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윤슬이 남재를 용서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아직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단계까지 이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남재는 동생이 혹시라도 자신에게 마음의 벽을 두는 게 아닐지 몹시 걱정되었다.남재가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자, 옆에서 지켜보던 경안과 지나는 같은 생각을 했다.‘이 사람이 정말로 이름만 들어도 위압감을 주는 LR그룹의 글로벌 총괄 대표가 맞나?’외부에서는 사람들을 얼어붙게 할 만큼 냉혹한 사람이, 가족 앞에서는 이렇게 다정하다니.너무도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지금 상황이라면, 윤슬이 별을 따다 달래도
경안은 고개를 돌려 지나를 바라봤다.이 말은 사실 지나가 일주일 전에도 했었다.윤슬은 이제 구씨 가문의 장녀이고, 남재의 친동생이다.가족과 다시 만난 이상, 앞으로 번화테크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경안도 어느 정도 예상했다.“윤슬, 네 생각은 어때?”경안이 병상에 누운 윤슬에 다시 물었다.윤슬이 대답하려는 순간, 문 쪽에서 남재가 들어오며 말을 받았다.“앞으로도 계속 일하고 싶어?”윤슬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일은 계속해야 했다.사람은 뭔가 붙잡고 살아야 한다고, 윤슬은 생
우선 써먹을 수 있을 때 써먹고 보자는 생각이었다.공짜로 쓸 수 있는 패를 굳이 버릴 이유는 없었다.우현은 손에 쥔 매직펜을 천천히 돌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러다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번화테크 디자인팀 쪽에 윤슬이 언제쯤 퇴원할 예정인지 알아보라는 내용이었다.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잠깐 멈칫하더니, 곧이어 한 줄을 더 덧붙였다.[가능하면 입원한 병원이랑 병실 번호도 같이 알아내.]병원에서 나온 뒤면 이미 늦게 된다.병원에 있을 때가 가장 좋다.그때야말로 ‘호감도’를 쌓기에 딱 맞는 타이밍이다.이혼한 여자.전
부영철은 막내아들을 달래며 당분간은 몸을 낮추고 인내하라고 했다.그리고 훗날 작은 회사 하나쯤 맡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부영철 역시 잘 알고 있다.지금 상황에서 강현을 끌어내리고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강현은 곧 구씨 가문의 장녀와 혼인할 사람이다.부씨 가문과 구씨 가문, 두 재벌가의 결합.막강한 후원 세력이 붙은 이상 우현이 어떻게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명확하고 거대한 이해관계가 눈앞에 놓이자, 부영철은 과거의 선택을 후회했다.자신이 외도하지 않았더라면, 부씨 가문의 실권
“이번엔 놈이 일을 너무 깔끔하게 했어. 그러니 부정적인 여론을 퍼뜨린 장본인이라는 걸 증명할 수가 없어.”강현은 낮게 말을 이었다.“지금 그 자료 터뜨리면, 오히려 내가 일부러 부우현, 그놈을 누르려는 인상을 주게 돼.”BS그룹 내부의 경영권 다툼이었지만,실상은 모두가 알면서도 입 밖에 내지 않는 암묵적인 싸움이었다.아직 누구도 정면으로 판을 뒤엎겠다고 선언한 적은 없었다.우현은 부 회장이 직접 불러들인 존재이다.그래서 이사회의 늙은 여우들 역시 마음이 흔들렸다.강현은 우현에게 죄를 씌워 단죄할 수 없었다.아직은
“이상 왕호 부장은 재직 기간 동안 총 육억 오천사백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취했습니다.”창호가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보고를 마쳤다.“관련 증거는 이미 사법기관에 제출했고, 회사는 중대한 불법 행위를 저지른 직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물을 예정입니다.”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을 들은, 왕호는 비대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두 걸음 물러섰다.이건 단순한 해임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었다.이미 경찰에 신고했으니, 이제 수갑 차고 감옥에 갈 일만 남았다.“회의는 계속 진행합시다.”강현이 담담하게 지시했다.“
복도 끝, 지나의 방.그녀는 방금까지 핸드폰을 붙들고 타이핑하다가, 결국 음성 메시지까지 보냈다.가방이 얼마나 관리하기 까다로운지, 진주가 오래되면 변색되고 결국 값어치가 뚝 떨어진다며, 차라리 중고로 팔라고 강력히 설득했다.윤슬은 친구가 보낸 열 줄이 넘는 장문의 메시지를 한참 훑어보다가, 시선을 책상 위 진주 가방으로 옮겼다.솔직히, 마음에 들긴 했다.[어차피 경품으로 받은 거라 돈 쓴 것도 아니고, 값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당분간 돈 쓸 일도 없는데 뭐.]윤슬이 이렇게 답을 보내자, 지나의 손이 이마로 올라갔다.
카페 안.지나의 커피는 이미 다 비어 있었다. 하지만 도빈에게선 여전히 아무 연락도 없었다.그녀는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그리고 문자로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집을 나선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지나 어머니도 세 사람이 계속 같이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헐, 윤슬 말이 맞은 거야?’‘오빠 오후에 약속 있다고? 그래도 이렇게까지 바쁠 리가 없는데...’사람을 못 잡아 붙들어두니, 궁금하던 소문도 풀지 못한 채, 지나는 저녁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둘은 찻집을 나와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저녁을 먹고 집으로
“그건 전혀 연관이 없어. 네가 억지로 이어 붙이는 거지.”윤슬이 차분히 말했다.그러자 지나가 다시 ‘증거’를 들이밀었다.“그러면 아까 내가 옷 사라고 했을 때, 우리 대화하는 동안 우리 오빠가 계속 안 떠나고 있었잖아? 그건 네 대답 기다린 거라니까!”“우리가 얘기하는데 이 대표님이 먼저 가면 예의가 아니잖아.”윤슬이 반박했다.하지만 지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만약 나한테 사줄 생각이었으면, 내가 처음에 ‘응’ 했을 때 바로 내렸어야지. 차 안에서 기다리는 건 네 대답 기다린 거야.”“아니야, 몇십 초 정도였잖아
윤슬은 조용히 그 ‘인생 수업’을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슬 씨는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자란 거죠? 거기에 공부도 잘했으니까 더 철저히 동화된 거고. 예의 바르고, 교양 있고, 염치도 알고, 선을 지킬 줄 알죠.”도빈이 평소보다 말을 조금 더 길게 이어갔다. 아마도 양심이 살짝 찔렸는지도 모른다. 괜히 윤슬을 너무 많이 놀려 먹은 게 떠올라서.“윤슬 씨의 행동 물론 좋은 미덕이에요. 하지만 정글 같은 세상에선 잘 안 통해요. 뭐, 사회에 갓 나온 편이니까, 앞으로 부딪히면서 알게 될 거예요.”윤슬은 끝까지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