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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작가: 동운
박효섭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턱 끝까지 흘러내렸는데 침을 삼킬 때마다 옷에 스며들었다.

주빈이 고개를 돌리고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 왜 그래요?”

박효섭은 재빨리 입술에 검지를 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시선이 여전히 자고 있는 기숙사 사감에게 고정된 채 속으로 심리 초상화 능력을 발동했다.

마음속에 백지가 펼쳐지자마자 선이 빽빽하게 나타났다. 지우개로 미친 듯이 지우고 나서야 거대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박효섭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본능적으로 주빈을 등 뒤로 숨기고 백지 위의 형상이 완전히 선명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흰 옷 차림에 얼굴 여기저기에 수많은 조각이 붙어 있었다.

‘흰 옷을 입은 아저씨.’

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얼굴, 옷차림, 체형은 같았지만 한 가지가 달랐다.

보건실 복도에서 만난 괴물은 전기봉을 들고 있었다. 지금 눈앞의 이 괴물은 양손이 낫이었다.

박효섭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주빈아, 소리 내지 말고 곧장 기숙사로 가자.”

주빈이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형, 우리 방은 4층 404호예요.”

주빈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안달이 난 듯 폴짝폴짝 계단을 올라갔다.

“잠깐...”

박효섭이 쫓아가려던 그때 뒤에서 기계적이고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너?”

그는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돌아섰다. 그런데 경비실이 텅 비어 있었다.

“뭐지?”

의아함을 품고 다시 돌아선 순간 창백한 노인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코가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경고. 현재 붕괴율 14%.]

박효섭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새로 입사한 지도교사예요. 제가 맡은 학생이 이미 올라가서 빨리 따라가야 해요.”

기숙사 사감이 박효섭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냥 지나갔다.

그 익숙한 향기 속에 축축한 흙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있었다.

...

기숙사 건물이 뭔가 이상했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계단은 1층 끝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달랐다. 어떤 계단은 복도 한가운데에, 어떤 건 구석에, 심지어 어떤 건 방 안에 있었다.

유리창에 건물의 모습이 비쳤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빙빙 돌고 돌아 마침내 404호에 도착했다.

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고 커튼까지 친 뒤에야 박효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내 웃으면서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주빈아, 시작하자.”

주빈은 이미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박효섭이 가방에서 꺼낸 건빵을 조금 먹고 나서 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는 기초 지식을 숨김없이 쏟아냈다.

주빈의 재능이 정말 놀라웠다. 불과 30분 만에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클럽 알림. 주빈의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시든 정도가 85%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박효섭 님에 대한 주빈의 호감도가 40%로 상승했습니다.]

[주빈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세요.]

박효섭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학교 규칙에 따라 이 정도의 재능이라면 반에서 제일 뛰어난 학생이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시들어가고 있는 걸까?

“주빈아, 그림 이렇게 잘 그리는데 선생님들이 너한테 따로 지도해준 적이 없어?”

주빈이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들은 그림을 그리는 걸 싫어해서 그림을 그리는 애들도 싫어해요.”

박효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림을 그리는 걸 싫어한다고?’

그는 조심스럽게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대답을 다 들은 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학교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그림 그리는 취미를 제외하고는 어떤 취미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규칙은 주빈이 입학한 이후에 생겼다.

‘이런 우연이 다 있다고?’

주빈의 말대로라면 반 전체, 아니 학년 전체에 그림을 좋아하는 학생이 주빈 하나뿐이었다.

주빈이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바로 그림 그리기가 학교에서 인정하는 취미나 특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 뒤로 주빈의 꽃이 급속도로 시들기 시작했다. 이건 노골적인 겨냥이었다.

‘대체 이유가 뭐지?’

박효섭은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이 화제를 잠시 내려놓았다.

“주빈아, 보건 선생님의 기숙사가 6층에 있다고 했지? 이 건물의 계단 배치가 너무 이상해. 건물 지도 좀 그려줄 수 있어?”

주빈은 박효섭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환하게 웃었다.

종이 위에 복잡한 기숙사 구조가 순식간에 정교하게 그려졌다. 지도가 완성된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박효섭은 재빨리 손짓으로 주빈에게 조용하라고 한 뒤 지도를 재킷 안쪽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문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들췄다.

창밖에 양은수가 서 있는 걸 보고서야 박효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긴장해 하는 박효섭의 모습에 양은수가 되레 당황했다. 기숙사 사감이 흰 옷을 입은 아저씨라는 소리를 들은 순간 양은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알았어?”

박효섭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보건실 복도에서 만난 그 괴물이랑 똑같은 냄새가 났어.”

나름 설득력이 있는 이유였다.

천부적인 재능 얘기는 일부러 뺐다. 아직은 누구에게도 그의 최대 비밀을 알려줄 수 없었다.

양은수가 워크맨을 꺼냈다.

“계획대로 보건실에 몰래 녹음기를 놔뒀다가 그 셋이 나간 뒤에 회수했어. 현장에 싸운 흔적은 없더라고. 생각보다 이성적이었어. 두 개의 배양액으로 틈을 보일 줄 알았는데.”

박효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은수와 함께 이어폰을 꼈다.

쉬익... 잡음이 들려왔다. 타닥타닥 발소리와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배양액이에요.”

유정금이 흥분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이거 맞으면 퀘스트를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유정금 씨, 진정해요.”

장민석이 흥분한 마음을 애써 참았다.

“두 개밖에 없다는 거 잊지 마세요.”

그러자 유정금이 요염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석 씨는 매너가 넘치는 분이라 나 같은 여자랑 빼앗지는 않겠죠? 게다가 내 학생이 제일 심하게 시들었잖아요.”

장민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후드티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난 배양액이 필요 없어요. 꽃 피우는 건 내 임무가 아니거든요.”

장민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끼익.

냉장고 문이 열렸다.

“야, 팔 내밀어.”

유정금이 학생을 다그쳤다.

“주사 맞기 싫어요.”

여학생의 목소리에 불쾌한 기색이 실렸다.

“네가 좋든 싫든 내 임무가 우선이야.”

곧이어 몸부림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몇 분 후 유정금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주사를 놓은 모양이었다. 장민석도 거의 동시에 끝냈다.

타닥타닥.

세 사람은 일을 마친 후 보건실 문을 닫고 나갔다.

박효섭이 막 이어폰을 빼려던 그때 테이프에서 구두 소리가 흘러나왔다.

양은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또 누가 들어갔어?”

박효섭의 시선이 양은수의 발에 향했다. 운동화였다. 구두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쉬익... 쉬익...

잡음 섞인 소리가 이어졌는데 복잡해진 보건실을 정리하는 듯했다. 그러다 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테이프도 멈췄다.

양은수가 이어폰을 뺐다.

“후드티 남자의 임무가 특별한가 봐. 다른 두 사람과도 거리를 두고 있었어. 두 사람은 배양액 주사 선택 임무를 받지 않았어. 정보가 부족해서 그런가 봐. 이전 테스트에서 나도 이런 적이 있었어.”

박효섭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더니 고개를 들어 양은수를 쳐다봤다.

“처음 발소리는 장민석 일행 세 사람이 나가는 소리였어. 그런데 뒤에 들어온 사람이 너 말고 다른 사람이라면 문을 여는 소리가 있어야 해. 들었어? 구두 소리 전에 문 여는 소리가 전혀 없었어.”

“문도 안 열었는데 보건실에 나타났어. 대체 언제 들어간 거지? 아니면 처음부터 보건실에 있었던 건가? 나가지 않고?”

양은수가 흠칫 놀랐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한기가 순식간에 온몸에 퍼졌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또 울렸다. 양은수는 본능적으로 단검을 꺼냈다.

“효섭 씨, 안에 있어요? 제 학생이랑 주빈이가 같은 방이래요.”

장민석의 목소리였다.

박효섭과 양은수는 눈빛을 주고받고는 서로를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박효섭이 문을 열자 장민석과 유정금, 후드티 남자가 나란히 들어왔다. 셋은 양은수와 서원을 보자마자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양은수는 이어폰을 끼고 그들을 무시했다.

서원의 꽃이 피기 일보 직전인 걸 본 유정금이 질투 어린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효섭 씨, 아까 오면서 상의 좀 해봤는데요. 정보가 아직 부족해요. 좀 더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할 것 같아서요.”

박효섭은 주빈을 옆으로 밀며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민석 씨한테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네.”

장민석이 웃으며 말했다.

“기숙사 건물을 조사해보려고요. 저랑 이분이 1층부터 3층까지 맡을 테니까 효섭 씨와 정금 씨가 4층부터 6층까지 맡아주세요.”

박효섭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양은수랑 저녁에 6층을 조사하기로 했는데 장민석도 조사할 생각이라고? 애들이 말해줬나?’

바로 그때 주빈의 작은 손이 박효섭의 소매 속으로 들어가 손바닥에 빠르게 글씨를 썼다.

[저 셋은 나중에 전학 온 애들이라 배양액을 아직 맞지 않았어요. 보건 선생님이랑 6층에 대해서 아직 모를 텐데.]

박효섭의 두 눈에 어둠이 스쳤다.

배양액 얘기는 아이들이 교감을 두려워해서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에 대한 주빈의 호감도가 높아서 거짓말할 리도 없었다.

그럼 장민석은 어떻게 이 정보를 알고 일부러 범위를 넓혀서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걸까?

게다가 테스트에 들어와서 자기소개를 하기도 전에 장민석은 이미 박효섭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설마 이게 장민석의 천부적인 재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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