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한 지 2년 동안, 오빠랑 나... 666번 잤어.” “오빠, 언니가 알면 어떡해?” 청력을 되찾은 심하설이 처음으로 들은 것은, 남편의 ‘여동생’이 남편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배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하설은 울지 않았다. 따지지도,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혼전계약서를 꺼냈다. 계약서 조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책 배우자는 모든 재산을 상대 배우자에게 넘기고, 빈손으로 떠난다. 배문교는 늘 심하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자신이 본 것은 하설이 국가 기념식 총괄 디자이너가 되는 모습이었다. Global Best에서 A국 여성 최초로 대상 트로피를 거머쥐는 모습이었다. 정계 인사와 거장들이 둘러싸고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그제야 문교는 무너졌다. 문교는 하설의 발치에 엎드린 채 떨리는 손끝으로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네가 나를 위해 모든 걸 버렸잖아. 이렇게 나를 버릴 수 있어? 한 번만 더 날 사랑해 줘.” 하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설이 기쁜 표정으로 자신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대단한 남자의 품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문교는 그저 뻔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하설을 소중한 보물처럼 아꼈다. ... 밸런타인데이. 진우건은 집으로 배달된 꽃다발을 보자 미간을 찌푸렸다. “버려. 눈에 거슬려. 아무나 감히 여기까지 들이대고 있어.” 하설은 일부러 놀렸다. “그래도 예쁜데?” 그날 밤, 하설은 허리를 붙잡고 억울한 듯이 투덜거렸다. ‘전역한 지 오래됐다면서, 체력은 왜 아직도 이렇게 괴물 같은 거야?!’
View More문이 열렸다.하설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키 크고 건장한 남자가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하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돈 있어요. 드릴게요. 지금 바로 돈 찾아 드릴 수 있어요.”키 큰 남자는 차갑게 웃었다.“우리가 바보로 보이나? 돈 찾으러 보냈다가 경찰에 신고하라고?”하설은 남자를 바라보며 어떻게든 설득하려 했다.“절대 신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돈 드릴 테니까 보내 주세요. 이 일은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키 큰 남자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평소라면 감히 가까이할 수 없었을 사람이 자신 앞에서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남자의 입꼬리가 점점 더 비틀렸다. 눈빛은 불쾌하고 위험했다.역겨운 웃음이었다.남자가 손을 들어 하설의 얼굴을 쓸었다.“돈은 별로 관심 없어. 오늘 밤은 네가 필요해.”하설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남자의 손끝 아래 하설의 피부가 닿았다. 그는 그 감촉에 집착하듯 손을 떼지 않았다.“여기까지 데려왔는데 그냥 보내면 아깝잖아?”하설은 고개를 돌려 피하려 했다. 피할 수 없었다.남자의 손은 거칠었고, 남자의 몸에서 나는 싸구려 담배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피부 좋네.”“고운 천 같아.”“돈 많은 집 사모님은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침대 위에서도 다른 여자들이랑 다를지 궁금한데.”남자는 말을 하며 낮게 웃었다. 시선은 계속해서 하설을 불쾌하게 훑었다.하설은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남자의 손가락이 입가를 스칠 때.하설은 갑자기 입을 벌려 그의 검지 관절을 물었다. 세게, 있는 힘껏 물었다. 입안에 피비린내가 퍼졌다.키 큰 남자는 통증에 분노해 손을 들어 하설의 뺨을 때렸다.찰싹!하설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고, 입가에 피가 맺혔다.작은 남자가 느릿하게 안으로 들어왔다.“정신 차렸네. 풀어줘. 묶어 놓으면 재미없잖아.”하설을 묶고 있던 케이블타이와 밧줄이 빠르게 잘려 나갔다.하설은 거칠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눌렸다.남자는 하설의 외투를 잡아당겼다.안쪽 니트까지
구급차 사이렌이 저녁 어둠을 찢으며 병원으로 달렸다.차 안의 소독약 냄새 사이로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짙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냄새였다.채아는 들것 위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다.긴 머리는 목 옆에 엉겨 붙었고, 이마에는 아직 닦이지 않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문교의 숨을 멎게 한 건 채아의 몸 아래로 번져 나간 붉은 피였다.피는 두꺼운 겨울옷을 적시고, 새하얀 코트까지 천천히 물들였다.문교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임신했다는 좋은 소식조차 듣지 못한 채, 바로 이 불길한 일을 마주한 것이다.아이는 아마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문교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채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떨리는 손을 뻗었다.문교는 곧장 그 손을 잡았다.채아는 문교의 손가락을 꼭 움켜쥐었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는 조각조각 끊겼다.“괜찮을까? 우리 아이 괜찮을까? 제발요, 선생님. 제 아이 꼭 살려주세요...”말할수록 채아는 더 불안해했다. 숨이 가빠졌고, 심한 통증 때문에 몸이 조금씩 떨렸다.의사는 수액관을 조정하며 최대한 차분하게 달랬다.“환자분,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흥분할수록 태아에게 좋지 않습니다.”그러고는 옆의 문교를 보며 당부했다.“보호자분이 잘 달래 주세요. 지금은 감정이 더 흔들리면 안 됩니다.”문교는 채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목소리는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나 여기 있어. 무서워하지 마. 내가 곁에 있어. 너도 아이도 괜찮을 거야.”채아는 다시 천천히 의식을 잃었다.문교는 곧장 의사를 보았다.“왜 이러는 겁니까?”의사는 채아의 동공을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출혈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수액에 지혈제는 넣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야 정확한 처치가 가능합니다.”문교의 목이 굳게 움직였다.그제야 물었다.“아이... 지킬 수 있습니까?”의사는 한숨을 쉬었다.코트에 번진 출혈량을 한 번 보고 말했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문교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때 문득, 오늘 밤 자신이 준비한 일이
‘돈을 노린 납치인가?’하설은 어금니를 물었다.‘차라리 배문교를 직접 노리는 편이 돈은 더 빠르지 않나?’키 큰 남자가 주머니에서 하설의 핸드폰을 꺼냈다.“비밀번호.”하설은 대답하지 않았다.남자는 곧 주머니에서 접이식 칼을 꺼냈다.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자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이며 하설의 얼굴 가까이 닿았다.“비밀번호 묻잖아.”하설은 본능적으로 목을 뒤로 젖혔다.칼끝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감촉을 피했다.“123698.”키 큰 남자는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연락처를 한참 뒤져 문교를 찾아냈다.전화를 걸기 전, 그는 하설 앞에 쭈그려 앉았다. 시선이 불쾌했다.“사모님은 배 대표를 잘 알겠지. 우리가 배 대표한테 얼마를 부르면 좋을까?”하설은 잠시 침묵했다.“마음대로요.”하설은 생각했다.문교에게는 자신을 집으로 데려갈 기회가 필요할 것이다.지금 상황은 문교 앞에 저절로 놓인 기회나 다름없었다.돈이 조금 들더라도.문교는 기꺼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이번만큼은 하설도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키 큰 남자가 웃으며 전화를 걸었다.차가운 통화 연결음이 울렸다.자동으로 끊길 때까지.문교는 전화받지 않았다.작은 남자가 참지 못하고 다가와 핸드폰을 빼앗았다. 다시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키 큰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은 앞뒤로 창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쾅!문이 닫혔다.키 작은 남자는 담뱃갑을 꺼내 키 큰 남자에게 담배 하나를 건넸다.두 사람이 연기를 뿜는 사이.키 큰 남자는 거칠게 침을 뱉었다.“배문교 그 자식 뭐 하자는 거야? 우리 갖고 노나? 우리더러 연기 좀 해 달라며. 그런데 지금 사람은 어디 있어?”키 작은 남자는 자기 핸드폰으로 다시 문교에게 전화를 걸었다.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키 큰 남자는 주먹으로 문짝을 쳤다.“빌어먹을. 감히 날 속여?”오늘 오전.두 사람은 문교의 전화를 받았다. 문교는 두 사람에게
문화관광과에서 연락이 왔다. 빛담불꽃기획이 설맞이 불꽃축제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설맞이 전야제까지는 이제 20일밖에 남지 않았다.하설은 열흘 안에 불꽃 제작과 연출안을 모두 완성해야 했다. 남은 기간은 문화관광과와 방송국이 최종 동선과 송출 일정을 조율하는 데 쓰일 예정이었다.하설은 곧바로 차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캔디 콘셉트 불꽃 작업은 잠시 미루고, 모든 인력을 설맞이 불꽃축제 준비에 집중해 달라고 지시했다....하설은 문교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데려가려고 움직일 줄 알았다.그 디지털 배리어프리 생태계 구축 사업 입찰도 코앞에 닥쳤으니까.하지만 예상과 달랐다.문교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뒤 벌써 사흘이 지났지만,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하설은 그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알 수 없었다.그래도 조용해서 좋았다.찾아오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다.이대로 무사히 지나가기만 하면 120억 원을 받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다만 하설이 아는 문교라면... 이제 곧 움직일 때가 되었다.그 사흘 동안 하설도 계속 밤낮없이 일하며 불꽃 연출안을 다듬었다.언제든 방송국과 연출팀 회의에 갈 준비를 해야 했다.예지와 함께 현장 답사도 다녀야 했다.풍향을 재고, 시야 확보 상태를 보고, 주변 건물 높이를 확인하고, 관람객 대피 동선까지 점검해야 했다.낮에는 야외에서 찬바람을 맞았다.밤에는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제안서를 썼다.힘들었다.하지만 만족감과 성취감이 마음 속에 차올랐다.방송국 설맞이 특집 프로그램 연출 담당자는 엔딩 크레딧에 빛담불꽃기획 이름을 넣겠다고 했다.늦은 밤, 하설은 드디어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났다. 파일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껐다. 집에 돌아가 잠을 자려 했다.낮에 정비소에서 전화가 왔다. 하설의 차는 이미 수리가 끝났고, 내일 찾으러 오면 된다고 했다.그래서 오늘 밤도 택시를 타야 했다.하설은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길목에 서서 기다렸다.잠시 뒤.검은색 폭스바겐 한 대가 맞은편 길에서 꺾어 들어왔다
경매장 입구.정갈한 제복을 입은 직원이 손을 내밀었다.“초대장과 VIP 카드를 보여 주세요.”하설은 담담하게 말했다.“심하설입니다. 배문교 대표의 아내예요.”직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설의 얼굴에서 치맛자락까지 훑었다.“배 대표님과 사모님께서는 3분 전에 등록을 마치고 입장하셨습니다.”하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배 대표에게 전화해 보세요.”직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면서, 하설을 보는 눈빛에는 조롱의 기색이 담겼다.“배 대표님이 사모님과 같이 계시는데, 제가 괜히 불편하게 해 드릴 수는 없죠.”사적으로는 남편이
하설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돌아섰다.발끝에 힘이 풀리면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올랐다.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 나오는 듯한 열기와 갈증, 공허감이 함께 몰려왔다.하설은 곧바로 남희가 건넸던 스파클링 와인을 떠올렸다.술에 약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아마도... 할머니가 시킨 일이겠지.’깊이 숨을 들이마신 하설은 룸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룸으로 돌아간다는 건 바로 문교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하설은 문교가 더럽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곧장 돌아서서 비틀거리며 클
소리 없이 쌓인 눈은 세상 모든 것을 묻어 버릴 듯했다.차 안에서는 휘성의 당부만 들렸다.“결혼 후 가정의 재정권은 계속 배문교 대표에게 있었죠? 먼저 배 대표의 재산 상태를 파악하는 게 좋겠습니다.”하설은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휘성이 말했다.“전에 한 IT 기업 대표가 연봉 만 원으로 일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배 대표가 그럴 사람은 아닐 겁니다. 결혼했을 때부터 사모님을 노렸을 리는 없겠죠.”하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확인해 볼게요. 우선 은행에 들러 주세요.”하설이 은행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결혼한 지 2년 동안, 오빠랑 나 666번 잤어.”“오빠, 하설 언니가 알까?”달뜬 목소리가 사무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심하설은 온몸의 피가 식으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배문교의 사무실을 찾았다 드디어 자신의 귀가 들린다고, 남편에게 제일 먼저 알려 주고 싶었다.하지만 하설이 듣게 된 것은 남편의 외도였다.상대는 낯선 여자가 아니었다.남편의 명목상의 여동생.하설의 남동생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원흉이었던 윤채아였다.하설은 눈을 내리깔았다.‘들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아픈 거였구나.’안쪽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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