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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첫사랑

Author: 사흘부탁
태경은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사랑은 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태경이 전화 너머의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전화할 때 그의 표정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차가웠던 미간이 점차 풀리면서 입가에는 담담한 미소가 떠오르고, 모처럼 부드러운 기색이 비쳤다.

말없이 시선을 돌린 사랑은 침대 시트를 힘껏 쥐었다. 심장은 마치 갈기갈기 찢어진 것만 같았다.

몇 분 후, 태경이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 사랑은 자신이 참을성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작은 얼굴을 들어 태경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강세영 씨 귀국했어요?”

사랑은 이미 남에게서 세영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영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떠받드는 공주로 살았는데,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세영이 공항에 도착하자, 동창들은 이미 SNS에 사진을 올리며 그녀를 환영했다.

태경은 가슴을 드러내는 짙은 색의 가운을 입고 있었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의 눈빛에 은근히 숨이 막혔다.

“응.”

사랑은 침묵했다.

‘나도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

태경은 화가 났든 안 났든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영원히 냉담한 표정을 지은 채, 그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방의 불을 끄고 침대 머리맡의 작은 등을 남겨두었다.

사랑은 자신을 이불 속으로 숨기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삼키려 애썼다.

침대에 누운 태경은 사랑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뜨겁고 단단한 그의 몸이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 둘의 몸은 서로 닿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했다.

남자는 코끝으로 사랑의 어깨를 가볍게 문질렀고,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 태경의 손은 그녀의 배를 어루만졌고, 그 뜨거운 온도는 끊임없이 전해져 왔다.

그는 낮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좀 괜찮아졌어?”

사랑은 태경이 자신을 부드럽게 대할 때가 가장 미웠다. 마치 그녀를 유혹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심연으로 빠지게 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 사이에 결과가 없단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랑은 기꺼이 그의 함정 속으로 들어갔다.

눈물은 소리 없이 볼을 타고 내려왔고, 사랑은 씁쓸함을 삼키며 대답했다.

“네, 많이 좋아졌어요.”

태경은 그녀의 귀에 뽀뽀를 했다.

“자자.”

밖에 폭설이 내리고 있었기에, 거친 바람 때문에 창문마저 윙윙거렸다.

사랑은 억지로 눈을 감으며 태경의 품에서 잠들었다.

‘시간이 이 순간에 멈추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도 태경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잖아.’

...

이튿날 아침, 밤새 내린 폭설은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랑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는데, 태경은 매일 아주 일찍 일어났다.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집사는 그가 이미 회사에 갔다고 알려주었다.

사랑은 아침을 먹었고,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핸드폰으로 개인병원의 의사를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로 의사는 아주 자세하게 물었다.

[어젯밤에 갑자기 배가 아프셨다면서요? 절박유산일 수도 있으니, 시간 나시면 가능한 한 빨리 병원에 와서 전면적인 검사를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사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네. 그럴게요.”

그녀는 어려서부터 몸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미숙아였기에, 어렸을 때부터 주위의 친구들은 사랑을 병다리라고 불렀다.

나중에 점점 호전됐지만 몸은 여전히 많이 약했다.

겨우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랑은 이미 뱃속의 아이와 감정이 생겼다.

의사는 완곡하게 일깨워 주었다.

[최근에 될수록 남편분과 관계를 가지지 마세요.]

사랑은 얼굴을 붉혔다. 그동안 태경과의 부부 생활은 확실히 너무 잦았다.

태경은 절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일주일에 세 번, 그게 다였다. 그는 사랑을 강요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거절당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사랑은 또 거절을 너무 못 했다. 게다가 그 사람은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였다.

사랑은 입술을 오므렸다.

“주의할게요.”

그리고 또 의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상대방도 무척 친절했다.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죠. 앞으로 무슨 문제가 있으시면 다시 저에게 연락하세요.]

사랑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

9시 전에 택시를 타고 회사로 달려간 사랑은 1분을 남겨두고 출근도장을 찍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현미는 그녀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

“사랑아, 요즘 왜 하이힐을 신지 않는 거지?”

사랑은 찻잔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발이 좀 닳아서.”

현미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대표님 사무실을 힐끗 보았고, 또 고개를 돌려 사랑과 귓속말을 했다.

“우리 대표님이 정유아와 사귀신다는 소문 말이야, 정말일까?”

정유아가 바로 태경과 기사에 찍힌 여자 연예인이었다.

용모가 아름답고, 몸매가 우월하며 매력이 넘치는 톱스타였다.

사랑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말을 하지 않았다.

현미는 좀 의아해했다.

“너도 모르는 거야?”

옆에 있던 미현이 끼어들었다.

“강 비서님이 어떻게 모르실 수 있겠어요? 대표님의 기사와 곁의 여자들은 모두 강 비서님이 책임지셨잖아요?”

현미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대표님 곁의 여자는 정말 빨리 바뀌었지. 그러나 송예진 말고 하나도 회사에 찾아온 적이 없잖아. 아마 대표님도 송예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 거야. 심씨 가문은 C시의 명문가로서, 권력과 세력이 있었으니, 일반인이 따라갈 수 있어야 말이지. 재벌 집 딸들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해.’

현미는 너무 궁금해서 사랑의 팔을 툭툭 쳤다.

“사랑아, 얼른 말해줘.”

사랑은 사실대로 말했다.

“난 확실히 몰라.”

그녀는 태경과 유아가 어떤 관계인지 확실히 몰랐다.

첫눈에 마음에 들었을 수도, 죽마고우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태경의 애인이거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랑은 태경의 애인들을 많이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전에 확실히 태경을 도와 뒷처리를 했으니까.

돈을 충분히 주기만 하면, 사실 그 여자들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그리고 태경이 사랑하는 사람은 며칠 전에 금방 귀국했다.

가슴이 답답한 사랑은 감정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물 좀 받으러 갈게.”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고, 물을 받은 다음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현미 그녀들이 매우 흥분한 것을 발견했다.

사랑은 현미에게 팔을 붙잡혔다.

“야! 전설의 강세영 아가씨가 찾아왔어!”

현미는 그녀가 세영이 누군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계속 설명했다.

“소문에 의하면, 대표님의 첫사랑이야.”

사랑은 잠시 멍을 때렸다.

“그래?”

“방금 실장님이 직접 아래층으로 내려가셔서 마중한 거 있지! 그때 오히려 우리 대표님을 차버렸다고 들었는데.”

사랑은 사실 세영을 전혀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멍을 때리다 마음도 따라서 가라앉았다.

이 틈을 타서 사랑은 숨 박히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갑자기 커피를 타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강 비서, 아메리카노 두 잔 부탁해.”

사랑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떨리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세영에게 커피까지 타줘야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제자리에 서서 꾸물거리며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덕훈은 계속 재촉했다.

“강 비서, 빨리.”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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