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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양아버지의 죽음

비가 내리는 밤, 외곽의 허름한 창고 안.

사채업자들에게 붙잡힌 양지강은 도망갈 기회를 찾게 되었다.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전에 도망치려다 들켜 며칠 굶고 칼에 두 번 찔리기까지 해서 몸이 아프고 무거웠으나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달렸다.

도로까지 달려 나왔을 때, 비가 점점 더 크게 내렸다.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이 쏟아져 와이퍼가 무의미해질 정도였다.

“퍽!”

허겁지겁 도망치던 양지강은 도로의 한 차량에 부딪혀 수 미터 가량 날아가 버렸다.

운전하던 여자는 자신이 사고를 쳤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다. 그녀는 빗속에서 차를 멈추고 쓰러져 있는 양지강 앞으로 다가와 그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양지강이 눈을 떠 눈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성아?”

비를 맞으며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윤성아와 똑같게 생겼는데 양지강은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활짝 웃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으나 그는 이 순간 고통도 잊은 듯, 여자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정말 너구나! 성아야, 아빠를 구하러 온 거지? 넌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러자 여자가 표정을 구겼다.

“미쳤어요? 내가 왜 당신 같은 사람 딸이에요?”

그녀는 운성 안씨 가문의 둘째 딸 안효주였는데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안효주에게 쌍둥이 언니가 있었으나 몇 해 전에 사망했고 그녀는 어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언니의 얼굴로 성형수술을 했었다...

양지강을 발로 차버린 그녀는 차에 돌아와 돈을 한 다발 꺼내 양지강의 옷 속에 넣어주며 말했다.

“당신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제 차에 들이박았잖아요. 이 돈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나 받으세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다시 차로 돌아왔다. 오직 이 재수 없는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양지강이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성아야, 다시는 도박하지 않을게! 아빠 좀 구해줘. 이대로 두고 가지 마! 그놈들이 날 찾게 될 거야! 그럼 난 맞아 죽는다고!”

그는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이미 시동이 걸려 앞으로 나아가는 안효주의 차를 향해 달려갔다.

“퍽!”

또 한 번, 그가 차에 부딪혔는데 이번에는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으며 더 멀리 날아갔다. 풀숲에 떨어진 그는 미동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안효주는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내가... 사람을 치어 죽인 건가?’

비는 여전히 억수로 쏟아졌다. 애써 다시 냉정을 되찾은 그녀는 주위에 감시카메라가 있는지 확인하곤 허둥지둥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다음날, 윤정월은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시체 보관소에서 양지강의 시체를 확인한 그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그 시각.

아무 것도 모르는 윤성아는 10시쯤에 나엽의 아파트에서 깨어났다. 그녀의 자그마한 얼굴은 핏기가 없이 하얬으며 열이 펄펄 끓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녀는 갑자기 양지강에게 아직 돈을 보내지 못한 사실이 떠올라 강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8천만 원만 줘요! 주환 씨, 제발 부탁해요. 급하게 쓸 데가 있어요. 지금 돈 주면 안 돼요?”

강주환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돈이 필요하면 저녁에 아파트에서 다시 얘기해.”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윤성아는 멍하니 그곳에 앉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그러자 나엽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돈이 급해요? 아, 그러니까... 내가 먼저 빌려줄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윤성아가 눈을 반짝 빛냈다. 그녀는 나엽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바로 차용증을 썼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나엽에게 돈을 갚을 것이라 약속했다.

얼마 후, 나엽이 준 카드를 갖고 부랴부랴 그곳을 떠나려 했으나 열이 너무 높아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데려다줄게요.”

그 모습에 나엽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딜 가려는 거죠? 차로 데려다줄게요.”

시간이 급박했다.

“좋아요.”

그녀는 나엽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곳에 어떻게 된 일인지 강주환이 서 있었다.

윤성아를 조심스럽게 보호하는 나엽의 모습과 그녀의 손에 들린 카드를 보자 단번에 화가 치밀었다.

그는 차 문을 닫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윤성아, 너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싸늘하게 나엽을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여자에게 돈을 주기 전에 이 여자가 내 여자라는 사실은 몰랐어? 저 여잔 돈을 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거야!”

윤성아의 얼굴이 한층 더 하얗게 질리며 몸이 휘청거렸다.

나엽이 미간을 구겼다.

“강 대표님, 오해하셨네요. 저와 윤성아 씨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돈이 필요해서 제가 빌려준 것뿐이에요.”

“하!”

저 빌어먹을 여자가 매번 돈을 가져갈 때마다 ‘빌린’다고 하지 않았었나?

강주환은 차갑게 웃으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윤성아, 넌 정말 더러워. 역겹다고! 우린 이제 끝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그곳을 떠났다. 나엽이 윤성아를 바라봤는데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윤성아가 말했다.

“가요.”

나엽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줬고, 연예인이라 차에서 내려 따라가기 불편했던 그는 먼저 돌아갔다.

낡은 정원으로 걸어 들어가자 집안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안채 한가운데 관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고 윤정월과 동생 양신우가 관 앞에 꿇어앉아 울고 있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윤 정월은 울어서 붉게 물든 눈으로 윤성아를 쏘아봤다.

“무슨 낯으로 집에 돌아오는 거야! 다 너 때문이야!”

“진작 내가 널 목 졸라 죽였어야 해! 네가 지강 씨를 죽였어!”

불현듯, 그녀가 덮쳐들고 윤성아를 힘껏 때리기 시작했고 윤성아는 그저 말없이 맞기만 했다.

그러다 창백한 얼굴로 관 앞에 꿇어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그녀는 양지강이 정말 죽게 되리라곤 생각해본 적 없었다.

“지금 사과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 다 너 때문이라고! 네 아빠가 어려서부터 너에게 얼마나 잘했는데! 못한 게 있으면 얘기해봐! 그런데 넌 모질게도 그가 죽도록 내버려 뒀어! 꺼져! 꺼져! 무슨 낯으로 여기에 있는 건데!”

마치 몸속에 있는 장기를 토해낼 듯이 악을 쓰며 윤성아를 잡아끌던 윤 정월은 결국엔 성아를 집 밖까지 쫓아냈다. 악독한 눈빛으로 윤성아를 노려보며 그녀가 말했다.

“멀리 사라져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앞으로 나도 너 같은 딸 둔 적 없다!”

정원에 스르륵 주저앉은 윤성아 주위로 구경나온 마을 주민들이 에워쌌다.

“세상에, 제 아버지 죽게 그냥 내버려 뒀다네...”

“돈 많은 남자 애인질 해주며 돈은 펑펑 끌어다 썼대. 그런데 아버지는 나 몰라라 해서 결국 양아버지를 죽게 했다잖아...”

이상한 소문이 사실이 되었고 주민들은 생각할수록 윤성아가 미웠다. 사람들은 점점 분노했고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달걀을 던졌다.

“꺼져! 여기 꿇어앉아 시위라도 하는 거야?”

“썩 꺼져!”

“우리 마을에 부모도 잡아먹는 너처럼 끔찍하고 무서운 여자가 있을 곳은 없어! 돈을 위해 돈 많은 남자에게 몸까지 팔았다며? 더럽고 악독한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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