을 얘기했는지 인식하고 바삐 말했다.“저, 저는 단이를 탓하는 뜻이 아니라, 그저...”소하는 고개를 돌려 더 이상 임씨 부인을 보지 않았다.임원은 진산군의 품속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곁눈질로 몰래 옆에 있는 임학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임학이 왜 그녀를 막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임학이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이 아니었나? 왜 그녀가 죽으려 했는데도 그는 그녀를 막지 않았을까?임학은 차가운 표정으로 진산군 품에 안긴 임원을 보며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마치 이전에 임원이 정말로 모욕당했는지, 아니면 그런 척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제는 임원이 진짜 죽고 싶은 건지, 아니면 죽는 척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소하는 이런 상황을 보고, 임원이 또 다시 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알았다.그 남자들은 임원이 시켜서 사람을 죽였다고 주장하지만, 증거는 없고, 그들이 받은 돈은 단지 임원이 쇠돌이를 잡으라고 시킨 것만 증명할 수 있다. 그녀가 쇠돌이에게 좋은 집안을 찾아주겠다고 한 것도 어느 정도 말이 된다. 심지어 임원은 진산군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이다.그의 부모님도.
모든 사람이 소한의 결정에 놀랐다.임원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소한을 바라봤다. 그러나 소한의 음험한 눈빛과 마주칠 때, 바로 피했다.그녀는 소한과 감히 말다툼조차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를 쳐다보는 것조차 겁이 났다. 진산군 역시 무의식적으로 눈을 크게 떴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일 뿐이었다.오히려 임씨 부인이 바삐 나섰다.“한이야, 너무 충동하지 마!”소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동자만 계속 어두워졌다. 소씨 부인은 뭔가 일이 커질 것 같아서 바삐 일어나서 임씨 부인을 향해 걸어갔다. “먼저 원이를 데리고 집에 가서 며칠 쉬시오.”그녀는 말하면서 임씨 부인에게 눈치를 주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한이는 지금 화가 많이 났소. 원이가 계속 여기에 남으면 좋지 않을 것 같소.”그녀의 말은 조금 보수적이었다.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심지어 소한이 화가 나서 임원을 죽일까 봐 두려웠다!임씨 부인도 소씨 부인의 뜻을 알아차리고 다시 소한의 무서운 눈동자를 봤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임원을 일으켜 세웠다.“그럼, 저희 이만 가보겠습니다.”임씨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진산군과 함께 임원을 품에 안고 나갔다.임학의 미간이 가라앉았다. 임씨 부인이 그의 옆을 지나갔을 때, 그는 정말 임씨 부인에게 단이는 걱정되지 않은 지 묻고 싶었다.그들은 소씨댁에 와서 단이를 보지도 못했다. 어머님은 정말 아무런 관심도 없는가?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진산군이 먼저 재촉했다.“학이, 안 가고 뭐 해?”진산군은 임학이 충동적이어서 소씨댁에서 말썽부릴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진산군 역시 김단을 생각하지 않았다.임학은 살짝 눈을 감더니, 마음속에서는 한기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오늘 단이가 얼마나 상심이 컸는지 똑똑히 봤다. 지금 단이 옆에 누군가 위로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김단을 위로할 사람이 자신도 아니고, 진산군댁의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부모님께서 그에게 임원을 얻으라고 한 것이다.소씨 부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소한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네가 전에 결혼할 사람을 바꾼 것에 대해 의견이 많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진산군댁과의 혼약서에는 적녀와 결혼한다는 것을 똑똑하게 썼어. 임원이 친딸로 돌아온 이상, 원이는 진산군댁의 적녀이고 너랑 결혼할 사람이야!”이 순간, 크고 익숙한 무력감이 밀려왔다. 소한은 또 심연 속에 빠진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헤어 나올 수 없었다.소씨 부인의 말은 3년 전이랑 똑같다.그래서, 그도 3년 전과 똑같은 물음을 물었다.“왜 하필 적녀입니까?”왜 하필 그는 적녀와 결혼해야 하는가?“두 집의 조상님이 정한 거다!”소씨 대감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하마터면 탁상을 내리칠 뻔했다.“네가 우리 소씨네 적자이니깐!”이것은 소씨네 적자의 책임이다!소씨네 적자는 무조건 임씨네 적녀를 처로 맞이해야 하는가?소한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주먹을 꽉 쥐고 풀지 않았다.그는 3년 전에 집안과 맞서 싸웠지만, 결국에는 소씨 부인의 눈물에 진 것을 떠올랐다. 그리고 3년 전에 김단이 기분 좋게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아픔을 참고 냉담하게 ‘임 낭자, 조금 경솔한 거 같소’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그는 또 전쟁터에서의 3년을 떠올렸다. 정암이 ‘단이는 떡을 먹기 싫어합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그녀가 만든 향낭이 다른 남자 품에 간직되어 있었다. 그녀는 항명해서라도 주상이 내린 혼사를 받지 않고, 결국에 그의 형수님이 된 것을 떠올리면...모든 사람이 그에게 큰 농담을 한 것 같았고, 그때 그의 무능함을 비웃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은 3년 전과 다르다.그래서 그는 3년 전과 같은 선택을 하고 싶지 않다!그는 천천히 일어섰다.“그럼, 소씨네 적자로 살지 않겠습니다.”소씨 부모님은 그가 가볍게 던진 말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3년 전에 소하는 이미 불구자였다. 주상은 다른 대신들의 의견을 억압하고 병권을
다른 한편, 소하가 마당에 도착하자, 수심이 가득한 숙희를 봤다.그는 김단의 방을 바라봤다. 문창이 꼭 닫혀 있는 것이 모든 사람과 단절하겠다는 것처럼 보였다.소하는 작은 목소리로 숙희에게 물었다.“김 낭자는 어때?”숙희는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방문을 보고 나서 말했다.“아씨께서 돌아온 후부터 계속 방에만 있었어요. 제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어요.”숙희는 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숙여 소하의 귀에 대고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는 소리도 못 들었어요.”김단이 울지 않은 것이 숙희를 더 걱정하게 했다.우는소리를 들으면 적어도 김단이 마음속에 있는 일을 털어놓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지금, 김단은 울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자기를 봉인하는 것 같아서 더욱 사람을 걱정하게 했다.이각이 옆에서 물었다.“제가 가서 문 두드려 볼까요?”그는 소하가 김단을 위로해 주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소하는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혼자 있게 둬!”소하는 이렇게 말한 뒤 더 이상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그는 김단이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거라 생각했다.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이각은 소하를 도와 씻기고 있었다. 그러다 소하의 시선이 다시 창밖에 머무는 것을 보고 미소 지었다.“저는 큰 도련님께서 정말 큰 며늘아씨를 걱정하지 않는 줄 알았어요!”그의 생각과 다르게 소하는 방으로 들어오고 나서 계속 김단의 방문을 쳐다봤다.소하의 미간이 내려앉더니, 이각이 농담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오히려 걱정했다.“김 낭자는 저녁밥도 안 먹었어.”소하는 본능적으로 김단에게 무슨 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숙희의 말로는 죽은 사람은 임원의 시녀뿐이라고 했는데, 김단이 어찌 이러지?이각도 웃음기를 거두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숙희도 조금 전에 몰래 울고 있었어요!”숙희는 그녀의 아씨를 걱정한다. 그리고 또 아씨가 그녀를 걱정할까 봐 김단에게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소하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소하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아려왔다.그는 어제 진산군댁 사람들이 3년 전 김단에게 누명을 씌운 일을 묵인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노여움이 밀려왔다.숙희가 이어서 말했다.“전에 정암 종사관님이 아씨가 돼지 대창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취향각 주방장한테 가서 특별히 배웠어요. 산적을 물리치러 가기 전에 일부러 요리 방법을 남겼어요. 제가 정확히 기억했지만, 아직 해본 적은 없어요.”소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속에 있는 노여움을 내리눌렀다. 김단을 걱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뒤에 있는 이각에게 말했다.“가서 돼지 대창 좀 사와.”이각은 명을 받고 바로 나갔다.소하는 꼭 닫힌 방문을 보고 마음이 계속 가라앉았다.그는 돼지 대창으로 김단의 문을 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이각은 재빨리 돼지 대창을 사 왔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돼지 대창을 손질해 본 적이 없어, 결국 숙희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숙희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저 편지에 쓴 대로 조금씩 시험해 나갔다.소하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두 사람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같이 나서서 도왔다.갑자기, 마당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났다.사실, 김단은 하룻저녁 동안 방에서 똑똑히 생각했다.그녀가 진산군댁의 적녀인지, 임씨 집안과 혈연이 섞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더 이상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있고 싶지 않다.마치 한 장의 종이처럼, 한 번 갈기갈기 찢기고 나면 아무리 해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난 일은 그저 지나간 일일 뿐이다.그녀는 전에 15년 동안, 진산군댁에서 그녀를 애지중지 키웠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임원이 돌아온 후에, 그들이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혈육 간의 정이든, 사랑이든 누구에게 쉽게 뺏길 수 있다면, 그녀는 그런 정을 원하지 않는다.아무리 친부모, 친 오라버니라도 원하지 않는다!김단이 이렇게 생각하
다 같이 돼지 대창을 씻고 나서 보니,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숙희는 이각과 바삐 돼지 대창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김단은 돌 백 개를 가져와서 오동나무에 대고 연습했다.오늘 햇볕이 너무 따뜻한 탓인지, 소하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이 따뜻해졌다.김단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소하 오라버니는 궁금하지 않아요?”그녀의 시선은 오동나무에 머물러 있었지만,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어제 명희가 한 말은 그녀를 너무나도 놀라게 했다.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 일을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소하와 숙희는 그녀에게 그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저 그녀가 방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었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하 역시 김단이 이렇게 묻는 줄은 예상하지 못해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당신이 말하고 싶으면, 당연히 말하겠지오.”그러나,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는 묻지 않을 것이다.김단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소하를 바라보았다. 입가에 머문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어제 비밀 하나를 알았어요. 하지만 이 비밀을 말하면, 아마 영원히 이곳을 떠날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녀가 정말로 진산군댁에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과연 그들이 그녀의 말을 믿어줄까? 설령 믿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그녀는 더 이상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진실을 믿어준다고 해도, 그녀는 진산군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앞으로 그녀가 나아갈 길에 수많은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마 이 비밀을 마음속에 한평생 간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양을 떠난 후에야 사람을 시켜 진산군댁에 전하도록 할 것이다. 그때 가 되면 진산군댁에는 아마 거센 바람과 파도가 뒤덮일 것이다.하지만, 그녀와 아무 상관도 없다.소하는 김단이 “영원히 이곳을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하는 순간, 입가의 웃음이 잠시 굳어질 뻔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겠다고 하
김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뭐 볼 게 있어요? 저는 아주 좋아요. 시동생님께서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시동생’이라는 말은 두 사람 사이를 철저히 갈라놓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신분을 명확하게 했다.두 사람이 예전에 무슨 관계가 있었어도, 지금, 그녀는 그의 형수님이다.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다른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소한 마음속의 아픔이 점점 커지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갔다.“단이야...”김단도 그를 따라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두 사람 사이는 분명히 아직도 거리가 조금 있다. 그녀는 그가 한 발짝 가까이하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못한다.그녀는 이렇게 그를 싫어하는구나!그는 소매 아래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그녀의 냉담한 표정을 보면서도 예전에 그렇게 그를 좋아하던 사람이 지금은 그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마침, 소하가 소한의 뒤에 나타났다.“뭐 하러 왔어?”소하는 목소리를 깔고 물었고, 차갑기 그지없었다.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김단에게 다가갔다. 그의 다리 위에는 떡이 가득 담긴 나무 쟁반이 올려져 있었다.소한은 소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고, 소하 역시 소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소하는 떡을 김단에게 주면서 말했다.“그저 당신이 좋아하는 떡밖에 찾지 못했소.”떡?소한은 말이 머리보다 빨랐다.“단이는 떡을 좋아하지 않습니다.”정암이 그녀가 떡을 좋아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말했다.예전에 그는 그녀를 조용하게 있게 하려고 그녀에게 떡을 먹였다. 그녀는 그저 그가 준 것이기에 먹었던 것이지 떡을 좋아하지 않았다.김단이 갑자기 떡을 하나 집고는 먹었다.그녀는 소한의 반응을 상관하지 않고 소하를 보면서 웃었다.“서방님은 어찌 제가 설화떡을 좋아하는지 알았습니까?”그녀는 설화떡 외의 모든 떡을 싫어한다. 그녀는 설화떡의 바삭함을 좋아한다.김단이 소하에게 물었지만, 그는 오히려 소한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예전에 네가 단이에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