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의 은설은 여전히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절망과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위장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크루스는 이미 자신의 옷을 벗고 있었다.결국 소희는 나섰다. 일단 그녀와 구택의 관계를 제외하면 그녀는 한 여자였고, 그것도 무예를 익힌 여자였다!그녀는 몸을 훌쩍 날려 바닥에 벗은 남자의 양복을 집어 들어 바로 그의 머리에 덮었고 망설임 없이 그의 목덜미에 한 방 휘둘렀다.남자는의 큰 덩치는 비틀거리더니 펑 하고 침대에 쓰러졌다.은설은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후퇴했고 경악해하며 기절한 크루스를 보더니 또 인차 소희를 보았다.그녀는 머리카락이 흩어졌고 무척 낭패했다. 그녀의 눈빛은 두려움에 흐리멍덩해지며 평소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완전히 잃었다.소희는 그녀의 옷을 주워서 그녀에게 걸쳤다. 소희는 안색이 줄곧 담담했다.은설은 갑자기 눈물이 비처럼 쏟아지며 소희를 껴안고 크게 울었다.소희는 몸이 잠시 굳었고 어색하게 손을 들어 그녀의 손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괜찮아요, 울지 마요!"은설은 여전히 울며 목이 멨다."나, 나는, 나는,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할 수가 없었어요. 그의 손이 나를 만졌을 때, 나는 온몸이 떨렸어요!""소희 씨, 나 정말 못 참겠어요. 정말요!"소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도운박 씨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해도 됐을 덴데요!"은설은 말을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그녀는 보기에 매우 슬프고 절망적이었다.한참 지나 은설은 점차 안정을 되찾으며 옷을 입고 얼굴의 눈물을 닦으며 소희에게 물었다. "소희 씨가 어떻게 여기에 왔어요?"소희는 안색이 약간 변했다."은설 씨가 문자를 보내서 나보고 오라고 한 거 아니었어요?"은설은 어리둥절해졌다."아니요, 나는 소희 씨에게 문자를 한 적이 없는데요.""핸드폰은 어딨죠?" 소희가 물었다.은설이 말했다."운박 씨가 가져갔어요!"순간, 소희는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이것은 도운박 혼자가 계획한 함정이었
명우는 약간 어색해했다. 이것은 확실히 수고가 많은 일이었다. 그는 심지어 저녁밥도 먹고 싶지 않았다.은설은 줄곧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때 담담하게 말했다."먼저들 가요. 만약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그들 두 사람이 위층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고 말할 거예요. 당신들도 여기에 온 적이 없고요."소희는 가볍게 웃었다."내 생각엔, 아무도 이 일을 추궁하지 않을걸요."은설은 눈에 의혹이 스쳐 지나갔지만 또 인차 깨달았다. 하긴, 침대 위의 두 사람이 깨어났으면 그들은 얼마나 어색하고 창피할까? 그러니 그들은 어찌 추궁할 면목이 있겠는가.별장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곳은 구택의 구역이라 그들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니 그들도 그냥 말 못 할 손해를 보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야 했다.......소희와 명우는 별장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구택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은 뒤 옥고리를 가지고 머크 부인을 만나러 갔다.소희가 떠난 후에야 명우는 구택에게 방금 발생한 일을 아뢰었다.구택은 의자에 앉아 손을 들어 이마를 어루만지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의 여자는 왜 이렇게 귀여운 것일까?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조차도 너무 귀여웠다!명우는 잠시 멈추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소희 아가씨께서 하신 모든 일은 모두 대표님을 위해서입니다."구택은 눈에 부드러운 빛이 스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아."명우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더 이상 다른 말 하지 않고 공손하게 물러났다.......머크 부인은 정말 외할머니의 옥고리를 되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오랫동안 옥고리를 보며 눈물을 머금고 몇 차례나 목이 메었다."고마워요, 소희 씨!"머크 부인은 무척 고마워하며 말했다."내가 무엇을 도와주길 원해요? 소희 씨 말만 해요, 반드시 도울 거예요!"소희는 잠시 생각을 하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 옥고리는 한 노인의 집념이자 부인님의 집념이기도 해요. 강 씨 어르신은 돈을 받지 않았으니 나도 부인님
이튿날 아침, 힐드와 구택은 계약서를 체결했고 합작한 쪽은 임 씨 그룹밖에 없었다.힐드는 손을 내밀었다."우리 잘 해봐요!"구택도 손을 들고 악수했다."그래야죠!"힐드는 웃으며 말했다."임 대표님의 여자친구는 정말 귀엽네요. 그녀가 부인을 위해 외할머니가 전에 잃어버린 옥고리를 찾아준 것에 대해 너무 고맙네요. 무척 감격스러운걸요. 임 대표님이 반드시 나를 대신하여 나의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달해 주기 바라요.""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럴게요!" 구택은 미소를 지으며 우아하게 웃었다.힐드가 말했다."우리는 오늘 돌아갈 거예요. 나중에 전화로 연락하죠.""네!"힐드와 그의 부인은 오후의 비행기였다. 소희와 구택은 두 사람을 장원 밖으로 배웅하고 별장으로 돌아갔을 때 별장 밖에서 기다리던 은설을 보았다.운박은 힐드가 단독으로 구택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을 알고 점심도 안 될 때 화가 나서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은설이 아직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다.은설은 긴 치마를 입고 가벼운 화장만 했고 전보다 더 젊고 상큼해 보였다.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앞으로 다가가 구택을 바라보았다."임 대표님, 소희 씨와 잠시 단둘이 이야기해도 될까요?"구택은 소희를 바라보았고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나 짐 다 쌌어요. 이따 바로 떠날 수 있어요."운성에서의 일은 끝났으니 그들도 오후에 강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실 짐 쌀 것도 없었다. 그녀는 원래 짐을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 단지 머크 부인이 가기 전에 그녀에게 준 선물 그리고 구택이 그녀에게 준비한 운성 특산물이 있었다.구택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기다리고 있을게요!""네!"소희는 대답하고는 은설에게 말했다."가요!"두 사람은 별장 옆에 있는 화원의 조약돌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때, 은설이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임 대표님은 소희 씨한테 너무 잘해주네요!"소희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부인을 말하지 않았다.은설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도운박과 함께 있을
"내가 아직 그가 나를 버린 일에 대해 핑계를 찾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을 때, 그는 또다시 나를 크루스에게로 밀어붙였어요.""그때 마침내 알았죠. 그의 눈에는 나는 단지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잘 수 있는 천한 년에 불과하다는 것을요."소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은설 씨가 모든 것을 깨달았다면 언제 그를 떠나도 늦지 않아요!"은설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 찬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이미 그와 헤어졌다고 말했어요. 그는 내가 엄살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아마도 내가 예전처럼 싸우다 다시 주동적으로 그를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나 자신은 알고 있어요. 이제 완전히 단념했거든요. 그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나는 다시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미 M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 샀어요. 세 시간 뒤면 떠날 거예요."소희는 그녀를 위해 기뻐했다."은설 씨의 능력이라면 남자에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그러게요!" 은설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억울함을 삼켰다."돌이켜보면 난 정말 멍청했어요. 7년이란 시간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낭비하다니. 게다가 결국 그냥 헛수고만 했죠!"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소희를 바라보며 입가에 비웃음을 자아냈다."소희 씨, 이번 합작에서 운박 씨가 어떻게 졌는지 알아요?"소희는 그녀의 말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은설이 말했다."여기 오기 전에 도운박은 임 씨 그룹에서 이 프로젝트를 책임진 사람을 매수했어요. 그 사람은 그에게 소식을 전하길 임 대표님은 힐드와 단독으로 합작을 할 예정이었고 이미 대책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때 도운박은 당황하여 모든 방법을 써서 힐드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그와 그의 곁에 있는 집사가 모두 우리나라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듣고 그는 특별히 나를 데리고 왔죠. 그러나 오늘 오전 도운박은 또 다른 소식을
별장으로 돌아온 소희는 구택이 서재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바로 침실로 돌아가 베란다에 서서 장원의 풍경을 보았다.어쨌든 그녀가 여기에 대한 기억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은설 씨, 머크 부인과의 만남까지 포함해서.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자 남자는 인차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그녀를 품에 안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소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은설 씨는 도운박 씨와 헤어졌어요. 그녀는 이미 오후에 M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 예약했고요."구택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도운박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에게 있어 헤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죠."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그럼 임 대표님은요? 좋은 사람이에요?"구택은 그녀의 턱을 쥐고 그녀더러 머리를 들게 했다. 그는 얇은 입술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이 세상에 절대 좋은 사람은 없어요. 특히 한 상인에게 있어서요. 그러니 내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소희 씨는 단지 내가 소희 씨에게 있어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하면 돼요."소희는 남자의 깊은 눈빛을 보고 순간 그가 은설과 자신의 대화를 들은 줄 알았다.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가볍게 웃었다."만약 임 대표님이 내가 매일 아이스크림 한 통을 먹는 것을 허락한다면,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할게요."구택은 인내심 있게 웃었다."꿈 깨요!""…..."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한 바퀴 돌려서 철제 난간 앞의 꽃대에 올려놓으며 위로했다."아이스크림은 없지만 소희 씨에게 줄 다른 선물은 있어요.""네?" 소희는 호기심에 그를 바라보았다.구택의 손에는 벨벳의 원형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소희의 손에 넣어줬다."열어봐요."소희가 눈동자를 움치렸다. 이 상자는 반지를 넣는 상자와 같았다……그는 그녀에게 반지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설마 여자에게 반지를 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것인가?소희는 눈을 깜박이며 구택의 뜻을 생각하면서 상자를 열었
연결되자 시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강성으로 돌아왔어? 나 다쳤으니까 빨리 나 보러 와!"구택은 그가 농담을 하고 있는 줄 알고 담담하게 말했다."거기 다쳤니, 아니면 마음을 다쳤니?"시원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정말이야, 빨리 와!"구택이 물었다."어딘데?"시원이 대답했다."네 아래층!"구택은 멈칫하다 눈을 가늘게 떴다.소희도 청아에게 집에 있냐고 전화로 물어보려 하다 구택이 걸어왔다."전화할 필요 없어요. 소희 씨랑 같이 내려갈게요.""네?" 소희는 이해가 안 갔다.구택도 설명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바로 아래층이었으니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 내려갔다.초인종을 누르자 문을 연 사람은 청아였다. 그녀는 소희를 보더니 멍해졌다가 또 구택을 보자 더욱 놀랐다."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소희는 구택을 바라보았고 구택은 담담하게 물었다."시원은요?"소희와 청아는 모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오늘 시원은 이미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머리가 어지럽거나 토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화장실에 갈 수도 있었다. 그는 지금 베란다의 소파에 누워 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인기척을 듣고 그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나 여기에 있어!"몇 사람은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소희는 낮은 목소리로 청아에게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청아가 물었다."너 이 집이 시원 씨의 집인 거 알고 있었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응!"청아는 입술을 깨물었다."근데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니?"소희가 말했다."너 장시원 씨를 알아?"청아는 무척 어이가 없었다.말하는 사이에 그들은 이미 베란다로 걸어갔다. 구택은 시원이 이마에 거즈를 감고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정말 다쳤어?"시원은 손을 뻗어 청아를 가리켰다."그녀한테 물어봐!"소희와 구택은 동시에 청아를 바라보았다. 청아는 인차 얼굴을 붉혔다."나, 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시원은 방긋 웃으며 말했
시원은 눈웃음을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너희 두 사람 도대체 무슨 관계인데, 너 지금 그녀한테 설명까지 해야 하니?"구택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친구 사이라서 설명이 더 필요한 거야.""친구?" 시원은 키득거렸다."너 친구라는 두 글자 더럽히지 마."그는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안심해, 나는 너와 달라. 나는 양심이 있어서 이런 청순한 소녀는 안 건드려. 그녀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랑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낼 수 있어!"구택은 어이없는 듯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내가 보기에 너도 별일 없는 거 같으니 빨리 집에 가. 정 안 되면 너의 그 여자 친구들 찾아서 너 돌보게 하고!"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지금 내상을 입어서 의사 선생님은 적어도 일주일은 쉬어야 해야 한다고 말했거든. 게다가 나는 이미 청아 씨 안 건드리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너 왜 자꾸 나 쫓아내는 거야?"구택은 담담하게 말했다."전에 소희 씨는 매일 저녁 내려와서 우청아 씨랑 같이 밥 먹었는데, 네가 여기에 있으면 그녀는 어떻게 여기에 오겠니?"시원은 충격적인 표정을 지으며 슬퍼하며 고개를 저었다."나 이제야 알겠네. 내가 너랑 20년 친군데, 지금은 소희 씨의 머리카락보다도 못하다니!"구택은 코웃음쳤다."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왜 머리카락이랑 비교하는 거야? 너 머리 망가졌어?"시원은 손을 들어 머리를 가리고 소파에 따라 쓰러지며 희망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구택은 가볍게 웃었다."일어나, 너랑 할 말 있어.""참." 시원은 일어나서 물었다."힐드랑 얘기는 잘 끝냈어? 도 씨네는?"구택은 천천히 뒤의 소파에 기대며, 맑고 차가운 표정 사이에 도도함을 띠고 있었다."힐드가 만약 도 씨네를 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할 가치도 없지."시원은 웃었다."도 씨네 전 가주는 정말 늙어서 노망이나 하는군. 어떻게 집안을 도운박 같은 사람한테 넘겨주는 거야? 완전히 자업자득이지."그는 또 물었다.
시원도 농담으로 말했다."소희 씨는 절대 가면 안 돼요. 소희 씨가 가면 임구택은 나를 밖으로 던져서 소희 씨한테 자리를 비워주는 수가 있어요."소희는 구택을 힐끗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았어요, 그럼 실례할게요!"구택은 그제야 밖으로 나가며 그의 뒤를 따라가는 소희에게 당부했다."시원이 무슨 말을 해도 아랑곳하지 말고 상대하지 마요! 소희 씨는 편한 대로 있다가 밥 다 먹고 위층으로 올라가면 돼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구택 씨 혼자 운전하는 거예요?""명우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요.""넵, 조심히 가요!"시원은 거실에 앉아 청아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청아 씨가 보기엔 그들 두 사람 무슨 관계 같아요?"청아는 순진하게 문 앞에서 서로 관심하는 두 사람을 보며 어리둥절했다."네?"시원은 놀라며 그녀한테 물었다."청아 씨 연애해 본 적 없죠?"청아는 멍하니 있다 고개를 저었다."없어요!""어쩐지! 다음에 이 오빠가 몇 가지 방법 가르쳐 줄게요. 나중에 남자가 청아 씨 뒤를 졸졸 따르는 것을 보장하죠." 시원은 음흉하게 웃었다.청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만약 연애한다면 난 반드시 그 남자와 모든 걸 털어놓을 텐데 왜 굳이 내 뒤를 졸졸 따르게 만드는 건데요?"시원은 멈칫하더니 곧 웃기 시작했다."그럼 그가 청아 씨를 가지고 논 거라면요?"청아가 말했다."그럼 난 당연히 그와 헤어져야죠!"시원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바보군요, 남자는 당연히 여자를 갖고 논다는 것을 티 내지 않죠. 그러니까 청아 씨는 남자를 꿰뚫어 보는 능력을 배워야 해요."청아는 생각하다 말했다."만약 그렇게 복잡하다면 차라리 연애 안 할래요!"이때 소희가 다가오자 시원은 웃으며 말했다."소희 씨, 소희 씨가 청아 씨 좀 가르쳐 줘봐요. 어떻게 구택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소희는 멈칫했다."네?"청아는 얼굴을 붉히더니 소희를 끌고 옆으로 걸어갔다."농담이야. 나 밥하러 갈
구은서의 말은 애절했고, 눈물 가득한 얼굴은 누가 보아도 가련했다. 구은태는 자신이 이십 년 넘게 아끼고 사랑해온 딸을 바라보며 격했던 감정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임유진과 구은정은 눈빛을 마주쳤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서선영 모녀를 끝장내야 한다는 예감이 동시에 스쳤다. 다시는 숨 쉴 틈을 줘선 안 된다.유진이 입을 열려던 찰나, 휴게실 문이 갑자기 열리고 몇 명의 경찰이 들어왔다. 방 안 상황을 본 경찰들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차분히 물었다.“서선영 씨는 누구시죠?”서선영은 여전히 바닥에 무릎 꿇고 있던 참이라 얼굴에 눈물이 범벅된 채로 당황스럽게 대답했다.“저예요. 무슨 일이죠?”경찰은 단호하게 말했다.“현재 한 유괴 사건에 연루되셔서, 저희와 함께 경찰서로 가주셔야겠네요.”“유, 유괴 사건이요?”서선영은 얼이 빠진 듯 말을 더듬었고, 은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경찰이 왜 여길 찾아온 거지?’‘분명히 손기수를 시켜 장말숙 가족에게 절대 신고하지 말라고 위협했고, 따로 사람도 붙여 감시하게 했는데, 분명 신고는 없었어. 그런데 대체 어떻게 경찰이?’유진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때가 왔고,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서선영 모녀에게서 도망칠 구멍조차 허락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이에 구은태도 놀라 물었다.“유괴라니, 무슨 소리죠?”경찰은 구은태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지금 서선영 씨께서 유괴 사건에 관련된 정황이 있어 조사 차 동행을 요청드려요. 협조 부탁드릴게요.”은태는 다시 서선영을 바라보았다.“또 뭘 꾸민 거야, 이 악마 같은 여자가.”은태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서선영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은정이 나섰다.“같이 가죠. 조금 전까진 은서가 우리 가족이라며 감쌌잖아요? 가족이면 함께 있어야죠.”그 말에 구은서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언가 아주 불길한 일이 다가오고 있었다.원래 오늘 구씨 파티가 끝
서선영은 곧장 구은태에게 달려가 그를 붙잡았다.“여보!”구은태는 휘청였지만 몸을 간신히 지탱했고,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쉰 목소리로 고함쳤다.“꺼져, 이 악독한 년!”서선영은 힘없이 문 쪽으로 내동댕이쳐졌고,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구은서가 들어왔다. 방 안의 참혹한 광경을 본 은서는 당황한 듯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구은태는 핏발 선 눈으로 서선영을 가리키며 외쳤다.“네 엄마한테 물어봐. 대체 뭘 한 건지!”은서는 아버지의 분노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은정을 모함한 일이 들킨 건 아닌가 싶어 애써 표정을 감추고 서선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엄마, 무슨 일이야?”서선영은 그저 얼굴을 감싸 쥐고 울고 있을 뿐이었다.그때, 구은태는 갑자기 은서를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서선영을 바라보고 물었다.“사실대로 말해. 은서, 이 애가 정말 내 딸이 맞아?”“맞아요!”서선영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은서는 당신 딸이에요. 그건 정말 확실해요!”“좋아. 지금 제대로 말 안 했다가 내가 친자 검사로 진실을 알게 되면, 그땐 죽여버릴 거야!”구은태는 분노로 이를 갈며 말하자, 서선영은 흐느끼며 소리쳤다.“정말이에요! 제 목숨 걸고 맹세해요. 제가 거짓말이면 천벌을 받아도 좋아요!”그제야 은서는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건 은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였다.은서는 구은정에게 맞아 쓰러져 있는 최이석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어떤 장면이 뇌리를 스쳐갔고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서선영은 엉금엉금 기어가며 구은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여보, 제가 배신하고 잘못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은서는 정말 당신 딸이에요. 그렇게 똑똑하고 예쁜 아이잖아요.”“당신도 얼마나 예뻐했어요. 은서 봐서, 제발 이번만 용서해 주세요!”그제야 은서는 모든 걸 직감했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그러나 임유진은 이를 꽉 물고 단호하게
최이석도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멍하니 있다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곧장 도망치려는 듯 문을 열었는데, 그 문 너머에는, 구은정의 날렵하고도 위압적인 실루엣이 서 있었다.은정은 말없이 다가오더니 그대로 발을 들어 최이석의 가슴팍을 걷어찼다.“컥!”이석은 뒤로 넘어지며 카펫 위에 엎어졌다.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지만, 그 울음은 진짜인지 연기인지 분간되지 않았다.그때, 숨을 거칠게 내쉬며 구은태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얼굴은 철저히 일그러져 있었고, 그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다.그리고, 구은태는 서선영 앞에 멈춰서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서선영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뺨을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서선영은 그 충격에 그대로 몸이 비틀어졌고, 얼굴을 감싸 안으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이 더러운 년!”구은태는 서선영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고 또다시 손을 들어 그녀의 반대쪽 뺨을 갈겼다.“제가 잘못했어요. 한순간, 제가 정신이 나갔었어요.”서선영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구은태의 손을 붙잡고 오열했다. 그녀의 두 볼은 이미 시퍼렇게 부어오르고 있었다.“대체 너희 둘, 언제부터 이런 짓을 벌인 거야!”구은태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그 순간, 최이석이 조롱 섞인 웃음을 흘리며 비틀비틀 일어섰다.“솔직히 말해줄까요? 서선영이 당신 만나기 전부터 벌써 나랑 자고 있었어요. 회사 들어간 이후로는 매주 만나서 몸 섞었고요.”“입 닥쳐!”서선영은 미쳐 날뛰듯 소리쳤지만, 최이석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구은태만을 노려봤다.“저 여자는 당신을 사랑한 적 없어요. 사랑한 건 당신 지갑뿐이고요. 30년 전, 당신이 술 마시고 덮쳤다고 생각했죠?”“웃기지 마요. 전부 미리 짜놓은 대본이었으니까. 그때 은서가 생겼고, 도망친 척하면서도 사실 계속 강성에 있었어요.”“당신 바로 곁에서, 우릴 속이고 있었던 거죠. 참, 당신 원래 부인 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는 줄 알아요?”“서선영이 일부러 임신한 배를
구은서는 서선영보다 훨씬 더 잔인했기에, 임유진은 점점 불안해졌다.“혹시 그 애까지 다치게 되는 건 아닐까요?”이번 일은 유진이 먼저 제안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은서가 장말숙을 압박하기 위해 그 손자를 납치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그럴 일 없어.”그러나 구은정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아이는 절대 다치지 않을 거야.”유진은 그제야 조금 안심했고, 은정은 이어서 설명했다.“장말숙은 처음부터 독을 품은 호랑이와 손잡은 셈이지. 이건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은서가 장말숙의 손자를 납치했다는 건 이미 그 집안을 완전히 조사해 놓았다는 뜻이야.”“내가 강성을 떠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아이를 이용해서 조종하려 했을 거야.”“그런데 네가 먼저 움직여준 덕분에 우린 미리 조치할 수 있었고, 결국 아이도 지켜냈지.”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봤다.“예전과 완전 딴사람이 된 것 같아요. 위로까지 이렇게 부드럽게 하다니?”은정은 애옹이를 옆으로 밀어내고 유진을 품에 끌어당겼다.“질문 하나 해도 돼? 너는 서인을 좋아해, 아니면 구은정을 좋아해?”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둘 다 같은 사람 아닌가요?”은정은 묵직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잖아.”유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중얼거렸다.“사실 처음부터 한 사람이었어. 다른 건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의 차이였을 뿐이죠.”그리고 고개를 들며 은정의 눈을 마주 봤다.“내 말 맞죠?”이에 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럼, 예전의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촉촉히 빛나는 눈으로 미소 지었다.“아니요. 오히려 시언 사장님이 날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나는 그게 정말 고맙거든요.”은정의 눈빛이 깊고 짙어졌다. 가슴이 저릿할 만큼 미안함과 애틋함이 가득 차올랐다. 은정은 고개를 숙여, 유진에게 입을 맞췄다.“유진아. 난 늘 널 사랑했어.”은정은 언제나 유진만을 마음에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