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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요

Author: 사흘부탁
정헌은 말을 한 다음, 자신이 정말 짐승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태경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그는 눈을 들며 담담하게 평가했다.

“그럼 네 안목도 좋은 편이네.”

‘강 비서는 얼굴도 예쁘지, 몸매도 나쁘지 않지, 거기에 학력도 있고 성격도 좋지. 아주 많은 장점이 있는 사람이야, 요리 솜씨도 괜찮고.’

태경은 남자가 사랑과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너무 정상이라고 느꼈다.

그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럼 난 기사에게 강 비서를 부탁할게.”

정헌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태경은 정말 감정이 없나 봐.’

예전에 학교 다닐 때, 태경은 그야말로 무정한 사람이었다. 연애편지는 받지도 보지도 않고, 여자들이 자신을 위해 질투하고 싸워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직 태경이 신경 쓰는 사람만이 그의 관심을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정헌도 심심해서 물었다.

“너희 둘 도대체 왜 결혼했니? 넌 강 비서를 좋아하지 않잖아.”

태경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감정 때문에 결혼할 필요 없으니까.”

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 사랑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감정이 없으면 번거로움도 없으니까.

정헌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래.”

...

집에 돌아온 사랑은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깊이 잠들지 못했다. 수많은 악몽에 시달려 한밤중에 놀라 깨어났다.

스탠드를 켜고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 날이 밝기 직전이었다.

‘태경은 병원에 갔겠지. 강세영이 또 입원했으니까. 며칠 전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비아냥대던 사람이 그렇게 허약하다니, 정말 말도 안 돼.’

사랑은 예전에 아내가 복수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자신도 복수를 배워, 자신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 언젠가 자신도 여주인공처럼, 세상 물정을 모르던 소녀에서 점차 무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신으로 변신하길 꿈꾸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잔혹했다.

무엇이든 알아볼 수 있지만, 유독 사람의 마음만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는 축하 공연이 열렸다.

태경은 학생 대표로 무대에 올라 발언을 했다. 그는 키가 크고 다리가 길었으며, 양복을 입은 모습은 더욱 빛나 보였다.

연설고도 없이 당당하게 강단에 선 그는, 유머러스한 연설로 아래 학생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는 그야말로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높고 먼 존재였다.

선생님은 사랑에게 꽃다발을 들고 올라가 태경에게 주라고 시켰다.

긴장으로 손을 떨던 사랑은 꽃을 꼭 끌어안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겨우 두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멈춰 섰다.

그 순간, 태경은 그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랑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이유를 깨달았다.

태경은 그녀가 아니라, 바로 뒤에 있던 소녀를 보고 있었다.

세영이었다. 세영은 태경의 교복을 입고 있었고, 그의 목도리를 두른 채 깡충깡충 뛰며 손을 흔들었다.

태경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눈가에 부드러운 기색이 드러났다. 그는 사랑과 세영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던 순간, 세영은 발목을 삐끗해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랑은 그녀가 넘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선생님이 준비한 꽃을 전하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태경아...”

하지만 그 순간의 소년은 이미 지금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사랑을 보지도 않은 채 그녀를 밀어냈다.

사랑은 똑바로 서지 못하고 계단에서 넘어졌다.

다행히 계단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녀는 얼른 품에 안고 있던 꽃을 지켰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던 그녀는 태경이 약간 화가 난 얼굴로 세영을 안고 일으키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단호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 거야?”

세영은 태경의 팔을 껴안으며 일부러 넘어진 사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네가 너무 멋있으니까, 좀 가까이서 보고 싶었을 뿐이야.”

“발목 안 아파?”

“뽀뽀해 주면 안 아플 것 같아.”

부드러운 불빛은 태경의 차가운 기운을 수식했고, 그는 가볍게 웃었다.

“장난꾸러기가 다름없어.”

비록 말을 그렇게 했지만, 태경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세영에게 뽀뽀를 했다.

사랑은 발목을 다쳐 혼자 절뚝거리며 의무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꽃다발은 그녀처럼 구석에서 점차 썩어졌다.

짧은 추억에서 빠져나온 사랑은 이불로 얼굴을 덮으며 다시 잠들었다.

...

태경은 점심때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사랑은 약을 먹고 있었다.

문을 여는 소리에 그녀는 즉시 탁자 위의 약병을 서랍에 쑤셔 넣었다.

태경은 밤새 잠을 못 잔 듯, 여전히 어젯밤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핏발이 서려 약간 피곤한 기색을 드러냈다.

사랑은 일어서서 약을 뒤로 숨기려 했다.

“오늘 회사에 안 나갔어요?”

태경은 소매의 단추를 풀며 대답했다.

“이따가 갈 거야.”

사랑은 태경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고, 더욱 조마조마했다. 탁자 위에는 아직 두 병의 약이 남아 있었다.

“먼저 샤워하지 않을래요?”

태경은 결벽증이 있었기에, 밤새 샤워를 하지 않았으니 틀림없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너무 예리했다.

남자는 담담하게 물었다.

“뭘 숨기고 있어?”

사랑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태경은 고개를 들었고, 약간 피곤해 보여서인지, 안색이 많이 부드러웠다.

“비켜봐.”

사랑은 안절부절못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참, 강세영 씨는 괜찮아요?”

태경은 셔츠 단추를 풀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비켜.”

사랑은 진정을 하려고 노력했고, 평소 업무를 처리하는 것처럼 침착하게 태경을 상대했다.

“아, 약 먹고 있었는데, 태경 씨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요.”

“그것뿐이야?”

“네.”

태경은 사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약 좀 꺼내 봐.”

사랑은 약병을 건네주었다.

“비타민제예요.”

태경을 그렇게 오래 따라다니면서, 사랑도 지금 무척 신중했다.

그때 복통 후, 혹시라도 태경이 보면 의심받을까 봐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모두 비타민 약병에 넣었다.

태경은 병뚜껑을 열며 안을 가볍게 훑어보고는 약병을 돌려줬다.

사랑은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녀는 태경을 위해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을 찾아냈다.

“먼저 씻으러 가요.”

태경은 옷을 받았다.

“역시 강 비서밖에 없어.”

사랑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아, 하하...”

태경은 욕실에 들어가기 전, 여전히 어젯밤의 일 때문에 마음이 걸렸다.

“어젯밤에 왜 노출이 그렇게 심한 치마를 입은 거야?”

사랑은 얼굴을 숙이며, 엄청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쁘게 입으라고 해서요. 난 그 치마가 아주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예뻐.”

태경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사랑의 턱을 잡으며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르는 말을 했다.

“그러나 강 비서, 앞으로 그렇게 입고 사람 꼬시고 다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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