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나선 진승윤은 위용에게 전화를 걸었다.“김씨 가문 관련 사건 중 두 가지를 골라 실검에 올려. 반드시 실검에 올라야 해.”“알겠습니다.”“그리고 감찰부에 김씨 가문을 익명으로 신고해. 탈세 혐의로.”위용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진 대표님, 정말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응, 해야 해. 그뿐만 아니라 김서우를 정식으로 고소할 거야. 살인미수로.”전화를 끊은 뒤 진승윤은 차를 몰고 김씨 가문으로 향했다.김씨 가문의 집사였던 허재문은 진승윤을 보고 잠시 당황하다가 웃으며 말했다.“진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
진승윤이 떠난 후, 김서우는 허겁지겁 연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열 번 넘게 전화를 걸어도 연다인은 받지 않았고 김서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진승윤조차 자신을 죽이려 드는 이 상황에 이제 그녀는 완전히 끝장난 것과 마찬가지였다.‘누구한테 도움을 청하지? 배정우? 엄마?’하지만 오늘 실검 사건 때문에 차희라는 이미 그녀에게 화를 내며 전화도 받지 않고 있었다.‘그렇다면 배정우를 찾아갈까? 그래. 배정우도 임슬기를 싫어하니까 분명히 날 도와줄 거야.’하지만 김서우는 배정우의 연락처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어쩔 수 없이 김
진승윤의 물음에 임슬기는 고개를 들어 진승윤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대답하려는 찰나, 갑자기 차희라가 허둥지둥 병실로 달려 들어와 그녀의 침대에 매달리며 말했다.“슬기야, 제발 서우를 구해줘.”깜짝 놀란 임슬기는 자기도 모르게 김현정을 끌어안고 물었다.“김서우가 왜요?”“누구한테 맞은 뒤 경찰서에 잡혀갔어.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대. 방금 경찰서에 가서 봤는데 온몸이 피투성이가 돼 가지고 거의 죽기 직전이야. 슬기야, 제발 구해줘. 그 애도 누군가의 손에 놀아난 거야.”잠들어 있는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알 수
화난 배정우의 목소리에 임슬기는 그제야 그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오직 의혹과 거리감만 가득했다.“죄송한데요. 우리 아는 사이인가요?”임슬기의 물음에 병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김현정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슬기 언니, 진짜로 기억 안 나요?”임슬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기억해야 할 사람이야?”임슬기의 말에 김현정은 마음 한구석에서 기쁨이 피어올랐다. 기억을 잃었다는 건 아픔마저 잊혔다는 뜻이니, 어쩌면 다행인 것 같았다.반면 배정우는 어두운 얼굴로 임슬기의 앞
배정우가 눈치라도 챌지 두려웠던 임슬기는 일부러 임종현에게 일상생활과 학교에 관한 질문만 했다.임종현은 임슬기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지난번에 해줬던 소고기 냉채가 맛있었는데, 언제 또 해 줄 거예요?”“지난번?”임슬기는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종현아, 누나가 너한테 소고기 냉채를 해 준 게 2년 전이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임종현은 손을 황급히 뿌리치며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지난달에 해줬던 걸 말하는 거예요. 싫으면 말아요.”“아니야. 해 줄게.”임슬기는 눈물을 참
임종현을 집에 데려다준 후, 배정우는 이유 모를 짜증에 결국 킹스 클럽으로 향했다. 술에 취할 때쯤 육문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배정우가 술을 계속 들이붓자, 육문주는 짜증 내며 말했다.“술이나 처마시고 있을 시간에 치료나 받아요.”“내가 기억을 되찾아 뭐 해? 임슬기는 이미 날 잊어버렸는데.”배정우는 잔을 육문주 앞으로 밀어 놓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임슬기가 지금 너희는 다 기억하는데, 오직 나만 잊었다고. 이게 말이 돼? 연기하는 거 아니야?”“단정할 순 없어요. 인간의 뇌는 가장 아팠던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
‘다시 시작하자고?’임슬기는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이 울었다.왜 이 남자는 항상 술만 마시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 그들은 정말로 돌아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는데.그리고 임슬기는 진심으로 배정우가 미웠다. 그의 무정함, 어리석음, 냉담함과 그녀를 향한 속박.예전에 배정우는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절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임슬기를 곁에 두고 계속 괴롭히기 위해서라고 말했었다.‘다시 시작하자고? 또 한 번 속이려는 거야? 하지만 정우야, 이번에는 정말로 속지 않을 거야.’“슬기야?”전화기 너머에서 다시 들
전화를 여러 번 걸었지만, 배정우는 받지 않았다.초조해진 임슬기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었고, 얼굴은 붉어져 평소와 다르게 생기가 돌아 보였다.“아가씨, 임종현과 무슨 관계예요? 몇 반인지도 모르세요?”임슬기는 입술을 깨물며 배정우한테 전화를 계속 걸며 사과했다.“죄송해요. 제 동생이에요. 2년 동안 못 봤어요.”경비원은 비웃듯 그녀를 흘끔 보며 말했다.“2년 동안 못 봤으면 신원 확인이 안 되는데요.”그때 드디어 전화가 연결되었다.“무슨 일이야?”“배정우 씨, 종현이 몇 학년 몇 반이에요? 담임 선생님
반달이 지난 뒤 임슬기는 여전히 제대로 걷지는 못했지만, 의사에게서 이틀 뒤면 퇴원이 가능하다는 허락을 받았다.“너무 잘 됐어요! 드디어 퇴원할 수 있다니! 뭐 드시고 싶어요? 내가 다 준비할게요! 이건 꼭 축하해야죠.”임슬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현정아, 너 먹방 유튜버나 해볼래? 그럼 돈 좀 벌 수도 있겠다.”“진짜요? 근데 난 언니한테 해주는 게 제일 좋아요.”김현정은 그렇게 말하며 임슬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말았다.“언니, 우리 그냥 앞으로 같이 살래요? 내가 언니 먹여
“꺅!”연다인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현정을 노려봤다.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임종현이 있는 앞이라 억지로 연기해야 했다.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김현정 씨, 왜 이러는 거예요?”그녀는 곧바로 임종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억울한 척 말을 이었다.“종현아, 누나는 그런 뜻 아니야. 나는 그냥... 다들 알고 있는 줄 알고...”울먹이는 얼굴에 눈가가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그 모습에 임종현은 약간 망설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됐어요. 형이랑
임종현이 부탁하면 임슬기는 늘 거절을 잘 못했다.하지만 배정우와 다시 잘 지내라는 이 부탁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가 원한다 한들 배정우가 원하지 않으니까.배정우는 그녀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어떻게 다시 처음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하게 아팠다.“종현아.”임슬기는 고개를 숙이며 쓴웃음을 지었다.“그 부탁은... 누나가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아.”그녀는 억지로 울음을 삼킨 채 고개를 들었다.“이미 그 사람은 연다인이랑 함께잖아.”임종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
이제 이 동생도 부끄럼을 탈 줄 안다니.임슬기는 피식 웃으며 종현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종현아, 누나 좀 도와줘. 침대 좀 올려줄래?”임종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발치로 가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이 정도 높이면 돼요? 더 올려요?”“응, 지금 딱 좋아. 고마워.”임슬기는 그의 손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종현아, 그 손... 필기하는 데는 지장 없겠어?”그 말을 들은 종현은 고개를 숙여 손을 내려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그리고 이번에
“현정아.”임슬기는 김현정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있어도 속으론 여전히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사랑 문제는 본래 타인이 쉽게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그녀로 인해 시작된 일이기에 그냥 모른 척할 순 없었다.김현정은 조용히 다가와 침대 옆에 앉더니, 임슬기의 팔에 감긴 붕대를 보며 마음 아픈 눈빛을 보냈다.“언니, 내가 전화 안 했으면 나한텐 아무 말 없이 계속 숨길 생각이었죠?”“...나는 그냥 네가 걱정할까 봐.”“나도
차로 돌아온 배정우는 주머니에서 단추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는 손에 쥔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권민, 연다인 행적 좀 추적해 봐.”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그가 들고 있는 단추를 보고 물었다.“단추도 조사해 볼까요?”배정우는 단추를 권민 손에 툭 던지며 말했다.“조사해. 그리고 지난달 파티 밤의 CCTV 영상도, 빠짐없이 확인해.”그 말을 들은 권민은 잠깐 눈썹을 찌푸렸다.“대표님, 그날 CCTV는 이미 없어진 상태입니다. 호텔 쪽 말로는 장비 고장이 있었다고 합니다.”‘고장? 참 타이밍 좋게도.
하지만 임슬기는 결국 찌르지 못했다. 칼끝은 배정우에게 닿지 않았다.배정우는 놀라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슬기야...”“배정우, 여긴 왜 온 거야?”그 순간 진승윤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그는 배정우를 거칠게 끌어내고는 병실 문을 쾅 닫아버렸다.그리고 곧장 임슬기 곁으로 달려가 그녀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 침대 옆에 내려놓은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진정시켰다.“괜찮아, 슬기야. 이제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아무 일도 안 생겨.”임슬기는 마치 이제야 정신이 든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눈물
“내 입이 독하긴 해도, 배정우 씨는 손에 칼을 숨기고 있잖아요.”임슬기는 고개를 들어 배정우를 바라보며 입가에 비웃음 섞인 미소를 띠었다.“그런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이기겠어요.”그 말은 마치 날이 서 있는 칼처럼 배정우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배정우는 잠시 멍해있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려고 했다.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임슬기가 눈을 감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잔뜩 겁먹은 표정까지 떠오르자 배정우는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두었다.“넌 내가 그렇게 무서워? 응?”임슬기는 눈을
‘진성한?’임슬기는 얼떨떨했다.“그게 어떻게 너희 아버지랑 관련 있어?”진승윤은 미간을 찌푸렸다.“전에 파티장에서 우리 아버지 널 따로 불러냈었지?”“응.”“그 사람, 절대 신사 같은 인물 아니야. 자기 계획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전부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넌 그 사람 눈에 발목 잡는 존재였을 뿐이야.”진승윤의 눈빛 속에 이전과는 다른 차가움이 스쳤다.“방해가 된다 싶으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없애버려.”이미 직접 전화로 확인하긴 했지만 그 위선적인 인간을 진승윤은 끝내 믿을 수 없었다.임슬기도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