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미연은 즉시 지난 며칠 동안의 뉴스를 모두 읽어보았다. 미연의 눈은 점점 차가워졌고 휴대폰을 장명원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것 좀 봐!” 장명원은 빠르게 내용을 훑어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거의 욕설을 할 뻔했다. “보스는 알고 계셔?” 명원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미연은 말했다. “모른다고 해도, 임구택은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정말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이네!” 명원은 이를 악물었고 미연은 King이 공격받은 시간대를 대략 훑어보았다. “누군가가 소희를 해치려고 하고 있어.”“주로 소희가 애국심은 개나 줘 버린 것처럼 언론플레이하고 소씨 집안사람들에게 배은망덕하다는 포인트로 공격당하고 있어.”“먼저 그 코코가 어떤 인물인지 조사해 볼게.” “조사할 수 있겠어?” 명원이 묻자 미연은 매곡리에 정보를 흘렸다. 그리고 반 시간도 안 되어, 누군가 코코의 신원과 경력을 보내왔다. 그중 하나의 경력을 미연은 따로 캡처해서 명원에게 보여주었다. 1년 전, 이씨 집안의 해외 회사가 코코에게 모델 드레스를 디자인해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코코의 트위터 소개에서 이 경력이 사라졌었다. 이는 이씨 집안이 코코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 분명히 뉴스 보도가 있었을 거야. 그걸 찾아볼 수 있을까?” 명원이 묻자 미연은 계속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인터넷은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온라인에 공개된 것이라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곧, 미연은 코코와 이씨 집안 모델 회사의 협력 홍보 자료를 찾아냈다. 이미 삭제되었지만, 미연은 여전히 찾아냈다. 또한 미연은 밀라노 패션쇼의 심사위원을 검색했는데, 그중 두 명이 이씨 집안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미연은 코코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게시글을 처음으로 올린 ID를 조사했다. 이는 경성에 있었고 범위를 좁히면 경성의 이씨 본사였다. 명원은 모든 자료를 스크린샷으로 찍어 임구택에게 보냈고 구택은 휴대폰을 열어 몇 번 본 후, 명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소희는 이마를 찡그리며 다시 악몽에 빠진 듯했다. 임구택은 속이 타들어 갔다. 백양이 준 약이 왜 요 며칠 동안 효과가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구택은 소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소희야, 일어나!” 소희는 곧 눈을 떴고 눈에는 잠시 혼란스러움이 스쳤다. 그리고 겁에 질린 듯 구택을 올려다보았다. 구택의 깊은 눈에는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고는 소희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또 악몽을 꿨어?” 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보았다. “비행기가 착륙했어?” “응, 할아버지와 스승님이 모두 널 데리러 왔어. 성연희와 우청아도 한 시간 전에 강성에 도착했어. 지금 공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구택은 부드럽게 말했다. “할아버지와 스승님도 왔어?” 소희는 놀라며 말했다. 연희와 청아는 미리 알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왜 강성에 왔는지 몰랐고 곧 그녀는 상황을 파악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인터넷의 일로 할아버지도 알게 된 거야?” 그러자 구택은 소희를 달래며 말했다. “인터넷에서 소란이 커지고 있어서 할아버지도 알게 될 수밖에 없었어. 할아버지도 널 보고 싶어 하셔서, 이 기회에 공항에 와서 네 진실을 밝혀주려고 오신 거야.” 소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이런 일 정말 싫어하시는데, 결국 할아버지도 말려들게 되었어.” “널 위해서라면 할아버지도 기꺼이 하실 거야!” 비행기가 멈추고 사람들은 내릴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 양재아가 소희에게 다가와 물었다. “우리 이따가 네 스승님을 만나러 가야 해? 좀 긴장돼!” “걱정하지 마, 내 스승님도 오셨어.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매우 자상하신 분이셔서 널 좋아하실 거야!” 그러자 재아는 놀라며 말했다. “스승님도 오셨어?” “먼저 이 얘기는 하지 말고, 집에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더 긴장해하는 재아에 소희는 재아를 안심시켰고 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마음의 준비를 할게.” 사람들이
소해덕은 소씨 집안의 오래된 저택을 둘러보며 흥분과 아쉬움을 느꼈다. “이 집에서 오래 살았는데, 조금 아쉽긴 하네!” 그러자 홍해인은 위로하며 말했다. “경성에 가면 더 좋을 거예요!” 소해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비볐다. “경성으로 이주하는 것은 원래 우리 아버지의 소원이었는데, 마침내 내가 그것을 이루었으니, 조상님들에게 부끄럽지 않네.” 진연은 더없이 기뻐하며 소해덕에게 상기시켰다. “아버지, 전에 말씀하신 일 잊지 마세요!” 이때 장연경은 눈동자를 굴리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동서, 아버님과 무슨 얘기를 하셨죠? 앞으로 우리 모두 같은 배를 타게 되니, 알려주시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진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경성으로 이주하면, 아버지께서 소동에게 회사 내 자리를 마련해 주실 거라는 얘기예요.” “동서는 언제나 소동을 챙기네요!” 진연은 소동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자기 딸을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어요?” 소동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경성에 가면 저는 계속 작업실을 열고 싶어요!” 지금 소동은 온라인에서 많은 지지자를 가지고 있으며, 예전의 표절 사건은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그래서 다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문제없어!”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아버지께서 주실 거야. 너는 할아버지가 소원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웠으니까!” 장연경은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진연은 그걸 보고 불편한 기분이 들어 되물었다. “소설아 일은 어떻게 할 거야? 직장을 그만두게 할 거야? 그만두기는 아깝지 않나?” “전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설아가 조용히 말했다. “전 계속 임씨 그룹에 남을 거예요!” “그렇구나?” 진연은 놀라며 말했다. “그러면 아주버님과 형님은 설아와 떨어지게 되네요?” 장연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아는 임씨 그룹에서 많은 시간을
홍해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로 소찬호가 불쌍하구나. 현명하지 못한 부모를 따라가면, 미래도 망가질 텐데!” 진연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소동과 소설아가 있잖아요?” “맞아!” 홍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TV에서는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King이 이미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이 앞쪽으로 몰려들었고, 누군가는 심지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으며, 사람을 때리려는 듯한 격렬한 모습이었다. 진연은 옷깃을 잡으며 생각했다. 소희가 나타나서 맞고, 궁지에 몰려 쫓겨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소희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진연은 소동에게 20년 동안 마음을 쏟아부었다. 소동이 자기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크게 실망했다. 소희를 만나기 전에는, 진언은 소동을 데려가서 산골로 돌아가게 할까 봐 걱정했다. 자신의 예쁜 딸이 그런 곳에서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소희를 처음 본 순간, 실망했고 소희는 여전히 그날 오후를 기억하고 있었다. 운성의 한 찻집에서, 평범한 옷을 입은 노인이 모자를 쓴 소희를 데리고 와서 진연과 소정인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소희입니다. 당신들의 딸입니다.” 소희는 그들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태도로, 그들과 재회한 것에 대해 전혀 감격이나 고마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소정인이 불렀을 떄, 소희는 그저 작게 대답했다.“소희야.”“네.” 처음에는 소희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데려간 후에도 소희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소동의 활발함과 대조적이었다. 소동은 자기 드레스와 장신구를 조심스럽게 소희에게 주었지만, 소희는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아 소동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소동이 자라면서 얻은 자부심을 소희가 다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진연은 매우
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들이 King을 마중 나왔나?” “그런 힘이 어디 있어? 강재석 어르신이 직접 오셨잖아!” “하지만 이 상황을 보니 마중 나온 것 같아!” “혹시 대단한 인물이 와서 King이랑 같은 시간에 비행기에서 내린 건 아닐까?” 어떤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 추측했다. 잠시 후, 누군가가 외쳤다. “King이 왔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보니, VIP 통로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King, 소희였다. 강성의 날씨가 추워서, 소희는 검은색 외투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작고 정교한 얼굴의 반만 보였고, 차분한 분위기로 천천히 걸어왔다. 옆에 있는 키 큰 임구택은 계속 소희의 손을 잡고, 발걸음은 더욱 무게감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기자들도 카메라를 소희에게 집중시켰다. 구택과 진언의 경호원들이 공항 보안보다 빠르게 소희의 앞을 막아서, 흥분한 사람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노를 멈추지 않고, 여전히 앞으로 밀쳐내며 큰 소리로 물었다. “King,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그렇게 외국이 좋으면 외국 가서 살고 돌아오지 말지!” ... 장명원이 먼저 소희 앞을 막아서서, 분노한 사람들을 향해 기세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 “소씨 집안 사람들은 왔나? 뒤에서 온갖 음모를 꾸미다가 오늘 King이 오니 나오지 못하고 있나?” “King을 비호한 것에 대해 직접 나와서 대면해라. 겁쟁이처럼 뒤에 숨어있지 말고, 네티즌을 총알받이로 삼지 마라!” “소씨 집안사람들, 나와!” 소씨 집안셋째 네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함께 나온 구택을 보자, 얼굴이 굳어졌고 장연경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소희가 확실한 후원자를 찾아 돌아왔군!” 이에 소정
임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내가 내 와이프를 감싸지 않으면, 당신들이 감싸줄 겁니까?” “와!” 모두가 놀라며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King이 임씨 그룹 사장의 와이프라고? 애인이나 여자친구가 아니라, 구택이 와이프라고 말했다. 이때 한 기자가 소리쳤다.“임구택 사장님, 무슨 뜻인가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구택은 소희와 손을 맞잡고, 차갑게 말했다. “정식으로 발표합니다. King, 즉 소희는 제 와이프입니다. 우리는 6년 전에 이미 결혼했습니다.”“그러니 King이 임씨 그룹에 잘 보이겠다고 난리 친다는 말은 다 헛소리입니다.” “그리고 나의 와이프가 5000만 달러를 받기 위해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져주었다는 루머는 우리 임씨 그룹과 저의 와이프를 얼마나 무시하는 발언입니까!” 큰 환영장이 5초간 조용해졌고 다시 한번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다. 이 소식은 정말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King이 임씨 그룹 사장의 와이프라는 사실은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호기심 많은 기자들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럼 코코에게 일부러 져준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King이 임구택 사장님과 결혼한 후, 임씨 그룹의 보호를 받기 위해 소씨 집안을 버린 건가요?” “King이 임구택 사장님의 인맥을 이용해 소씨 집안의 친딸인 소동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 ...“그 질문은 제가 답변하겠습니다.” 강재석 어르신 일행이 다가왔고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조용해졌다. 성연희와 우청아가 빠르게 소희에게 달려가, 셋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연희는 기쁨에 눈물이 반짝였다. “소희야, 너무 보고 싶었어!” “나 돌아왔어!” 소희는 연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고 청아에게 물었다. “뉴욕 여행은 끝났어?” 그러자 청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는 그저께 돌아오려고 했는데, 시원 오빠가 너희와 함께 돌아가자고 해서 이틀 더 머물
그래서, 소씨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왜 그들이 King을 키웠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한편, 인터넷 생방송을 보고 있는 소씨 집안 사람들은, 임구택이 소희가 6년 전에 이미 본인과 결혼했고, 소희가 임씨 그룹 사장의 와이프라는 말을 듣고 모두 놀라서 일어섰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소희가 6년 전에 임구택과 결혼했다니, 그때 소희는 막 소씨 집안에 돌아온 게 아니었나? 어떻게 된 일인가? 소씨 집안사람들은 어리둥절하고 충격을 받았다.강재석 어르신이 나와서, 소희가 어릴 때부터 강씨 집안에서 자랐고, 강씨 집안의 후계자라는 말을 했을 때, 소씨 사람들의 얼굴은 망연자실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소해덕은 두 손을 떨며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소정인에게 물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소정인도 완전히 얼어붙었다. 소희가 언제부터 강씨 집안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너무나 황당한 상황이었다.‘소희와 구택의 결혼 계약은 3년 전에 이미 해제된 게 아니었나? 왜 구택이 아직도 소희가 대표 와이프라고 말하는 걸까?’“동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너희는 소씨 전체를 끌어들일 수는 없어!” 장연경도 당황했다. 그 영상에서 소희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전에는 소희가 이런 권력자들에게 아첨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희가 권력자인 셈이었다. 그리고 소설아도 어안이 벙벙했다. ‘사장님 와이프라고? 소희가? 이게 말이 돼?’진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모르겠어요. 소희가 계속 우리를 속였어요. 우리도 이제야 알았다고요!” 소희를 입양한 것은 운성의 강씨 집안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소해덕은 이미 당황하여 소정인에게 급히 말했다. “이씨 집안에 전화해, 오늘 밤 바로 경성으로 가야 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더 지체하면, 소씨 집안은 강성에서 몰락할 것이다. 소정인은 당황한 채로 돌아서서 급히 전화기를 꺼내 이씨
소정인은 땀을 흘리며 돌아와 소해덕에게 말했다. “이씨 집안과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요!” “그래도 기다릴 수는 없어. 빨리 강성을 떠나야 해!” 소해덕은 당황하여 몸을 돌렸다. 소해덕의 모습은 온 가족이 경성으로 이사하는 위풍당당한 모습이 아니라, 이미 대세가 기울어 도망치는 처량한 모습이었다. 소정인은 급히 경성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하려 했지만, 표가 없었고 소해덕은 이미 화가 나서 날뛰었다. “전세기를 예약해. 오늘 밤에 반드시 떠나야 해!” “그럼 우리 집 소설아는 어떻게 해? 설아는 아직 임씨 그룹에서 일하고 있어. 우리가 떠나면 임구택이 설아에게 해코지하지 않을까?” 장연경이 당황하여 말했다. 설아는 텔레비전 속 생방송을 멍하니 바라보며, 구택의 부모가 모두 나와서 기자들에게 말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구택과 소희가 결혼식을 하지 않아서 공개하지 않았으며, 소희는 겸손한 성격이라 모든 것을 소희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노정순은 소희를 다정스럽게 부르며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설아가 불쌍하기도 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 채 노정순을 통해 구택에게 접근하려 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소희는 분명 뒤에서 자신을 어떻게 조롱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설아의 눈앞은 혼란스러웠다. 설아는 자신을 소씨 집안에서 가장 우수한 자식이라고 자부하며, 명문대를 졸업하고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희는 족보에도 오르지 못할 딸이라며 무시했는데, 이제 보니 자신이 가장 어리석었다.‘소희가 이미 구택과 결혼했다니? 내가 무엇 때문에 임씨 그룹에서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설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시연네 집네 식구도 생방송을 보고 있었다. 소희의 신분이 모두 드러나자, 하순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 그러자 소찬호는 차분하게 말했다. “엄마, 생각하고 말하세요. 더듬지 마세요!” 소시연은 화면 속의 소희와 마찬가지로 영광스러운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