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우니 밖에서 자도 시원해서 괜찮았지만, 문제는 모기였다.강소아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작은 크기의 침대였던지라 최군형의 다리 절반은 허공에 뜬 채였다. 넓지도 않아서, 마치 어른이 아동용 침대에 누운 것 같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강소아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강소준이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강소아가 물었다.“안 자?”“수호신 안 데려왔어?”강소준이 최군형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스스로 나간 거야, 엄마 아빠가 나가라고 한 거야?”“스스로 나갔어. 맞다, 누나, 배 안 고파? 밥 줄게!”강소준이 대답하며 주방에 들어가 랍스터 볶음밥을 내왔다.“아직도 따뜻해!”강소아가 어리둥절하게 강소준을 쳐다보았다. 엄마가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였다면 랍스터 요리를 해도 한 마리를 통째로 할 것이었다. 가뜩이나 비싼 랍스터를 살만 발라내 밥을 볶을 리는 없었다.“이건...”“수호신이 누나 몫이라고 남겨둔 거야!”강소준이 신비하게 웃었다.“뭐?”“수호신이 밥 먹기 전에 나갔다 왔거든. 뭘 하려는 지 몰라서 부모님도 안 말리시고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얼마 안 지나 랍스터 네 마리를 사 왔어, 이렇게 큰 랍스터를 무려 네 마리씩이나!”강소준이 흥분한 얼굴로 열심히 랍스터의 크기를 설명했다.강소아는 집안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요즘 물가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건 알았다. 소정애였으면 네 마리는 고사하고 한 마리를 사도 한참을 고민했을 터였다.“누나! 그냥 이렇게 들어와서, 팍! 하고 랍스터 네 마리를 내려놨다니까? 그리고 하는 말이, 두당 한 마리씩이래. 나머지 한 마리는 건드리지 말래!”강소준이 계속해서 흥분한 얼굴로 상황을 재연했다.강소아는 깜짝깜짝 놀라며 강소준의 말을 들었다. 강소준이 멋있다는 듯 헤헤 웃으며 중얼댔다.“와, 진짜 멋있어.”강소아가 문 바깥을 쳐다보았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볶음밥은 아직도 따뜻했다. 그녀는 복잡한 심경으로 식탁에 앉아 볶음밥을 한술 떴다.“뭐야, 왜
“누나, 엄마가 오늘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십몇 년 동안 이 빗자루를 썼는데, 오늘 이렇게 끊어졌어!”강소준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최군형 씨가 엄마한테 손찌검이라도 했어?”“아니!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겁주려고 했는데, 말하다가 욱해서 그만 정말 때려버렸어, 그런데 그만 끊어진 거야. ”강소아가 눈을 크게 떴다. 강소준이 문밖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나, 저 사람 아이언맨, 뭐 그런 거 아니야?”강소아는 얼른 강소준을 쫓아버렸다. 그녀는 식탁 위의 볶음밥을 한참 쳐다보다가 문밖의 최군형을 바라보았다.최군형은 옆으로 돌아누운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불은 그의 배 쪽만 겨우 가리고있었다. 팔다리에 탄탄하게 잡힌 근육은 남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겼다.강소아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순간 피어오른 생각들을 애써 억눌렀다.첫날은 이렇게 무사히 지나갔다. 다음 날 새벽, 강소아가 조용히 계단을 내려왔다.주말이면 가게는 항상 바빴다. 강우재와 소정애는 아침 일찍 나가 상품을 들여오고 오픈 전에 진열대를 정리했다.강소준은 밖에서 영어단어를 외우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도 아마 집 근처의 공원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을 것이었다.강소아가 문밖에 나가니 최군형도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빈 침대를 쳐다보았다. 이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인 최군형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금방 운동을 마친 모양이었다. 각진 얼굴이 단단한 인상을 풍겼다. 몸에 달라붙은 티셔츠는 땀에 살짝 젖어 완벽한 역삼각형 몸매를 드러냈다.강소아의 시선은 그의 가슴 앞의 두 점에 고정됐다.“뭘 봐요?”최군형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강소아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작게 대답했다.“아니에요. 잠은 잘 잤어요?”“네.”최군형이 수건으로 아무렇게나 얼굴을 닦았다.강소아는 최군형을 쳐다보았다. 그는 언제나 과묵하고 냉정했다.하지만 강소아는 어릴 적부터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고, 세상은 원
“월세? 우리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요? 남편한테도 월세를 받아요?”최군형이 강소아를 바라보며 눈썹을 까딱했다. 그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어렸다.“아...”강소아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한 듯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최군형은 그녀를 더 놀리지 않고 한손으로 접이식 침대를 들어 한구석에 갖다 놓았다.강소아를 지나칠 때, 최군형은 그녀의 달아오른 귀 끝과 얼굴의 솜털을 똑똑히 보았다. 그녀의 상큼한 향기가 코를 파고들었다. 최군형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발을 멈추고 그녀에게 말했다.“침대... 고마워요.”강소아는 고개를 들어 최군형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깊은 눈빛 속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속을 깊이 파고들었다.강소아가 뭔가 생각난 듯 급히 말했다.“아, 맞다, 얘기할 게 있어서 왔어요! 혼인신고 말인데요...”최군형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안에 들어서 물을 한 모금 크게 마셨다. 강소아가 입술을 깨물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최군형 씨... 제가 당신을 우리 집에 들인 건 더 이상 구자영과 엮이기 싫어서에요.구자영이 그랬잖아요. 혼인신고를 안 하면 또 올 거라고. 물론 그냥 해본 말일수도 있지만, 구자영 성격이라면 정말 올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정말 혼인신고를 하자고요?”“아뇨!”강소아가 급히 부인했다. 최군형이 옅게 웃었다. 이윽고 강소아가 낮은 소리로 입을열었다.“그러니까, 어떻게 할 지 토론해 보자는 거죠. 며칠만 가게에 있어 줄 수 있어요? 구자영이 또 올까봐...”최군형은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 집 지켜주는 것처럼 가게도 지켜달라는 거였다.최군형은 작게 웃고는 가방에서 깨끗한 옷을 꺼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물소리가 들렸다. 강소아는 밖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문 앞을 맴돌고 있었다.‘정말 이상해! 몇 마디 더 하면 죽기라도 하는 거야?’최군형은 방금 일을 승낙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든 제 맘대로 하는 것 같았다.강소아가 긴 숨을 내뱉었다. 이 일은
소정애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눈을 크게 뜨고 강소아를 쳐다보며 말했다.“이건 어떻게 한 거야? 정말 혼인신고라도 한 거야? 그건 아닌 거지?”“엄마, 무슨 소리예요! 누나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어요!”강소준이 강소아 대신 해명했다.“맞아, 내가 점심에 돌아왔을 때도 공부하고 있었어.”강우재도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최군형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들 진정하세요. 이건 가짜입니다.”“가짜?”모두 깜짝 놀랐다.“강소아 씨가 말하길, 구자영이 다시 찾아올까 봐 무섭다고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한 것 같아요. 대책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그래서 만들었습니다.”최군형이 간결하게 설명했다.강소아는 놀라운 심정으로 증명서를 자세히 보았다. 아무런 흠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게 진짜와 똑같았다.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최군형이 말하지 않는 이상은 가짜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강우재와 소정애는 의문스러운 눈길로 서로를 쳐다보았다.결국 강소준이 모두가 궁금해하는 문제를 물었다.“수호신 형님, 이건 어떻게 한 거예요?”최군형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이는 유찬혁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변호사인 유찬혁의 인맥은 엄청나게 넓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꼭 그가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는 문서 위조 전문가, 블랙 해커도 포함돼 있었다.하지만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최군형은 목청을 가다듬고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한 겁니다.”“군형 씨가요?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강소아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아... 네. 전에 문서 위조 전문가였습니다.”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강우재가 사레 들린 듯 기침을 해댔다.최군형이 문서 위조를 했었다고?그 모습을 상상한 강소아가 풉 하고 웃었다.이때 소정애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아이고! 그러니까, 문서 위조를 하다 잡혔다는 거야?”“아... 네.”최군형이 흠칫하고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막노동이라도 하지, 왜 그런 일을 해!”“
최군형이 패싸움 같은 일을 하다 잡혀 감옥살이를 한 줄 알았는데, 문서 위조 때문이었다니. 몸만 쓸 줄 아는 놈인 줄 알았지 이런 기술이 있을 줄은 몰랐다.소정애가 살짝 웃었다. 최군형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안 뒤로 그에게서 후광이 비치는 줄 알았다.“군형아, 그럼 넌 손재주 있는 전과자인 거네! 그거 때문에 감옥살이한 거라면 나도 안심할 수 있어. 패싸움보단 백배 낫잖아. 군형아, 잘못을 저질렀어도 제때 고친다면 괜찮아. 이렇게 진짜 같은 증명서를 만들었다는 건 네 실력이 상당하다는 뜻이잖아! 이 기술을 좋은 쪽에 쓰면 사회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거야.”“맞아! 내 생각도 그래! 군형아, 혹시 위조지폐는 만들 줄 알아?”“쿨럭쿨럭...”최군형이 밥을 입에 문 채 어쩔 바를 몰라 했다.강소준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강소아는 엄마, 아빠에게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준 다음 일어나 물 한 잔을 따라 최군형에게 건넸다.최군형은 힘겹게 입안의 음식물을 삼켰다.위조지폐를 만들 줄은 몰랐지만 그릴 줄은 알았다. 그의 외할머니가 그린 반딧불이 그림 한 폭은 400억 원에 낙찰됐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외할머니의 그림 실력을 쏙 빼닮았다.강소아가 증명서를 서랍 안에 집어넣으며 웃는 얼굴로 최군형에게 말했다.“마침 혼인관계증명서가 필요했는데, 너무 잘됐어요. 구자영이 또 올까 봐 오늘 하루 종일 걱정했거든요.”“내가 있는 한 그럴 엄두는 못 낼 거예요.”최군형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강소아가 멍해졌다. 심장이 왜 마구 뛰는지 알 수 없었다.......저녁식사가 끝난 후 그녀는 홀로 집을 나섰다. 여덟 시가 조금 지난 터라 식사 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그녀는 멀지 않은 해변으로 향했다. 여름의 밤바다는 언제 봐도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어두운 해수면을, 희미한 지평선을 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그녀는 사람 적은 곳을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소아는 그를 한참 보다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복수할 방법이 있긴 있어요? 구성 그룹은 그 세력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저희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거예요. 다 저 때문이에요. 구성 그룹의 상품에 문제가 있다는 걸 폭로하면 안 됐어요. 그들을 거부하면 더더욱 안 됐고요... 하, 결국 손해 보는 건 나잖아요. 제가 찾아갔던 상호들은 아직도 구성 그룹의 상품을 팔고 있잖아요!”강소아가 씁쓸하게 웃었다. 최군형이 담담하게 말했다.“네, 뭐가 잘못된 건지 알면 된 거예요.”강소아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말이 없었다. 최군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구성 그룹처럼 비도덕적인 기업은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힐 뿐이에요. 정의를 구현한 건 잘했어요. 방법이 조금 잘못됐을 뿐이에요.”강소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과묵한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많이 말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망설이다 물었다.“그럼... 방법이 있어요?”“아뇨.”최군형이 딱 잘라 말했다. 방법이 있어도 얘기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강소아도 그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데, 그라고 모든 걸 줄줄 불어버릴 수는 없었다.“아...”강소아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두 사람 다 어떤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최군형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강소아의 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눈썹을 까딱거리고는 작게 말했다.“좋은 방법이 생각난다면 함께 노력해 봐요.”“네, 좋아요!”강소아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먼 곳의 불빛이 그녀의 옆모습을 은은하게 비췄다. 그녀 뒤에 펼쳐진 바다는 빛나는 별들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최군형은 어릴 적부터 매력적인 여자들은 많이 보았지만, 강소아 같이 눈을 뗄 수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출세할 생각으로 최군형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보호 아래 단순하게 자라온 최군형은 그들의 속셈을 전혀 몰랐다. 하기에 걸핏하면 사진이 찍혀 실시간 검색
강소아는 진열대 위의 과자들을 정리하고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두 분 마음가짐이 참 좋아요!”“몇 마디 말일 뿐이지, 재산은 안 건드렸으니 당연히 상관없지! 재산을 건드린다면 네 엄만 화가 나 쓰러질걸?”“강우재!”소정애는 옆의 물 한 병을 집어던졌다. 하마터면 강우재의 머리를 맞출 뻔했다. 그녀는 밖에서 물건을 나르는 최군형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이건 진심인데, 저 아이가 오고 나서 우리 집이 아주 좋아졌어!”“소준이가 그랬잖아, 소아가 우리에게 수호신을 찾아줬다고.”“이 수호신 얼마나 더 있을 수 있는데? 집에 다른 사람은 있대?”“뭐 하려고 그래?”“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야지! 당신 이 일은 상관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기필코 알아내고 말 거야!”강소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엄마를 보며 작게 웃었다.강우재와 소정애는 정리를 마치고 밥을 먹으러 집으로 갔다. 강소아는 한가했기에 가게에 남아있었다.최군형은 문가의 그늘진 곳에 앉아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이때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음료수 두 잔을 내밀었다.“여기요!”최군형이 고개를 들어 그 반짝이는 눈을 쳐다봤다.“망고 스무디랑 타로 밀크티에요. 어떤 게 좋아요?”“아뇨, 전...”“줄 때 먹어요! 이거 차가운 거예요. 엄청 시원해요!”강소아가 망고 스무디를 최군형에게 밀어주었다. 최군형이 인상을 쓰며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강소아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왜요, 맛없어요?”“...맛있어요.”“그럼 빨리 마셔요!”강소아가 웃으며 타로 밀크티를 들이켰다. 그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퍼졌다.“이런 거 많이 마시면 살쪄요.”최군형이 덤덤하게 말했다. 강소아가 쿨럭거리며 최군형을 흘겨보았다.“내가 살쪘단 뜻이에요?”“마른 편이죠.”최군형이 강소아를 훑어보고는 간결하게 답했다. 강소아는 확실히 마른 편이었다. 몸통은 종잇장같이 얇았고, 아무런 곡선도 보아낼 수 없었다.물론 그녀의 패션도 한몫했다. 그녀는
강소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음속 무언가가 욱하고 올라왔다. 그녀가 입을 떼려는데 최군형이 먼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그녀는 깜짝 놀랐다.최군형의 넓은 등판이 그녀의 시야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녀는 이제 구자영의 악독한 웃음도, 깡패들의 사악한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최군형은 마치 커다란 벽처럼 강소아를 이 세계의 모든 추악함으로부터 차단했다.강소아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어렸다.“할 말 있으면 저한테 하시죠.”최군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구자영이 팔짱을 끼고 그를 비웃었다.“너한테 하라고? 네가 뭔데! 신혼 생활이 좋긴 하나 보네, 이렇게 감싸고 도는 걸 보니까! 저 X이 침대 위에서 어떤 모습이기에 이렇게 푹 빠져버린 거야?”“구자영, 말 똑바로 해! 너...”강소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군형이 다시 그녀를 가로막았다. 강소아는 굴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구자영! 너...”“저리 가요!”최군형이 다시 그녀를 가로막았다. 강소아 혼자서 이 사람들을 상대하게 둬서는 안 됐다.구자영은 손뼉을 치며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비웃은 후 뒤쪽을 향해 눈치를 줬다. 이내 누군가가 봉고차 안에서 음료 몇 박스를 꺼냈다.구자영이 날카로운 소리로 말했다.“강소아, 좋은 소식이 있어. 구성 그룹의 ‘장미꽃 이슬’이 리뉴얼된 포장으로 새로 출시됐어! 하하하... 실망한 거 아니지? 네가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였어도 이 돈은 우리가 계속 벌 거야! 네가 찾아갔던 상호 중에 아직 네 편인 상호가 몇이나 돼?”강소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녀 앞의 벽이 너무도 튼튼한 탓에 그녀는 욕할 기회조차 없었다.구자영은 신나 하며 계약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우정슈퍼는 앞으로 20년 동안 구성 그룹의 음료수만을 판매한다.“강소아, 이건 네 아빠, 엄마의 글씨인데, 모른 척 하지는 않겠지? 이 물건들은 특별히 직접 가져왔어. 사흘 안에 모두 팔아버리도록 해!”“양심 없는 년! 이건 노예계약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