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혜영은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지길 반복했고, 선물을 겨우 들고 있을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이준 오빠, 아니에요. 그냥 함께 새해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을 뿐이에요.”한이준은 냉랭하게 말했다.“한씨 가문은 널 환영하지 않아. 아직도 그걸 몰라? 곽혜영, 네가 예전에 나를 구해줬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곽씨 가문에 투자도 많이 해줬잖아. 한씨 가문이 아니었으면 곽씨 가문은 이미 망해서 사라졌을 거야. 앞으로 두 번 다시 임혜린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명심해. 그리고 이건 확실히 해두자. 한씨 가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임혜린만이 내가 인정한 아내야. 오직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만이 내 후계자가 될 거고 네가 한씨 가문의 인정을 받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이미 내 소유 지분은 전부 내 아들과 임혜린의 이름으로 넘겼으니, 한씨 가문에서 네가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야. 그만 정신 좀 차리고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이나 해.”처음으로 듣는 차가운 그의 말에 곽혜영은 울먹거리며 말했다.“아니에요. 이준 오빠, 오늘은 제가 먼저 시비를 건 게 아니에요. 혜린 언니가...”한이준은 그녀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임혜린은 너보다 어려. 그 언니 소리 좀 그만해. 소름 돋아. 앞으로 곽씨 가문 일로 나한테 찾아오는 것도 좀 자제하도록 해. 혜린이가 오해하는 게 싫어. 그리고 네가 들고 있는 그 물건들, 원래 임혜린을 위해 주문한 거야. 아까는 임혜린을 열받게 하려고 일부러 너한테 준다고 했을 뿐이지. 임혜린이 싫다고 하니까 그거 전부 비서한테 넘겨. 버릴 거야. 이만 가 봐.”말을 마친 한이준은 곽혜영을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비서는 서둘러 곽혜영한테서 물건을 가져가며 사과했다.“곽혜영 씨, 죄송해요. 대표님 성격이 원래 저래요. 임예린 씨한테 줄 물건은 절대 타인에게 주지 않아요. 차라리 버릴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넘기진 않죠.”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던 곽혜영은 그 자리에서 욕을 내뱉었지
곽혜영은 바닥에 엎드려 구슬을 찾고 있는 임혜린을 보고 있자니 얼굴의 아픔도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이준 오빠, 고마워요. 내가 헤리나 디자이너의 팬인 걸 알고 오늘의 런웨이 상품을 전부 사줬다니. 이준 오빠는 정말 나를 너무 잘 해주네요.”임혜린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구슬을 찾기 시작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허도현은 임혜린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혜린아, 그만 찾아. 그냥 하나의 목걸이일 뿐이야. 별거 아니니까 어서 집에 가자.”조명 아래, 임혜린의 눈가가 약간 붉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잠시 멈칫했다.“혜린아, 너 울었어?”임혜린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럴 리가요. 방금 작은 벌레가 눈에 들어가서 그래요.”하지만 한겨울에 벌레가 있을 리 없었다. 그녀는 눈가를 훔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현 오빠, 목걸이를 망가뜨려서 미안해요. 내가 전문가한테 맡겨서 고쳐올게요.”허도현은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괜찮아. 그냥 목걸이일 뿐이잖아.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물건도 아니고. 어서 집에 가자.”그는 임혜린의 손을 잡고 차 쪽으로 이끌었다.조명 아래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깊이 사랑하는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한이준은 그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즉시 달려가 임혜린의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멈춰! 가라는 말 안 했어!”임혜린은 돌아서며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그만했으면 됐잖아요. 뭘 더 하시게요? 나를 때려서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거예요?”그녀의 눈빛에 담겨있는 혐오에 가슴이 찔린 듯 아파져 온 한이준은 말을 더듬었다.“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한이준은 분명 조금씩 나아지던 두 사람의 관계가 왜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이렇게 멀어진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는 이 모든 게 전부 아직도 임혜린을 포기하지 못한 채 착한 척하며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허도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이준은 진심으로 허도현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
‘저 목걸이가 왜 임혜린 목에 걸려 있는 거지? 허도현 한테서 저걸 받았다고? 내가 선물한 액세서리에는 눈길도 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허도현의 선물을 받은 거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허도현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거야?’어릴 적, 허도현이 준 우유 사탕은 한이준이 준 수입 초콜릿보다 그녀를 더 행복하게 했었고, 허도현이 접어준 종이비행기도 한이준이 선물한 크리스털 머리핀보다 그녀의 미소를 더 밝게 만들었다.심지어 허도현이 새 둥지를 훔치는 모습마저 그녀의 눈엔 영웅으로 비치는 반면 한이준은 무슨 짓을 해도 항상 냉소와 조롱을 받았었다.한씨 가문의 도련님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존재인데 임혜린만이 그를 항상 허도현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쓰레기로 취급하고 있었다.‘도대체 왜?’연초에 한이준은 그녀에게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광산을 선물했고, 개인 전용기를 선물했으며 한씨 가문의 지분까지 넘겨줬었다. 하지만 임혜린은 계약서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그런데 지금은 허도현이 준 목걸이를 보라는 듯이 목에 걸고 있었다.‘그깟 목걸이가 그렇게 좋아? 그러면 내가 직접 부숴주지.’한이준은 오랫동안 눌러왔던 폭력성이 서서히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임혜린의 목에 걸린 비취 목걸이를 움켜잡더니, 힘껏 잡아당겼다.목걸이가 끊어지며 비취 구슬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임혜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미쳤어요?”한이준은 얼음처럼 차가워진 얼굴로 말했다.“누구 허락 받고 다른 남자한테 받은 걸 목에 걸고 다녀?”분노로 정신이 아득해진 임혜린은 고개를 들어 한이준의 뺨을 때리고 말했다.“당장 주워요! 이 구슬들 전부 다 줍고 사과해요!”극도의 분노로 그녀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비릿하게 올라오는 피 맛에 한이준은 입술을 핥으며 비웃었다.“사과? 허씨 가문의 이깟 쓰레기 때문에 나한테 사과를 하라는 거야? 꿈도 꾸지 마.”임혜린의 눈은 분노로 붉어져 있었다. 이 목걸이는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물건이
임혜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냉소를 지었다.“내가 너를 때렸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데? 여기 누가 본 사람이라도 있어? 도현 오빠, 혹시 오빠는 내가 이 여자를 때리는 걸 봤어요?”허도현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 못 봤는데? 그리고 이 휴게실에는 CCTV도 없어. 그러니까 곽혜영 씨, 적당히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곽혜영은 자신의 부은 얼굴을 확인하더니 비명을 질렀다.“임혜린, 이 미친년!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임혜린은 다시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말했다.“왜? 한 대 더 맞고 싶어?”곽혜영은 임혜린과 키가 비슷했지만, 힘으로는 도저히 임혜린을 당해낼 수 없다는 걸 알고 분노에 차 말했다.“임혜린, 이번 일 절대 잊지 않을 거야!”임혜린은 그녀의 얼굴을 툭툭 치며 비웃었다.“쓰레기 같은 년아, 내 말 똑똑히 기억해. 내 아들을 건드릴 생각 하지도 말고 앞으로 ‘언니'라고 부르지도 마. 나보다 두 살이나 더 많으면서 어디서 어린 척이야?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네 진짜 정보를 모두 공개할 거야.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나이를 속이고, 학력을 속이고, 공연 때 녹음을 틀어놓는다는 거까지 전부!”곽혜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네가 감히!”임혜린은 손을 휘둘러 다시 한번 곽혜영의 뺨을 갈기고 말했다.“왜? 내가 못 할 것 같아? 네 입으로 말했잖아. 우리 아들은 한씨 가문의 핏줄이라고. 한이준이 자기 아들의 친엄마를 감옥에 보내겠어? 그러니까 앞으로 날 보면 자각적으로 비켜 다니라고. 알겠어? 꺼져!”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임혜린은 그녀를 놓아주고 옷매무시를 정리한 뒤 허도현과 함께 휴게실을 나섰다.곽혜영은 분노가 치밀어 휴게실에 있는 물건들을 냅다 부수어댔다.쇼가 끝나자,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어 있었다. 허도현의 소개로 임혜린은 오랜 우상이었던 헤리나 디자이너와 단독으로 만날 수 있었다.헤리나는 임혜린의 동서양을 결합한 디자인 철학과 H국 전통 수공 염색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두
임혜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혜영 씨나 한이준이 주는 걸 보물처럼 여기지, 나는 그 남자가 티켓을 얼마나 구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곽혜영 씨, 그러니까 내 앞에서 계속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내가 성격이 별로라서 정말 그쪽을 때릴 수도 있거든요.”곽혜영의 눈에는 의심의 눈빛이 스쳤다.‘뭐야? 이준 오빠가 마련해준 게 아니었어? 그런데 이준 오빠도 쇼를 보러 F국에 와 있잖아. 그럼 혹시 이준 오빠가 아니라 허도현과 함께 온 거야? 그러니까 두 사람, 다시 사이가 나빠졌다는 거네?’곽혜영은 자기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빙긋 웃었다.“내 목걸이 봤어요? 이준 오빠 할머니께서 어제 나한테 준 거예요. 손주며느리에게 주는 거라면서. 어제 한씨 가문에 오지 않은 건 참 잘한 선택이에요. 안 그랬으면 정말 화났을 거예요. 이준 오빠 할머니께서 나와 이준 오빠를 약혼시키겠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안심해요. 이준 오빠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니까 나와 결혼해도 그쪽한테 돈은 줄 거예요. 그리고 아이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애를 좋아하니까 아들을 잘 키워줄게요. 한씨 가문의 핏줄을 그쪽이 데리고 갈 순 없을 테니까...”곽혜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혜린은 눈에 살기를 품더니 곧장 곽혜영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깜짝 놀란 곽혜영은 소리를 질러댔다.“악! 너 뭐 하는 거야! 내 머리카락을 왜 잡아! 이 머리는 세 시간이나 공들여서 한 머리라고! 임혜린, 이 미친년아! 이거 안 놔?”임혜린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 앞뒤로 흔들더니 곽혜영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좌우로 뺨까지 내려치고 말했다.“내가 말했지. 내 아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넌 여전히 모르는구나. 난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야. 네가 이렇게까지 만든 거야!”말을 마친 임혜린은 또다시 좌우로 뺨을 후려쳤고 곽혜영은 비명을 질러댔다.“미친년아! 이거 안 놔? 한씨 가문에서 왜 너를 며느리로
허도현의 저택은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고 안에는 고급스러운 와이너리까지 갖추어져 있었지만, 임혜린은 주변을 둘러볼 기분이 나지 않았다.한이준은 미친 듯이 그녀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휴대전화를 켤 때마다 매번 다른 번호로 끝없는 전화가 쇄도했다. 틈새라도 있으면 파고들 듯한 집요함이었다.저녁이 되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던 임혜린은 휴대전화를 차 안에 내던진 채 임시로 휴대전화를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이 고요해지는 것 같았다.쇼장에 도착한 뒤 자신의 우상을 곧 만날 거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몰려왔던 임혜린은 휴식실에 들어가 메이크업을 수정했다.임혜린은 오늘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개량 한복을 입고 있었다. 서양풍이 살짝 들어가 있는 이 한복은 그녀의 화사한 메이크업과 단정한 짧은 머리 그리고 세트로 된 비취 액세서리와 어우러져 동양의 우아함과 현대적인 감각을 동시에 구현해 내고 있었다.마치 가시 돋친 장미처럼 아름답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그런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긴장하는 임혜린의 모습에 허도현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정돈해 주며 말했다.“너무 예쁘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네가 제일 예쁠 것 같아. 헤리나 디자이너도 분명 네 작품을 높이 평가하실 거야.”임혜린은 목에 걸린 비취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미소를 지었다.“이 액세서리가 포인트에요. 옷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고 있어요. 이 비취 세트, 가격이 꽤 나갈 것 같은데요?”허도현은 이것이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그 정도라도 되니까 간신히 너한테 어울리는 거지. 넌 나한테 이 세상 모든 것 중 가장 값진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임혜린이 웃으며 말했다.“오빠, 내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항상 너무 과분하게 나를 평가한다니까.”허도현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농담 아니야.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너를 기다려왔어. 안타깝게도 항상 어긋났지만.”임혜린은 웃으며 대화를 흘려보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