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아아아아!”소름 끼치는 짐승의 포효가 울려 퍼지는 순간 백자재의 뒤편 우뚝 솟은 산속에서 거대한 검은 뱀이 하늘을 뚫을 듯 솟구쳐 올랐다.뱀은 번개처럼 번뜩이며 순식간에 서문 성루 위로 날아올랐다.검은 뱀은 몇백 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으며 장독만큼 굵은 몸체를 자랑했다.주먹만 한두 눈은 붉게 빛났고 이마 위에는 마치 뿔이라도 자라날 듯한 두 개의 커다란 혹이 불룩 솟아 있었다.“크아아아!”거대한 뱀이 다시 포효하자 피비린내와 악취가 섞인 강풍이 입에서 뿜어져 나왔고 매캐한 냄새는 사람들의 숨통을 틀어쥘 듯 강하게 퍼졌다.“저... 저게 도대체 뭐야? 짐승이 아니라 신이라도 된 거 아니야? 무서워 죽겠네.”“말도 안 돼. 어떻게 저런 괴물이 있을 수가... 머리 위에 혹 봤어? 혹시 뿔이 자라려는 거 아니야? 설마... 교룡이라도 되려는 건가?”“젠장! 교룡이라니... 교룡이라니!”성 위에 있던 사람들은 눈앞의 괴물 같은 거대한 뱀을 보고 완전히 얼어붙었고 뱀의붉게 빛나는 눈이 그들을 바라보자 본능적으로 몇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사람이 뱀을 무서워하는 건 본능이었다.하물며 저런 괴물 같은 뱀을 보고 도망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저 뱀은 그냥 뱀이 아니야. 이미 자아를 깨우치고 지능을 얻은 흉수야. 조심해야 해. 저 정도면 영급 경지의 무인과 맞먹을 거야. 하지만 저 뱀의 공격력만 보면 영급 강자보다 훨씬 더 강할 테니 절대 방심하면 안 돼.”공인아는 굳은 표정으로 거대한 뱀을 경계했다.흉수가 지능을 얻는 건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지능을 얻고 자아를 깨우치면 천지의 정수를 흡수하며 수련을 시작해 그 힘은 인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같은 경지라 해도 흉수는 인간보다 몇 배는 강했다.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여러 명의 왕급 경지의 강자도 천급 경지의 흉수 한 마리를 무조건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그게 바로 흉수가 타고난 이점이었다.수련을 시작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시작만 하면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강해지는 것이다.물론 흉수
백호는 결코 평범한 맹수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 공중에 떠 있을 수가 없었다.이도현은 이런 맹수를 처음 본다.그는 당시 세속계에 있을 때 웅나라의 북극곰 용사팀이 한나라에서 그를 죽일 때 수왕을 만난 적이 있다.그 수왕은 토끼 같은 얼굴에 긴 귀가 자라 있었다. 사람도 괴물도 아닌 자객이었는데 엄청 강대했다. 이도현은 그 사람을 죽인 후 결석 또는 내담 같은 것을 얻기도 했다.그때의 이도현은 이 세상에 정말로 수련할 수 있는 요수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런 요수를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이 백호가 요수가 아니라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게다가 이도현이 신기로 살펴본 결과 백호의 체내에 엄청난 힘이 담겨있었다.이 힘은 무사들의 원력과 전혀 다른 힘이었다.“백 어르신.”도망치던 사람들은 백호에 탄 노자를 보고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땅에 엎드려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공인아는 노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백자재, 당신 죽은 거 아니었어?”“하하하. 죽다니?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거야?”백자재는 실컷 웃더니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마 밖에서 다들 내가 죽었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는 거야? 정말 우습구나. 나는 그냥 폐관 수련하러 간 것뿐인데 죽다니? 허허. 나는 벌써 수원을 돌파해 앞으로 몇백 년은 더 살 수 있어. 원래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저 뒤에 있는 백호산에서 폐관하며 우리 청운제국의 진국공법인 백호어수결을 수련하고 있었어. 그런데 방금 용골의 기운이 감지되어서 나와보다가 네 놈이 인정사정없이 우리 청운제국 사람을 죽이는 꼴을 보게 되었어. 그러니 내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 이래 봐도 내가 청운제국 황실의 일원이거든. 어떻게 네가 우리 청운제국 사람을 죽이는 걸 그냥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하겠어?”노자는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를 했기에 이도현은 그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있었다.백자재. 원래는 청운제국 황실의 황자였다. 하지만 무술
“이도현... 네가 감히...”“이 녀석,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 네가... 감히 우리를 죽이려 해? 우리 가문에서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 녀석, 사람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우리 함께 덤벼서 저 녀석을 죽입시다.”“그래요... 저 녀석과 한판 붙어봅시다.”...청운제국의 여러 강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겁에 질려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바로 무기를 꺼내 들고 이도현과 목숨 걸고 싸우려는 사람도 있었다.그리고 이 틈을 타서 재빨리 몸을 돌려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죽어라...”이도현은 피식 웃으며 수중의 음양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붉은 검기가 뻗어 나와 하늘에서 태극도를 형성했다.태극도는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점점 커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청운제국의 여러 고수를 중간에 가두었다.잠시 후 태극도 중앙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곧이어 붉은 빛이 어렴풋이 나타나더니 바로 사라져버렸다.검붉은 검기가 다 사라진 후 바닥에는 피 흔적만 남아 있고 사람이 전부 없어졌다.“어서 가요. 저 녀석 너무 수상해요. 어서...”“도망칩시다. 우리는 저 녀석을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어서요...”뒤쪽에 있던 강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즉시 몸을 돌려 도망쳤다. 다들 위엄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도망쳐? 너희들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오늘에 하느님이 내려와도 너희들을 구하지 못한다. 그냥 죽어라...”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도현의 손에서 수십 개의 파란색 은바늘이 날아 나갔다.이도현은 이미 오랫동안 은바늘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의 내공이 끊임없이 제고되면서 은바늘을 사용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왜냐하면, 속도가 아주 빨라졌고 검기도 많이 길어졌기에 대부분 상황에서 적이 도망치기도 전에 검기로 상대방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바늘을 사용할 기회가 딱히 없었다.순식간에 수십 개의 은바늘이 밖으로
하지만 지금은 전혀 엄두가 나지 않았다.이도현이 대진제국에서 저지른 일만 떠올려도 겁이 나는데 싸울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반면에 주작제국의 병사는 사기가 엄청나게 올랐다.이도현이 있는 한 그들은 절대 서북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그들도 공인아에게 이렇게 강력한 후배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악마 같은 후배가 지켜주고 있으니 주작제국에서 누구를 두려워하겠는가?공인아는 사람들의 눈길을 무시한 채 이도현에게 다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도현 후배, 수고했어.”“아니에요, 선배. 시켜만 주세요. 이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죽일까요, 아니면 살려 둘까요?”이도현이 웃으며 물었다.“저들을...”공인아는 청운제국 사람들을 한번 훑었다.그러자 성문 위에 있는 청운제국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생사가 한 여자의 말에 달려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공인아의 아름다운 눈길이 스쳐 지나가자 그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리고 겁에 질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숨이 가빠졌다.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공인아를 바라보았다. 설사 죽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공인아의 대답을 기다렸다.“주작제국은 줄곧 청운제국을 건드리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청운제국에서 우리 주작제국의 남쪽 화산에 맹수가 출몰해 고수들이 관문을 지키러 간 틈을 타 서북성을 침략했지. 함부로 우리의 병사를 죽이고 백성을 학살했어. 오늘 너희들은 죽어도 마땅해. 이건 다 너희들이 자초한 거니까. 남을 탓하지 말고 탐욕스러웠던 너희 청운제국을 탓해.”“도현 후배, 저 사람들을 죽여줘. 부탁 좀 할게.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사망한 우리 주작제국 병사와 백성들을 생각해서... 저 사람들을 전부 죽여야 할 것 같아.”공인아는 가장 부드러운 말투로 가장 잔혹한 말을 했다. 그녀의 가벼운 몇 마디가 청운제국 수백 명 병사의 생사를 결정했다.“공주마마, 그... 그러시면 안 됩니다..
스읍...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절로 숨을 죽였고 청운제국의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까지 쳤다.그들은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눈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다니. 그것도 청운제국 일대 가문의 장로를.이건 그들이 평생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정말 놀라서 말이 안 나올 정도다.“여기서 누군가 입을 더 함부로 놀리면 바로 죽인다. 어디 한번 나의 선배를 위협해 봐.”이도현의 경고는 지옥의 속삭임처럼 사람들의 귀에 전해졌다.아무도 그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고 나서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청운제국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얼굴에 충격과 공포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지금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분명 눈앞에 승리가 보였는데. 이쯤이면 이미 서북성을 점령하고 남았을 텐데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온 건지.“너... 너 대체 누구냐?”한 노자가 불만에 겨워 물었다.“나? 태허산의 이도현이다.”이도현이 냉랭하게 대답했다.“태허산? 너... 네가 그... 대진제국 넷째 황자의 저택에서 큰 소란을 일으키고 천현문의 수많은 강자를 베어 죽었으며 대진제국의 대진왕까지 살해했던 바로 그 이도현이냐?”노자는 귀신이라도 본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부르르 떨며 이도현에게 물었다.“뭐라고요? 저놈이... 이도현이라고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저자가 그 괴물 같은 녀석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주작제국의 공주와 함께 있는 거죠? 그리고 방금 분명 주작제국의 공주를 자신의 선배라고 했어요.”“저 생각났어요. 주작제국의 공주가 궁궐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내전으로 인해 유년 시절을 민간에서 떠돌았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때 세속계의 태허산에서 자라면서 무공을 배웠다고 했어요. 이제 보니, 그것이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어요. 주작제국의 공주는 진짜로 태허산의 제자였어요.”“그... 그렇다면 우리 이제 어떡하죠? 태허산의 저놈이 여기 있는
주장수는 이도현의 공격을 막아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만약 검이 떨어진다면 그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죽음 앞에서 주장수는 더 이상 오만을 떨지 않았다. 지금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이에 주장수는 존엄 따위 내려놓고 큰소리로 외쳤다.“아... 안돼... 날 죽이지 마. 나는 주씨 가문의 장로야. 나를 죽이면 우리 가문에서 너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도현은 주장수의 협박을 무시하고 꿋꿋하게 검을 내리쳤다.“아...”주장수의 비명과 함께 그의 몸이 펑 하고 터지면서 피안개로 되었다. 그리고 바람에 날려 아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청운제국 주씨 가문의 장로가 이렇게 모두의 앞에서 사라졌다.사람들은 입이 쩍 벌어졌다.그들은 이도현의 막강한 실력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청운제국의 사람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중에서도 청운제국의 대장군이 특히 겁을 먹었다.이도현의 넷째 선배인 공인아 역시 이도현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들이켰다.“도현 후배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무슨 경지에 이르렀길래 이렇게 무서운 거야?”“헤헤. 넷째 선배,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죠? 제가 도현 후배는 짐승보다 더한 짐승이라고 말했잖아요. 믿기지 않겠지만 이게 사실이에요. 너무 상처받지 말아요. 심지어 이게 저 녀석의 전부가 아니에요. 저도 저 녀석이 도대체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어요. 완전 괴물이에요.”양주희는 이도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웃으며 말했다.이도현은 착지한 후 넷째 선배를 바라보며 말했다.“넷째 선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다 죽일까요? 아니면 살려 둘까요?”공인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청운제국 쪽에서 누군가 먼저 큰소리로 외쳤다.“어이, 공주. 경고하는데 저놈이 방금 죽인 건 주씨 가문의 장로야. 그쪽도 주씨 가문이 청운제국에서 어떤 위치인지 잘 알 거야. 저놈이 지금 당장 스스로 무공을 폐지하고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사죄한다면 우리는 이쯤에서 물러나고 3개월 동안 주작제국을 침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어때?”