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노문호는 마치 이도현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위로의 말을 건넸다.물론 노문호 본인은 절대 환자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곧 그의 의덕이자 의사로서 책임이며 그가 일반인으로 살아오면서 얻은 신념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도현에게 똑같이 요구할 수는 없었다. 이도현은 그와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이도현은 노문호가 평생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눈높이에 서 있다. 그렇기에 이도현이 볼 때 노문호의 생각이 그릇된 것일 수도 있다.한 가지 일이라도 보는 사람의 입장과 경지가 다르므로 답도 달라지고 옳고 그름의 기준 역시 달라지기 마련이다.“노 선생이 볼 때 제가 그 모자를 구하지 않은 것이 그릇된 행동인가요?”이도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아니요. 사실 저는 평범한 의사라 어쩌면 그 모자를 구했을지도 몰라요. 대대로 의술을 물려받으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이 있거든요. 의사는 부모의 마음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하고, 의사의 눈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없고 오직 아픈 자와 안 아픈 자만 있다고 배웠거든요. 아픈 자라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더라도 살려야 해요. 이게 우리 의사의 책임이에요. 설령 눈앞의 환자가 손에 피를 잔뜩 묻힌 살인마라 해도 살릴 수밖에 없어요.”“하지만 도현 씨는 다르잖아요. 도현 씨는 일반인이 아니기에 우리와 같은 관점으로 문제를 보면 안 되죠. 게다가 세상이 좋아지면서 많은 의사도 의덕을 지키지 않더군요. 어쩜 돈만 밝히는지... 돈을 내야 치료해주고 돈을 내지 못하면 환자가 바로 눈앞에서 죽어도 상관하지 않아요. 저조차도 가족을 부양하려고 한의원을 꾸렸잖아요. 그러니 그런 것들에 너무 얽매이지 말아요. 제가 방금 말했듯이 도현 씨가 생각하기에 옳은 선택이라면 죄책감 느끼지 말고 그냥 행동하세요.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어요. 생각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발목만 잡혀요.”“이 세상에 죽어 마땅한 자도 있어요. 특히 스스로 죄를 자초한 자, 용서 안 해도 괜찮아요. 그러니 인생에서 잠시 스쳐 가는 이런 일들
이도현은 자리를 비우느라고 조용히 노영식 집에서 나왔다.그는 회화나무 아래에 서서 고개를 들어 나무 잎사귀를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머릿속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혹여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냉정해졌는지 묻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만약 예전이었다면 이도현은 조강이 아무리 싫어도 조강의 아내와 아이가 고통에 겨워 무릎 꿇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면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이도현은 어떻게든 의사의 도리를 다하려 했을 것이다. 조강과 원한이 있다고 해서 아이를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반드시 조강의 아내와 아이를 구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이도현은 냉정하게 두 생명을 외면하고 자기 앞에서 죽어가는 걸 그저 지켜봤다.사실 이도현도 자기 선택을 의심하며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곤 했다.‘이렇게 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만약 내가 업보를 몰랐다면 두 사람을 망설임 없이 구했을까...’업보를 알게 된 후 이도현은 점점 주저하고 조심스러워졌다. 업보가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죽은 사람을 너무 많이 봐서 마음이 무뎌진 건지 알 수 없었다.이도현은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하늘 높이 자란 회화나무를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왜 그러고 있어요? 생각이 복잡해요?”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이도현은 정신을 차렸다. 뒤돌아보니 노문호가 언제부터인지 그의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이도현은 쓴웃음을 지었다.지금의 이도현은 몇 리 밖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넋 놓고 있다가 노문호가 코앞까지 다가와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만약 이 상황에서 적이 기습했다면 이도현은 벌써 등에 칼을 맞고 죽었을지도 몰랐다.그만큼 지금 그의 마음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 절대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었다.“노 선생, 언제 오셨어요?”“한참 됐어요. 도현 씨가 생각에 잠겨 있는 걸 보고 방해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을 못 찾는 것 같아서 결국 말을 걸어봤어요.
게다가 도굴도 도박처럼 이른 시일 내에 목돈을 구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어느 날 돈이 떨어지면 노영식은 분명히 다시 그 일을 하러 갈 것이다.이게 바로 인심이다.노영식 역시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차버릴 리 없다. 성사하면 인생이 바뀌고 실패해도 큰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어차피 구해 줄 사람이 있으니까. 최악의 경우라도 몇 년 만 죽은 듯 누워 있으면 그만이었다.주현진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이도현을 바라보는 눈빛에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자기 집안도 조강이네 가족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조강의 아내와 아이가 지금 얼마나 섬뜩한 상태인데. 주현진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쪼그라들었다.만약 자기와 아이도 그렇게 된다면...“제가 왜 조강의 아내와 아이를 구하지 않는지 묻고 싶죠? 아이는 무고한데 왜 구하지 않느냐고.”“아니에요... 애 아빠, 저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저는 애 아빠가 그 사람들을 구하지 않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절대 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만약 그자들을 구하는 게 애 아빠에게 해가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주현진이 다급하게 대답했다.“형수님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건 아니에요. 아마 열 명 중 아홉 명은 제가 매정하다고, 무고한 아이를 왜 살리지 않느냐고 비난할 거예요. 하지만 아무도 제 생각은 안 해요. 그자들을 구하면 제가 어떤 피해를 볼지 생각하지 않아요. 본래 그자들의 업보가 저에게 이전되는데 말이에요. 만약 제가 평범한 의사였다면 그자들을 구했다가 엄청난 불행을 겪었을 거예요. 심지어 제 가족도 불행해졌을 거예요.”“사람을 구하면 공덕이 쌓이니까 일부 업보를 메꿀 수 있긴 해요. 하지만 도굴과 같은 짓은 업보가 너무 커서 별 쓸모가 없어요. 게다가 이 모든 건 그자들이 자초한 일이잖아요. 왜 이득은 그자들이 누리고 업보는 제가 받아야 하나요?”이도현의 목소리가 점점 더 차가워졌다.업보에 관한 내용은 최근 이도
“도현 씨, 미안해요... 제가 민폐를 끼쳤네요...”주현진은 마당에 서 있는 이도현을 바라보며 사과했다.“형수님, 이러지 마세요. 이건 형수님 잘못이 아니에요.”이도현은 몸을 돌려 울고 있는 주현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주현진이 계속 말하려 하자 이도현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형수님, 정말 괜찮아요. 저는 어쨌든 영식이 형을 구했을 거예요. 이 일이 저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거든요. 게다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수님과 지안을 생각해서라도 영식이 형을 구했을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번 일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 처리했거든요. 앞으로 영식이 형이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이 말을 들은 주현진은 마음속이 뭉클해졌다. 특히 그녀와 노지안을 생각해서 노영식을 구했다는 말이 그녀의 가슴속에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애 아빠...”주현진은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됐어요, 형수님. 이제 다 지나간 일이에요. 방금 제가 영식이 형에게 싸늘하게 굴었던 것도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어서예요. 믿기 힘들겠지만 이 세상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들이 있어요. 제가 겪어봐서 알아요. 이 세상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 수없이 많아요. 그렇다고 해서 절대 막무가내로 행동해서는 안 돼요. 옛날부터 도굴꾼 중에 끝까지 잘된 사람은 없어요. 적당한 선에서 손을 떼거나 특별히 능력 있는 자만이 무사히 살아남았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불행만 쌓아갔어요. 도굴의 업보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일반인이 누릴 수 있는 운이 한정되어 있거든요. 그 한도를 넘어서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돼요.”“여러분의 운이 좋았다면 제가 오기 전에 그렇게 힘들고 초라한 삶을 살았겠어요? 저를 만난 후 달라진 삶이 여러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행운일 거예요. 지금 이 삶도 엄청나게 땡잡은 거예요. 그런데 영식이 형이 계속
“나...”노영식은 변명하려다 입만 벙긋거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는 그냥... 돈을 좀 더 벌고 싶어서...”결국, 그는 힘없이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돈을 벌어? 어떻게 그런 돈을 벌어? 5년... 자그마치 5년이었어. 내가 이 5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주현진은 감정이 격해져 소리까지 쳤다.“현진아...”“당신이 알던 주현진은 5년 전에 이미 죽었어. 가족 몰래 남의 무덤을 파헤치러 갔을 때, 그때 이미 죽었어.”주현진이 외쳤다.“내가... 미안해...”노영식은 사과밖에 할 말이 없었다.노강인은 두 사람이 싸우는 꼴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 비록 노영식이 잘못한 건 맞지만, 이대로 부부가 갈라서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형수님, 화 푸세요. 영식이 형도 잘못했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실수하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중요한 건 실수를 뉘우치고 고치는 거잖아요. 이번만 용서해주세요.”노강인이 웃으며 타일렀다.“맞아요. 사람은 실수하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그 실수가 다른 사람과 우리 가족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뻔했어요. 만약 도현 씨가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주지 않았다면 영식 씨는 바로 죽었어요. 그러면 우리 집안은 어떻게 됐을까요? 우리 지안이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아빠 없이 클 뻔했어요. 지안이 커서 아빠를 찾으면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아빠가 너무 탐욕스러워서 남의 무덤을 팠다가 저주에 걸려 죽었어’라고 대답할까요? 아이가 커서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의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해요. ‘쟤 아빠는 남의 무덤을 털다가 죽었어’, ‘저주받아도 싸’, ‘나쁜 짓 해서 벌 받았대’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요?”“예전에는 영식 씨가 아파서 원망도 못 했어요. 그런데 이제 다 나았잖아요. 제가 몇 마디 원망도 못 해요? 아무 말 안 했다가 또 그런 짓 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다음번에도 도현 씨가 목숨 걸고 구해줄 것 같아요? 천만에요.”주현진이 한바탕 화를 냈다. 지금 삶에 만족하지 않고 탐욕을
노영식은 이도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이도현이 왜 자신을 싫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 밉보였기에 이런 대우를 받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강인아, 이도현 씨 왜 저래? 나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것 같아. 내가 뭐 잘못했어?”몇 마디 말하다 보니 노영식은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아냐, 형. 도현 씨가 형을 싫어할 리 없어. 이 세상에서 형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도현 씨밖에 없었어. 게다가 도현 씨가 형을 살리려고 자기 목숨도 떼어줬어. 우리 아버지 말로는, 도현 씨가 형의 몸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자기 생명력을 형 몸에 주입했다고 해. 안 그러면 병이 나아도 형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거든. 도현 씨가 일반인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그 많은 생명력을 형에게 넘기지도 못했어.”노강인이 설명을 늘어놓았다.이 말을 듣자 노영식의 얼굴에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운 기색이 드러났다. 잠시 후 노영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정말... 이도현 씨한테 너무 큰 은혜를 입었어. 우리 가족이 지금처럼 생활할 수 있는 것도, 아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도현 씨 덕분이야. 도현 씨는 우리 집안의 은인이야... 세세 대대로 갚아도 모자란 은인이지... 근데 도현 씨가 방금 나가면서 한 말이 무슨 뜻이야? 악덕이라니? 나 나쁜 짓 한 적 없어...”“흥. 나쁜 짓 한 적 없기는. 방 안에 있던 물건들이 어디서 난 건데? 그거 다 남의 무덤을 파헤쳐서 가져온 거잖아. 그래도 나쁜 짓 한 적 없다고 말할 거야?”주현진이 화를 내며 말했다.남편이 회복되자 주현진이 마음속에 쌓였던 걱정과 설움이 한순간에 분노로 바뀌었다.이게 다 노영식 때문이었다. 만약 노영식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온 가족이 몇 년 동안 마음고생 하는 일도 없었다.이도현이 없었다면 노영식은 이미 죽었을 것이고 가족도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그건... 조강 씨가 같이 가자고 해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