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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아빠

권재민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윤아도 짐을 끌고 카페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은찬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테이블 위에 명함 한 장이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미심쩍은 듯 그 명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위에는 ‘스피드 테크놀로지 컴퍼니’ 라는 회사 이름이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권재민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강윤아가 물었다.

“명함이요. 아까 어떤 아저씨가 준 건데 나중에 시간 나면 놀러 오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강윤아는 안색이 굳어졌다.

요즘 어린이를 유괴해서 인신 매매업체에 가져다 파는 장사꾼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게다가 은찬은 워낙 귀엽고 멋져서 유괴범들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후과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런 생각에 강윤아는 곧 화난 척 정색하고 소리를 낮췄다.

“은찬. 밖에서 낯선 사람과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고 내가 가르쳐줬잖아? 그런데 명함까지 받아? 지금 밖에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넌 귀엽게 생겨서 다른 애들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만약 누가 널 유괴해가면 어떡해?”

은찬은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아니에요. 그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얼마나 잘생겼다고 그래요? 제가 여태까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잘생겼어요. 엄마도 한 번 만나보실래요? 어쩌면 두 사람이 잘 될 수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저한테 새아빠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은찬은 한창 신나게 말했다. 그러다가 강윤아에게 꿀밤을 얻어맞고 말았다.

“은찬. 엄마가 요새 너무 오냐오냐했지?”

강윤아는 주먹을 치켜들고 은찬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 모습에 덜컥 겁을 먹은 은찬은 즉시 꼬리를 내렸다.

“제가 잘못했어요, 엄마.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은찬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자, 굳었던 강윤아의 표정도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그래. 엄마는 우리 은찬이한테 무슨 사고가 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넌 엄마의 소중한 보물이야. 만약 그런 너한테 사고가 난다면 이 엄마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을거야.”

“네. 알았어요.”

“알았으면 됐어. 가자. 우리도 이만 돌아가야 해.”

한바탕 혼을 내고, 강윤아는 명함을 내던지고는 은찬의 손을 잡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원래 강윤아는 직접 택시를 잡아 강씨 가문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이곳을 떠날 때, 그녀의 어머니는 울면서 멀리 가라고, 평생 돌아오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아끼는 사람이 그녀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병에 걸린 지금, 그녀는 반드시 어머니를 보러 와야만 했다.

두 사람이 공항 출구로 나오자 마침 옆에 빈 택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은찬을 데리고 차에 타려고 했다.

그때, 예상치 못하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윤아.”

그의 목소리에 강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확인했다. 그 사람은 바로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옅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검은색 벤틀리 옆에 서 있었다. 늘씬한 몸매에 오똑한 콧날,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햇살을 받아 온화하고 우아해 보였다.

몰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강윤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승현.’

강윤아는 여기에서 고승현을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고승현과 결혼을 할것을 통보했다.

강윤아는 고승현한테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 후, 고승현은 사람들 앞에서 바로 약혼을 취소시켰고 강윤아를 간접적으로 비난하고 패가망신시켰었다.

지금 이렇게 그를 다시 보니, 그녀는 속이 메쓱거리고 마음속의 분노가 차올랐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강윤아가 차갑게 물었다.

고승현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기색이 감돌았다.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봉강 아저씨의 명을 본받아 널 데리러 왔어.”

‘우리?’

강윤아는 우리라는 단어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가 막 무슨 말을 하려는데 옆에 주차된 벤틀리 조수석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심플한 흰색 원피스에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는 뚜렷한 이목구비에, 큰 두 눈에서는 은은한 도도함과 의기양양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정하게 고승현의 팔짱을 꼈다.

“윤아 언니, 오랜만이에요.”

그녀의 등장에 강윤아의 얼굴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그녀는 바로 강윤아의 이복동생인 강수아였다.

약 7년 전, 강윤아의 아버지는 강수아를 강씨 가문으로 데려왔었다.

강윤아는 대외에 좋은 남자로 소문난 아버지가 어머니 몰래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자신과 고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여동생을 데려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당시 강윤아는 큰 충격을 받아 강수아를 미워하고 배척했었다.

강윤아는 요 몇 년 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다소나마 강씨 가문의 소식을 접했었다.

들은 소문에 의하면, 강윤아 아버지는 강수아의 어머니를 집으로 들였다고 했다. 그 바람에 본처인 강윤아의 어머니는 총애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이번에 그녀의 어머니가 중병을 앓은 이유가 다소 이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강윤아는 강수아 모녀가 더욱 미웠다. 하필이면 귀국하자마자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을 만날 줄이야••••••

무엇보다 제일 싫은 건 두 사람이 꽤 친밀한 사이같았다는 것이다.

강윤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그 이유를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냉소했다.

“언니라니? 우리 엄마는 나 한 명밖에 낳지 않았어. 나한테 너 같은 동생은 없어.”

강윤아는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강수아의 그녀의 말투에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침착했다.

“하긴, 언니 말이 맞아. 내 기억으로 언니는 5년 전에 강씨 가문에서 쫓겨났잖아? 그러니 더 이상 강씨 가문 사람이 아닌거지. 이제 내가 바로 강씨 가문의 큰 아가씨야.”

강윤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차오르는 분노를 꾹 눌렀다.

“참나. 사생아가 스스로 자기를 아가씨라고 부른다니••••••, 강씨 가문도 참 답이 없어. 저런 사생아를 가문으로 들이다니••••••.”

“•••••.”

강수아는 사생아라는 말에 강윤아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어머니가 불륜녀고,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은 줄곧 강수아 마음속의 빼낼 수 없는 가시였다.

아무리 강윤아가 강씨 가문에서 쫓겨났다고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강수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고승현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수아야, 이런 일로 화내지 마. 너는 아저씨가 인정한 강씨 가문의 딸이야. 네가 바로 강씨 가문의 큰 아가씨라고. 사생아는••••••.”

그는 강윤아 옆에 서있는 은찬을 바라보았다.

“강윤아, 그때 다른 남자랑 한 침대에서 뒹굴고 아이까지 가지더니, 기어코 그 아이를 낳은 거야? 저 아이야말로 영락없는 사생아야.”

그 말에 강윤아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당시 외국에서 그녀는 은찬이 그녀 옆에서 큰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은찬은 그녀에게 있어서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물이지, 사생아 따위가 아니었다.

강윤아가 이를 아득바득 갈며 한마디 하려 할 때, 강수아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언니, 당시 강씨 가문 체면을 그렇게 구겨놓고서는, 지금 이 사생아를 데리고 가문으로 들어가겠다는 거야 지금? 아빠는 절대 언니를 가문으로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않을거야.”

강윤아는 강수아의 말을 듣고도 시큰둥했다.

5년 전,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그녀를 강씨 가문에서 쫓아냈는데, 그때도 이미 그녀를 다시 가문으로 들여놓을 계획은 없어보였다.

“강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나한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런데 너희 모녀는 강씨 가문에 들어온지 꽤 됐는데도 어째서 지금까지 정식 부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거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승현은 굳은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강윤아,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수아는 좋은 마음에서 너를 데리러 왔는데 너는 지금 수아의 호의를 무시하는 거야?”

그 말에 강윤아는 피식 웃었다.

“왜? 화 나? 하지만 내 말은 사실인걸? 내 눈에는 강수아가 바로 사생아야. 그런 강수아랑 결혼하는 너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겠지.”

“엄마, 잘했어요.”

바로 그때, 여행가방 위에 앉아 있던 은찬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은찬은 새까만 눈동자로 강수아와 고승현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주머니, 아저씨. 지금 저를 사생아라고 했어요? 전 아빠가 있어요.”

‘아저씨? 아줌마?’

강수아와 고승현은 이 호칭을 듣고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빠? 그때 네 엄마가 널 임신했을 때, 누구의 아이인지도 몰랐었는데 네가 무슨 아빠가 있다고 그래?”

강수아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은찬은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 못 믿겠다는 거예요? 아빠를 데려와서 보여줄까요?”

“그래. 어디 한 번 찾아봐. 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보자.”

강수아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은찬의 말에 강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당장 은찬을 호통치려고 했다.

아버지가 없는데, 이렇게 큰 소리를 치면 어디 가서 아빠를 구해온 단 말인가?

잠시 후, 은찬은 트렁크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낑낑거리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검은색 벤틀리를 향해 달려갔다.

한편, 권재민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한껏 늠름한 기세로 서 있었다. 아마 공항을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운전기사가 공손하게 달려와 차 문을 열어주자 그는 허리를 굽혀 차에 올라탔다.

“아빠.”

그때, 어디선가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권재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은찬이 그를 향해 달려들어 그의 허벅지를 꽉 껴안았다.

조금 전 권재민이 공항에서 나왔을 때, 그는 바로 권재민을 알아보고 그때 이런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은찬은 큰 눈을 반짝이며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Kome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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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you 조이
사생아 죽은 아이 라는 뜻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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