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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게임

5년 후, S 시티 경성 국제공항.

강윤아는 이 낯익은 땅에 다시 발을 디뎠다. 마음 속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끓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5년 전, 청계 마을에서의 그 황당했던 하룻밤 이후, 그녀는 글쎄 임신을 하게 되었다.

꼬박 석 달 남짓할 때에 배가 불룩해졌다. 그녀는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한순간에 뒤바뀌게 되었다.

원래 그녀에게는 곧 결혼을 앞둔 약혼자가 있었는데, 뜻밖에 임신하는 바람에 그는 단칼에 그녀를 떠나버렸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그녀 할아버지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강윤아의 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그녀와 부녀 관계를 끊어버리기까지 했었다.

강윤아는 순식간에 강씨 가문의 가장 큰 치욕거리로 전락했다.

경성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여자의 도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악의적으로 그녀를 모욕했다.

경성의 유명한 순수하고, 순결한 여신이었던 강윤아는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거리는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있는 천하디 천한 여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

그 후, 그녀는 강씨 가문에 의해 해외로 보내졌고, 5년 동안 이렇다 저렇다 소식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행방을 묻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마치 강윤아라는 사람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날의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자, 강윤아는 코끝이 시큰거렸다. 마음 속은 마치 큰 바위에 눌린 듯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때, 옆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엄마, 왜 멍하니 서 있어요? 짐 찾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강윤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작은 꼬마를 바라보았다.

그 꼬마는 강윤아의 아들인 은찬이었다.

그해, 강씨 가문에 의해 강제로 출국한 뒤 그녀는 아이를 지우지 않았다. 외국에 있는 몇 년 동안 그녀는 온갖 고생을 다 겪었는데, 만약 은찬이 옆에 없었다면 그녀는 아마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강윤아는 은찬을 향해 피식 웃었다.

“알았어. 갈게. 엄마가 짐을 찾는 동안 은찬이는 저기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스타벅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은찬은 어른흉내를 내며 연신 손을 저었다.

“네, 네. 알았어요. 엄마가 올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가보세요.”

은찬이 말했다.

“그럼 먼저 들어가서 먹을 것 좀 주문하고.”

강윤아는 웃으며 은찬의 볼을 주물렀다.

말을 마치고, 그녀는 은찬의 작은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은찬은 그런 그녀의 손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몇 번 말했어요? 얼굴을 주무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엄마가 자꾸 주물러서 못생겨지면 어떡해요? 그러면 아마 나중에 발렌타인데이 때에도 저에게 초콜릿을 주는 여자가 한 명도 없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되면 엄마가 책임 질 거예요?”

그의 말에 강윤아는 실소를 터뜨렸다.

“알았어, 알았어. 안 주무를게.”

두 사람은 그렇게 웃고 떠들며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강윤아는 은찬에게 음료수와 디저트를 주문해줬다.

“여기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어디로 도망가면 안 돼.”

“엄마, 엄마는 아직 젊은데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아요? 이러면 안 돼요.”

은찬은 한 편으로 강윤아가 사준 디저트를 먹으며 한 편으로 그녀에게 핀잔을 줬다.

그러자 강윤아는 퉁명스럽게 그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만에 하나 너를 잃어버릴까 봐 겁나서 그러는 거야.“

그녀의 말에 은찬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엄마가 저를 잃어버릴지 몰라도 전 엄마를 안 잃어버려요.“

”••••••“

은찬은 올해 겨우 네 살밖에 안됐지만 머리가 아주 총명해서 무슨 일이든지 현명하게 처리했다.

그때, 종업원이 두 모자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이 꼬마를 오실 때까지 봐드릴게요. 마음대로 도망가지 못하게 제가 잘 보고 있을 거니까 안심하고 짐 찾으러 다녀오세요.“

”정말요? 이거 정말 죄송해서 어쩌죠?“

강윤아가 말했다.

”괜찮아요. 이 꼬마가 워낙 귀여워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서 그래요. 어서 다녀오세요.“

강윤아는 종업원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올라갔다.

”그럼 신세 좀 질게요. 고마워요. 빨리 올게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안심하고 커피숍을 떠났다.

눈 깜짝할 사이, 어느새 자리에는 은찬 한 사람만 남았다.

은찬은 이목구비가 매우 또렷했는데 동그랗고 큰 눈망울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는 심플한 티셔츠와 멜빵 청바지를 입고 있어 전체적으로 귀여움이 물씬 풍겼다.

공항이라 그런지 카페를 찾는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은찬을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에도 은찬은 익숙한 듯 당황하지 않고 포크로 케이크를 푹 떠서 한 입 맛을 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강윤아가 태어난 곳에 와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소 신기해 보였다.

그러다가 은찬의 시선은 갑자기 옆자리에 있는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검은색 정장에 흰색 셔츠를 입은 그 남자는 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로 휴대폰을 응시하며 엄지손가락을 화면에 댄 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요새 유행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게임에 흥미가 생긴 은찬은 남은 케이크를 빠르게 입에 털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남자 뒤로 가서 말없이 바라보았다.

게임에 너무 집중해서인지, 아니면 은찬의 키가 너무 작아서인지 그 남자는 주변에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났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남자가 여러 번 미션에 실패하자, 은찬은 그제야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저씨, 기술이 너무 형편없는 거 아니에요? 처음 놀아보세요? 이렇게 하면 팀원들한테 민페가 될 뿐이에요.“

그제서야 남자는 은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남자는 은찬이 자신을 비웃자 짙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어이가 없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난 처음 놀아봐. 네 말투로 보아, 너는 이 게임을 잘 노는 거 같은데?“

”물론이죠, 전 게임에서 남한테 1등을 빼앗겨 본 적이 없어요.“

은찬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권재민은 이런 은찬의 모습을 보고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

예전같으면 누군가 자신에게 가까이 달려와 훈수를 두려고 한다면 그는 절대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은찬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말로만 하면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 한 판 해볼래?“

”네. 휴대폰 주세요.“

그러자 권재민은 자기 휴대폰을 은찬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후, 은찬은 믿을 수 없는 실력으로 게임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순위가 밀리고 밀려, 차트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던 권재민의 아이디는 순식간에 앞자리 다툼을 하고 있었다.

10분 후, 한 판이 끝나자 권재민은 어안이 벙벙했다.

‘•••••• 이겼다니?’

권재민은 잠시 멍하니 은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역시 대단한데? 누가 가르쳐 준거야?”

“이걸 누가 배워줘야 해요? 그냥 아무렇게나 한 번 놀다보면 어떻게 노는지 금방 알 수 있어요.”

은찬이 말했다.

권재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아무렇게나 놀기만 하면 된다고?’

만약 그의 기억이 맞다면, 이 게임은 권씨 그룹의 계열사인 게임 회사에서 개발한 것이어서 게임은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었다. 요 며칠 회사에서 게임 테스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도 몇 번 놀아봤다가 하는 족족 연거푸 지고 말았다.

게임에서도 모자라, 지금은 네댓 살짜리 꼬마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말았다.

이건 그의 인생에서 전례 없는 경험이었다.

권재민이 한창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은찬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저씨, 제 제자가 되지 않겠어요? 앞으로 게임할때 제가 아저씨를 가르쳐 드릴게요.”

권재민은 이 상황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나더러 네댓 살짜리 아이를 스승으로 모시라고?’

비록 은찬은 확실히 게임을 잘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도 권씨 그룹의 대표인데 밖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이런 생각에 권재민은 단번에 은찬의 제안을 거절했다.

“스승으로 모시는 건 됐어. 같이 게임을 하는 건 고민해볼게.”

“그래요, 그럼. 아쉽네요, 아저씨는 신이 될 기회를 놓치셨어요.”

은찬은 한숨을 푹 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무표정하던 권재민의 얼굴에는 그의 말에 미소가 번졌다.

“난 신이 되는데에는 관심이 없어. 그래도 너랑 같이 게임하는 건 좀 기대돼.”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내 명함이야. 위에는 내 연락처가 적혀있어.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

“네. 알겠어요.”

은찬이 말했다.

은찬은 눈 앞에 있는 품격있고, 멋있고, 자상한 권재민에게 호감을 느꼈다.

권재민은 은찬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거의 다 된 것을 발견하고는 일어나서 은찬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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