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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누굴 믿을 것 같아?

Author: 사흘부탁
태경은 사랑의 말을 무시하고, 집사에게 차 대시시키라고 했다.

사랑은 그의 소매를 움켜쥐며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

“정말 병원에 갈 필요가 없어요. 그냥 생리 온 것 같아요.”

태경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

“요 며칠이 아닌 것 같은데.”

계약 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은 부부로서 해야 할 일을 빼먹지 않았다.

태경은 정상적인 남자였기에, 생리적 욕구가 있었다. 그를 만족하기엔 쉽지 않았는데, 어떨 때는 몇 번이나 사랑의 생리기간과 충돌되었다.

사랑은 태경의 기억력이 이렇게 좋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돌리며 감히 태경의 눈을 보고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요즘 날짜가 그리 정확하지 않거든요.”

태경은 사랑의 이마를 만졌는데 체온은 정상이었다.

사랑은 그에게 안긴 채로 침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고 싶지 않았고, 배의 통증이 점차 사라지자, 사랑도 많이 편안해졌다.

태경은 약 상자에서 진통제를 꺼내 건넸다.

“약 먹고 자.”

사랑은 멍하니 진통제를 받았는데, 알약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지금의 태경은 확실히 친절하고 다정했다. 평소의 그는 냉정하고, 자제하고 또 까칠했으니까.

잠시 후, 남자는 다시 사랑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

사랑은 물컵을 받으며 나지막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함부로 약을 먹지 못했다.

‘아이를 가졌으니 조심해야 되는데...’

태경은 셔츠의 단추를 풀며 물었다.

“왜 안 먹어?”

사랑은 아무 핑계를 댔다.

“이제 좀 나아졌어요. 의사가 진통제를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약에 의존성이 생기니까요.”

태경은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고 욕실에 가서 샤워를 했다. 그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졌다.

사랑은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손바닥으로 배를 어루만졌다.

‘아직 두 달도 채 안 되어서,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르겠네.’

사랑은 주말에 예약한 수술을 생각하니, 가슴이 벌벌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아이를 지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얼굴을 숙이고 뱃속의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때, 침대에 놓인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며 화면이 반짝거렸다.

사랑은 벨소리에 놀라 깨어났는데, 정신을 차린 다음, 태경의 휴대전화를 쥐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세영]

사랑은 동화 속의 빌런이 되고 싶었다. 전화를 받으며 일부러 여주인공에게 자신의 남편이 지금 샤워 중이라며, 위세를 떨치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은 전화를 받지도, 끊지도 않았다. 그저 벨소리가 끊어지기를 조용히 기다리며, 그녀의 기억은 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경찰에게 구조되었을 때, 사랑은 거의 숨이 끊길 지경이었다. 3개월 동안 입원하며 심각한 외상성 고막 천공으로 청력에 문제가 생겼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은 여전히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온전히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납치되었던 그 소년이 무사한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도 사랑에게 그 답을 해주지 않았다.

3개월 후, 사랑은 퇴원하여 강남복을 따라 예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사랑은 교실 문 앞에서 세영을 기다리고 있는 태경을 보았다. 열여섯 살의 소년은 그야말로 햇살보다 찬란했다. 두 반의 학생들은 그런 태경을 보며 웅성거렸다.

사랑은 달려가서 태경에게 괜찮은지, 상처는 어떠한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태경과 세영이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태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영과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사랑은 그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영의 가방에는 사랑의 낡은 펜던트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인형은 눈알 하나가 빠져 있었다.

그날, 납치되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그때 납치범은 태경의 두 눈을 검은 천으로 가렸다. 사랑은 손목이 묶여 그 천을 벗겨줄 방법이 없었다.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펜던트를 태경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인데,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거든. 이 인형을 안으면 넌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남자아이는 땅에 엎드려 기침을 몇 번 했는데, 심지어 피를 토했다. 그는 인형을 만지며 웃기 시작했다.

“외눈박이네.”

사랑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눈이 하나 빠졌을 뿐이야.”

그때 태경은 거의 맞아 죽을 뻔했다. 사랑은 항상 자신이 겁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어찌된 일인지, 그의 앞으로 달려가 채찍을 대신 맞아줬다.

너무 아파서 사랑은 거의 의식을 잃을 정도였고, 기절하기 전까지, 앞으로 구조되면 꼭 태경을 찾아가서 따질 거라 생각했다.

태경은 그녀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었고, 사랑도 자신의 성이 강이라고만 말했다.

그 외눈박이 인형은 증거로 남아 오히려 태경과 세영 사이를 이어놓았다.

사랑이 세영에게 이 얘기를 꺼냈을 때, 세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심지어 웃었다.

“그럼 가서 태경에게 알려줘. 사랑아, 태경은 누굴 믿을 것 같아?”

“사람을 잘못 찾았다, 잘못 사랑했다. 이 말을 믿을 것 같냐고?”

태경은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

욕실의 물소리가 점점 그쳤다.

사랑은 상반신을 드러낸 남자를 바라보며 그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전화 왔었어요.”

쉰 목소리로 응답하며 태경은 젖은 머리카락을 닦았다.

“누구지?”

사랑이 말했다.

“강세영 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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