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희유는 목소리를 한층 부드럽게 낮추며 애원했다.“제가 아직 젊기 때문에 더 나가서 보고 세상을 경험하고 더 많은 걸 배워야 하는 거예요.”“교수님도 아시잖아요. 제 원래 꿈이 고고학자였고, 고대 예술도 정말 좋아한다는 걸요.”“그래서 이번에 꼭 가고 싶어요. 충동적인 게 아니라 충분히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진백호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태도는 여전히 단호했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팀 구성은 이미 끝났어요.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맡은 일이나 잘해요.”“여기에 남는 게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마지막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희유를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고, 본인 또한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확고했다.“교수님, 저는 정말 가고 싶어요. 직급이나 승진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그러나 진백호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남자친구는 알고 있어요?”“남자친구요?”희유가 순간 멈칫했다.“예전에 매일 와서 같이 그림 복원하던 사람 있잖아요.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아직 그렇게 늙지는 않았어요.”진백호가 농담 섞인 말투로 말하자 희유는 살짝 놀랐다.다들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그 사람은 몰라요.”그러자 진백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두 사람 미래가 걸린 중요한 일인데, 어떻게 말도 안 하고 결정해요?”“그 사람이 알면 분명 반대할 거예요.”“그러니까 이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더 생각하지 말아요.”...백하가 돌아왔을 때, 마침 희유가 풀이 죽은 얼굴로 사무실에서 나오는 걸 봤다.이에 남자는 웃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희유는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요즘 명우 씨가 안 와서 일할 때 힘이 안 나요?”백하가 농담하듯 말했다.“이리안 씨가 준 커피라도 타서 마셔요. 정신 차리게.”희유는 시큰둥하게 말하자 백하는 피식 웃었다.“이미 버렸어요.”“왜
“이번 주말은 어려울 것 같아요. 할머니께서 집에 오라고 하셨어요.”[아, 그래요? 그럼 다음 주말에 봐요.]명빈이 말한 뒤, 아무렇지 않은 듯 덧붙였다.[석유 씨도 같이 있나요?]희유가 답했다.“네, 방금 돌아왔어요. 왜요?”[별일은 아니고요. 내일 금요일이니까 오전 회의에서 새 프로젝트 이야기할 거예요. 자료 준비하라고 전해주세요.]“네, 제가 전해 줄게요.”[아니요.]명빈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기억하고 있을 거니까 굳이 말하지 마세요. 또 까다로운 상사처럼 보일까 봐, 퇴근하고까지 일 얘기한다고 할까 봐요.]“아, 네.”[그럼 끊을게요.]전화를 끊고 나서 희유는 고개를 갸웃했다.이상하게도 방금 통화가 영 마음에 걸렸는지 석유를 바라보며 말했다.“명빈 씨, 좀 이상한 것 같아요.”그러자 석유는 코웃음을 쳤다.“그 사람이 언제 정상적이었던 적이 있었어?”...다음 날, 금요일.희유는 출근하자마자 자리에서 자료를 정리했다.하지만 시선은 계속 진백호 교수의 사무실을 향하고 있었고 유백하도 그걸 눈치챘다.“교수님 찾아요?”희유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좀 볼 일이 있어서요.”백하가 말했다.“지금 회의 중이에요. 강화주 관련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요?”희유는 몸을 돌려 물었다.“지금 어디까지 진행됐어요? 출발 날짜 정해졌어요?”백하가 웃었다.“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희유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박물관 내 정보통이라면서요?”백하는 희유의 손에 들린 자료를 힐끗 보더니 눈빛이 살짝 깊어졌다.“강화주 일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요?”그러자 희유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별거 아니니까 일 봐요.”백하는 초수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를 복원하러 가야 했다.“그럼 기다려요. 곧 끝날 거예요.”“네.”희유는 다시 30분을 기다렸다가 진백호 교수님이 돌아오는 걸 보자마자 서둘러 뒤를 따라갔다.희유는 급히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뒤, 방금 우린 차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환하게 웃었다.“교수님, 오래 회의
석유의 말을 듣고 나서, 명빈의 얼굴이 눈에 띄게 더 어두워졌다.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흘겨보며 물었다.“무슨 좋은 일이요?”석유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명빈은 눈을 가늘게 뜨었다.“내 방에 여자 있었던 거 다 알고 있었죠?”석유는 앞을 보며 차분한 얼굴로 있다가, 잠시 후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명빈은 이를 악물었다.“알고 있었으면 왜 말 안 했어요?”석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제가 어떻게 알아요? 좋아할지 아닐지.”명빈은 입꼬리를 비틀며 싸늘하게 웃었다.“그럼 나중에는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일부러 망치러 온 거잖아요. 도대체 무슨 마음이에요?”밤새 참고 있던 감정을 드디어 쏟아낼 핑계를 찾은 듯했다.명빈은 마치 체면을 되찾은 사람처럼 석유를 몰아붙였다.이에 석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얼굴이 창백해졌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래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말싸움에서 밀린 적은 거의 없었다.그런데 명빈 앞에서는 자주 말문이 막혔다.명빈은 마치 싸움에서 이긴 사람처럼 기세가 올라 있었고, 속에 쌓여 있던 답답함을 드디어 털어낸 듯했다.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얼굴에는 분명한 만족감이 묻어났고, 안색도 한결 좋아졌다.그러자 석유는 냉소를 띠며 말했다.“제가 잘못했네요. 제가 아니라면 그 여자랑 좋은 일 이미 다 끝내셨을 텐데요.”그 말에 명빈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아쉬운 듯 말했다.“그러게요. 제가 왜 착각했을까요? 침대에 누워 있던 여자는 몸매도 좋고, 없는 게 없던데요. 누구랑은 완전히 다르게.”여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몸매를 비교당하는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하물며 그 대상이 석유라 해도 마찬가지였다.평소 같았으면 넘겼을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석유의 눈빛은 더 차갑게 가라앉았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앞에 휴게소 세워주세요.”화장실에 가려는 줄로 이해한 명빈은
문이 잠겨 있지 않아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들키지 않게 침실 쪽으로 다가갔는데, 막 다가가자마자 명빈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처음에는 명빈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몰랐다. 그런데 뒤를 듣고 나서야 알아차렸다.명빈은 침대 위에서 자신을 유혹하려는 여자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 모습이 참으로 우습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아니 보통 이런 생각은 머리에 문제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물론 지금은 둘이 그걸 따질 시간이 없었다. 명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침대 쪽으로 걸어가며 차갑게 말했다.“일어나요.”여자는 이불을 끌어안은 채 몸을 일으켰고 벌벌 떨며 명빈을 바라봤다.“사장님, 유시천 사장님이 저를 보내셨어요.”석유가 들어오는 순간, 오늘 밤 계획이 틀어졌다는 걸 이미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자기 몸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했다.석유는 여자의 짧은 머리와 섹시한 분위기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래서 명빈이 착각한 것이었나?’명빈의 잘생긴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나가요.”“화내지 마세요. 바로 나갈게요.”여자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이불이 흘러내리자 명빈은 혐오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옷을 다 입은 여자는 겁먹은 얼굴로 다가와 애처롭게 말했다.“사장님, 죄송해요. 제가 마음에 들게 해드리지 못했어요. 부디 유 사장님께까지 불똥이 튀지 않게 해주세요.”“나가요.”명빈이 낮게 말하자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서둘러 나갔다.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묘하게 뒤틀려 있었다.명빈은 시선을 돌려 석유를 보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잠옷을 끌어당겨 가슴과 복근을 단단히 가렸다.그러고는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뭘 봐요?”석유는 입꼬리에 냉소를 걸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자기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잘 생각이었다.이에 명빈은 이를 악물었다.괜히 혼자 착각했다가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방금 석유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겠는가?속에서 올라오는
또 한 시간이 지나서야 명빈이 돌아왔다.명빈은 주량이 괜찮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한밤 사이에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있었다.먼저 욕실에 들어가 몸을 담그며 피로를 풀었다.욕실에서 나온 뒤에야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방은 작은 스위트룸 구조였고 투숙객이 밤에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침실 조명이 어둡게 조절되어 있었다.여자는 옆으로 돌아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고, 얇은 이불 아래로 드러나는 몸 선과 둥글게 드러난 어깨, 짧고 짙은 머리카락만 보였다.“석유 씨?”명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불렀다.명빈의 첫 생각은 석유가 먼저 돌아왔다가 방에 잘못 들어온 것이라는 것이었다.그러니 등을 보이고 있던 여자는 눈동자를 굴렸다.말하지 않을 수도 없고 계속 침묵할 수도 없어 결국 흐릿하게 ‘응’ 하고 대답했다.“방 잘못 들어온 거예요?”명빈의 목소리에는 술기운이 섞여 있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여자가 대답하지 못했다.자신을 보낸 사람이 명빈과 석유 사이가 연인 관계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쉽게 믿을 수 없었다.남녀가 단둘이 출장까지 함께 다니는데 겉으로 아니어도 속으로는 이미 미묘한 관계일 수 있었다.그렇기에 명빈이 자신을 석유로 착각한다면 오늘 일은 훨씬 수월해질지도 몰랐다.그리고 내일 아침이 되면 명빈이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이미 늦었을 것이다.그래서 여자는 끝까지 연기를 이어가기로 했다.석유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잠도 들지 않은 상태였다.그저 목소리를 들었으면서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일어나지도 않았다.‘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명빈의 심장이 순간 뛰었다.‘일부러 그러는 건가?’그건 정말 예상 밖이었다.석유는 평소 차갑고 무심했고 자신이 도와줘도 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먼저 다가올 줄은 몰랐다.‘그 마음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희유를 좋아하는 척한 것도 사실은 자신에게 다가오기 위한 핑계였던 걸까?’그렇다면 꽤 영리했다고 생각했다.모두를 속인
해가 거의 저물고 있어 책임자는 명빈과 석유에게 하룻밤 더 묵고 가라고 권했다.명빈이 모처럼 온 만큼 저녁에 이후 채굴 관련 사항을 논의하기에도 좋았다.그러자 명빈이 석유에게 의견을 물었고 여자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사장님이시잖아요. 사장님이 결정하시면 돼요.”그 말에 명빈이 입꼬리를 올렸다.이제야 자신이 사장인 걸 아는 모양이었다.올 때는 자신이 운전하는 차를 그렇게 편하게 타더니 말이다.숙소는 마을 안에 있었다.작은 곳이었지만 주변에 관광지가 개발되어 있어 민박 형태의 숙소가 많이 들어서 있었고, 분위기도 아늑하고 특색이 있었다.두 사람이 묵는 곳은 하나의 마당이 딸린 건물이었다.2층 구조의 누각 형태였고, 마당에는 인공 산과 물이 어우러져 있었다.먹고 놀 수 있는 시설도 모두 갖춰져 있었다.저녁 식사는 마당 안의 별채에서 준비되었다.별채라고는 하지만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가 조용하고 포근했다.식사도 할 수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었으며, 옆문으로 나가면 온천이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명빈이 현장에 왔다는 소식이 퍼지자 협력업체와 각 부서 책임자, 공급업체까지 십여 명이 한꺼번에 모였다.모두 명빈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분위기는 매우 활기찼다.물론 사람들은 석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석유가 명빈이 데려온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석유가 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에 대한 진심으로 고마웠기 때문이었다.사람들이 석유에게 술을 권하려 했지만 명빈이 모두 막아섰다.“석유 씨는 술 못 마시니까 각자 알아서 마시세요.”말투는 담담했지만 분명히 감싸는 태도였기에,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물러났다.감히 더 석유를 귀찮게 하지 못했다.그중에는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사장님이 여자친구 생겼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분 아니에요?”“아마 맞을 거예요.”“사장님 안목이 정말 좋네요.”“그럼요.”“사장님 정도 위치면 당연히 제일 뛰어난 사람을 고르시겠죠.”“처음엔 우리가 사람
“그 두 가지는 아마 일어나지 않을 거야.”소희는 담담하면서도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임구택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진 않을 거고, 아버님도 구은태 회장님 체면은 지켜줄 거야. 그리고 서인, 걔가 여기까지 왔다면 물러설 일은 없어.”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마음이 조금 놓인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유진은 알고 있었다. 은정이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을 거란 걸. 그리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은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은정을 믿고, 자신을 믿으면 되는 일이었다.삼십 분쯤 지나,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유정은 당황한 표정으로 백림의 옆에 앉은 채 잠든 남자를 한 번 힐끗 바라보고는,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차분히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유정이에요. 조백림 사장님은 지금 저와 함께 있어요.”상대편 운전기사는 순간 멈칫하더니, 곧장 정중하게 말했다.[유정 씨, 안녕하세요. 사장님이 유정 씨와 함께 계신다니 안심이에요. 더는 방해하지 않을게요!]“그러면 안녕히 계세요.” 유정은 부드럽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백림의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이 남자의 잔꾀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났다.‘정신 차리면 꼭 물어봐
“조백림!”유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목소리마저 날카롭게 변했다.처음엔 백림이 그저 겁만 주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남자의 손이 자신의 치마 속을 더듬기 시작했을 때, 유정은 백림이 정말 선을 넘으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유정이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체격 차이가 너무 컸다. 그리고 주먹이 백림의 몸에 닿아도 마치 냥냥펀치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분위기만 더욱 짙게 달아올랐다.늘 점잖고 여유로운 백림은 지금 이 순간, 거칠고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분위기가 곧 폭주할 듯 통제 불능으로 흐르고 있었다.그 혼란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