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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손이영
온다연은 온 힘을 다해 유민준을 밀어냈다.

“오빠, 정신 차려요.”

유민준은 표정이 변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온다연, 순진한 척하지 마. 너랑 네 그 빌붙으려는 이모가 뭐가 달라? 지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거절해? 그럼 설마 더 대단한 걸 바라는 거야?”

온다연은 표정이 바뀌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씨 가문이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집안이란 거 알아요. 당신들한테 빌붙을 생각도 없었어요.”

온다연의 표정이 바뀌자 유민준은 답답한 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조금 전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연아, 나 그런 뜻 아니야. 나랑 만나면 명분 주는 것 외에 다른 건 다 줄 수 있어. 예전에 내가 지나쳤던 거 맞아. 내가 하령이 시켜서 널 괴롭혔던 것도 인정할게. 그런데 다 지난 일이잖아. 앞으로 내가 배로 잘해줄게. 다연아, 너 나 좋아하지...”

유민준이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온다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오빠 틀렸어요. 나 오빠한테 관심 없어요.”

온다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난 유씨 가문 사람들에게 관심 없어요. 조금도 없다고요.”

유강후는 그 말을 듣고 창문에 올려놨던 손을 멈칫하며 살기를 내뿜었다. 차 안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유민준은 그 말에 화가 났다.

“나한테 관심 없다고? 그놈 때문이야?”

유민준은 주머니에서 사진 여러 장을 꺼내 온다연의 얼굴에 던지며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놈 좋아하지?”

사진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불빛이 어두웠지만 온다연은 사진 속 남자가 그녀의 동기 진태윤이라는 것을 보아냈다. 요즘 인턴십 때문에 온다연은 진태윤과 가까워졌는데 유민준이 그들의 사진을 찍을 줄은 몰랐다.

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을 보고 온다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유씨 가문이 대단한 건 아는데요. 제 학교 친구들은 건드리지 마요. 태윤이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 태윤이 안 좋아해요.”

유민준은 손을 뻗어 온다연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내려다보았다.

“온다연, 저놈이 무사히 졸업하기를 바란다면 말 잘 들어. 만약 내가 또 너랑 다른 남자가 가까이 지내는 걸 보게 된다면 죽고 싶어질 정도로 괴롭혀 주겠어!”

이때 온다연은 표정이 급변하며 극도로 불쾌한 눈빛으로 유민준을 쳐다보았다.

유민준은 온다연의 그런 눈빛에 당황했다.

유씨 가문에서 10년 동안 지냈던 가여운 온다연은 늘 순했고 화가 나도 도망치기만 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공격적인 눈빛을 가졌단 말인가?

한참 있다가 온다연은 쪼그려 앉아 사진을 주워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온다연은 자신의 박스를 뺏어서 가려고 했다.

“오빠, 이제 가요. 여긴 오빠 같은 귀한 도련님과 어울리지 않아요.”

온다연은 곧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졌고 유민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유민준은 너무 화가 나서 쓰레기통을 몇 번 발로 차고 욕하며 재빨리 차에 탔다.

잠시 후 검은색 차 문이 열리고 키 크고 마른 몸매의 사람이 차에서 내려왔다.

밤바람이 불자 땅에 있는 노란 나뭇잎이 날았다. 공기는 여름의 습하고 끈적한 느낌으로 가득 찼고 낡은 동네의 은은한 곰팡이 냄새가 나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만드는 것 같았다.

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쓰레기통에서 사진 몇 장을 집어 들었다.

사진 속 온다연과 진태윤은 캠퍼스 길을 나란히 걷고 있었고 햇빛이 나무 틈새에서 퍼져 내려 두 사람을 비추자 두 사람은 반짝반짝 빛나며 잘 어울려 보였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진 속 온다연의 얼굴을 만졌다.

너무 밝게 웃고있는 온다연의 눈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 같이 빛났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그렇게 행복한가?

멀지 않은 곳에 온다연은 어두운 구석에 숨어 움직이지 않고 유강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간단한 흰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었는데 깔끔하고 고상해 보였다. 그 모습은 어두운 밤 속에서도 빛나는 것 같았다. 이 낡은 동네조차도 유강후가 거기 서 있음으로 하여 고급스러워지고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온다연만이 유강후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외모 뒤에는 차갑고 잔인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갑자기 유강후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온다연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밤에 맹수가 먹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사나운 기운을 담고 있었다.

온다연은 몸을 떨며 재빨리 돌아서서 몇 걸음 만에 낡은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전등은 이미 오래전에 고장 났다. 몇 발짝을 내디딘 후 온다연은 기운이 없어져 벽에 기대어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기억 속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뼛속 깊은 곳에서 자라난 고통이 심장까지 퍼져나가 끔찍한 후유증처럼 그녀를 짓눌렀다.

한참 지난 뒤 온다연은 비틀거리며 월세방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원룸은 가구가 몇 개밖에 없었고 조명도 밝지 않았다.

하지만 이 밝지 않은 불빛을 유강후는 한참 쳐다봤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이권은 검은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도련님, 늦었으니 이만 돌아갈까요?”

유강후는 5층의 어두운 불빛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다연이가 만났던 사람들을 알아봐.”

그러자 이권이 말했다.

“별거 없어요. 민준 도련님이 다연 양 주변 사람들을 거의 다 쫓아냈거든요. 다연 양에게 다가가는 남자들은 모조리 처리하셨어요. 그때 도련님이 민준 도련님을 다연 양 곁에 두셔서 다연 양의 모든 관계가 끊겼어요.”

유강후는 손가락을 움찔거리고 시선을 온다연 집의 작은 창문에서 거두었다.

“민준이 몇 살이야?”

“스물두 살입니다. 다연 양보다 두 살 많아요.”

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혼인 신고해도 되겠네. 경원시에서 결혼할 수 있는 나이의 부잣집 아가씨들 정보를 수집하고 민준이에게 여자 친구를 골라줘. 이제 결혼해야지.”

이권은 눈을 내리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내일 은별 아가씨와 데이트 약속 있는 거 잊지 마세요.”

그러자 유강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냉정하게 말했다.

“이권, 네 일이나 잘해.”

다음 날 온다연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몸이 너무 무거워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마를 만져보니 엄청 뜨거웠다. 그래서 체온을 쟀더니 39도나 되었다.

해열제 두 알을 먹고 오후까지 잠을 자고 나니 몸이 훨씬 편안해졌다.

휴대폰을 확인했더니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걸려왔고 카카오톡 친구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

온다연은 몇 초 동안 망설이며 친구 추가 요청을 바라보다가 결국 신경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동안 유씨 가문에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유강후를 만날 일이 없지 않은가?

이때 온다연의 친한 친구 임혜린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다연아, 급한 일이야. 도와줘!”

그리고 오후 6시에 온다연은 블루밍 카페에 나타났다.

주말도 아니고 시간대가 애매해서 큰 카페는 텅 비어 있었다.

온다연은 창가에 앉은 사람을 한눈에 발견했다.

그녀는 다가가서 친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임혜린입니다.”

남자는 고개를 들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서 온다연과 악수했다.

“안녕하세요. 강상현입니다.”

강상현은 흰색 옷에 검은색 바지를 입었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투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다정하고 항상 자신을 보호해 주던 기억 속의 그 소년과 닮았다.

하지만 그 소년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지났다.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멍을 때렸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온다연은 사실대로 말했다.

“상현 씨, 미안해요. 사실 저는 혜린이 친구인데 선 자리에 대신 나온 거예요. 선을 망치기 위해서요. 혜린이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데 집에서 반대하거든요. 그래서...”

강상현이 입을 열려는 순간 온다연은 갑자기 테이블 위에 있던 잡지를 집어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강상현은 의아해하며 온다연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온다연은 당장 테이블 아래로 숨고 싶었다.

‘왜 어디나 유강후가 있는 거야!’

창문 밖에 어느새 검은색 마이바흐가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그 옆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선남선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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