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래의 오전은 기계처럼 정확했다.필라테스, 사우나, 아이들 일정 점검. 그녀는 집 앞 스튜디오를 두고 일부러 청담동까지 갔다. 대치동 학부모를 마주치는 순간, 운동도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노동이 되기때문이었다.아이의 성적이 엄마의 계급이 되고, 엄마가 아이의 외교관이 되는 동네. 그곳에서는 속내를 들켜도, 패를 보여도 안 됐다. 언제나 교양 있고 흠잡을 데 없는 사모님이어야 했다.“회원님, 오늘 몸 선이 정말 좋아요. 누가 마흔셋이라고 보겠어요?”십 년째 미래를 지도해온 강사가 감탄했다.“특히 가슴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선은 타고나신 거예요. 피부 탄력까지 그대로고…….”미래는 짧게 웃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외모 칭찬을 오래 듣는 일은 늘 불편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해도, 정작 듣고 싶은 한 사람에게서는 오래전부터 아무 말도 듣지 못했으니까.운동을 마친 뒤 한적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누구도 그녀를 ‘진원 엄마’나 ‘서윤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곳. 오롯이 안미래로 존재하는 한 시간의 사치였다.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딸에게 전화가 왔다.“엄마, 나 진짜 망했어.”“무슨 일인데?”“화학 수행평가 조가 완전 죽음의 조야. 안 선생님한테 빨리 연락해줘.”서윤이 부르는 조원들의 이름을 듣자 미래의 표정이 굳었다. 대치동 엄마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무임승차와 질투의 조합이었다.미래는 곧바로 비밀 과외 선생에게 연락했다. 대형 학원 간판 뒤에 감춰진 족집게 강사, 검증된 엄마들만 공유하는 번호. 수년간 발로 뛰며 완벽하게 만들어둔 라인이었다.긴 통화가 끝났을 때 커피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샌드위치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또다시 완벽한 엄마의 임무를 해냈다.하지만 인간 안미래의 한 시간은 사라졌다.그때 옆 테이블에서 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또래로 보이는 평범한 주부였다. 명품 가방도, 관리받은 손톱도 없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통화하고 있었다.“여보, 오늘 저녁 뭐 먹고
Last Updated : 2026-09-0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