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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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2년 동안, 오빠랑 나... 666번 잤어.” “오빠, 언니가 알면 어떡해?” 청력을 되찾은 심하설이 처음으로 들은 것은, 남편의 ‘여동생’이 남편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배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하설은 울지 않았다. 따지지도,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혼전계약서를 꺼냈다. 계약서 조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책 배우자는 모든 재산을 상대 배우자에게 넘기고, 빈손으로 떠난다. 배문교는 늘 심하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자신이 본 것은 하설이 국가 기념식 총괄 디자이너가 되는 모습이었다. Global Best에서 A국 여성 최초로 대상 트로피를 거머쥐는 모습이었다. 정계 인사와 거장들이 둘러싸고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그제야 문교는 무너졌다. 문교는 하설의 발치에 엎드린 채 떨리는 손끝으로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네가 나를 위해 모든 걸 버렸잖아. 이렇게 나를 버릴 수 있어? 한 번만 더 날 사랑해 줘.” 하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설이 기쁜 표정으로 자신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대단한 남자의 품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문교는 그저 뻔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하설을 소중한 보물처럼 아꼈다. ... 밸런타인데이. 진우건은 집으로 배달된 꽃다발을 보자 미간을 찌푸렸다. “버려. 눈에 거슬려. 아무나 감히 여기까지 들이대고 있어.” 하설은 일부러 놀렸다. “그래도 예쁜데?” 그날 밤, 하설은 허리를 붙잡고 억울한 듯이 투덜거렸다. ‘전역한 지 오래됐다면서, 체력은 왜 아직도 이렇게 괴물 같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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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أول

제1화

“결혼한 지 2년 동안, 오빠랑 나 666번 잤어.”

“오빠, 하설 언니가 알까?”

달뜬 목소리가 사무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심하설은 온몸의 피가 식으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배문교의 사무실을 찾았다

드디어 자신의 귀가 들린다고, 남편에게 제일 먼저 알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하설이 듣게 된 것은 남편의 외도였다.

상대는 낯선 여자가 아니었다.

남편의 명목상의 여동생.

하설의 남동생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원흉이었던 윤채아였다.

하설은 눈을 내리깔았다.

‘들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아픈 거였구나.’

안쪽에서는 끊길 듯 이어지는 숨소리와 나지막한 말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채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오빠, 결혼한 지 벌써 2년이나 됐잖아. 그런데도 매일 밤 나한테 오면서, 왜 하설 언니랑은 대충이라도 지내보지 않는 거야?”

오래도록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대답했다.

어릴 적의 풋풋함은 사라지고 매혹적이고 성숙한 느낌만 남아 있었다.

“더러워.”

채아가 나른하게 웃었다.

“맞아. 언니는 돈 많은 늙은 남자랑 결혼했던 적도 있잖아.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겠지.”

하설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반지의 차가운 감촉이 손가락에서부터 팔을 타고 뼛속까지 번졌다.

‘더럽다?’

‘나를 더럽다고 생각했구나.’

하설은 입술을 벌려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하설이 자신을 팔아 마련한 10억 원으로 배문교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하설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떨리는 손끝으로 핸드폰을 꺼낸 하설은 동영상을 켜고 문틈 사이로 핸드폰을 밀어 넣었다.

곧바로 남편의 외도를 증명할 영상이 찍혔다.

비틀거리며 물러난 하설은 그대로 돌아서서 떠났다.

...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뒤 깊게 숨을 들이마신 하설은, 턱밑까지 차오른 울음을 꾹꾹 참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

오혜정이 다그쳤다.

[보청기 꼈지? 문교 옆에 있어? 민 대표한테 약속한 2차 투자금,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봐. 그 회사는 지금 그 돈만 기다리고 있어.]

하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혜정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요즘 병원에는 갔어? 유준이 생명 유지 장비 임대료도 내야 해. 문교한테 꼭 말해서 잊어버리지 않게 해. 1분만 멈춰도 네 동생 목숨이 위험해지는 거 알잖아.]

하설은 눈을 감았다.

남동생 심유준이 식물인간이 된 지 2년.

지금껏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문교가 해외의 첨단 바이오 연구소에서 독점 장비를 빌려 왔기 때문이었다. 특허를 낸 장비라 연간 임대료만 해도 20억 원 가까이 됐다.

하설이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자, 오혜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 하나. 며칠 전에 사모님들이랑 쇼핑 갔는데, 누가 문교가 웬 여자랑 같이 있는 걸 봤다더라.]

하설은 코끝을 훔쳤다.

“엄마, 만약에... 만약에 배문교가 정말 바람을 피운 거라면, 나 이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혜정이 퍼부었다.

[하설이야, 정신 나갔니? 너 같은 청각장애인이 배씨 집안 며느리가 된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몰라? 남들은 갖고 싶어도 못 가지는 자리야. 그걸 네 손으로 밀어내겠다고?]

[외도? 그 여자가 배가 불러서 집 앞에 오더라도, 넌 얌전히 산후조리까지 해 줘야 할 판이야.]

[배문교 아내 자리만 지키면 평생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어. 네가 문교하고 이혼하면 유준이, 너, 나, 민 대표도 다 굶어 죽게 돼!]

오혜정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택시 안까지 울렸다.

기사가 백미러로 하설을 힐끔 쳐다봤다. 눈빛에는 동정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하설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다 죽으면 되겠네.”

그리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하설은 눈가의 눈물 자국을 닦고 다른 번호를 눌렀다.

“제가 결혼 전에 배문교 대표랑 작성했던 혼전계약서, 변호사님이 보관 중이시죠? 이혼합의서도 하나 준비해서 내일 같이 가져다주세요.”

상대는 곧 하설의 요구에 응했다.

하설은 씁쓸하게 웃었다.

‘배문교... 잊은 모양이네.’

결혼 전, 문교는 하설에게 충성을 증명하겠다며 기어이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문교가 결혼 생활 중에 외도할 경우, 본인 명의의 모든 재산은 하설에게 귀속된다.

문교는 한 푼도 갖지 못한 채 떠나야 하는 것이다.

...

하설은 새벽 2시까지 거실에 앉아 있었다.

문교가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어둑한 조명 아래 앉아 있는 아내를 보자 문교는 놀란 듯이 다가왔다.

“왜 아직 안 잤어? 오늘 야근한다고 했잖아.”

길고 고운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하설은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아버지 심국경은 문교를 구하려다 세상을 떠났고, 하설은 그 충격으로 청력을 잃었다.

문교는 서툴게 수어를 독학했다. 밤을 새워가며 배웠고, 한 달 만에 능숙해졌다.

하설과 동생 유준에게도 알려 주었다.

그때 문교는 말했다. 평생 하설에게 잘하겠다고.

고개를 든 하설은 문교의 목덜미 안쪽에 남은 붉은 자국을 보았다.

“피곤해?”

문교는 잠시 멈칫하다가 곧 웃었다.

하설의 손가락을 잡고 입을 맞추면서 마술처럼 팔찌 하나를 꺼냈다.

어두운 조명 아래 다이아몬드가 눈부시게 빛났다.

결혼 2년 동안 문교가 하설에게 준 666번째 선물이었다.

문교가 직접 팔찌를 채워 주었다.

“잘 어울린다. 예뻐.”

문교의 눈빛은 다정했다.

하설의 눈가는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하설은 그것을 666번 반복된 사랑이라고 믿었었다.

알고 보니 666번의 외도 뒤에 따라온 죄책감과 보상이었다.

하설은 손을 빼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사흘 뒤가 무슨 날인지 기억해?”

문교는 차분하게 손을 움직였다.

“회사 상장일. 시가 총액도 크게 오를 거야. 또 우리 결혼 2주년이고. 그날 선물 줄게.”

하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우리 남편을 위해 서프라이즈 준비했어.”

‘바로 자유를...’

더 이상 몰래 채아를 찾아가서 잠자리를 갖지 않아도 될 자유라는 선물.

문교는 하설의 손등을 토닥였다.

“일찍 자. 내일은 장인어른 기일이잖아. 같이 성묘 가야지.”

...

다음 날.

눈이 거세게 내렸다.

묘지로 가는 길에 문교의 핸드폰이 울렸다.

하설은 문교와 있을 때면 보통 보청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교는 거리낌 없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잔뜩 겁에 질린 채아의 목소리는 몹시 위태로웠다.

[오빠, 그 술 취한 옆집 남자가 또 문을 두드려. 너무 무서워. 와 줄 수 있어?]

문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양 비서 보내서 처리하라고 할게.”

채아의 말투에는 살짝 실망이 묻어났다.

[응... 알았어, 오빠.]

통화가 끊어졌다.

하설은 옷자락을 꽉 쥔 채 씁쓸하게 자신을 다독였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은 남아 있는 모양이지.’

차가 다시 움직인 지 2분도 되지 않았다.

핸드폰이 또 울리자, 문교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또 채아였다.

목소리는 한층 가늘고 부드러웠다.

[오빠, 무서워. 그 남자가 문을 따려고 해...]

문교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하설은 몸이 크게 앞으로 쏠리면서, 하마터면 이마를 부딪칠 뻔했다.

차가 멈추자, 안전벨트에 막혔던 몸이 다시 뒤로 튕겼다.

심한 흔들림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설은 눈썹을 곧추세우면서 평온한 눈빛으로 문교를 쳐다보았다.

표정을 누그러뜨린 문교가 수어로 말했다.

“미안해.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어. 오늘 같이 성묘 못 갈 것 같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묘지로 갈게.”

하설의 마음은 이미 새카맣게 타서 재가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온순하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일 보러 가.”

문교의 얼굴에 얼핏 죄책감이 떠오르더니, 손으로 하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하설은 손길을 피하자, 문교의 손은 허공에 멈췄다.

텅 빈 손처럼... 문교의 마음도 이상하게 텅 빈 듯했다.

하지만 문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차문을 열어 주었다.

하설이 차에서 내리자, 문교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차를 몰고 떠났다.

하설이 손을 뻗었다.

“저기...”

외투를 그만 차 안에 두고 내린 것이다.

차가운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하설은 흠칫 몸을 떨어야 했다.

택시를 타고 아버지 묘지에 도착한 하설은 잡초를 뽑고 향을 피운 뒤 국화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서 지친 몸으로 묘소 앞에 앉아서 아버지에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뒤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나서야 하설은 뒤를 돌아보았다.

“변호사님, 부탁드린 서류 가져오셨어요?”

임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설의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보더니, 서둘러 서류가방을 열고 계약서를 건넸다.

두 손으로 계약서를 받는 하설의 손끝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감사합니다.”

휘성은 핸드폰에 글자를 써서 보여 주려고 했다.

그러자 하설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말씀하셔도 돼요. 이제는 들려요.”

휘성은 놀랐다.

“소리가 들리십니까?”

하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휘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먼저 말했다.

“서영준 회장님은 제게 은인이셨습니다. 회장님의 아이를 지금 사모님께서 키우고 계시니, 저도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변호사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하설은 고개를 들었다. 인형처럼 예쁜 작은 얼굴에는 슬픔이 살짝 내려앉아 있었다.

“고맙습니다.”

하설의 막막한 심정을 읽은 듯 휘성이 조용히 말했다.

“누군가를 신앙처럼 여기면, 신앙이 무너진 뒤에는 길을 잃게 됩니다.”

‘신앙...’

‘맞네.’

문교는 늘 하설의 신앙이었고, 삶이었다.

그때, 바로 지금 하설이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문교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땅 위에 한 글자씩 쓰며 맹세했다.

[설아, 아저씨 목숨 빚은 내가 평생 갚을게. 내 목숨은 네 거야.]

하설은 문교의 목숨을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문교는 하설의 반쪽 목숨을 가져가 버렸다.

핸드폰이 울리자 하설은 화면을 봤다.

문교의 메시지였다.

[채아 집에 일이 생겨서 집으로 데려왔어. 며칠 우리 집에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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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결혼한 지 2년 동안, 오빠랑 나 666번 잤어.”“오빠, 하설 언니가 알까?”달뜬 목소리가 사무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심하설은 온몸의 피가 식으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배문교의 사무실을 찾았다 드디어 자신의 귀가 들린다고, 남편에게 제일 먼저 알려 주고 싶었다.하지만 하설이 듣게 된 것은 남편의 외도였다.상대는 낯선 여자가 아니었다.남편의 명목상의 여동생.하설의 남동생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원흉이었던 윤채아였다.하설은 눈을 내리깔았다.‘들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아픈 거였구나.’안쪽에서는 끊길 듯 이어지는 숨소리와 나지막한 말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채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오빠, 결혼한 지 벌써 2년이나 됐잖아. 그런데도 매일 밤 나한테 오면서, 왜 하설 언니랑은 대충이라도 지내보지 않는 거야?”오래도록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대답했다.어릴 적의 풋풋함은 사라지고 매혹적이고 성숙한 느낌만 남아 있었다.“더러워.”채아가 나른하게 웃었다.“맞아. 언니는 돈 많은 늙은 남자랑 결혼했던 적도 있잖아.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겠지.”하설은 주먹을 꽉 쥐었다.반지의 차가운 감촉이 손가락에서부터 팔을 타고 뼛속까지 번졌다.‘더럽다?’‘나를 더럽다고 생각했구나.’하설은 입술을 벌려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하설이 자신을 팔아 마련한 10억 원으로 배문교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문고리를 잡고 있던 하설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떨리는 손끝으로 핸드폰을 꺼낸 하설은 동영상을 켜고 문틈 사이로 핸드폰을 밀어 넣었다.곧바로 남편의 외도를 증명할 영상이 찍혔다.비틀거리며 물러난 하설은 그대로 돌아서서 떠났다....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핸드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뒤 깊게 숨을 들이마신 하설은, 턱밑까지 차오른 울음을 꾹꾹 참으면서 전화를 받았다.“엄마.”오혜정이 다그쳤다.[보청기 꼈지? 문교 옆에 있어? 민 대표한테 약속한 2차 투자금,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봐. 그 회사는 지금 그 돈만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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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소리 없이 쌓인 눈은 세상 모든 것을 묻어 버릴 듯했다.차 안에서는 휘성의 당부만 들렸다.“결혼 후 가정의 재정권은 계속 배문교 대표에게 있었죠? 먼저 배 대표의 재산 상태를 파악하는 게 좋겠습니다.”하설은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휘성이 말했다.“전에 한 IT 기업 대표가 연봉 만 원으로 일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배 대표가 그럴 사람은 아닐 겁니다. 결혼했을 때부터 사모님을 노렸을 리는 없겠죠.”하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확인해 볼게요. 우선 은행에 들러 주세요.”하설이 은행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채아가 품에 유기견을 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문교는 수건으로 끈적하고 더러운 털을 닦고 있었다.개를 감싸고 있는 건 짙은 갈색 목도리였다.지난해, 하설이 한 달 동안 손수 뜨개질을 해서 문교에게 새해 선물로 준 목도리였다.두 사람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하설을 본 채아는 문교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기면서 그 뒤로 슬쩍 숨었다.“언니 왔구나.”문교는 수건을 내려놓았다.“왔어?”하설은 조용히 걸어갔다.채아 품속의 개를 바라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짐승이 자리를 잘 찾아왔네.”채아의 볼이 붉어지면서 억울한 듯 문교를 바라보았다.문교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길에서 주웠어. 이렇게 눈이 오는데 아무도 돌보지 않으면 이번 겨울을 못 넘길 거야. 우리 설이 예전엔 동물 좋아했잖아.]하설은 입꼬리를 올렸다.“사람도 변해. 잠깐 이리 와. 할 말이 있어.”말을 마친 하설은 곧장 거실로 갔다.채아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문교에게 매달렸다.“언니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못했나 봐. 계속 미워해. 차라리 강아지랑 호텔로 갈까? 나 때문에 언니랑 오빠가 싸우는 것도 싫고, 오빠가 곤란해지는 것도 싫어.”문교는 채아의 뒷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내가 해결할게.”문교도 거실로 들어갔다.하설은 눈을 들었다.“내가 윤채아 싫어하는 거, 당신 몰라? 유준이 왜 병원에 누워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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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하설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돌아섰다.발끝에 힘이 풀리면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올랐다.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 나오는 듯한 열기와 갈증, 공허감이 함께 몰려왔다.하설은 곧바로 남희가 건넸던 스파클링 와인을 떠올렸다.술에 약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아마도... 할머니가 시킨 일이겠지.’깊이 숨을 들이마신 하설은 룸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룸으로 돌아간다는 건 바로 문교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하설은 문교가 더럽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곧장 돌아서서 비틀거리며 클럽 밖으로 향했다.맞은편에서 꽃무늬 셔츠를 입은 양아치 둘이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볼이 붉게 달아오른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하설을 보자, 두 양아치는 서로 눈을 맞추며 음흉하게 웃었다.하설의 양쪽에서 포위하듯 다가섰다.키 큰 양아치가 하설의 팔을 잡았다.“예쁜이, 많이 아파 보이네. 오빠들이 도와줄까?”다른 양아치도 낄낄거렸다.“이런 데 혼자 있으면 위험하지. 오빠들이 쉬는 데까지 데려다줄게.”굳이 말하지 않아도 양아치들의 속셈이 그대로 드러났다.하설은 이를 악물었다.온 힘을 다해 두 양아치를 밀치고 앞으로 달렸다.“어? 도망가네!”“잡아!”뒤따르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하설의 다리는 국수가락처럼 흐물거리면서 풀렸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복도가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약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모퉁이를 돌자 비교적 조용한 라운지가 나왔다. 부드러운 조명 아래,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커다란 유리창 앞에서 등을 돌린 채 통화 중이었다. 곧은 어깨선과 꼿꼿한 자세가 하설의 눈에 들어왔다.“살... 살려주세요...”남자에게 몸을 던지듯 다가간 하설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카펫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바로 남자의 발아래였다.아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길에 놀란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귀찮다는 듯한 기색으로 바뀌었다.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바짓단을 붙잡은 하설이 눈물 어린 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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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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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어젯밤 클럽에서 나를 구해 준 그 남자분이잖아!’‘이분이... 진씨 가문 사람이었어?’하설이 급히 다가서자 경호원들이 즉시 막아섰다.하설이 다급하게 불렀다.“저기요... 잠시만요!”남자는 하설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깊은 눈동자에는 낯선 차가움과 예리함이 섞여 있었다. 시선이 말없이 하설을 향했다.남자가 손을 살짝 들자 경호원이 물러났다.하설은 맑은 눈동자에 고마움을 담은 채 남자 앞으로 걸어갔다.자신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내려앉자, 하설은 눈앞의 남자가 문교보다도 키가 크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하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말했다.“어젯밤 저를 병원에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남자는 담담하게 하설을 훑었다.“괜찮아.”하설은 주먹을 꼭 쥐었다.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잡아야 했다.입술을 꼭 다물고 있던 하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방금... 낙찰 받으신 그 목걸이, 제게 파실 수 있을까요?”말이 떨어지는 내내 주먹을 쥔 손마디마저 하얗게 굳었다. 자신의 말을 무례하게 받아들일까 걱정이 됐고,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을까 두려웠다.뜻밖에도 남자의 손에는 정교한 벨벳 상자가 들려 있었다.남자는 손끝으로 상자 표면의 문양을 가볍게 쓰다듬더니, 상자를 하설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하설은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간절히 원하던 물건이 손에 들어왔지만 감히 받을 수가 없었다.남자가 옆에 있던 비서를 바라보았다.윤재가 곧 명함을 건넸다.“저희 회장님 명함입니다.”하설은 명함을 받아 들었다.차가운 느낌의 검은색 특수 용지로 만든 명함은 손끝에 닿는 질감은 매끄럽지만 이상할 정도로 묵직했다. 금박이 새겨진 문양이 빛을 머금을 때마다 은은하게 반짝여서, 명함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그리고 그 가운데에 남자의 이름이 단정하게 박혀 있었다.‘진우건...!’하설이 서둘러 말했다.“회장님, 곧 연락을 드리고 돈을 보내드리겠습니다.”우건의 시선이 연약한 나비의 날개처럼 떨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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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하설은 밥을 지었다.하율과 저녁을 먹은 뒤, 하율은 창가에 엎드려 하늘을 올려다봤다.“엄마, 엄마 회사 불꽃놀이가 오늘 밤에 올라가는 거죠?”하설은 불꽃 디자이너였다. BY그룹 산하에서 작은 불꽃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석 달 전에는 도심 광장의 불꽃놀이 디자인 입찰을 따냈다.하설과 팀원들은 석 달 동안 수없이 테스트했다.그렇게 ‘별빛을 너에게’라는 불꽃을 완성했다.그 불꽃은 오늘 밤, 새해 전야에 처음 하늘로 오를 예정이었다.하설은 하율 앞에 쪼그려 앉았다.“우리 하율이 광장에 가서 불꽃놀이 보고 싶어?”하율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남편’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하설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전화를 받았다.문교는 하설이 들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 내가 집에 가서 너랑 하율이 데리고 광장으로 갈게. 한 30분 뒤 도착하니까 준비하고 있어. 오늘 춥다니까 따뜻하게 입고.]하설은 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하율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고, 커다란 눈에는 설렘이 반짝였다.하설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알았어.”통화가 끊어졌다.하설은 하율에게 두꺼운 패딩을 입히고 직접 뜬 캐시미어 목도리를 둘렀다. 아이는 통통한 찹쌀떡처럼 변했다.하설도 흰색 패딩을 입었다.둘이 준비를 마치자 하율은 참지 못했다.“엄마, 나 집 앞에서 아저씨 기다려도 돼?”하설이 시간을 보니 아직 5분쯤 시간이 남아 있었다.가방을 들고 바로 하율의 손을 잡고 나갔다.눈은 여전히 내렸다.하율은 집 앞에서 눈덩이를 만들며 기다렸다.시간이 천천히 흘렀다.추위에 떨며 하설 곁에 바짝 붙은 하율의 목소리에는 콧소리가 섞여 있었다.“아저씨 왜 아직 안 와?”하설은 핸드폰을 봤다. 문교는 이미 30분이나 늦었다.하설은 하율을 달래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찬 공기에 손끝이 붉어졌다. 문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문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10여 초 뒤, 다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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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문교는 그대로 하설의 손을 잡았다. 높았던 목소리 톤이 갑자기 누그러지면서, 말투도 어딘가 이상했다.“채아한테 사과해. 그럼 이 일은 여기서 끝낼 테니까.”하설은 눈을 내리깔면서 웃었다. 옆에서 채아가 애처롭게 말했다.“오빠, 됐어. 내가 뭐라고 언니한테 사과를 받아.”하설은 문교를 올려다보았다.“채아가 사과 필요 없대. 결정 존중할게.”문교는 말문이 막혔다.하설은 문교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차 가져와. 하율이 졸린 모양이야.”문교는 결국 차를 가지러 갔다.문교가 멀어지자 채아가 보청기를 낀 하설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언니, 요즘 짜증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호르몬 문제인가? 오빠한테 좀 풀어 달라고 해.”하설은 하율의 작은 귀를 쓰다듬으며 보청기를 자연스럽게 빼냈다.하율은 졸려서 멍한 상태였다. 고개를 들어 하설을 보고는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 하설의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채아를 위아래로 훑은 뒤 부드럽게 말했다.“오히려 네가 걱정이네. 누렇게 뜬 얼굴에 눈 밑은 퀭하고, 피부는 축 늘어졌잖아. 피곤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 있어.” “그 꼴로 밖에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은 돈만 주면 아무나 상대해 주는 싸구려인 줄 알겠어.”채아의 안색이 붉어졌다가 하얗게 변하더니, 곧바로 다시 새파랗게 굳어졌다.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이성을 상실한 듯 손바닥을 들어 하설의 뺨을 치려 했다.하설의 눈이 차갑게 굳어졌다.정확하게 채아의 손목을 잡고, 몸을 살짝 숙이며 말했다.“이 손이 내려오면, 내일 폭행과 소란 혐의로 유치장에 들어갈 거야.”“모레가 네 문교 오빠의 회사 상장일이지. 우리 시어머니께서 좋은 날이라고 2억 원이나 들여 잡은 날짜를 망칠 생각이야?”채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삼키며, 독기 어린 눈으로 하설을 노려보기만 했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하설은 다른 한 손을 치켜들고 채아의 뺨을 내리쳤다.채아의 뺨이 화끈거렸다.“심하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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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우건의 비서 윤재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심하설 씨, 이쪽입니다.”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하설은 하율의 손을 잡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천장이 십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실을 지나 검은 가죽 소파 앞에 이르렀다.윤재가 손짓했다.“잠시 앉아 계십시오. 회장님은 위층 서재에 계십니다. 모셔오겠습니다.”“네, 알겠습니다.”하설은 하율을 데리고 소파에 앉았다.하율은 무려 3미터는 되어 보이는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여기 엄청 예쁘다.”하설은 웃으며 하율의 귀를 쓰다듬었다.“응.”하율이 또 물었다.“여기 사는 사람은 엄마 친구야?”하설은 말했다.“엄마 친구는 아니고, 엄마를 도와준 좋은 분이야. 또 우리 하율이의...”말이 끝나기 전, 위층에서 발소리가 내려왔다.하설은 빠르게 일어섰다.뒤를 돌아본 하설의 시야에 먼저 들어온 건 계단을 내려오는 우건의 긴 다리였다. 각 잡힌 정장 바지에 감싸인 다리는 길고 단단했다.카펫이 깔린 계단 위를 밟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압박감을 품고 있었다.천천히 내려오는 우건의 얼굴도 하설의 시야에 들어왔다.차갑게 다듬어진 윤곽과 입체적인 이목구비는, 칼로 새긴 듯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우건이 아래까지 내려왔다.“앉으세요.”하설은 조심스럽게 다시 앉으면서 하율을 품 안에 끌어안았다.하율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건을 바라보았다.“아저씨, 우리 엄마 도와줘서 고마워. 아저씨는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우건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간 듯했다.“네가 하율이지?”하율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우건이 윤재를 돌아보자, 윤재가 곧바로 다가왔다.“하율아, 삼촌이 뒤뜰에 있는 강아지 보러 데려가 줄까?”‘강아지?’하율의 눈이 반짝였다.아이의 시선이 하설에게 매달렸다.하설은 우건이 자신과 단둘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다녀와.”윤재는 하율을 번쩍 안고 거실 밖으로 걸어갔다.하설은 가방에서 작은 선물 상자를 꺼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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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우건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가며 귀티와 예리함이 동시에 묻어났다.“법학 공부를 했습니까?”하설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네.”우건은 잠시 말이 없었다.하설은 이어 말했다.“서 회장님이 돌아가실 때, 여러 번 부탁하셨어요. 하율이를 꼭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 달라고요.”법 말고도 사람으로서의 정이 있었다.법적으로는 서영준과의 혼인관계가 있었다.인간적인 정으로는 서영준의 임종 때 부탁이 있었다.3분도 안 되는 이 말들을 위해 하설은 꼬박 사흘을 생각했다.우건은 일어나서 창가로 걸어갔다. 깊은 눈매는 마치 얼어붙은 겨울 호수 같았다.“심하설 씨는 결혼 전부터 남편이 외도할 거라고 예상하셨습니까?”하설의 하얀 뺨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눈빛에는 분노가 어렸다.아무리 날카로운 질문이라도, 사람의 치부를 이렇게 대놓고 찌르는 법은 아니었다.하설의 목소리에 감정이 섞였다.“회장님, 조금 지나치십니다. 엄격히 따지자면 회장님도 저를 형수라고 불러야죠.”말이 끝나자마자 하설은 머리가 저려왔다.‘생각만 하면 됐지.’‘왜 입 밖으로 내버렸어?!’우건도 그 말에 조금 놀란 듯했다.잠시 후, 우건이 웃었다.“형... 수...?”한 글자씩 짚듯 불렀다. 하설을 바라보며, 이미 붉어진 얼굴이 더 짙게 변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하설은 입술을 다물었다.“회장님, 제가 이렇게까지 말씀드리는 건 결국 하율이 어릴 때부터 저와 지냈기 때문입니다. 제가 3년을 돌봤어요. 회장님이 잘 돌보지 못할까 봐, 하율이...”우건은 가볍게 웃으며 다가와 말을 끊었다.“내가 하율이를 잘 돌보지 못하면, 심하설 씨는 잘 돌볼 수 있어요?” “하율이 남편 외도를 알고도 참고 삼키는 여자한테서 보고 자라면... 우유부단하고 자기 자신을 쉽게 접는 성격밖에 더 되겠어요? 그게 잘 돌보는 건가요?”우건이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하필이면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사실이었다.무겁게 하설의 마음을 때려서, 하설은 반박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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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하율은 당연히 싫었다.하율이 두 살 때부터 하설이 돌봤다.하율이 세 살 때 남편 서영준이 세상을 떠났다.아이의 기억은 고작 2년 정도였다.그 2년 동안 하율의 세상에는 하설뿐이었다.하율의 마음속에서 하설은 유일한 엄마였다.하율은 고개를 저었다.“엄마, 나 버리는 거야?”하설은 얼른 아이를 달랬다.“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삼촌도 하율이 가족이고, 하율이를 예뻐해 주고 싶대. 봐, 삼촌은 이렇게 큰 집에 혼자 살잖아. 같이 지낼 사람이 없으면 외롭지 않을까?”우건은 말이 없었다.하율은 몰래 우건을 흘깃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불쌍하긴 해.”이어서 작은 머리로 좋은 생각을 떠올린 듯 말했다.“엄마도 나랑 여기서 같이 살면서 삼촌이랑 놀아 주자. 여기 이렇게 큰데, 엄마랑 나는 작은 방 하나만 쓰면 되잖아.”하설은 숨을 깊이 들이마셔 눈가의 습기를 밀어냈다.“하지만 엄마가 요즘 정말 바빠. 어젯밤 엄마가 만든 불꽃 예뻤지? 많은 사람들이 봤거든. 이제 엄마랑 일하고 싶다는 회장님들이 많아질 거야.”윤재가 적절히 거들었다.“하율아, 엄마 힘든 거 싫지? 뒤뜰에는 네가 좋아하는 도베르만도 있어.”입술을 깨물고 고민하던 하율이 하설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엄마, 나 데리러 올 거지?”하설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서야 하율은 웃었다.“그럼 삼촌이랑 조금만 지낼게.”하설은 하율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뽀뽀를 했다.하율의 볼이 빨개졌다.하설은 하율의 보청기를 정리해 주었다.“그럼 엄마는 먼저 갈게.”하율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설은 다시 당부했다.“삼촌 말씀 잘 듣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네 집처럼 편하게 있어. 삼촌도... 하율이를 좋아하거든.”하율은 아기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응, 엄마.”하설은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윤재가 앞장섰다.거실을 나서자 윤재가 입을 열었다.“심하설 씨가 저희 회장님에게 불편한 마음을 갖고 계실 수 있다는 것 압니다.”“그래도 제가 사적으로 말씀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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