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 생활만 3년 차, 강하리는 결국 구승훈의 마음도 사랑도 얻지 못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도망가려는데, 후회한 구승훈은 지독한 집착을 시작한다. “대표님, 때늦은 후회보다 멍청한 것은 없어요.” 강하리가 아무리 매몰차게 거절해도 구승훈은 절절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래, 난 멍청이야. 그러니 제발 날 떠나지 말아 줘.”
View More하지만 누군가 때문에 그녀는 평생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그 생각에 강하리는 눈을 꼭 감았다. 만약 그때 심미현을 잘 보호해서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이처럼 후회만 남았을까?강하리는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누군가와 얘기라도 나누고 싶었다.하여 핸드폰으로 연락처를 뒤지다가 문득 구승훈의 이름에서 멈추게 되었다.구승훈과 조시욱이 어떤 거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구승훈은 분명 그를 만나러 갔을 것이다.강하리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구승훈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오늘 집에 와?]역시나 구승훈은 문자를 보자마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지금까지 자신이 강하리에게 끈질기게 매달렸는데 아마 이 메시지는 그 오랜 시간을 거쳐 처음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자기 사장님께 한창 상황을 보고하던 준봉은 그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말문이 막혀버렸다.곧 라이벌 만나러 가는 사람이 저렇게 활짝 웃는 게 어디 말이 되나 싶었다.구승훈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그녀에게 답장했다.[기어서라도 갈 테니까 문만 열어놔.]강하리는 그의 답장이 어이없는 한편 이렇게라도 그와 문자를 주고받으니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그리고 곧바로 도우미에게 혹시 두꺼운 이불이 있으면 소파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구승훈은 그 뒤로 아무 답장이 없는 핸드폰만 하염없이 바라만 보다가 한껏 실망한 얼굴로 다시 내려놓았다.그러다가 문득 준봉의 착잡한 얼굴을 보더니 아까보다 더욱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난감하네. 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언제 오냐고 닦달이야. 여자들은 왜 이렇게 집착이 심할까?”순간 준봉은 어이없는 나머지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사장님, 지금은 그저 너무 신나 보이기만 하지, 하나도 난감한 것 같지 않은데요?”그러자 구승훈이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삐죽거리며 답했다.“내 아내가 나더러 언제 오는지 물어보는데 좀 신나면 안 돼?”“아유, 당연히 되죠, 안 될 것도 없죠. 그런데 이런 태도로 이따 조시욱 씨를 만날 건
밥을 다 먹고 난 뒤 구승훈은 집에서 나왔다.노윤정도 오늘 두 사람을 따라다니느라 힘들었는지 일찍 곯아떨어졌다.창가 쪽에 앉아 있던 강하리는 진태형에게 전화할지 한참 동안 망설이고 있는데 도우미 아주머니가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순간 곰탕이 아닌 걸 발견한 강하리가 어리둥절해서 그녀에게 되물었다.“오늘에는 곰탕이 아니네요?”그러자 도우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구승훈 씨가 혹시나 아가씨께서 먹기 싫다고 하면 억지로 먹이지 말라고 하셔서요. 그리고 곰탕은 기름기가 많아서 소화가 잘 안될 것 같아 우유로 바꿨습니다.”그녀는 덤덤하게 컵을 건네받았지만 얼굴에는 행복감이 가득 번졌다.“여전히 아가씨를 많이 걱정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 지내고 계시는지, 식사는 제때 하시는지 너무 걱정되네요. 오늘 보니까 예전보다 많이 야윈 것 같던데.”그러자 강하리가 그녀를 힐끔 바라보며 되물었다.“그렇게 걱정되시면 그 사람 전담 도우미가 되는 건 어떠세요?”도우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향했다.강하리는 황급히 떠나가는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손에 든 컵을 몇 번 쓰다듬더니 이내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그리고 한참 동안 고민 끝에 그녀는 다시 진태형에게 전화를 걸었다.진태형은 한창 바쁜지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하리야, 무슨 일로 이 시간에 다 전화했어?”강하리가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고민 끝에 물었다.“아빠, 언제 돌아오세요?”진태형이 한껏 다정하게 답했다.“오늘 밤 비행기 타면 아마 내일 아침 일찍 도착할 거야. 내리자마자 너랑 연정이 보러 갈게.”그러자 강하리는 핸드폰을 꽉 쥐고 어렵게 입을 뗐다.“아빠, 혹시 진시연 씨한테 올해 같이 설을 보내자고 하셨어요?”그러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진태형 때문에 강하리는 더 조바심이 났다.“아빠,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끊임없이 쏟아지는 물음에 진태형은 피식 웃더니 수
구승훈은 말을 마치자마자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고 노민우는 이미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에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씨X!”‘홀아비?’‘내가 홀아비라고?’마치 자기는 아닌 것처럼 말하는 구승훈 때문에 노민우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구승훈, 넌 네가 대단한 거 같지? 아내가 없는 건 너나 나난 마찬가지잖아!”이때, 노민우에게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난 곧 생길 거야. 그러니까 너랑 난 달라.]노민우는 이를 꽉 깨물고 큰 소리로 말했다.“아직 재혼도 안 했으면 넌 그냥 전남편일 뿐이야!”[그 전남편은 이미 집까지 드나드는데?]순간 노민우는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갑자기 화를 내서 그런지 머리가 아파져 왔다.그는 몇 번 더 문에 대고 욕설을 내뱉은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그러다가 밖으로 나와 조용한 아파트 단지를 걷다 보니 문득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어제 손연지의 출입국 기록에 그녀의 이름이 없다는 걸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너무 기쁜 나머지 흥분되어 잠도 오지 않았는데 오늘 강하리한테서 저런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게 되니 그 충격은 배로 느껴졌다.그리고 이내 코끝이 찡해졌다.그는 나름 자신이 노력하고 있는데 기다려주지 않는 그녀가 너무 원망스러웠다.강하리는 위층에서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떠나가는 노민우의 모습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다가 영상 통화 중에도 침대에 기대어 무언가를 먹고 있는 손연지에게 되물었다.“정말 안 만나줄 거야?”그러자 손연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만나서 뭐 해? 하리야, 이게 열등감이 아니라 지금 내 조건을 고려해 보면 민우 씨 엄마가 아니라 나도 나 같은 여자를 만난다고 하면 너무 싫겠다. 아무리 민우 씨가 인성은 별로라고 해도 그 대신 집안이 받쳐주잖아. 난 그것도 없고 심지어는 애까지 못 낳는대.”“그래서 그냥 여기서 끝내려는 거야. 지금은 민우 씨가 많이 섭섭해하겠지
아파트 입구.노민우는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채 초췌한 얼굴로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입고 있던 옷도 이미 쭈글쭈글 구겨져 있었고 평소 깔끔하게 빗어 넘겼던 머리도 엉망진창이 되어있어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노민우는 여기서 밤새 기다린 듯 구승훈과 강하리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구승훈이 먼저 그를 부르고 나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서 그런지 일어날 때도 겨우 몸을 일으켰다.구승훈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그래도 한 손으로 그를 부축해 주며 그에게 물었다.“왜 여기에 있어? 연성에 있었던 거 아니었어?”그러자 노민우가 갑자기 강하리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연지는요?”강하리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고민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들어가서 말해줄게요.”순간 노민우가 휘청거리더니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아직 어디도 안 간 거 맞죠? 제가 몇 번이고 출입국 기록을 확인했는데 연지의 이름은 없었어요. 아직 가지 않았죠?”이미 목도 많이 쉬어 있던 탓에 거의 소리를 내질렀다고 봐야 했다.그런 노민우의 모습에 구승훈이 어두운 얼굴로 다그쳤다.“무슨 말버릇이야?”그제야 자기 태도를 인식한 노민우가 다급하게 사과했다.“하리 씨, 미안해요. 전 그냥 연지 소식이 너무 궁금해서... 혹시 저한테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그러자 강하리가 한숨을 내쉰 뒤 덤덤하게 답했다.“아마 만나주지 않을 겁니다.”그녀의 말에 마음이 더욱 조급해진 노민우는 막 뭐라고 되물으려다가 옆에 차가운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는 구승훈 때문에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저도 이미 많이 반성하고 있는데 저더러 여기서 뭘 더 어떡하라는 걸까요? 어디 혼자만 괴롭나요? 저도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요!”“연지 때문에 우리 집사람들과 그렇게 싸웠는데 이대로 가버리면 저는 어떻게 해요? 제 감정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잖아요.”“저는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짐이라고 했다면서요? 그 말이
그러나 그녀의 이런 감정 변화된 모습도 구승훈에게는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그러다가 문득 두 사람이 사뒤었을 때도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을까 싶어 강하리에게 점점 미안한 감정이 들면서 진작에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기분 나빠?”구승훈이 허리를 굽히고 그녀와 눈을 맞추며 묻자 강하리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그 모습에 구승훈도 싱긋 미소만 지을 뿐, 더는 묻지 않고 휠체어를 밀고 주차장으로 향했다.그리고 먼저 노연정과 강하리를 차에 앉히고 물건까지 다 실은 뒤에 문득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궁금하면 이참에 아빠한테 전화나 걸어보든지. 혼자 낑낑거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잖아.”강하리는 그의 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따뜻해졌지만 곧바로 전화를 걸지 못했다.“나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걱정돼서.”저번에 심준호가 아빠랑 연락했냐고 물어봤을 때도 자꾸만 그녀를 떠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오늘에 또 이런 일까지 생기니 강하리는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에 잠긴 강하리를 구승훈은 말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노연정에게 눈빛을 한번 보냈다.그러자 그녀는 냉큼 알아듣고 강하리에게 안기며 핸드폰을 가리켰다.“할아버지도 연정이가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그리고 강하리의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풀었다.그 모습에 강하리는 문득 웃음이 터져 나왔다.“외할아버지 보고 싶어?”그러자 노연정은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답했다.“외할아버지도 연정이가 보고 싶을 거예요.”강하리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노연정의 볼을 꼬집었다.“외할아버지 쪽은 아직 밤일 거야. 이따 날이 밝으면 우리 한번 전화해 보자, 응?”노연정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 못 했는지 여전히 핸드폰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그 모습에 구승훈은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말했다.“그만하면 됐어. 도와줘서 고마워.”그러나 노연정은 입을 삐쭉거리며 못 들은 척했는데 구승훈이 다시 핸드폰을 가져가
진시연은 자랑하듯 강하리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그저 뜨뜻미지근하게 답했다.“축하해요.”그러자 진시연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축하할 필요까지야, 우리 가족은 매년 설은 그렇게 보냈는걸요. 올해도 똑같을 것 같은데 하리 씨는 혹시 아빠가 오라고 하지 않던가요?”얼굴은 덤덤해 보였지만 강하리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그래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거기는 제가 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제 집인데, 굳이 아빠가 불러야 할까요?”순간 진시연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가 다시 억지웃음을 지었다.“참, 잊어버리고 말하지 않았네요. 사실 저희는 매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설을 보냈는데 이것도 몰랐나 봅니다?”그녀의 말에 강하리의 얼굴도 삽시에 어두워지더니 눈빛은 아까보다 많이 차가워졌다.진씨 가문의 두 노부부는 그때 구승훈이 진강석을 데려가 며칠 동안 가둬둔 뒤로는 아주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건 단지 예전과 비교할 때만 해당했다.강하리는 지금도 그 어르신들이 자신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걸 종종 들을 수 있었다.심지어 다른 장소에서 서로 마주쳐도 매번 냉담하게 대했는데 여태껏 이런 것들을 강하리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아니었다.여전히 자기 앞에서 턱을 한껏 쳐들고 우쭐거리는 진시연에게 강하리는 막 뭐라고 하려는데 갑자기 구승훈이 덤덤한 얼굴로 받아쳤다.“됐다. 저런 집구석으로 돌아갈 바에는 우리끼리 즐겁게 보내는 게 나을 듯?”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강하리에게 건네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심씨 가문에 가거나 아니면 그냥 연정이랑 우리 세 식구가 쇠도 되지. 다들 너랑 같이 설을 보내려고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게 자기한테 진심으로 한 말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 하고 형식상 와서 설을 보내라고 하니 그저 기뻐서는, 쯧쯧.”구승훈의 농락에 진시연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그리고 두 주먹을 꽉 말아쥐고 구승훈에게 되물었다.“구승훈 씨, 지금 우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