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S 시티, 청계 마을.야심한 밤.대낮의 소란스러움은 사라지고, 마을에도 안정과 평화가 찾아왔다.고급스럽게 꾸며진 마을에서 강윤아는 침대에 누워 한동안 엎치락뒤치락하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오늘 밤, 그녀는 이 좁은 방에서 낯선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건••••••마침 요즘이 여행 성수기이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십 여 개의 마을은 이미 먼저 다른 관광객들로 예약이 꽉 차있었다. 그녀가 오늘 이 마을로 도착했을 때는 마지막 방 한 개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마지막 방조차 그녀보다 한발 앞서 온 여행객이 차지해 버렸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라 다른 숙소를 구하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마침 숙소 주인이 조금 전 그녀보다 한발 앞서 온 여행객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건 어떠냐는 제안에 강윤아는 별 생각 없이 동의했다.하지만 그녀는 이제서야 조금 전 상대방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슬금슬금 머리를 내밀었다.‘남자면 어떡하지? 혹시 나쁜 마음을 품고 몹쓸 짓을 하기라도 하면••••••.’아무리 두꺼운 커튼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근본적인 걱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강윤아가 한창 머릿속으로 온갖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 사람이 옷을 벗는 것 같았다. 강윤아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그녀는 더욱 긴장한 채 두 손으로 이불 자락을 꽉 잡고 두 눈을 부릅떴다. 곧장 그 사람이 들이닥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강윤아의 괜한 걱정이었던 것일까? 옆 사람은 옷을 갈아입은 후, 불을 끈 뒤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균형적인 호흡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에 강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했는지 아니면 일시의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이내 졸음이 쏟아져내렸다. 그렇게 비몽사몽하던 와중에 갑자기 어딘가에서 기이한 향기가 풍겨왔다.꽃향기 같기도 하고 백단향 같기도
5년 후, S 시티 경성 국제공항.강윤아는 이 낯익은 땅에 다시 발을 디뎠다. 마음 속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끓었다.그녀는 자신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5년 전, 청계 마을에서의 그 황당했던 하룻밤 이후, 그녀는 글쎄 임신을 하게 되었다.꼬박 석 달 남짓할 때에 배가 불룩해졌다. 그녀는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한순간에 뒤바뀌게 되었다.원래 그녀에게는 곧 결혼을 앞둔 약혼자가 있었는데, 뜻밖에 임신하는 바람에 그는 단칼에 그녀를 떠나버렸다.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그녀 할아버지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강윤아의 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그녀와 부녀 관계를 끊어버리기까지 했었다.강윤아는 순식간에 강씨 가문의 가장 큰 치욕거리로 전락했다.경성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여자의 도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악의적으로 그녀를 모욕했다.경성의 유명한 순수하고, 순결한 여신이었던 강윤아는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거리는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있는 천하디 천한 여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그 후, 그녀는 강씨 가문에 의해 해외로 보내졌고, 5년 동안 이렇다 저렇다 소식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행방을 묻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마치 강윤아라는 사람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지난날의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자, 강윤아는 코끝이 시큰거렸다. 마음 속은 마치 큰 바위에 눌린 듯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그때, 옆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엄마, 왜 멍하니 서 있어요? 짐 찾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강윤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작은 꼬마를 바라보았다.그 꼬마는 강윤아의 아들인 은찬이었다.그해, 강씨 가문에 의해 강제로 출국한 뒤 그녀는 아이를 지우지 않았다. 외국에 있는 몇 년 동안 그녀는 온갖 고생을 다 겪었는데, 만약 은찬이 옆에 없었다면
권재민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윤아도 짐을 끌고 카페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은찬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테이블 위에 명함 한 장이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미심쩍은 듯 그 명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위에는 ‘스피드 테크놀로지 컴퍼니’ 라는 회사 이름이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권재민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이게 뭐야?”강윤아가 물었다.“명함이요. 아까 어떤 아저씨가 준 건데 나중에 시간 나면 놀러 오라고 했어요.”그 말을 듣고 강윤아는 안색이 굳어졌다.요즘 어린이를 유괴해서 인신 매매업체에 가져다 파는 장사꾼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게다가 은찬은 워낙 귀엽고 멋져서 유괴범들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후과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이런 생각에 강윤아는 곧 화난 척 정색하고 소리를 낮췄다.“은찬. 밖에서 낯선 사람과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고 내가 가르쳐줬잖아? 그런데 명함까지 받아? 지금 밖에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넌 귀엽게 생겨서 다른 애들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만약 누가 널 유괴해가면 어떡해?”은찬은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아니에요. 그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얼마나 잘생겼다고 그래요? 제가 여태까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잘생겼어요. 엄마도 한 번 만나보실래요? 어쩌면 두 사람이 잘 될 수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저한테 새아빠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은찬은 한창 신나게 말했다. 그러다가 강윤아에게 꿀밤을 얻어맞고 말았다.“은찬. 엄마가 요새 너무 오냐오냐했지?”강윤아는 주먹을 치켜들고 은찬을 노려보며 물었다.그 모습에 덜컥 겁을 먹은 은찬은 즉시 꼬리를 내렸다.“제가 잘못했어요, 엄마.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은찬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자, 굳었던 강윤아의 표정도 부드럽게 누그러졌다.“그래. 엄마는 우리 은찬이한테 무슨 사고가 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권재민은 깜짝 놀라하며 은찬을 바라보았다.은찬을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더군다나 그가 자기 다리를 끌어안고 아빠라고 부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운전석에 있던 기사도 이 호칭을 듣고 크게 놀랐다.그도 그럴것이 권재민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기로 소문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게 언제 이렇게 큰 아들이 생긴 것일까?운전기사가 깜짝 놀라서 의아해 하는 사이, 권재민은 눈살을 찌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이 자식. 사람 잘 못 본 거 아니야? 난 네 아버지가 아니야.”“아니요. 아저씨는 제 아빠가 맞아요.”은찬은 두 손을 더 꼭 끌어안고 그가 도망갈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그 모습에 권재민은 얼굴이 찡그러졌다.“놀리지 마. 난 네 아버지가 아니야. 어서 빨리 네 부모님한테 가.”권재민은 은찬이 자기를 따라나온 줄 알고, 모처럼 화를 내지 않고 상냥하게 말했다. 은찬은 다급히 그의 목을 끌어안고 다가가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게 조용히 속삭였다.“아저씨, 전 아저씨가 제 아빠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요. 근데 지금 우리 아빠인 척 좀 해줄 수 있어요? 우리 엄마가 나쁜 사람들한테 당하고 있는데 저를 아빠가 없는 사생아라고 욕해서••••••, 실례지만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권재민은 저도 모르게 동작을 멈추고 의아한 듯이 은찬을 바라보았다.은찬은 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권재민은 무의식중에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그는 이같은 곤난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은찬의 애원하는 눈빛에 그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네 엄마는 어디 있어?”“저기요.”은찬이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권재민은 은찬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강윤아와 두 눈이 마주쳤다.앙증맞은 이목구비를 가진 강윤아는 하얀 피부에 햇빛을 받아 수정같이 반짝반짝 빛났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어깨에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티셔츠와 멜빵 청바지를 입고 있어
강윤아는 은찬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어려 모든 것이 신기했던 은찬은 곧 병원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엄마, 외할머니를 보러 오셨다면서요? 외할머니는 어느 병실에 계세요?"은찬은 호기심에 눈을 껌벅이며 강윤아의 팔을 흔들며 물었다.강윤아는 피식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외할머니를 만나는 것을 그렇게 기대하고 있어?”“그럼요.”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여태껏 엄마 말고는 다른 가족을 만난 적이 없는 걸요.”은찬의 말에 강윤아는 마음이 짠해졌다. 과연 이번에 돌아온 그녀를 보고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강윤아는 안절부절못하며 병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5년 전,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만 해도 그녀의 어머니 온화하고 점잖은 모습이었는데, 왜 지금은••••••, 이런 꼴이 된 거지?강윤아의 손이 바들바들 가늘게 떨려왔다. 그녀는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 병상 쪽으로 걸어갔다.병상 위에 누운 여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그 시절의 귀부인 기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앙상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깊숙이 움푹 패여 있었고, 광대뼈만 툭 튀어나온 것이 마치 해골을 보는 것 같았다.자기 어머니가 이렇게 못쓰게 변한 것을 보고, 강윤아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물을 흘릴 뻔했다.“엄마, 외할머니 병••••••, 심각한 거예요?”은찬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강윤아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의사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의사는 처음보는 낯선 얼굴에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당신은 누구죠?”“저는 이 환자의 딸입니다. 우리 엄마••••••, 그녀의 상태는 지금 어떻습니까?"강윤아가 다급하게 물었다.의사는 병상에 있는 서만옥을 한 번 쳐다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전에는 꽤 심각했지만 지금은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있지만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강윤아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강윤아는 두 사람처럼 비열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박미란은 차갑게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 눈에는 경멸의 눈빛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강범석을 바라보았다.“여보, 당신이 좋은 마음을 품고 제안한 것인데 제가 보기에 윤아는 당신 성의를 받을 생각이 없어보이네요. 조금 전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다 들었어요. 윤아가 자발적으로 이 모든 것을 포기한 거 맞죠?”박미란은 말하면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서류는 내가 이미 작성했어. 오늘 마침 여기서 만났으니 바로 사인하는 게 어때?”‘조금 전 아빠는 분명 나를 찾으러 왔다고 했는데 우연히 만난 거라고?’강윤아는 속으로 냉소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수아가 옆에서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기 시작했다.“언니, 언니가 이렇게 원한이 깊은 줄은 몰랐네? 아빠가 주는 물건이 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 그러면••••••, 언니가 가지지 않는 이상, 모두 내것이 되겠네?”강수아는 의기양양하게 웃기 시작했다.원래 그녀는 강윤아에게 자진해서 재산을 포기하게 하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할 줄 알았는데 그녀가 의외로 쉽게 포기할 줄은 전혀 몰랐다.그러자 강윤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그제야 이들의 음모를 알아차렸다. 박미란은 분명 아주 일찍이 이 서류를 준비했을 것이다. 강범석이 그녀에게 자기 물건을 남겨주겠다고 했어도 두 모녀는 결국 어떻게 해서든 그녀 스스로 포기하도록 강요했을 것이다.강윤아는 두 사람이 자기 앞에서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그때, 강윤아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강수아와 박미란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강윤아, 또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 마. 네가 조금 전 그렇게 말했으니 어서 이 서류에 네 이름을 사인해.”박미란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강윤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서둘러 강윤아에게 서류를 건네주었
강수아는 말을 마친 뒤 강윤아에게 모욕적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더니 유유히 차에 올라탔다.강범석 일행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강윤아는 차가 멀어지는 것을 그 자리에서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눈을 돌려 방금 달려온 의사를 바라보았다.“도와줘서 고마워요.”강윤아는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그러자 의사는 다소 겸연쩍은 듯 손을 내저으며 막 입을 열려고 했다. 그는 강윤아와 조금 전 세 사람의 관계가 궁금했지만, 다른 사람의 가정일에 자신이 참견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그 의문을 꾹 삼켰다.그는 강윤아 손목의 상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그 상처••••••, 병원에 가서 치료해줄까요?”강윤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금 전 강범석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떠올리며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괜찮아요.”잠시 후, 의사와 헤어진 그녀는 병실로 돌아가 은찬을 데리고 나왔다.“엄마, 방금 엄마랑 싸운 사람들은 누구예요?”은찬은 병실에서 얌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목격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투는 내용은 듣지 못했다.강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일 뿐이야.”그녀는 은찬을 어른들의 분쟁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그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저는 짐작할 수 있어요••••••.”“응? 뭐라고?"강윤아는 그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다시 되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은찬이 중얼거렸다.강윤아는 원래 이번에 귀국해서 서만옥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바로 떠나려 했다. 하지만 서만옥의 상태가 생각보다 이렇게 심각할 줄은 미처 몰랐다. 보아하니 박미란은 서만옥을 가만두지 않을 것 같고, 강범석도 박미란 옆에 꼭 붙어서 그녀 편을 들고 있으니, 강윤아가 여기에 남아서 서만옥을 돌보지 않는 이상, 서만옥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강윤아는 더욱 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