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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동운
보건실 냉장고 안에 배양액이 두 개밖에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에 박효섭은 살짝 놀랐다.

냉장고 내부 온도가 아주 낮아서 배양액을 꺼내는 순간 바늘과 유리관에 순식간에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이건 네 거야.”

박효섭이 그중 하나를 양은수에게 건넸다.

“그런데 아직은 주사하지 마.”

양은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놀란 얼굴로 말했다.

“형도 퀘스트 알림을 받았구나.”

박효섭은 몸을 낮춰 주빈에게 말했다.

“주빈아, 형이 배양액을 주사해줄까?”

그런데 주빈은 배양액을 맞고 싶어 안달 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떨면서 거부했다.

운동장에서 배양액 얘기를 할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형, 나 주사 맞기 싫어요.”

주빈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말했다. 박효섭이 화낼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

“무서워하지 마.”

박효섭이 웃으며 달랬다.

“왜 맞기 싫은지 형한테 이유를 얘기해줄 수 있어?”

주빈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누가 봐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반면 서원은 배양액에 그렇게 큰 거부감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서원 역시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누가 올까 봐 겁먹은 표정이었다.

양은수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서원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배양액을 달라고 조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안 맞겠다고?”

“양은수.”

박효섭이 차분하게 양은수의 이름을 부르며 진정하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다시 주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빈이가 싫다면 안 놓을게.”

[클럽 알림. 박효섭 님은 배양액 주사를 거부했습니다. 박효섭 님에 대한 주빈의 호감도가 35%로 상승했습니다.]

박효섭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정답이 주사를 놓지 않는 거였어?’

주빈이 그제야 안심하면서 입을 열었다.

“운동장에서 형이 배양액을 찾겠다고 했잖아요. 학교 규칙에 따르면 알면서 얘기하지 않는 건 거짓말을 한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형을 여기로 데려와야 했어요.”

박효섭은 순간 멍해졌다.

‘그래. 그때 먼저 배양액을 찾자고 한 건 나였어.’

처음부터 끝까지 주빈에게 정말 배양액이 필요한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배양액이 시드는 걸 막아준다는 사실에 당연히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옆에 있던 양은수도 미간을 찌푸렸다. 그와 서원도 같은 상황이었던 모양이었다.

‘어쩐지 보건실 건물 앞에서 서원이 의욕이 별로 없더라니.’

주빈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배양액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요. 운동장에서 말하면 교감 선생님이 듣거든요. 내가 형을 거절하거나 배양액이 필요 없다고 하면 교감 선생님이 나한테 벌을 줄 거예요.”

박효섭은 주빈의 그림을 떠올렸다. 수많은 곤충 겹눈들이 바로 교감의 귀와 눈이었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이거나 교무실 직원들일 터.

그들은 교감을 도와 학생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배양액을 맞으면 꽃이 빨리 피어나긴 하지만 귀에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요. 맞지 말라면서 말리거든요. 나중에 어떤 애가 주사를 맞고 꽃을 활짝 피웠는데 교감 선생님이 데려갔어요. 그 뒤로는 그 친구를 한 번도 못 봤어요.”

박효섭의 얼굴에 짙은 고민이 스쳤고 양은수의 표정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둘 다 완전히 논리적 함정에 빠졌던 것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배양액이 학생들에게 좋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극도로 싫어했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학교 규칙을 어기면 꽃이 점점 시들어지고 결국 흰 옷을 입은 아저씨에게 끌려간다.

또 너무 말을 잘 들어도 꽃이 활짝 핀 후에 교감의 손에서 사라지게 된다.

‘어느 쪽을 택해도 막다른 골목인데?’

박효섭이 대책을 고민하던 그때 주빈이 용기를 내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이 배양액에 관해서 애들 사이에 이런 소문이 돌아요. 보건 선생님이 계속 뭔가를 개량하고 있대요. 개량된 버전을 맞은 애도 있었는데 꽃이 엄청 빨리 피고 사라지는 것도 엄청 빠르대요. 그 애들은 우리가 평소에 주사를 맞기 위해 기다리는 방에 안 들어가고 밤에 기숙사 6층으로 올라가서 보건 선생님 기숙사에서 주사를 맞아요.”

‘보건교사의 기숙사에서?’

박효섭과 양은수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호감도가 35%나 되는 주빈이 또 새로운 단서를 알려준 것이었다.

밤, 기숙사 6층, 개량형 배양액...

그가 가진 정원사의 작업복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게 우연처럼 보이면서도 한 가지 요소가 빠지면 조사 고리가 완전히 끊어진다.

“다음 목적지는 기숙사인가 봐?”

양은수가 손에 든 주사기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이 주사기 일단 다시 넣어둘까?”

박효섭이 눈을 깜빡이며 상대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읽었다.

“그래. 그럼 먼저 지금까지 서로가 아는 정보를 정리해 보자. 지금 오후 세 시야. 서둘러야 해.”

...

땡... 땡...

거대한 종탑에서 장례식 종소리 같은 소리가 울렸다.

시침이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황혼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모두 약속대로 운동장에 모였다. 화장한 여자는 입을 열자마자 조롱과 비아냥을 쏟아냈다.

“역시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구나. 가난뱅이 화가 따위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냥 사회의 기생충 주제에.”

박효섭은 웃을 듯 말 듯 하는 표정으로 상대를 쳐다봤다. 이젠 그도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내가 전용 버스를 탄 순간부터 계속 나한테 적대적이었어. 그런데 정보 교환할 상대한테 이렇게 나오면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까 두렵지 않아? 아니면 진짜 머리에 생각이 없는 건가?”

박효섭의 시선이 양복 남자에게 향했다.

화장한 여자가 실력 없이 콧대만 높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이 세상에서 저렇게까지 멍청하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다시 말해 일부러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감정을 흔들어서 약점을 드러내게 하려고? 투박한 도발이지만 일반 사람에게는 잘 먹혔다.

화장한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왜? 내 말이 틀렸어? 원래부터 폐병이 있었잖아. 게다가...”

그런데 여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빈의 몸에서 섬뜩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황혼 속에서 주빈의 그림자가 일그러지더니 순식간에 덩굴 같은 두 개의 촉수가 솟아올라 화장한 여자의 목을 꽉 조였다.

“우리 형 욕하지 마!”

박효섭도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화장한 여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박효섭과 주빈을 번갈아 보더니 옆에 있는 그녀의 학생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학생은 나무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양복 남자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효섭 씨, 진정해요. 이분이 테스트가 처음이라 무서워서 말실수를 했나 봐요.”

박효섭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 여자는 시한폭탄이었다. 그것도 멍청한 폭탄. 지금 제거하면 본보기로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고하기 딱일 텐데.

박효섭의 살기를 읽은 양복 남자가 다급히 말했다.

“얼른 정보나 교환하죠. 우리도 알아낸 게 좀 있어요. 다들 여기서 살아남으려고 이러는 거니까 좀 봐줘요.”

박효섭의 눈빛이 섬뜩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아직 첫날이라 판세가 불분명했다. 지금 완전히 적대 관계로 돌리기엔 너무 일렀다.

그렇다면 ‘착한 사람’ 이미지를 굳히는 것으로 가식적인 양복 남자의 경계를 푸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주빈이 착하지?”

박효섭이 주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 화 안 났으니까 얼른 내려놔. 봐, 화장이 다 번졌어. 주름도 드러나고.”

주빈이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더니 촉수를 거두었다.

겁에 질린 화장한 여자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기침했다. 정신을 차린 후 박효섭이 비웃는 걸 보고는 화가 치밀었는지 그녀의 학생을 노려봤다.

짝.

화장한 여자가 학생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옷차림으로 보아 여학생이었다.

“날 왜 때려요?”

여학생의 분노 가득한 목소리에 화장한 여자가 싸늘하게 웃었다.

“아까 왜 날 안 구했어? 쓸모없는 것 같으니라고.”

여학생은 화만 낼 뿐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때 주빈이 뭔가를 알아차린 듯 박효섭의 소매 속에 손가락을 넣어 글씨를 썼다.

박효섭은 가볍게 헛기침하고는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제 정보를 교환할까요?”

그들은 자기소개부터 했다.

양복 남자의 이름은 장민석. 현실에서는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했다.

화장한 여자의 이름은 유정금. 한 회사의 홍보팀에 다닌다고 했지만 태도와 말투로 보아 홍보팀이 아니라 다른 쪽 업계일 가능성이 컸다.

후드티 남자는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그저 백수라고만 했다.

곧이어 본론으로 들어갔고 박효섭이 두 가지 정보를 알려줬다.

첫째, 학생과의 호감도를 올리면 자신감이 생겨 꽃이 더 빨리 핀다. 둘째, 학교에 흰 옷을 입은 아저씨 괴물이 돌아다닌다.

물론 그 괴물과 직접 싸웠다는 사실, 그리고 여럿이라는 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장민석이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안경알에 이상한 빛이 스쳤다. 십여 초 후 뭔가 확신한 듯 다시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귀중한 정보군요. 저희 쪽에서도 알아낸 게 좀 있습니다. 보건실에 배양액이 있는데 학생들이 꽃을 빨리 피울 수 있게 해주는 약이랍니다.”

박효섭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나도 알아요. 그런데 저의 학생은 배양액을 싫어하더라고요. 다른 방법으로 꽃을 피우고 싶다고 해서 억지로 놓지 않았어요. 지금 보건실에 배양액이 두 개 있어요. 필요하시면 빨리 가보세요. 아까 게임하던 애도 그쪽으로 가는 것 같던데.”

장민석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황급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팀원과 함께 서둘러 가버렸다.

세 사람이 멀어질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박효섭은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전 주빈이 소매 속에서 남긴 글씨가 아직 선명했다.

[친구가 화났어요. 저 여자 위험해요, 지금.]

박효섭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런 거였구나.’

호감도는 오를 수도 있지만 내릴 수도 있었다.

호감도가 0이면 그냥 감정이 없는 비플레이어 캐릭터이고 죽든 살든 아무 관심이 없었다. 호감도가 오르면 숨겨진 정보를 많이 제공했다.

반대로 호감도가 떨어지면...

이 아이들도 연약한 어린애가 아니었다.

“양은수, 이제부터는 너한테 달렸어.”

박효섭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그때 주빈이 갑자기 말했다.

“형, 배고파요. 뭐 좀 먹으러 가요.”

그러자 박효섭이 웃어 보였다.

“형 가방에 맛있는 거 많아. 기숙사로 가자. 아까 약속했잖아. 형이 그림을 가르쳐주겠다고.”

...

잠시 후 주빈의 안내로 박효섭은 기숙사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이 놀라울 만큼 깨끗했다.

경비실에 기숙사 사감이 의자에 기대 자고 있었다.

박효섭은 원래 깨울 생각이 없었다. 주빈의 태도만 봐도 이곳의 모든 기이 생물체가 한 번 화를 내면 끔찍한 면을 드러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빈의 손을 잡고 경비실 창문을 지나가던 그때 코를 찌르는 향기에 박효섭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몸이 굳은 채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고는 깊이 잠든 기숙사 사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냄새... 흰 옷을 입은 아저씨한테서 나는 냄새랑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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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옆에 있는 옷장에서 보기 좋은 옷들을 꺼내 들었다.“주빈아, 오늘 저녁에 엄마랑 파티에 참석하자. 명심해. 꼭 밝은 모습을 보여줘야 해. 말없이 가만히 있지 말고 귀엽게 굴어야 해. 오늘 만날 손님들은 아주 중요한 분들이니까 엄마, 아빠 망신시키지 마. 알겠지?”여자는 그렇게 말한 뒤 몸을 돌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의 주빈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너 혹시 또 아빠 화나게 한 거니? 울지 마. 눈 부으면 저녁에 손님들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장윤희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러나 여자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됐어요. 누가 설명해 달래요? 쓸모없긴.”여자는 주빈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며칠 뒤면 네 입학 절차를 밟을 거야. 그때까지 배워야 할 게 많아. 우리 양씨 가문의 아이로서 고작 그런 일로 울다니, 창피하지도 않니? 겨우 그림 하나 가지고 유난이야...”경멸 어린 말들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마음에 상처를 냈다.옆에 있던 장윤희조차 그 말을 듣고 괴로워했는데 정작 주빈은 오히려 울음을 그쳤다.그는 그저 한쪽에 웅크린 채 미세하게 떨리는 몸으로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날 선 말들을 묵묵히 견딜 뿐이었다....해윤에서도 주빈의 입학을 상당히 중요시했다.심리 초상화를 통해 박효섭은 교장 장운석을 보게 되었다. 겉보기엔 꽤 젊어 보이는 인물이었다.그리고 그 옆에는 교감 최수민이 서 있었다.장운석은 웃으며 양선규에게 인사했다.“양선규 씨, 오랜만입니다.”옆에 있던 최수민도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이전에 진행된 실험에도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양선규는 손을 휘저으며 다소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제 요구는 하나뿐이에요. 제 아들은 이곳에서 졸업할 때 반드시 완벽해야 합니다.”주빈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옆에 있던 선생을 따라가서 기숙사를 배정받았다.다행히도 주빈의 반 친구들은 모두 좋은 아이들이었다.다들 착한 아이

  • 리얼 탈출 서바이벌 클럽   제35화

    어두컴컴한 가시덩굴 속에서 갑자기 반딧불이 나타났다.[주빈의 호감도가 90%가 되었습니다.][... 삑... 감지 결과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친화력 조건 충족.][기이 생물체의 호감도 충족.][천부적인 재능 심리 초상화 충족.][직업 퀘스트 ‘가면 대나’가 발동되었습니다.][당신은 인간의 마음에서 태어난 신입니다. 당신은 짙은 색채의 가면을 그려 중생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당신의 자비로움은 당신으로 하여금 기이 생물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그들을 불행에서 구원합니다.][퀘스트를 완수하려면 기이 생물체 세 마리의 호감도를 100%로 끌어올리고 그에 상응하는 심리 초상화를 완성하여야 합니다.][직업 퀘스트는 수락 후 취소가 불가하고 성공과 실패만 존재합니다.][실패하게 되면 직업 퀘스트는 자동 폐기됩니다.][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박효섭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수락!”그 순간 심리 초상화 능력으로 박효섭의 두 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그 모습에 주빈이 혼란스러운 눈빛을 했다.‘따뜻한... 빛이야...’탁.박효섭이 주빈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박효섭의 의식 속에서 도화지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넘어가더니 이내 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그곳은 조금 호화로운 저택이었고 하늘도 붉지 않았다.다소 싸늘한 방 안에서 어린 주빈의 불안한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아빠...”주빈은 겁먹은 얼굴로 화판을 안고서 업무 중인 양선규 앞에 섰다.양선규는 상당히 젊어 보였는데 주빈이 자신을 부르자 짜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아빠.”주빈은 아빠가 자신을 보지 못한 줄로 알고 자랑스럽게 화판을 들어서 그에게 보여줬다.“아빠, 저 엄마랑 아빠를 그렸어요. 보세요...”그러나 주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선규는 화판을 손으로 쳐서 떨어뜨렸다.화판은 바닥에서 떨어져서 부러졌고 주빈의 그림도 구겨져 버렸다.양선규는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며 쌀쌀맞게 말했다.“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지. 일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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