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내가 좀 쓰레기인데, 과연 신 비서가 이런 나를 감당했을까?" "…대표님은 내 것이었지만, 이젠 쓸모없으니 버려야겠네요." 숨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나는 가장 잔인한 거짓말을 속삭였다. 차가운 내 손끝이 그의 턱 끝을 느릿하게 훑었다. 버려지겠다는 내 말에, 그의 눈동자가 포식자의 그것처럼 번뜩였다. 내 혀는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거짓말을 뱉었지만, 심장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진실을 외쳤다. 90%의 진실과 10%의 비밀. 다 가진 포식자로 군림하는 이 나쁜 남자를 길들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세상을 속이는 마녀라도 되어주겠어!
查看更多내가 정차하려던 차를 빤히 바라보자, 그 차는 그저 갈 길을 가기 위해 골목을 바로 벗어나는 지나가던 차량일 뿐이었다.누가 더 올 사람이 있다고.사실 설마 하는 마음에 차준호의 차가 아닐까 생각한 건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하늘아, 서둘러.”“어, 그래.”칼바람이 뺨을 아리게 에었지만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모든 집을 다 돌고 나서도 두 사람은 뭐가 아쉬운지 다시 몇몇 집을 재방문했다.이대로 끝내기엔 마음이 안 놓였던 모양인지, 근처 마트로 전력 질주해 자재들을 사 와서는 덜덜 떨리는 창문에 뽁뽁이를 새로 붙이고 욕실과 주방의 부서진 곳까지 뚝딱 보수해 주었다.방문한 집마다 사진을 찍어두고 스마트폰에 보수가 필요한 세부 사항들을 꼼꼼히 기록하며, 다음에도 또 올 것처럼 구는 두 남자의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두 분 덕분에 어르신들 한파 걱정을 많이 덜었어요. 감사해요.”내 인사에 최기범은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리기까지 했다. 꽤나 뿌듯한 기색이었다.“신 과장, 나 이래 봬도 공대 출신입니다. 다음에도 날 불러 주십시오.”“하늘아, 너도 고생 많았어.”사실 아침에 믹스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채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모든 일과가 끝나고 그제야 아찔할 정도로 허기가 밀려왔다. 자연스럽게 카트를 밀어 마당을 지나 집 안까지 들여다 주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이대로 그냥 돌려보내자니 너무 미안하고, 그렇다고 집 안으로 초대하자니 묘하게 어색했지만, 살벌한 추위 속에서 고생한 이들을 그냥 모른 척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저··· 다들 잠깐 들어와서 요기라도
나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도국의 손에는 무언가 묵직하고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늘 그렇듯 나를 위해 음식을 사가지고 온 것 같았다.“하늘아, 고생했어.”안 그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녀석이 이 시간대에 장까지 봐서 찾아오다니.놀란 내 입가에서 새어 나온 하얀 숨결이 옅은 한숨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어떻게 시간을 낸 거야?”“그냥 와봤어. 그런데··· 저 직장 상사분은 왜 여기 계셔?”도국의 날선 시선이 최기범에게로 향했다.그런데 뜬금없게 최기범 역시 다가오는 도국을 보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경계하듯 두리번거렸다.“도국 군. 내가 연장자이니 말 편하게 하겠습니다. 그쪽은 워낙 유명인이니까 주변을 좀 조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최기범이 나름대로 도국을 염려해 건넨 말이었지만, 도국은 그 배려가 외려 불쾌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날카롭게 받아쳤다.“그쪽이야말로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왜 온 겁니까?”날도 춥고 눈보라가 치는데.두 남자 사이의 공기는 미묘하게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말려야 하는데. 최기범은 한 걸음 더 도국에게 다가가더니 바로 말을 뱉었다.“갈비탕 얻어먹으러 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겁니다. 도국 군이야말로 연예인이 여자 혼자 사는 집 주변에 이렇게 함부로 드나들면 안 되지 않습니까? 스캔들이라도 나면 어쩌려고?”초대하지도 않은 남자 둘이서 대낮에 남의 집 앞 골목을 장악하고 대체 뭐 하는 짓들인지.둘이 옥신각신 입씨름을 벌이는 사이, 나는 카트 속 물건들이 한쪽으로 쏠려 엎어지지 않게 균형
택배조차 가기 꺼리는 좁디좁은 골목길.나는 점심도 거른 채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한 집 한 집 건네며 구슬땀을 흘렸다.미로처럼 어지럽게 꼬인 골목길은 마치 내 복잡한 삶을 닮아 있었지만, 발걸음이 닿는 골목 구석구석마다 어린 시절의 따스한 웃음 조각들이 반짝이고 있었다.봉사를 하는 동안만큼은 나라는 사람도 나름대로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인정받는 것 같았다.그래서 늘 몸은 고되어도 힘든 것보단 마음의 보람이 훨씬 컸다. 다만, 요즘은 차준호 때문에 정신이 너무 없었던 탓에 물품을 풍족하게 준비하진 못했다.죄송한 마음에 대신 용돈 봉투를 조금씩 따로 챙겨 다음 골목으로 접어들 무렵,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대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계셨다.“···하늘아. 이 추운 날 우리 집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눈이 더 많이 올 것 같아. 어서 가.”할머니의 말대로 한낮인데도 사방이 어둠침침했고 먹구름이 하늘 가득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아직 돌아야 할 집이 이십 군데는 더 남았기에 발걸음을 조금 더 서둘러야 했다.나는 카트에서 라면 한 박스와 쌀 5킬로그램 한 포대, 그리고 방한 조끼와 생필품 세트를 꼼꼼히 전달하며 집안 형편을 살폈다.“할머니, 내일 제가 창문에 문풍지랑 뽁뽁이 좀 새로 덧발라 드릴까요?”“어? 그러면 너무··· 좋지. 내가 테이프로 대충 붙였는데 요령이 없어서 말이야···. 그런데 실은 화장실이 문제야.”나는 휴대폰을 켜서 '10번째 집, 창문 뽁뽁이 작업 필요'라고 재빨리 메모했다.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 화장실을
이 아침에 대체 누가 찾아온 걸까.현관 쪽을 살피며 거실로 나와보았지만 사위는 그저 조용했다.잘못 들은 걸까. 초인종을 달랑 한 번만 누르고 사라지는 사람은 없겠지 싶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진짜 도와줄 사람 불렀어?수화기 너머로 이아준이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왔다.“···어, 그러니까 걱정 마.”대충 둘러대며 설거지를 빠르게 마무리 짓고 찬장에서 머그컵을 꺼냈다.- 너 병나면 어르신들이 더 속상해하셔. 제발 몸 좀 살피면서 해.“알았어. 그런데 이제 여기서 봉사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내 나직한 말에 아준이 잠시 침묵했다.실제로 동네 어르신들 중 많은 분이 이주를 하거나 세상을 떠나, 이제는 고작 몇십 가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10년 전만 해도 친구들과 달라붙어 이틀 내내 매달려야 했던 봉사였는데, 지금은 혼자서 해도 하루면 충분히 끝날 정도였다.- 그래, 버틸 만큼 버텼지···. 올해 넘기기 힘들 거야.이아준의 말대로 동네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재개발이 빠르게 추진되는지 골목마다 이주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고,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대형 광고판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다가오는 봄이 되면 나 역시 언제까지 이 동네에 머무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순리대로 살아야겠지. 아준아, 그럼 오늘 밤에 게임에서 만나.”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다정한 인사가 오간 뒤 통화가 종료되었다.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이아준이 머무는 곳이 따뜻한 나라라서 참 다행
종일 정신 없다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커피에 의지해온 탓일까. 카페인의 날카로운 자극이 현기증을 부추겼다.그가 왜 하필 기억을 잃은 걸까.3년치 기억만 사라지다니. 비극 같으면서도 우습게 느껴졌다.빌어먹게도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카메라 군단이 다시 몰려들었다. 간신히 버티던 나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변했다.그런데 병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미주와 강진욱의 대화에 일순 어깨가 흠칫거려졌다.[강 박사님, 차 대표는 언제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나요?][네, 최종 검사가 끝나는 대로 오늘
이아준은 통화 도중,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신하늘과 도국과의 옛 기억 속에 깊게 잠겼다.화려한 마천루가 즐비한 강남의 이면, 세종동 서쪽 끝자락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빈민가가 있었다. 그곳에 위치한 ‘하늘 보육원’은 세 사람의 유년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세계이자 가족이었다.이아준은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보육원 앞마당에 버려진 신세였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고도 변덕스러웠다. 뒤늦게 그가 국내 최고 재벌가인 L그룹의 잃어버린 혈통임이 드러났고, 하루아침에
[1월 1일, 재벌가 차준호와 톱여배우 강소희! 둘만의 밀월여행이었나· 강원도에서 추락 사고!][CC그룹 후계자 차준호·한류스타 강소희! 과연 현재 상태는?][사고 직후 불거진 비밀 연애 의혹· 관계자들은 어떤 입장을···][과연 차준호와 강소희 사고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새해의 태양이 채 떠오르기도 전, 대한민국은 단 하나의 소식으로 들끓었다. 차준호는 강소희를 자신의 세단에 태운 채 1월 1일 새벽 강원도 산길을 달리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십여 미터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단순한 교통사고인지, 범죄와 연관된
‘이 나쁜 자식!’지난 3년간 내게 보인 그 모든 다정함은 한낱 유희였을까? 차준호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문드러져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서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존심을 끌어모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대표님은 그동안 절 어찌 보셨는데요?”나는 유리창 너머로 썰물처럼 번지는 화려한 야경을 사납게 응시하며, 심장에 박힐 날 선 말을 뱉어냈다.“네 주변에 남자가 들끓어 보였거든.”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남사친 둘을 두고 한 오해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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