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은 입가의 미소가 갑자기 굳어지더니 가슴속에 잔잔한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임유정의 말이 맞았다. 결혼은 평생에 연관되는 일인데,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한번 해본 적 없이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시집오게 된 것은, 정말 자기 평생의 행복을 건 거나 다름없었다.하지만...강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현수 씨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만약 현수 씨가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 거액의 혼수도 못 가질 거 아니에요?"엄마의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동생이 공부를 계속할 수만 있다면, 가족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기만 하다면, 그것이 강서연의 가장 큰 행복일 것이다."다음에 얘기해요."거의 다 도착한 것을 보고 강서연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난 오늘 돈을 가지러 여기 온 거예요. 이제 돈을 받으면 언니한테 좋은 소식 전할게요."강서연은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얼마 가지 않아 강주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도착했다. 그녀는 길가에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기에 서 있는 자신에게 위화감을 느꼈다...."어머, 동생! 왔어?"강유빈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아냥거리며 계단에서 내려오더니 오만한 태도로 그녀를 위아래로 한바탕 훑어보았다.강서연이 요 며칠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한 것이다.그녀가 시집간 상대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에, 동네에서 유명한 망나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강유빈은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어려서부터 그녀는 항상 그 어떤 면에서도 강서연과 비교당하며 살아왔었다.강서연이 오래된 낡은 옷을 입고 있어도 주변에서는 예쁘다는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강서연은 성격이 온화하여 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게다가 강서연은 성적조차 강유빈을 훨씬 뛰어넘었다.강유빈은 어렸을 때부터 강서연을 눈엣가시로 여겼고, 비록 강서연은 그녀를 해칠 마음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강유빈은 강서연을 난처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이
"아빤 집에 안 계셔!"강유빈은 입꼬리를 치켜들며 거만하게 말했다."아빤 네가 오늘 집에 다녀간다는 것조차도 잊고 계셔! 하긴, 그런 거지 놈에게 시집가는데 밥상을 따로 차릴 필요가 있겠어? 넌 창피하지도 않은가 봐?""상 차릴 필요는 없으니 내 혼수나 돌려줘!"강서연은 벌떡 일어나 강유빈의 앞을 가로막았다."혼수? 난 들어본 적도 없는데?"강유빈은 입가에 교활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그 순간 강서연은 억울함, 분노, 원망... 등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미천한 사생아로 낙인찍힌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출신은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년 동안 어둠 속에서 헤매면서도 그녀는 밝은 곳을 향해 다가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어떤 제정신인 여자가 남을 대신하여 시집가려 할까? 그녀는 단지 엄마를 구하려고 터무니없는 요구에 응했을 뿐이다.그런데 이 작은 소망마저도 그들에게 박탈당하다니!"가지 말고 똑바로 말해봐!"강서연은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가려는 강유빈의 앞을 가로막았다."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강유빈은 강서연의 팔을 세게 꼬집으며 소리 질렀다.강서연은 너무 아픈 나머지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만 뒤통수가 벽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순간 귀도 먹먹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런 강서연의 모습을 보며 강유빈은 더욱 음산하게 비웃었다."서연아, 너는 이미 시집간 딸이야, 그 촌구석에 버려진 오물이랑 다를 바 없어. 앞으로 우리 강씨 집안과 어떤 일로도 엮일 생각 말어!""아버지께선 나하고 약속하셨어! 내가 너 대신 시집가면 혼수를 푼푼이 주겠다고! 그럼 엄마도...""엄마를 좋은 병실에 입원시켜 좋은 약을 쓰게 하겠다던?"강유빈이 깔깔대고 웃었다."나의 바보 동생 같으니라고, 쯧쯧... 너는 그때 아버지가 왜 너와 네 엄마를 내쫓았는지 기억 안 나?"한줄기 섬뜩한 기운이 강서연의 가슴에 스며들었다."행실이 바르지 않은 네 엄마가 어데서 잡종을 임신해 가지
구현수가 집에 들어서니 강서연이 부엌에서 반찬 두 접시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강서연은 구현수를 보더니 근심 어렸던 얼굴에 애써 웃음을 띄웠다.구현수는 손을 씻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는 하루 종일 훈련한 탓에 배가 무척 고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보자 식욕이 저절로 당겨 밥그릇을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맞은 편에 앉은 강서연은 가만히 앉아 꿈쩍도 하지 않는다."무슨 일 있어?"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에 강서연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러면 빨리 밥 먹어."구현수는 고기 한 점을 집어 강서연의 접시에 담았다."보기만 하면 배가 저절로 불러?"강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정말 입맛이 없었다. 이때 '띵' 하고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동생 윤찬이 보낸 문자였다."누나, 엄마 병원비는 언제 가져올 수 있어?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더 이상 지급 안 하면 약을 끊는대!"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침실 안의 낮은 서랍장을 바라보았다.지난번에 구현수가 준 금 장신구들, 특히 그 옥을 박은 팔찌는 꽤 값이 가 보였다..."뭘 멍하니 생각하고 있어?"강서연은 갑자기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남자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몸을 약간 떨었다. 매번 그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그의 남다른 기세는 무언의 강한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아무것도 아니에요..."강서연은 조용히 말했다.수저를 내려놓은 구현수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거 아니야?"강서연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구현수는 서두르지 않고 잠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가볍게 웃더니 다시 혼자 식사하기 시작했다.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그도 더는 묻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참지 못하고 저절로 말할 때가 오겟지...그날 밤 강서연은 마음이 어수선해서 윤찬이 보낸 메시지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돈 버는 방법을 머릿속에 떠
전화 저편에는 침묵이 흘렀다.휴대폰을 사이에 두고도 배경원은 구현수의 무표정한 얼굴을 짐작할 수 있었다.희노애락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의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마크니..."형!"배경원이 말을 이었다."형은 할 말 없어요?""어떤 말?"구현수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이었다."그건 내가 선물한 것이니 이젠 그녀의 물건인 거야. 어떻게 처리하는가 또한 그녀의 일이기도 하고.""그래도 형님 증조할머니께서 쓰셨던 '금풍옥로' 인데..."구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덤벨에 무게를 가했다."그 팔찌를 얼마에 팔았어?""형수님이 안 팔던데요!"구현 수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어젯밤부터 그는 강서연이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서랍 쪽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아마도 그녀가 장신구를 팔 거라 예상했다. 혼수를 강유빈한테 빼앗기고 어머니 병원비도 마련해야 하니 장신구를 팔지 않고서는 당장 이 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팔찌를 그대로 가지고 올 줄은 몰랐다."형, 나 오늘 마침 가게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팔찌 꺼내자마자 이내 알아봤지 뭐예요. 난 또 어느 간 큰 도둑이 훔친 줄 알았는데, 형수님이었네요! 형수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 같아요. 난 일부러 점원에게 비싼 값을 쳐주라고 했는데... 아, 물론, 금풍옥로의 원래 가치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형수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는 값이 많았을 거예요!""어, 그리고?"배경원은 머리를 긁적였다."그런데 저당 안 하겠대요!"구현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 강서연의 걱정스러운 모습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이미 부부가 되었는데도 그녀는 아직도 그에게 마음 줄 생각이 없는 건가?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고... 구현수는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이 일은 더 신경 쓰지 마."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땅이나 잘 관리해. 난 그 땅이 강 씨 손에 넘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강명원 그 늙은이에게 압력 더 가해봐. 그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어.""강
저녁 식사 후, 강서연은 과일 접시를 들고 구현수 옆에 와서 앉았다.한참이나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구현수가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들여다보았더니 외국어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화면 속 양복 차림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공한 사람들처럼 보였다.이때 구현수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두 사람은 코끝이 서로 닿을 뻔하였다. 갑작스레 생긴 일이라 둘은 한참이나 이렇게 서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강서연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은 바로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왜 그래?"구현수가 물었다."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강서연은 어색한 듯 두 손을 꼬면서 말을 돌렸다."뉴스 보고 있나요?""경제 신문을 읽는 중이야.""그런 것도 봐요?"구현수는 얼굴에 옅은 웃음을 띠더니 매의 눈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서연을 바라보았다."그럼 당신은 싸움도 하고 감옥에도 갔다 온 나 같은 사람이 어떤 것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그런 뜻이 아니에요!"강서연은 얼굴이 빨개졌다."전 그저 현수 씨가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는 줄 몰랐어요."갑자기 조용해지는 바람에 주위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약간 긴장했던 강서연은 구현수의 태연한 표정을 보고는 자신이 부질없는 걱정을 한 거로 생각했다.분명 합법적인 부부인데 같이 있을 때 이렇게도 어색하다니...강서연은 자신이 너무 멍청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며 작은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때렸다.이 작은 동작은 구현수의 눈에 들어왔다.그의 입가에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구현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과일을 먹으며 물었다."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네? 없어요."강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돈이 모자라지 않아?""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요?""아무 얘기라도 하고 싶어서."구현수가 담담하게 말했다."다른 부부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지? 모두 이런 사소한 일상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강서연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아님, 우리
강서연은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윤찬은 병원비뿐만 아니라 엄마를 이미 VIP 병실로 옮겼고, 지금은 전담 간병인이 옆에서 도울 뿐만 아니라, 최첨단 수입 약품도 쓸 수 있다고 말했다."누나, 사실 누나 아버지는 아직 엄마를 마음에 두고 계신 것 같아."윤찬은 단순하게 웃으며 말했다."참, 인제 그만 끊어야겠어. 야간 자습 가야 해! 그리고 누나, 내 책값 잊지 마, 지금 반에서 나 혼자만 안 낸 것 같단 말이야!”"알았어..."강서연은 윤찬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강유빈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라도 한 걸까?아니면 강명원이 엄마에 대해 아직 옛정이 남아있는 걸까?하지만 이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그날 강 씨 가족이 그녀에게 대하던 태도를 돌이켜보기만 하면 혼수는 물거품이 된 게 분명했다.강서연은 혼수를 다시 받을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았다.그녀는 서둘러 침실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팔찌를 상자에 넣어두었다.'저당하지 않길 잘했어!'그녀는 웃으며 손으로 상자 안의 장신구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앞으로 너희들을 잘 보호할게. 절대 너희들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을 거야!"구현수가 문밖에서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니 여자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입꼬리에도 따스한 미소가 어렸다.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배경원이 보낸 메시지에는 '완료' 라는 두 글자만 적혀 있었다.「알았어, 나중에 보상해 줄게.」구현수는 항상 말을 아꼈고 오직 기분이 좋을 때만이 답장을 보내곤 했다. 배경원도 이렇게 많은 회답을 받아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주말, 강서연은 집 청소를 하고 있었고 구현수는 마당에서 샌드백을 치고 있었다.그녀는 그의 리듬 있는 타격 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웃었다. 남자들은 왜 이런 폭력적인 운동에 푹 빠져 매일 연습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운동을 막을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매우 지지했다.집에서 샌드백을 치는 편이 오히려 나가서 싸우는 것보
배경원은 다리를 툭 치며 그제야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아챘다.“찬... 찬혁아, 제발 나 좀 도와줘!”배경원이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난 연준 형 여자를 뺏을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게다가 강서연 같은 앳된 여자는 내 스타일도 아니라고! 연준 형 진짜 머리가 잘못된 거 아니야? 어떻게 그런 스타일을 좋아할 수 있지?”유찬혁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그도 그럴 것이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늘 차갑고 단호하던 최씨 일가 셋째 도련님께서 어느덧 구현수로 변신해 강서연 같은 어린 여자에게 이토록 신경 쓰다니, 실로 의아할 따름이었다.“연준 형이 말했잖아. 이 결혼을 신경 쓰는 게 아니라 결혼을 빌미로 잠시 은신하는 것뿐이라고 말이야...”“넌 그 말 믿어?”유찬혁이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두고 봐. 강서연 절대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야. 어쩌면 그때 가서 연준 형이 오성에 돌아가지 않으려 할지도 몰라!”...점심을 먹고 난 후 구현수는 강서연에게 인사하고 바로 외출했다.이 마을은 그다지 크지 않다. 강서연이 시집오기 전에 구현수는 마을 오솔길을 따라 자주 산으로 갔었다. 그곳엔 인적도 드물고 공기가 신선하여 혼자 있기 참 좋은 장소였다.구현수는 본인만의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의 일을 세심하게 계획하곤 했다.다만 오늘은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강유빈이 전화로 내뱉었던 험한 말들이 줄곧 귓가에 맴돌았다.구현수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계속 산 정상으로 올라가려 했는데 불쑥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저기요, 현수 씨!”한 젊은 남자가 팔을 휘두르며 아래에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구현수는 흠칫 놀라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아까 산기슭에서부터 현수 씨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올라왔어요? 저 겨우 쫓아왔잖아요! 아 참, 몸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았어요? 제가 가서 약을 더 구해드릴까요?”구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고마워요, 다 나았어요. 그땐 제가 너무
“어이, 예쁜 색시, 팬케이크 할 줄 알아?”몇몇 남자들이 구현수의 집 앞에 서서 강서연에게 음흉한 미소를 날렸다.주위에 구경꾼들도 꽤 있었지만 이 건달들이 악명이 자자하다 보니 아무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다들 쌀쌀맞게 구경만 할 뿐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예쁜 강서연을 홀로 집에 두고 나가버린 구현수가 죄인이었다. 대놓고 딴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격이 돼버렸으니까!강서연은 심장이 빨리 뛰고 낯빛도 창백해졌지만 꿋꿋하게 버텨냈다.“듣자 하니 이 어여쁜 색시가 재벌 집 따님이라면서?”“어쩐지, 재벌 집 따님께서 주방일을 할 리가 있겠어? 팬케이크가 웬 말이냐고!”“이봐, 색시, 아직 여기 룰을 모르나 봐?”건달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강서연을 아래위로 흘겨봤다.“우리 여기서는 갓 결혼한 여자들이 직접 팬케이크를 만들어 집집이 돌려야 해! 결혼한 지가 며칠인데 왜 우린 아직도 못 먹어봤지?”“죄송해요, 그런 규칙이 있는 줄 몰랐어요.”강서연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다 만들면 집집이 돌릴게요. 저희 남편이 곧 오니 다들...”강서연이 대문을 닫으려 할 때 한 남자가 불쑥 문 사이에 무릎을 끼워 넣었고 다른 두 남자도 옆에서 거들먹거렸다. 강서연은 당황하여 손이 떨렸다. 세 건달은 문을 박차고 마당에 뛰쳐 들어가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거 참 생각 밖이야. 구현수 그 빌어먹을 자식이 이렇게 예쁜 여자를 얻어!”남자들의 눈빛이 점점 더 음침해졌다.강서연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역겨움을 느끼며 두 손으로 가슴을 껴안고 경계심 가득한 눈길로 그들을 쳐다봤다.“여긴 우리 집이에요. 당장 나가란 말이에요!”그녀는 일부러 언성을 높였다.“남편이 곧 있으면 돌아와요! 우리 남편 어떤 사람인지 다들 잘 알고 있죠!”남자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사악한 미소를 날렸다.“알지 그럼, 싸움만 나면 지리고 도망치잖아!”“이봐, 예쁜이, 아직 잘 모르나 본데! 구현수는 예전에 참 찌질해 빠졌어. 매번 우리가 싸울 때마다 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