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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하는 중에, 그 사람이 생각났어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9-09 16:34:11
다음 날 점심 무렵,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제시카가 “이모~!” 하며 뛰어 들어왔다.

주방에서 서성이던 정례가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머나, 수아야. 또 왔어?”

제시카의 한국 이름은 수아였다. 압구정에서 미래와 한 동네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정례에게 제시카는 늘 수아였다.

“이모 김치찌개 먹고 싶어서요.”

이윽고 식탁 위였다.

정례가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뚝배기를 식탁 한가운데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졌다. 칼칼하고 붉은 국물 위로 숭덩숭덩 썬 두부와 큼직한 돼지고기가 가득했고, 송송 썬 파가 먹음직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파와 맛살을 듬뿍 넣은 계란말이, 기름 자르르 구운 고등어와 옥돔, 바싹 구운 감태와 참기름장까지. 제시카가 한국에 올 때마다 특별 주문하는, 정례표 밥상이었다.

제시카가 의자를 당겨 앉으며 황홀한 표정으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 냄새.”

“맛있겠지?”

“맨해튼에서는 이 냄새 못 맡아요.”

정례가 고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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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05화. 암체어

    욕실 문이 닫히고,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진희는 침실을 나와 거실로 걸어갔다. 창가의 램프 하나를 켜자, 은은한 주황빛이 거실을 부드럽게 채웠다.그는 거실 한쪽에 놓인 뱅앤올룹슨 앞에 섰다. 잠시 망설이다가,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낮고 느린 음악이 거실에 조용히 번져 나갔다.욕실의 물소리가 그쳤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미래가 나왔다. 젖은 머리칼을 대충 넘긴 채, 그가 건넨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한참 커서, 소매가 손등을 덮고 깃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있었다.진희는 그 모습에 잠깐 숨을 멈췄다.제 가운을 입은 그녀였다. 제 비누 향을 입은 그녀였다.미래가 음악 소리에 거실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를 발견하고, 수줍게 웃었다.진희가 다가갔다.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가뿐히 안아 들었다.“어…….”미래가 놀라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진희는 그녀를 안은 채 거실을 가로질러, 통창 앞에 놓인 암체어로 걸어갔다.그리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그대로 앉았다.미래가 그의 무릎 위에, 그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앉게 되었다. 커다란 가운에 폭 싸인 채로, 그의 품 안에 쏙.통창 너머로 밤의 양재천이 내려다보였다. 강을 따라 이어진 가로등 불빛이 까만 수면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음악이 낮게 흘렀다.진희의 한 손이 미래의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머리칼 사이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고. 그 느린 리듬에 맞춰, 미래의 숨도 천천히 가라앉았다.다른 한 손은 헐렁한 가운 깃 사이로 스며들었다.그녀의 가슴에 닿았다. 감싸 쥐었다가, 천천히 쓸어내렸다. 손바닥이 그 곡선을 따라 미끄러지고, 다시 올라와 머물렀다. 원하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손길이었다. 이 사람이 정말 자신의 품 안에 있다는 걸.미래는 눈을 감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그가 그녀의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귓가에, 뺨에, 목덜미에. 한 번씩, 아주 천천히.음악이 바뀌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바뀌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04화. 후애

    진희가 미래의 등 위로 포개어지듯 무너졌다.거두어낸 그의 마지막 열기가, 그녀의 허리 위로 뜨겁게 흘렀다.깍지는 풀리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거친 숨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그의 심장이 그녀의 등을 통해 쿵, 쿵 울렸다. 그녀의 심장도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진희가 그녀의 목덜미에 이마를 묻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 자리에 입을 맞췄다.한참 뒤에야, 깍지가 풀렸다.진희가 협탁 위의 수건을 집어, 그녀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서두르지 않는 손길이었다. 그리고 미래의 몸을 천천히 돌려, 자신의 품 안으로 쏙 끌어당겼다.미래의 작은 몸이 그의 품 안에 꼭 맞게 안겼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희는 그녀를 안은 채, 땀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미래는 눈을 감고, 그 감촉에 몸을 완전히 맡겼다. 맞닿은 가슴과 가슴 사이로, 아직 가라앉지 않은 두 심장이 서로를 두드렸다.진희는 품 안에서 색색거리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금 전까지의 시간을 되짚었다.섹스라는 행위 그 자체보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눈을 맞추던 그녀의 얼굴이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관능적인 몸 때문만이 아니었다. 풍만한 곡선과 매끄러운 피부, 그 황홀한 자태가 그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했던 건 물론이었다. 하지만 진희를 진정으로 미치게 만든 건, 그 몸 위에 겹쳐진 그녀의 얼굴이었다.붉게 상기된 채, 솔직하게 신음을 내뱉던 그 얼굴. 섹시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그 표정. 그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깊은 사랑과 소유욕이 동시에 밀려왔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진희의 손이 그녀의 머리칼에서 내려와, 어깨를 지나, 가슴에 닿았다.아주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방금 전의 열기와는 전혀 다른 손길이었다. 무언가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끼고 싶어서. 손바닥 전체로 그 온기를 천천히 쓸어내렸다.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댔다.혀끝이 귓바퀴를 따라 살며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03.같은 깊이로

    미래는 그의 숨이 점점 가빠지는 걸 느꼈다.허리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목울대가 크게 오르내렸다. 이제 곧 끝이 오겠구나. 미래는 그렇게 생각하며 리듬을 조금 늦췄다.그런데.끝이 오지 않았다.오히려 그녀 안에서, 그의 열기가 더 단단하게 차올랐다. 식기는커녕, 방금 전보다 더 뜨겁고 더 깊게.미래의 눈이 동그래졌다.진희가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낮게 웃었다. 땀에 젖은 이마 아래로, 아직 한참 남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그가 몸을 일으켰다.미래의 허리를 감싸 안고, 천천히 그녀를 침대 위에 엎드리게 했다. 부드럽게, 그러나 망설임 없이.그가 미래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길게 뻗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하나씩 밀어 넣었다.깍지였다.그의 가슴이 그녀의 등에 빈틈없이 닿았다. 젖은 피부와 피부가 맞붙었다. 목덜미에 그의 뜨거운 숨이 쏟아졌다.미래는 숨을 삼켰다.깍지 낀 손. 언젠가 다른 밤에도, 이렇게 손가락이 얽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채운 손은, 전혀 다른 온도였다.진희가 뒤에서, 다시 그녀 안으로 들어왔다.“아……!”미래의 목소리가 크게 터졌다.이 자세는 모든 것이 더 깊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녀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닿았다. 등 뒤로 전해지는 그의 무게와, 깍지 낀 손에 실리는 힘과, 귓가에 쏟아지는 거친 숨이 한꺼번에 그녀를 덮쳤다.진희의 움직임이 점점 격해졌다.더 깊이. 더 빠르게.“미래 씨…….”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깍지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미래도 그 손을 터질 듯 움켜쥐었다.“진희 씨…… 아…… 아……!”숨이 엉켰다. 땀에 젖은 몸이 미끄러지며 서로를 더 깊이 찾았다. 방 안에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서로를 부르는 이름만 가득했다.미래의 온몸이 팽팽하게 당겨졌다.몸 안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차올랐다. 발끝에서 시작된 떨림이 허벅지를 타고, 허리를 타고, 가슴까지 번져 올라왔다. 참을 수가 없었다. 참고 싶지도 않았다.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02. 복숭아

    두 번째 단추가 풀렸다.진희는 서두르지 않았다. 단추 하나를 풀 때마다, 그는 미래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미래가 눈을 피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음 단추로 손을 옮겼다.세 번째. 네 번째.셔츠 원피스의 앞섶이 천천히 벌어졌다.그 사이로, 하얀 레이스가 드러났다.진희의 손이 멈췄다.수영장에서 보았다고 생각했다. 물살을 가르던 어깨, 수영복 위로 드러나던 곡선. 빗속에서 젖은 셔츠 너머로, 헐렁한 옷자락 사이로, 이미 다 짐작하고 있다고 믿었다.아니었다.얇은 레이스 위로, 넘치듯 피어난 가슴이 숨을 쉴 때마다 부드럽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탐스럽고 풍만했다.진희는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수많은 사람의 몸을 보아온 의사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몸 앞에서 손끝이 떨렸다.마지막 단추가 풀렸다.셔츠 원피스가 어깨를 타고 스르륵 미끄러져, 미래의 무릎 위로 내려앉았다.진희가 손을 뻗어, 그녀의 등 뒤로 팔을 돌렸다. 가슴이 맞닿을 듯 가까워졌다. 그의 손끝이 후크를 찾았다.작은 소리와 함께, 레이스가 풀렸다.가려져 있던 복숭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부드럽게 출렁였다. 그 끝은 이미 부풀 대로 부풀어, 붉게 피어 있었다.미래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17년 동안, 이렇게 오래 누군가에게 바라봐진 적이 없었다. 이렇게 숨을 멈춘 채로, 이렇게 떨리는 눈으로.미래가 손을 뻗었다.진희의 가운 끈에 손끝이 닿았다. 매듭이 풀리고, 가운이 그의 어깨에서 흘러내렸다.이번엔 미래가 바라볼 차례였다.램프 불빛 아래, 그의 몸이 드러났다. 길고 매끄러운 선. 넓은 어깨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단단한 근육. 물살을 가르며 다듬어진 몸이었다.성웅의 몸이 떠올랐다. 철저한 관리로 다져진, 묵직하고 단단한 몸. 17년 동안 익숙했던, 늘 위에서 그녀를 덮어오던 몸.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몸은 달랐다.젊고 뜨거웠다. 그리고 그 몸이, 지금 그녀 앞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녀를 기다리며.진희가 다가왔다.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01화. 첫 번째 단추

    집에 들어서자,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진원이 현관에서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엄마, 오늘 친구네서 자고 와도 돼? 다들 슬립오버 한대.”미래는 떨리는 손을 감추며 덤덤하게 세면도구를 챙겨주었다. 진원이 11층 친구네로 내려가고 현관문이 닫히자, 집 안에 완전한 적막이 내려앉았다.정례도, 성웅도, 아이들도 없는 집.미래는 거실 한가운데 한참을 서 있었다.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줄기가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물방울이 어깨를 타고 쇄골로, 다시 목덜미로 흘러내릴 때마다 기묘한 전율이 일었다. 조금 전 그의 입술이 머물렀던 자리였다. 귓바퀴, 감긴 눈꺼풀, 목덜미를 감싸 쥐던 손.입술에는 아직 그의 맛이 남아 있었다.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손을 내리지 않던 사람. 목덜미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는데도, 끝내 참던 사람.이제 미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의 입술이, 그의 손길이, 그가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가슴 한복판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갈증이, 이제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미래는 물을 잠갔다.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 셔츠 한 장과 겉옷을 걸쳤다. 거울 속의 여자를 보지 않으려 애쓰며, 현관을 나섰다.6월의 밤공기는 적당히 서늘했다. 그런데도 온몸이 뜨거웠다.엘리베이터에 올라 45층을 눌렀다. 숫자가 하나씩 올라갔다. 숫자가 바뀔 때마다 심장이 조여왔다.정전된 어둠 속에서 처음 그의 품에 쓰러졌던 엘리베이터. 망고를 보며 웃던 엘리베이터. 젖은 머리로 0.5초를 마주쳤던 엘리베이터.그 모든 엘리베이터가, 이 순간으로 오기 위한 것이었던 것만 같았다.45층.미래는 떨리는 손끝으로 초인종을 눌렀다.띵동.맑고 짧은 호출음이 고요한 복도를 흔들었다.잠시 후, 묵직한 도어록 해제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미래 씨?”진희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흔들렸다.막 샤워를 마친 참이었다. 젖은 머리칼 끝에서 물방울이 맺혀 쇄골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운 하나만 걸친 채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00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입술이 닿았다.그리고 그대로, 멈췄다.진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미래도 숨을 쉬지 못했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은 채, 1악장의 낮은 현악기 소리만 차 안을 천천히 흘렀다.진희가 아주 조금, 입술을 떼었다.눈을 떴다.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거리에, 미래의 눈이 있었다.미래도 눈을 뜨고 있었다.어둠 속에서도 그 눈동자가 선명했다. 놀란 것도, 망설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를 보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이 누구인지, 이 입술이 누구의 것인지, 똑똑히 새기려는 것처럼.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진희가 다시 다가왔다.이번에는 미래의 아랫입술을 천천히 머금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귀한 것을 맛보듯, 아주 부드럽게. 레쓰비의 달콤 쌉싸름한 맛이 입술 끝에 남아 있었다.미래의 숨이 떨렸다.그가 다시 입술을 떼고, 눈을 맞췄다.이번엔 미래가 먼저였다.그녀가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진희에게로 기울었다.진희의 혀가, 열린 입술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문 앞에서 허락을 구하듯, 그녀의 혀끝을 아주 가볍게 스치고 물러났다.미래가 따라갔다.그녀의 혀가 그를 찾아왔다. 두 사람의 혀끝이 닿았다가, 미끄러지듯 얽혔다. 느리고, 깊고, 부드럽게.깊어졌다.진희의 손이 미래의 머리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긴 손가락이 부드러운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리다가, 귓바퀴에 닿았다. 엄지가 귓불을 아주 느리게 어루만졌다.미래의 온몸에 전율이 번졌다.진희의 입술이 미래의 입술을 떠나, 감긴 눈꺼풀 위에 내려앉았다. 한쪽 눈, 그리고 다른 쪽 눈. 그리고 귀. 귓바퀴를 따라 아주 천천히, 뜨거운 숨과 함께.“하아…….”미래의 입술 사이로 숨이 새어 나왔다.그녀의 손도 그를 찾아 올라갔다. 그의 짧은 머리칼을 손끝으로 쓸어 넘기고, 단단한 귀를 가만히 매만졌다. 그가 자신에게 해주는 것을, 그대로 돌려주듯이.진희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로 돌아왔다.두 사람은 서로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귀를 어루만지며, 깊게, 아주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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