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 생활만 3년 차, 강하리는 결국 구승훈의 마음도 사랑도 얻지 못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도망가려는데, 후회한 구승훈은 지독한 집착을 시작한다. “대표님, 때늦은 후회보다 멍청한 것은 없어요.” 강하리가 아무리 매몰차게 거절해도 구승훈은 절절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래, 난 멍청이야. 그러니 제발 날 떠나지 말아 줘.”
view more그러나 겉으로는 티를 내지 못하니 그저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해명하기 시작했다.“주임님께서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전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그러자 유강희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그렇다면 정말 내 이해 능력이 많이 떨어지나보다. 난 또 오해하고 혹시나 오늘 이 미팅을 잘못 잡았나 했네. 물론 내 잘못이라면 바로 나한테 말해주거나 위선에 고발해도 괜찮아.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그냥 닥치고 조용히 있어!”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회의실 안의 사람들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나도 모두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알아. 여 부장관이 올라오니까 다들 새 라인 타고 싶은 거잖아? 난 우리 팀원이 어느 라인에 서는지 상관하고 싶지 않은데 우리 사무실에서만큼은 무조건 실력이 1순위로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이런 기본적인 원고조차 엉망진창으로 번역한다면 어떤 사람을 등에 업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고 해도 난 반드시 우리 팀에서 쫓아내 버릴 거야!”순간 회의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모든 사람의 안색이 다 좋지 못했는데 그중 여명희가 제일 티 났다.강하리는 고마운 마음에 유강희를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리더러 계속 강의하라고 했다.그렇게 강하리는 모든 사람들의 번역본을 한번 훑어주고 난 뒤에야 회의를 마쳤다.회의실을 나오려는데 갑자기 유강희가 강하리를 불러세웠다.“어때? 몸이 버틸 만하겠어?”강하리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괜찮아요. 감사합니다.”그러자 유강희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줬다.“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나랑 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셈이야. 그리고 애초에 미현이가 나를 통역의 길에 들어서게 해줬거든. 만약 지금 살아있었으면 나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으로 되었을 텐데...”말하다 보니 어느새 유강희의 눈가가 빨개졌다.“됐다, 그만하자. 여명희는 너무 신경 쓰지 마. 아마 지금 자기 아버지를 믿고 번역팀에서 활개를 치고 다닐 뿐이지 진짜 선 넘는 일은 못 할 거야. 어차피 나
회의실 안.유강희는 언짢은 얼굴로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사실 강하리가 오기 전, 백아영은 특별히 유강희한테 그녀를 잘 돌봐달라며 부탁했었는데 번역팀이 여태껏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기에 유강희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강하리가 오자마자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그녀를 따돌릴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회의실 분위기는 암흑 그대로였는데 오히려 강하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근차근 자료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그녀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열심히 자료를 준비했는데 각자의 원고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도 각각 표시해 두어 한눈에 봐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사람들은 강하리한테서 자료를 건네받고는 저마다 기분이 이상했다.원래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분명 강하리가 주임 앞에서 오늘 자신들이 했던 행동들에 대해 고자질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자신이 직접 원고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수정해서 분석한 내용을 공유해 줬다.하여 제대로 그녀를 골탕 먹이려 했던 사람들은 난감하고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사실 강하리도 바뀐 분위기를 못 느낀 게 아니라 단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이것마저 일시적인 반응이라 생각했다.이따 미팅이 끝난 뒤 여명희와 나란히 서게 되면 그들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또다시 여명희 쪽에 설 게 뻔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강하리도 굳이 자기편에 서주길 바랐던 게 아니기에 아무 상관이 없었다.그러나 여명희는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매서운 눈빛으로 강하리를 쏘아보았지만 강하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진도를 나갔다.“다음 이 프랑스어로 번역된 원고를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프랑스어는 여명희가 번역했다.강하리가 갑자기 프롬프트를 켜서 벽에 비추자 화면에는 이곳저곳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정한 내용이 빼곡히 들어있었다.순간 여명희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사실 요즘 정신이 온통 임명우한테 쏠리고 있었고 이 번역본도 그녀가 준비한 게 맞지만 그저 대충 해버렸다.그러나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보여줄 줄은 상상치
“왜요, 이제 악수도 하기 싫은 건가요? 아니면 진씨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고 저희를 무시하는 겁니까?”여명희는 한 마디로 강하리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만약 지금 악수하면 손에 상처가 날 것이고 안 하면 그들을 무시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그리고 일부러 진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호칭했다.여기 있는 사람 중에 과연 외교부가 현재 진씨 가문의 사람을 가장 꺼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그녀의 말에 강하리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친 손을 번쩍 들었다.“눈이 있길래 그래도 알아챌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다쳤어요, 이제 보이나요?”그리고 의미심장한 말도 같이 내뱉었다.“전 그나마 명희 씨를 생각해서 악수 안 한 건데요? 아니면 혹시나 제가 기분 나빠서 그쪽이 일부러 다친 손을 더 꽉 잡아 상처가 심해졌다고 말해버리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도 번역팀에 특채로 입사한 사람인데 출근 첫날부터 그쪽한테 괴롭힘을 당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명희 씨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을 거고요. 아닌가요?”강하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여명희를 지나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강하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은 여명희는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꼭 쥐었다.말로는 여명희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자신을 건드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겠지만 혹시나 시비 걸어오면 반드시 모든 죄를 여명희한테 뒤집어씌우겠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여명희는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올라 손까지 부들부들 떨었다.그날 임명우가 강하리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소리를 들은 뒤로 그녀에 대한 질투가 극에 달했다.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하리를 제대로 골탕 먹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임명우가 보호해 준들 뭐가 달라질까?그때 가서 임명우가 진짜로 강하리 때문에 자신과 사이가 틀어지는지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그러나 위협은커녕 도리어 강하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었다.여명희는 생각할수록 너무 분해 이를 아득바득 갈다가 다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강하리는 상처를 다 치료한 뒤 외교부로 향했다.그러나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는데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질투심에 비웃거나, 아니면 걱정하는 듯한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여러 가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데도 강하리는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다가 유독 애틋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여기서 박근형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1년도 안 된 사이에 오히려 더 젊어진 것 같았다.“교수님.”강하리가 반갑게 인사하자 그도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강하리를 맞이했다.“네가 돌아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난 그러지 않기를 바랐어.”“교수님도 돌아오셨는데 제가 왜 못 오겠어요?”그러자 박근형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난 네 아버지 덕을 크게 본 사람이라 지금 터진 일에 대해 모르는 척할 수 없었어.” 그의 말에 강하리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다시 답했다.“정말 고맙습니다, 교수님.”사실 알 사람은 다 알다시피 진태형 라인에 탄 사람들의 선택이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았다.특히 박근형은 원래 은퇴해서 완전히 안락한 노후를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진태형의 일 때문에 이렇게 단번에 복직한 걸 보면 얼마나 의리 있는 사람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뭐가 고마워. 난 네가 태형이 딸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 늙은 놈한테 이렇게 훌륭한 딸이 갑자기 생길 줄을 누가 알았겠어? 그러니 내가 화가 나, 안 나?”강하리와 박근형은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번역팀 사무실로 돌아갔다.그러나 두 사람이 들어가자마자 조금 전까지 북적거리던 사무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그중에는 눈에 익은 사람들도 있었고 예전에 강하리가 교수직이었을 때 꽤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그러나 이번에 돌아오니 너무 티가 나게 강하리의 눈을 피하는가 하면 아예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고 전부 여명희 쪽에 붙어버렸다.강하리는 사람들을 한번 훑더니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알
그렇다고 감정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의 결정에 간섭하기도 싫었다.두 사람의 얘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구승훈 쪽도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조시욱은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낀 채 구승훈에게 걸어왔다.그가 오늘 여기에 온 목적도 구승훈의 보증인 자격으로 대변하기 위해서였다.현장에서 누군가가 총을 쏜 일은 이제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비록 구승훈이 들고 있던 총은 누군가가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소지가 가능한 총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반드시 보증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하여 제일 마땅한 사람이라고는 조시욱 밖에 생각나지 않아 그를 부르게 된 것이다.조시욱은 눈에 불을 켜고 살벌한 얼굴로 구승훈에게 다가와 말했다.“이제부터 이런 일로 절 부르지 말아요!”그러자 구승훈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아, 혹시 임명우 씨의 자백도 필요 없다는 뜻일까요?”순간 조시욱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씨X, 오늘 보증인으로 사인까지 해줬으면 됐잖아요!”“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어차피 말싸움으로는 저를 못 이기니까.”“당신!”조시욱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런 빌어먹을 놈한테 걸린 걸까?이때, 금방에라도 눈앞에서 두 사람이 싸울 것 같아 강하리가 재빨리 구승훈을 불렀다.“승훈 씨!”그러자 구승훈은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자기야, 나 불렀어?”그러나 강하리는 그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조시욱을 바라보며 말했다.“잘 부탁해요.”조시욱은 지금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그 화살을 강하리한테까지 쏠 필요는 없었다.하여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하려다가 문득 거즈를 감은 그녀의 손에서 피가 많이 묻어있는 모습을 보고 다시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다친 건 좀 어때?”그날 밤 원래 강하리를 보고 가려 했지만 결국에는 또다시 구승훈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게 되면서 나중에는 그녀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까지 싹 사라지게 했다.“많이 나았어요.”조시
임명우의 일을 모두 처리하고 나니 벌써 오후가 되었다.강하리와 구승훈이 경찰서에 도착해보니 심준호와 조시욱도 이미 와 있었다.조시욱은 강하리와 가볍게 인사한 뒤 서둘러 취조실로 들어갔다.그러나 심준호는 강하리에게 다가와 한껏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간도 커.”그리고 어두운 얼굴로 거즈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회복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이따 병원에 다시 가봐.”강하리는 눈치껏 고분고분 답했다.“네, 삼촌.”역시나 심준호는 그녀의 생각을 이미 알아챘는지 강하리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괜히 말 잘 듣는 척하지 마. 네 성격을 내가 모를까 봐?”그러자 강하리는 재빨리 심준호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저 원래 착하잖아요.”심준호가 어이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착해서 총을 막 쏘고 다니고 병원에서 구승훈이랑 그런 짓까지 했던 거야?”그의 말에 강하리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총을 쏜 일에 대해 말하는 건 사실 괜찮았다.어쨌든 긴급한 상황이었고 만약 제때 총을 쏘지 않았다면 구승훈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병원에서 그 짓을 한 건 도무지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막막했고 심준호가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다가 문득 그가 지금 삼촌으로서 조카한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려는 의도를 알아채게 되었다.사실 심씨 가문에서는 여전히 구승훈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강하리도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구승훈이 심미현의 납치 사건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줬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도 칼같이 계산해 주면서 단 한 번도 그를 살갑게 가족처럼 대해주지 않았다.그리고 이 모든 행동으로 그들의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강하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만 달싹거리다가 빠르게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삼촌은 오늘 임명우 씨 때문에 여기에 온 거에요?”그러자 심준호가 그녀를 힐끔 째려보며 되물었다.“민망하긴 한가 봐?”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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